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La Sagrada Familia 는 서쪽 출입구 쪽 매표구로 입장해 다시 서쪽 출입구로 나오는 구조다. 입장료는 14.8 유로. 건물의 규모가 비교가 안 되는 카사 밀라나 카사 바트요에 비해 훨씬 싸다. 물론 한국 돈으로는 2만원이 넘지만 아무튼 현장에선 그렇게 느껴진다.
그리고 입장하는 순간, 전혀 본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화려한 천장 기둥 장식. 수백의 꽃송이가 기둥을 떠받친다.
감동이 밀려온다. 이 정도 규모의 성당이 없는 게 아니라, 성당에서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라는 게 감동적인 거다.
예를 들면 전통적인 대성당의 천장을 찍었을 때, 기대되는 사진은 이런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유서깊은 산타마리아 델 마르 Santa Maria Del Mar 성당의 천장이다. 이런 비주얼도 매우 아름답지만, 이런 성당은 유럽 곳곳에 굉장히 많다. 그걸 가우디는 저렇게 획기적으로 바꿔 놓은 거다.
그야말로 기둥과 천장만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여기에 뒤를 돌아보면 환장하게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채광.
이틀 뒤 카사 바트요에서도 느끼지만 가우디는 자연광을 실내로 끌어들여 이용하는데 진정 장신의 솜씨를 보여준다.
하늘과 통하는 구멍 하나 정말 허투루 뚫린 것이 없을 정도.
그냥 이 안에서 살고 싶다. 다른 생각이 들질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첫날부터 너무 강한 걸 봤어...
사실 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성당 내부가 일단 완공된 것은 2010년의 일이다. 2009년 이전에 바르셀로나를 방문한 사람은 이 내부 광경을 볼 수 없었던 거다. 만약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내가 죽기 전에 이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싶다"며 스페인 정부를 압박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이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일각에선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공사가 자꾸 늦어지는 것이 '가우디의 유작, 아직도 건설중'이라는 화제를 한없이 길게 끌고 가려는 스페인 관광청의 음모라는 설도 있었을 정도니까.
이래저래 말이 많은 베네딕토 16세지만 이 시점에서는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일어났다.
내부 구조를 소개한 모형. 그러니까 평면도를 보면 성가족성당의 내부는 이런 식으로 생겼다.
1번 쪽이 현재 관광객들이 출입하는 서쪽 출입구. 2번이 성당의 주 제단(High Altar)이 있는 북쪽(출입구가 없다), 3번이 가우디가 생전에 완성한 동쪽, 그리고 4번이 현재 공사중인 남쪽이다. 위 모형의 4번 계단으로 볼 때 전체 성당이 완공되면 남쪽이 주 출입구가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이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주 제단(High Altar).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평면도의 4번 방향에서 2번 방향의 주 제단을 바라보면 이런 모습이다. 그리고 좌우의 스테인드그라스로부터 휘황찬란한 빛이 들어와 온 성당을 광휘로 휘감는다. 말하자면 빛의 오르가즘이라고 표현할 만 하다.
어지럼증을 느끼게 하는 매혹적인 광경의 연속이다.
3번 방향에서 1번 방향을 본 그림. 사진의 왼쪽 끝 나선 계단 뒤편에 옥수수 모양을 한 파사드 중간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줄 길이가 장난 아니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은 바로 그 나선계단이다. 대략 보기에만도 상당히 어지럽고 폭도 매우 좁다. 참고로 엘리베이터는 추가 요금이 있는데, 굳이 타고 싶지 않았다.
가우디가 만들어낸 동쪽의 조각을 보고 '마치 바닷속에서 솟아 올라온 기괴한 산호초같은 형상'이라고 느꼈다면 동쪽의 이 기둥 장식을 보고 흐뭇해질 수도 있다. 이 거북 받침은 가우디가 성당 건설 과정에 바다의 이미지를 담고자 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 동쪽 입구로 나오면 기념품 가게와 박물관으로 연결된다.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설과 관련된 도면, 모형, 사진자료, 스케치, 기타 등등이 꽤 방대하게 전시되어 있다. 가우디 마니아라면 이 박물관만 보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듯.
1926년. 가우디가 죽던 해까지의 공사 현장 사진이다.
가우디가 전철에 치어 죽었다는 것, 그리고 사망 당시 너무나 남루한 차림을 하고 있어 아무도 그가 그 유명한 가우디인지 몰랐고, 그래서 꽤 오랜 시간을 응급실 구석에 방치되어 있다가 죽었다는 일화 등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1882년, 31세의 나이로 스승이 짓던 건물을 물려 받아 1926년 사망할 때까지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설에 매진했던 가우디는 이 성당의 지하에 묻혔다. 그에게는 너무나 어울리는 영면의 자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묘소가 있다는 지하 기도실은 평소엔 개방하지 않는다.
이렇게 엿볼 수밖에 없었다.
매년 바르셀로나를 찾는 그 많은 관광객 가운데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찾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지만, 지금까지 내 두 눈으로 직접 본 인류의 구축물 가운데 이렇게 큰 충격을 준 건물은 없었다. 진정 탁월한 상상력과 그 구현체를 보고 싶은 자라면 하루 빨리 바르셀로나 행 항공편을 예약하라고 권하고 싶다.
오후 6시. 문 닫을 시간임을 알리는 경비원의 손짓이 아니었더라면 한참을 더 성당 관내에 앉아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유로자전거나라 투어의 가우디 투어 일정에는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떠나 람블라 거리에 있는 구엘 저택이 마지막 코스로 되어 있었지만, 중년 관광객에겐 하루 치의 체력과 감동을 느낄 능력이 모두 소진된 터라 여기서 일단 숙소로 향했다. 잠시 휴식으로 원기를 보충한 뒤 야간 투어를 따라 나서기 위해서였다.
아무튼 첫날. 하루 분의 감동으론 좀 지나치지 않았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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