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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고, 다들 좋다고 할 때는 역시 다 이유가 있다. 프라하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 다니는 곳은 카를교프라하 성, 그리고 구시가 광장 이다. 그리고 볼거리로 따지자면 역시 프라하 성이다. 그런데 프라하 성에 가면 프라하 성이 보이지 않는다(볼 수가 없다).

 

위 사진 같은 모습을 보려면 프라하 성을 내려와 강을 건너야 한다. 강 건너, 혹은 카를교를 비릇한 여러 다리 위에서 보는 프라하 성이 제일 아름답다. 간혹 프라하 성의 야경을 보기 위해 밤에 프라하 성으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 바보 짓이다.

 

가까이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멋지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게 프라하 성의 비밀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지도 나온다.

 

 

 

프라하의 핵심 지역. 왼쪽 붉은 원이 몰려 있는 곳이 바로 프라하 성이다. 동서로 살짝 긴 고구마같이 생겼다.

 

블타바강은 프라하 시내를 구불구불 관통하기 때문에 딱 뭐라 잘라 말하긴 힘들지만, 대략 남에서 북으로 관통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울처럼 강남과 강북이 아니라, 대략 강동과 강서로 도시를 가르는 셈이다.

 

프라하 성은 블타바 강을 기준으로 강서 지역의 고지대에 다소 비스듬하게 위치해 있다. 따라서 위 지도에 Charles Bridge 라고 나와 있는 카를교에서 볼 때 정면을 마주할 수 있다.

 

프라하 주변의 고지를 찾자면 오전에 갔던 비셰흐라드와 이 프라하 성(체코말로는 프라쥐스키 흐라드 Prazsky Hrad 라고 한다고 한다) 정도인데 특히 이 프라하 성의 위치는 프라하 전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요충지이므로, 프라하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수없이 성을 지었다 개축했다 했던 곳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항공사진. 성이라고는 하지만 프라하 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산성이나 옹성의 느낌이 아니다. 즉 성벽이 없다. 성벽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건물과 창들이 죽 자리잡고 있으니 막상 안에 들어와서는 건물은 많이 봤는데 저게 성이었어? 하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거다.

 

(그나마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는 북쪽 면은 대다수 관광객들의 눈으로부터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비교 대상을 알함브라 궁으로 삼는다면, 이게 주변에 일단 성벽과 해자로 민간 세계(?)와 성을 딱 구분해 놓고 시작한데다 알카자르 같은 요새의 흔적도 있으니까 아 여기가 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프라하 성은 그런게 전혀 없다. 그냥 촘촘하게 붙어 있는 빌딩들이 성처럼(!) 빙 에둘러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앞서 말했듯 처음에는 성곽도 있고 요새도 있고 했던 것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불필효한 요소는 치워 버리고, 그냥 건물들로 둘러싸인 성이 되었다는 그런 얘기다.

 

 

위 항공사진과 이 지도를 같이 보면 이해가 쉽다. 이 지도의 굵은 선들이 모두 성벽이 아니고 건물이다. 물론 비상시에는 성벽 역할을 하겠지만, 이미 화약무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 이후에도 계속 이 성이 증축되고 사용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 성벽과 해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이 성 지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성 비투스 대성당이다. 누가 봐도 성당같이 생긴 저 큰 건물 말이다.

 

 

 

멀리서 볼 때는 그냥 이 정도밖에 안 보인다.

 

 

 

 

그러다 회랑을 통과하면 갑자기 큰 건물이 훅 눈에 들어오는데 그게 대단히 인상적.

 

 

 

 

이렇게 불쑥 등장한다. 알고 보면 건물의 서쪽면인데, 큰 원형 스테인드글라스가 보인다.

 

 

 

이 성당 역시 이 성과 역사를 같이 해서 수백년간 건설되고 수십번 개축됐다.

 

저 디멘터같이 생긴 가고일은 언제부터 있었을지.

 

 

 

 

사실 성 비투스 대성당을 한바퀴 돌다 보면(돌기 싫어도 입장 줄이 길어서 한바퀴 돌지 않을 수 없다) 성당의 주인공이 저 가고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고일이 유독 눈에 띈다.

 

 

 

큰 성당 좀 다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가고일은 본래 높은 곳에 괸 빗물을 흘려보내는 배수구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오래전에 본 '노틀담의 꼽추'에서는 콰지모도가 저 구멍으로 끓는 물을 부어 침입자들을 물리치기도 하는 모습이 나온 듯.

 

(너무 옛날이라 기억이 불확실할수도 있음. 미리 발뺌.)

 

아무튼 몸을 한껏 뒤로 젖혀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성 비투스 대성당을 바라보니 뭔가 아찔하면서 멋지다.

 

이 건물을 이해하기 위해 일단 볼 수 있는 3개 사면을 같이 보는 것을 권장한다.

 

 

방금 전에 본 모습이 서쪽 정문, 즉 두개의 첨탑과 원형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면이었고,

 

 

 

이게 남쪽 면이다. 중앙 탑 양쪽으로 스테인드글라스들이 주르르 도열돼 있음을 볼 수 있다.

 

반대쪽인 북쪽 면은 첨탑이 없고 거의 비슷한 모양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쪽이 성당의 동쪽 면. 즉 주 제단 High Altar 가 있는 쪽이다. 곧 날아오를 것 같은 용의 형상이다.

 

유럽지역의 대성당들을 볼 때마다 어딘가 dragon의 느낌을 건물에 담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약 20년 전 프라하에 처음 왔을 때, 이 비투스 대성당의 동쪽 면이야말로 사악한 용의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더랬다. 경외감을 넘어 다소 공포를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아무튼 이런 모습의 성당이다. 안으로 들어감.

 

 

 

서쪽 입구로 들어가 동쪽 주 제단 High Altar 쪽을 바라본다. 역시 용의 등뼈같은 저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세비야나 밀라노의 대성당을 보고 온 사람들에겐 그리 큰 감흥은 없다. 대성당들의 구조는 거의 비슷비슷하기 때문. 하지만 이 성 비투스 대성당에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바로 아르누보 시대에 대폭 교체된 스테인드글라스.

 

다른 거대 성당들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비해 대단히 장식적이고 화려한 맛이 있다.

 

 

외경에서도 볼 수 있듯 수많은 스테인드글라스들이 줄지어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스타 중의 스타가 있는데,

 

 

 

바로 이 분.

 

 

 

 

그림체를 보면 딱 아실 수 있는 알폰소 무하 님의 작품이다. 대부분의 스테인드글라스들이 모자이크를 기본 표현 수단으로 삼는데 이건 그림이다. 20세기 초의 작품이라 그런지 아직도 매우 선명하고 아름답다.

 

 

 

 

흥미로운 것은 하단의 이 요상한 표시. 많은 사람들이 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대체 방카 슬라비아가 뭐야?"하는 궁금증을 갖는다. 답은 PPL이다. 상업미술의 대가인 무하 님의 작품을 여기에 설치하기 위해 자금을 댄 후원사가 바로 BANKA SLAVIE 라는 은행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무하 님은 저렇게 대문짝만하게 후원 마크를 박아 주셨다. 기업광고의 효시... 정도 될 것 같다.

 

(이 슬라비아 은행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거나, 이름이 바뀐 것 같다.)

 

 

 

건물 북쪽으로 2층에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는 구조가 다소 특이했다.

 

 

 

바깥 사진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방문자가 서쪽으로 들어와 동쪽의 주 제단 High Altar 을 바라보면 이런 뷰가 나온다. 새벽 미사 때면 저 스테인드글라스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을 것이고,

 

 

 

채광창으로 이렇게 빛이 들어와 실내를 더욱 신비롭게 하고 있었을 거다.

 

 

 

프라하 여행을 가면 꼭 듣게 되는 '성인 네포묵'과 관련된 그림. 14세기 말 프라하 대주교였던 얀 네포무츠키 Jan Nepomucky 는 왕비의 고해 내용을 알려달라는 국왕의 부탁을 거절한 이유로 고문을 당하고, 결국 혀를 잘린 채 카를교에서 강물에 던져지는 형벌을 받았다(당연히 죽었다). 그런데 그 뒤로 카톨릭 사제의 의무(고해성사의 비밀 준수)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공로를 높이 인정받아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체코말로는 얀 네포무츠키, 독일식으로는 요하네스 폰 네츠무크라고 불리는 분의 일대기다.

 

그림 좌하단에 왕비의 고해를 듣고 있는 네포무츠키의 모습이 있고, 오른쪽엔 국왕으로부터 직접 신문당하고 있는 네포무츠키의 모습이 있다. 그러니까 왼쪽 아래 모습은 자료화면인 셈이다.

 

 

 

이렇게 길게 설명한 이유는, 그 그림 바로 옆에 이렇게 네포무츠키 성인의 화려한 관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물론 시신은 없다). 은 2톤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침묵으로 신의를 지킨 그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저렇게 맨 꼭대기에 잘린 혀를 강조해놓고 있다. 맨 위, 천사 옆의 방패에 새겨진 명란젓같은 형상이 바로...혀다.

 

 

그리고 성당 남쪽 면에는 아마도 근대에 만들어 넣은 듯한 체코의 국가 문장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유럽을 다니다 여러 나라의 문장을 보다 보면 세상에 동물이 사자와 독수리밖에 없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자와 독수리는 인기있는 동물이다. 체코 역시 국가를 상징하는 동물로 사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잘 보면 꼬리가 두개라는 점이 특이하다. 잉글랜드의 국가 상징인 일어선 사자 lion rampant와 유사하지만 가장 큰 차이가 역시 꼬리다.

 

꼬리가 두개인 사자는 '브룬츠빅(Bruncvik)의 사자' 라고 부르는데, 브룬츠빅은 바츨라프 성인과 함께 체코의 전설적인 영웅이다. 흔히 '체코의 오딧세우스'라고 불린다는 그는 마법의 칼을 가진 전사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머리 아홉 달린 사자와 싸우는 신령한 사자(꼬리가 두개였다)를 도와 싸움에 이긴 뒤, 그 사자와 함께 온 세상을 누비며 모험을 한 양반이다. 브룬츠빅이 늙어 죽자 사자도 먹이를 먹지 않고 무덤 곁을 지키다 따라 죽었다(사람보다 오래 살았다니 역시 보통 사자가 아니다).

 

아무튼 체코가 위기에 빠지면 민족 영웅 바츨라프 Wenceclaus 가 브룬츠빅의 마법의 칼을 들고 달려와 민족을 구원할 것이라는게 체코의 흔한 민간 신앙이라고 한다. (이상 '동유럽 신화/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참조)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74644987

 

 

아래 문구인 Pravda Vitezi 는 "진실은 승리한다"는 뜻. 종교개혁자 얀 후스의 말에서 따 온 것이다. 저 문장 하나에 체코라는 나라의 요체가 다 들어 있는 셈이다.

 

 

 

남쪽으로 나와서 성 비투스 성당 구경을 마무리.

 

비투스 성당을 빼고 나면 사실 프라하 성 안에서 구경할 거리는 별 특별한 것이 없다. 왕궁 미술관이 있는데 작품 수도 꽤 된다고 하나 프라하 성에서 미술관 구경을 했다는 사람은 못 본 것 같다.

 

그 다음이 성의 남사면을 구성하는 '구 왕궁'인데,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별로 찍을 것도 없다.

 

 

 

창밖으로 내다보면 이런 풍경. 저 멀리 블타바강이 보인다.

 

 

찍지 말라고는 하는데 대체 왜 찍지 말라는지 알 수 없어 한장 찍었다. 구 왕궁 내부의 메인 홀이다. 지금도 체코 국가 정상이 주최하는 연회가 가끔 열린다고 한다. 유럽의 실내 홀 중에서는 가장 크다던가 뭐 그렇다. 특별히 감동적인 면은 없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연회장 옆의 한 방(구 국회였나, 궁정 평의회였나 뭐 그런 이름이었다)에 합스부르크 가 황제와 황족들의 초상화를 그대로 걸어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체코는 17세기부터 약 300년 동안 합스부르크 황제들의 지배를 받았다. 그런데 독립을 쟁취한 지금까지도 당시 황제들의 그림을 걸어 놓고 있는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광화문 뒤에 아직도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고, 그 건물 안에 여전히 천황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고 상상해 보자. 가당키나 한 일일지. 그런데 이 나라 사람들은 '어쨌든 그것도 우리의 역사'라는 입장이라고 한다.

 

...한국인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사고방식인데, 아무튼 그렇다고.

 

 

구왕궁을 지나 발길은 황금소로로 간다.

 

 

황금소로란 프라하 성의 북쪽 성벽 안쪽에 다닥다닥 붙어 지은 작은 집들의 거리를 말한다. 가이드북들은 주로 '동화 속 마을처럼 색색깔로 아름다운 작은 집들이 잇달아...'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직접 가 보면 대체 조만한 집 속에 어떻게 사람이 들어가서 살았다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좁고 궁벽하다. 사람 한두명이 들어가 그냥 눕기도 힘들 정도의 공간들이다.

 

그리고 황금소로라고 이름을 붙여서 그렇지 사실 사람들이 기억하고 보는 건 딱 하나다. 바로 저 22번 집 오른쪽에 붙어 있는 검은 줄 같은 표시.

 

 

 

'프란츠 카프카가 살던 집'이라는 표지 하나다. 카프카가 이 집에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니고, 아무튼 황금소로의 이 집에 산 적이 있다는 얘기다. 카프카가 이 집에서 글을 썼을까. 글쎄. 안에는 타자기 하나 올려 놓을 책상 하나 들어갈 공간도 없어 보인다. 침대나 하나 겨우 들어갈까 말까.

 

 

 

아무튼 천재 소설가가 살았다는 인연 덕분에 궁정에는 카프카의 동상이 서 있다. 왜 알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알몸인 탓에 동상의 한 부분만 금빛으로 빛난다. 아아...;;;

 

청동상은 본래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은 부분은 저렇게 된다.

 

스타 작가가 수십년간 받았을 성추행의 환난에 잠시 묵념.

 

 

 

일단 프라하 성 이야기는 이정도. 빨간 지붕을 보며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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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는 일단 걷고 시작하는 도시다.

 

몇해 전 바르셀로나를 다녀온 뒤 처음 만나는 도시와의 인사는 유로자전거를 통해 하는 것이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서울생활에서 도보와 멀어진 몸을 어떻게서든 여행 모드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한번 죽을 만큼 걸어 보는 것이 괜찮다는 생각. 그리고 그 도시를 가장 빨리 이해하는 길은 대중교통과 다리를 이용해 직접 길을 찾아 다녀 보는 것이라는 말에 절대 동의한다.

 

 

.

 

6월1일 밤늦게 도착해 여장을 푼 K+K CENTRAL PRAGUE 호텔.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공항에 떨어진 시간이 꽤 늦은 시간이라 미리 호텔에 ride를 요청했다. 가격은 700코루나/27유로. 코루나 대 유로 환율은 대략 25~26 대 1 정도다. 곳곳의 환전소에서는 다양한 환율을 제시하는데 아무래도 이 공정환율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

 

있을 것 다 있고 깔끔한 호텔인데 아쉽다면 슬리퍼가 없다. 밖에서 신던 신발을 방 안에서 신고 있으면 피로가 가중되는 체질이라 뭔가 맨발에 신을 것이 필요한데, 혹시 이 호텔을 이용하실 분은 비행기에서 적당히 하나 얻어 오시길 당부드린다.

 

그 외에는 다 OK. 욕조도 있고, 물도 하루에 1L(2병)씩 준다.  

 

 

이런 방...

 

 

아담하고 귀여운 조식당. 보시다시피 규모가 작고 가짓수가 많지 않지만 척 보면 알 수 있듯 음식들이 나름 공력이 들어가 있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오렌지주스도 직접 간 것이 나왔다. 그리고 나름 낙농국이라 그런지 유제품의 수준이 매우 높다. 특히 치즈 종류.

 

뭐 계란은 스크램블과 삶은 계란 두 종류 뿐인데, 조금만 용기를 내서 얘기하면 먹고 싶은 형태로 해 준다. 괜히 위축되시는 분들 있는데, 이건 여기 뿐만이 아니고 웬만한 호텔이면 다 해 준다. 계란 후라이가 먹고 싶으면 주저없이 요청하시기 바란다. (까짓거 안 해주면 그만이지)

 

 

 

우상단이 신선한 치즈에 찍어 먹는 생 햄. 이런 거 좋아시는 분들에겐 천국이다.

 

 

 

다른 각도에서 찍어 본 조식당. 예쁘다.

 

사실 호텔이 정면에서 보면 굉장히 작아 보이는데 앞뒤로 긴 방이다. 그래서 전망이나 이런 건 별 기대할 게 없지만 어지간한 특급호텔에서 기대할 만한 것은 다 있다고 보면 된다.

 

아무튼 쨍하니 맑은 다음날 아침. 유로자전거 도보 투어 집합 시간인 오전 8시 바츨라프 광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프라하에 왔다는 표시로 일단 바츨라프 광장의 상징인 바츨라프 동상 앞에서 기념샷.

 

 

(여전히 바츨라프라는 발음과 Wenceclaus 라는 철자의 괴리는 참 낯설다..)

 

시크한 유로자전거 가이드는 일행이 모이자 바로 이동 선언. 처음으로 체코 전철을 타 본다.

 

프라하 교통 1일권은 110코루나. 1코루나가 2017년 6월 기준 대략 50원이니 5500원 쯤 된다. 이걸로 하룻동안 버스와 전철, 트램을 계속 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전철역에 자판기 외에는 매표창구가 따로 없다 는 것인데... (그러고 보니 역무원도 본 기억이 없다)

 

잘 보면 전철역마다 매점이 있다. 이 매점에서 ONE DAY PASS를 달라고 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 매점이 주말에는 아예 문을 안 열든가 늦게 연다는 것. 그런데 자판기는 동전만 받는다. "그럼 주말에 전철을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함?" 방법이 없다. 어떻게든 나가서 문을 연 가게를 찾아 동전을 바꿔 오든가, 체포를 각오하고 무임승차를 해야 한다. 아찔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결론: 주말에 전철/버스를 타려면 1) 미리 1일권을 사 놓든가 2) 미리 동전을 충분히 갖고 있어야 한다. 사실 이 날이 금요일이었고, 다음날인 토요일 내가 직접 겪어 봐서 안다.  

 

 

프라하의 전철은 이렇게 3개의 색으로 구분된다. 바츨라프 광장의 바츨라프 동상/국립박물관 앞에 있는 역은 눈치로 때려잡아도 빨간선과 녹색선이 교차하는 무제움 Muzeum 역. 여기서 빨간 선으로 두 정거장을 가 비셰흐라드 Vysehrad 역에서 내린다.

 

역에 내려 5분쯤 걸으면 나타나는 성곽의 형태.

 

 

 

눈치로 때려잡는다 체코어로 따져 보면 Narodni 는 대략 영어의 National에 해당하는 것 같다. Kulturni 는 누가 봐도 culture와 관계 있는 단어겠지. 그럼 뭔가 국가문화유산 혹은 주요 사적에 해당하는 것일게다.

 

그리고 눈치 아닌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Hrad는 체코어로 성. 그러니까 비셰 성이다. 비셰는 '높다'는 뜻으로 합하면 '높은 성'이 된다. 고지가 흔치 않은 프라하 근교에서 이 정도의 고지면 상당히 전략적인 요충지로 보일 법 하다.

 

그냥 성은 아니고 체코 건국신화가 내재된 땅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민족 성지 역할을 한다. 체코의 단군할아버지 격인 체흐 Chech 가 나라를 세운 뒤, 그의 아들 크록 Krok 이 이 비셰흐라드를 도읍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의 딸이자 예언자인 리부셰 Libuse 가 나라를 통치했다.

 

리부셰는 체코 민족의 앞날에 엄청난 전란과 살상, 피와 죽음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그런 고초에도 불구하고 체코 민족은 영원할 것"이라는 희망의 말도 남겼다. 유난히 많은 국난을 겪었던 이 나라 사람들에게 리부셰는 희망의 상징으로 추앙된다고 한다.

 

 

걷기 좋은 돌길.

 

 

 

날씨도 좋고 어느새 내성 문.

 

 

 

멀리 저렇게 교회 종탑이 보인다.

 

비셰흐라드 안에는 국가적 성지가 있어 유명하다. 체코의 건국에 기여한 위인들만을 위한 묘지다.

 

 

 

 

 

 

들어서자마자 스메타나의 묘비가 사람들을 맞는다. 아시다시피 교향시 '나의 조국'으로 유명한 그 분.

 

뒤에 나올 드브로작과 함께 보헤미아 음악의 대명사인 그 분이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 있는 대형 위령탑.

 

 

여기에 이름이 오른 분들은 모두 체코의 위인전에 오를 만한 영예의 인물들이다. 예를 들어 왼쪽 두번째 칸을 보면 위쪽에 알폰스 무하가 있고, 그 아래로 바이올리니스트 얀 쿠벨릭과 지휘자 라파엘 쿠벨릭 부자가 있다. 이 정도는 해 줘야 이름이 올라갈 수 있는 영예의 공간이다.

 

(아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보후밀 카프카 는 유명한 조각가로, 우리가 잘 아는 프란츠 카프카 와는 무관한 사람이다. 체코에서 카프카는 그리 드문 성이 아닌 것 같다.)

 

 

 

이런 각양각색의 묘비들로 가득한 공간.

 

 

이렇게 비석 사이를 걷다 보면

 

 

안톤 드보르작 님의 묘소에 도달하게 된다.

 

 

생각해보니 내가 태어나서 처음 들은 드보르작 교향곡 9번이 바로 라파엘 쿠벨릭의 지휘로 녹음된 버전이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곡도 드보르작 교향곡 9번. 뭔가 다 연결된 느낌이다. (뿌듯)

 

 

묘지 바로 옆에는 두개의 첨탑이 돋보이는 베드로와 바울 성당 이 있다.

 

 

그런데 성당 문짝이 예사롭지 않다.

 

 

아이구 이뻐라.

 

 

 

다른 쪽 문은 또 다른 쪽 문 대로. 나름 유럽 좀 다녀 봤지만 이렇게 핑크색으로 예쁘게 꾸며진 문은 또 첨일세. 하지만 오전 10시가 성당 개장 시간이라 안을 둘러볼 수는 없었다.

 

 

 

비셰흐라드는 프라하를 관통하는 블타바(몰다우) 강의 남쪽에 위치한 요새다. 그닥 고지대가 없는 프라하 일대에서 이렇게 강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고지는 충분히 전략적인 가치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이런 뷰가 나온다.

 

아무튼 좋은 날씨와 수풀 길, 체코의 역사를 잠시 되새겨볼 수 있는 비셰흐라드는 산책을 겸한 여행길의 방문지로 매우 추천하고 싶다. 마음이 한가롭지 않은 분이라면 비추.

 

 

 

아무튼 그렇게 비셰흐라드 구경을 마치고 언덕을 내려와

 

 

트램을 타고 프라하 시내로 향한다. 비셰흐라드는 굳이 서울과 비교하자면, 대략 강서구 정도에 위치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해서 블타바 강 남쪽의 올림픽도로 아니고 강변 도로를 타고 시내 쪽으로 슝슝

 

 

 

 

그렇게 해서 트램/버스 환승을 위해 내린 곳이 프라하 오페라 하우스.

 

 

여기서도 공연을 볼 참이었는데 6월 초에는 뭔가 일정이 맞지 않았다. 매우 아쉽.

 

 

위 건물의 위쪽 조각상. 밤에 보면 참 멋질 광경이다.

 

 

그렇게 해서 시내로 진입해 도착한 곳은 프라하의 명소 중 하나인 무하 박물관.

 

 

 

아르누보 시대 최고의 수혜자(?)로 꼽히는 알폰소 무하의 작품이 전시된 무하 박물관이다. 입장료는 240코루나. 약 1만2000원 정도인데 이 가격이 싼거냐 비싼거냐에 대한 논란이 있다. 사실 작품 수를 생각하면 그리 싸지는 않다. 우리의 경우 유로자전거 투어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어 가이드 설명을 듣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어 시간이 꽤 걸렸지만, 일반 관람객이 이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은 30분도 길 수 있다. 그 정도로 작품 수가 적다.

 

 

무하를 혹시 모르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들어갈 필요는 없을 듯. 어쨌든 그림체를 보면 자다가 깨어나도 아 저게 무하 그림이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하다. 아마도 무하 그림이 찍힌 연습장 한 두 권 안 써본 사람 없을 듯. 그리고 무하가 전 세계 순정만화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지금까지도 지대하다.

 

 

게다가 무하의 작품 대부분이 포스터 내지는 석판화라서 '이 미술관만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의 느낌은 사실 별로 없다. 아마도 이 미술관이 갖고 있는 무하의 대표작이라면 이 '별 Star' 정도일 것이다.

 

그래서 굳이 하고 싶은 말은 - 무하의 그림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미술관은 패스해도 아무 지장이 없을 것 같다. 그걸로 맛난 거 사 드시라.

 

 

이걸로 오전 일정 끝. 런치 타임~

 

 

바츨라프 광장 끝자락의 가장 목 좋은 곳이라 아마도 시내에서 가장 비싼 집일텐데 파스타 종류는 200~300 코루나, 고기 종류는 300~500 코루나 정도 한다. 그래도 체코에서의 첫 식사라 어쨌든 먹어봐야 한다는 꼴레뇨 Koleno 를 시켰다.

 

꼴레뇨는 체코어로 무릎이라는 뜻. 말 그대로 돼지 무릎을 그냥 통으로 양념해 삶아 낸 요리다. 집집마다 방식이 조금 다르겠지만 이건 삶은 것만은 아니고 껍질을 살짝 튀겨 바삭한 맛을 살렸다. 어떤 집에 가면 짜다는 평도 있었는데 관광객 입맛에 맞춘 탓인지 전혀 짜지 않고 맛있다. 머스타드 소스와 함께 먹으면 아주 궁합이 좋다.

 

족발도 거의 먹지 않고 돼지고기 냄새를 싫어하는 동행인도 매우 만족했다.

 

 

자, 대망의 프라하 성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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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것의 효용은 떠날 상상을 하는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아주 막연히 시작합니다. 언제쯤 어디를 갔으면 좋겠다. 물론 한날 하루도 회사를 비울 수 없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 휴가라는 것이 그저 수험생 자녀들의 학원이 문을 열지 않는 기간에 불과한 분들에겐 너무나 사치스러운 이야기일 수 있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서 최성수기 제주도에 하루 100만원 가까운 호텔/체제비를 들여 며칠 간신히 다녀오는 것으로 휴가 여행을 다녀오는 분들이 꽤 있다고 합니다. 뭐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니 그런 가격이 가능하겠죠.)

 

이런 분들 정도는 아니더라도 휴가는 쉬러 가는 건데 대체 왜 쉬러 가는 것까지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계획을 하고 머리를 짜야 하는 건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자신의 여행을 디자인하는 것 자체가 이미 즐거움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찬찬히 한번 생각해 보시면, 세상 어떤 일에서도 저절로 만족할 만한 결과가 얻어지지는 않습니다. 쇼핑, 식사, 데이트... 다 그렇죠. 내가 직접 신경 쓰고 싶지 않으면 누군가 대신 신경써줄 사람에게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일찍부터 계획을 짭니다. 특히 항공사 마일리지를 활용해 비행기표를 얻어내려는 경우에는 꽤 일찍 일정을 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론 저라고 돌발상황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은 두 번의 실패가 있었습니다. (...티켓 반납에도 수수료가 꽤 듭니다) 어쨌든 이번에는 순탄하게 진행돼 '6월 독일행'이 가능했습니다.

 

 

 

 

 

 

 

프라하는 지난 2000년 다녀온 적이 있지만 단 하루를 구경했을 뿐이고, 언젠가는 한번 다시 가 볼 생각이었으므로 여정을 프라하-베를린으로 짜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 직행 노선은 기차로 4시간 30분. 버스로도 비슷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기차는 미리 예매하면 2등석이 20유로대, 1등석은 50유로대로 가능합니다. 버스는 시간대에 따라 10유로대도 가능합니다. 물론 기차가 버스보다는 쾌적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당초에는 두 도시의 거의 중간지점인 드레스덴 경유를 생각했더랬습니다. 독일 최고로 꼽히는 드레스덴 슈타츠오퍼(오페라 홀)에서 공연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찌 어찌 하다 보니 드레스덴에서 마땅히 볼 작품이 있는 날짜에 일정을 맞추기 힘들어졌고, 자연스럽게 프라하-드레스덴-베를린, 혹은 베를린-드레스덴-프라하가 연결되지 않게 되어 과감하게 포기했습니다.

 

사실 같은 이동이라도 한번에 4시간30분은 2시간/2시간30분으로 나눠 하는 이동보다 좀 버겁죠. 어쨌든 항상 원한대로 되지는 않는 법입니다. 오페라를 빼고 나면 굳이 드레스덴에서 1박을 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계산 일정은 프라하에서 3박, 베를린에서 5박으로 총 8박10일이 됐습니다. 프라하 도착 시간이 늦어 첫날 하루는 그냥 이동일로 소모하는게 아쉬웠지만 뭐 직장인으로 이 정도 날짜를 빼기는 쉽지 않습니다. 베를린에서 5박이 좀 길게 느껴져 다른 도시로의 이동도 고려했지만 일단 그건 현지 사정을 좀 더 정확하게 알아본 뒤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6월초는 '프라하의 봄' 음악제와 기간이 겹쳐 그런지 프라하 호텔비가 평소보다 30% 정도는 비싼 듯 했습니다. 물론 프라하는 큰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약간의 비용이 더 들더라도 숙소는 관광 포인트가 몰려 있는 구도심에 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어차피 대부분의 포인트는 걸어서 이동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후보들을 고민한 끝에 K+K센트럴 프라하 (https://www.kkhotels.com/en/prague/hotel-central) 를 선택했습니다.

 

방의 청결도, 위치, 조식에서 대단히 만족스러운 호텔이었습니다. 한 3분만 걸어가면 관광 포인트인 화약탑이 나오고, 술집과 식당, 카페가 즐비한데 골목 하나 바뀌면 바로 조용해진다는 점이 매우 매력적입니다. 방이 약간 좁다는 느낌은 가격 대비 감수하기로.

 

 

 

 

베를린에서도 5박이면 숙소를 한번 정도 옮기는게 좋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서울 사는 사람의 기준으로 베를린은 결코 큰 도시가 아닙니다 - 물론 전체 도시 면적으로 보면 베를린이 더 클 수도 있겠지만, 관광객의 입장에서 볼 때 베를린은 오히려 볼거리가 오밀조밀 모여 있는 도시입니다. 일반 관광객이 가는 서쪽 끝은 초 역(동물원 역), 동쪽 끝은 이스트사이드갤러리 정도라고 할 때 그 둘 사이의 이동 시간이 30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절대 호텔을 옮길 필요 없습니다.

 

물론 가기 전에는 이런 사실을 몰랐지만, 아무튼 수많은 베를린 호텔들을 검색해보다 풀먼 베를린 Pullman Berlin Schweizerhof (http://www.pullmanhotels.com/gb/hotel-5347-pullman-berlin-schweizerhof/index.shtml) 로 목적지를 결정했습니다. 공원 바로 앞이라는 아늑함과 쾌적함, 그리고 바로 앞에 베를린의 젖줄인 두 개의 버스(100번과 200번) 중 200번 정류장이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객실 넓이도 기대 이상이었고, 욕조는 없지만 욕실도 넓고 깔끔했습니다.

 

무엇보다 조식은 이제껏 가 본 수많은 호텔들 중 거의 수위권. 사용해 볼 일은 없었지만 지하에는 수영장도 있었습니다. 최대 백화점이라는 카데베가 걸어서 10분 이내, 동물원은 걸어서 5분. 아쉬운 점은 주변에 편의점이나 미니마켓이 없다는 점 정도였습니다.

 

 

 

사실 여행의 목적에 따라 다르겠지만 번쩍번쩍 빛나는 유흥가에서 늦게까지 어울리다 바로 방으로 올라가 잔다는 느낌을 원하는 분들에겐 권하지 않을 호텔입니다. 하지만 도심에서 가까우면서도 조용하고 깔끔한 느낌을 원하는 분들에겐 가격 대비 매우 훌륭한 호텔입니다. 아울러 베를린 곳곳을 헤집고 다니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베를린을 굳이 목적지로 삼은 것은 공연 관람을 기대했기 때문인데, 사실 이 부분을 중시하는 분들이라면 여행 계획을 미리 짜시라고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베를린이 베를린인 만큼, 클래식 공연에 있어선 DVD 타이틀 급의 아티스트들이 나서는 공연이 즐비합니다.

 

하지만 그런 공연들은 대략 60일 전이면 매진돼 버립니다. "자, 우리가 베를린에 왔으니까 큰 맘 먹고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 한번 봐 줘야겠지?" 하고 생각했을 때 표가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약 3개월에 걸쳐 공연 티켓도 사고, 기차 표도 사고, 호텔도 예약하고, 그렇게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바쁜 일상이지만 가끔씩 베를린 시내 지도를 보고 있을 때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패키지 여행의 장점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싸고, 알아서 밥 주고, 알아서 재워 주고, 알아서 차 태워 주고, '휴가'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면 이 쪽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문득 문득 베를린 지도를 볼 때마다 느끼는 기대와 흥분을 생각하면, 직접 디자인하는 여행의 재미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훨씬 더 비싸고, 실수할 가능성이 높아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 여행의 재미를 오래 오래 되씹기 위해서 천천히 여행기를 쓰겠습니다. 대략 1년 정도 소요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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