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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새벽 다섯시. 전날 '앙코르에서 일출을 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계속 갸웃거리던 니르낫 군, "일단 해 보자"며 새벽에 약속을 했다. 워낙 캄캄하던 시간에 출발했지만 앙코르 와트 앞에 도착하자 어느 정도 사물의 윤곽은 보일 정도로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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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터운 구름. 이건 도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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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혹시 붉은 기운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노심초사 기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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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깨워 데려나온 마누라는 어느새 병아리처럼 꼬박꼬박.결국 해가 중천에 떠 버렸다(물론 구름 속으로). 어쩔수 없이 일단 호텔로 후퇴.오전 10시부터 다시 스케줄 시작. 이번엔 앙코르 최고의 정교한 부조를 자랑한다는 반티아이 스레이로 향했다. 반티아이=사원, 스레이=여자라는 설명. 즉 '여인의 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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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훨씬 작은 규모. 솔직히 약간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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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을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이 정교한 부조. 붉은 사암을 재료로 목각을 하듯 꼼꼼하게 파낸 솜씨가 정말 장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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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티아이 스레이의 탑들은 이처럼 가짜 아치+가짜 문+가짜 창문으로 되어 있다. 진짜는 문 주위를 장식한 부조들 뿐. 부조는 부조이되 입체감이 놀라울 뿐이다. 물론 요즘 기술로 저렇게 못할 리가 없지만, 그 긴 세월을 이겨낸 고인들의 솜씨 앞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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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눈길을 끄는 힌두 신화의 한 장면. <라마야나>의 악역인 라바나가 수미산을 뽑아 흔들고 있다. 수미산 정상에서는 시바가 파르바티와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데 말이다. 제아무리 불사신 라바나라 한들 시바에게 감히 대들 수는 없는 일. 잠시 후 라바나는 아주 비굴한 자세로 노래를 불러 간신히 시바의 노여움을 달래고 빠져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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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라마야나>에 나오는 원숭이 형제의 싸움. 앞의 글에서 보듯 활을 들고 이 싸움에 개입한 오른쪽의 사나이는 활의 명수 라마 왕자다. 손상은 좀 있지만 원숭이들의 몸짓에서 생동감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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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얼굴이 마모됐지만 이 납치 장면은 바로 <라마야나>의 핵심 갈등인 라마와 라바나의 대결을 촉발하는 '라바나의 시타 납치' 장면이다. 라바나는 라마의 꽃보다 아름다운 아내 시타를 몰래 연모해 어느날 몰래 시타를 납치한다.

쥐도새도 모를 범행이었지만 원숭이 장군 하누만은 이 장면을 목격하고 라마에게 알려줘 라바나를 물리치기 위한 라마의 대장정을 시작하게 한다.사실 라바나는 얼굴이 10개, 팔이 20개인 괴물에다 악신들의 제왕이지만 무려 1년 동안이나 시타를 보호하면서도 그녀의 마음이 돌아서기를 바랄 뿐, 무력을 행사해서 그녀를 차지하려 하지 않은 순정남의 면모를 보인다. (뭐 얘기가 되게 하려니까 그런 거지만...)

하지만 라마는 요즘 기준으로 하면 완벽주의자인 쫌팽이다. 결전 끝에 라바나를 물리치고 시타를 되찾은 라마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알까. 이제 당신을 악신으로부터 구했으니 의무는 다 한 셈이오. 당신은 당신의 갈 데로 가시오."라고 냉정하게 말해 버린다.(원 별... 그럴거면 뭐하러 그렇게 죽을둥 살둥 싸웠누?)결국 라바나와 싸워 이긴 건 시타를 되찾으려는 목적보다는 아내를 빼앗긴 데 대한 모욕감을 씻으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얘기다. 21세기라면 시타가 먼저 이런 남편의 자세에 질려서 돌아서련만 불행히도 시타의 시대에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게 여자의 도리였다.

아무튼 시타의 정절은 입증되고, <라마야나>는 해피엔딩을 향해 간다.(21세기는 커녕 17세기만 돼도 이런 클라이막스에서 대단원이 내려져야 하겠지만 <라마야나>는 이 뒤에도 라마와 시타의 귀향 과정을 지나치게 세심하게 서술해 독자의 인내력에 도전한다고 한다.)비록 라바나의 얼굴이 뭉개졌지만 이 장면은 앙코르 일대에서 여러가지 모습으로 표현되어 남아 있다. 이 반티아이 스레이에도 얼굴이 온전한 버전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지나치게 가까이 가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직접 찾아 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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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티아이 스레이의 상징 중 하나안 가루다 마크(?).]


반티아이 스레이를 나서는데 이제야 좀 훤한 해가 비치려고 한다.망할 놈의 해.반티아이 스레이를 가려면 기사 하루 일당(25불)에다 시외 수당(10불)을 더 얹어야 한다. 사실 1시간씩 시골 길을 달려 가서 30분만에 보고 나오면 좀 허탈하기도 하다. 부조가 멋지다는 건 결코 부정할 수 없지만 '반드시 가 봐야 할 곳'이라고 침을 튀기며 권하기엔 조금 망설여진다.
하지만 반티아이 스레이에서 약 15분 거리에 있는 프레 룹과 짝을 지워 놓으면 이동거리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계속)





앙코르 와트 지난 여행기 모아보기:

http://isblog.joins.com/fivecard/category/여행을%20하다가/앙코르와트/

(이상하게 클릭하면 문제가 생기는군요. 긁어다 주소창에 붙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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