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최다니엘)은 정음(황정음)의 소꼽친구라는 박지성(아나운서 오상진)을 우연히 만나지만, 이것 역시 자신의 질투를 유발하기 위한 정음의 뻔한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석모도로 MT를 간다는 말에도 하하 웃으며 허락합니다.
하지만 지훈의 예상과는 달리 이번엔 정음의 작전이 아니었고 박지성이 정말로 정음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안 지훈은 그냥 불덩어리가 돼 버립니다. 줄리엔과 함께 있는 자옥을 본 순재나, 세호에게 수학을 배우던 세경을 본 준혁처럼 말이죠. 결국 이 집안 남자들은 모두 질투의 화신이었던 겁니다.
이걸 보면서 낄낄거리고 웃다가 문득 오랜만에 '작업1의 정석' 폴더에 글을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순재네 남자들은 정상적인 남자들의 눈으로 볼 때 - 물론 시트콤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 전형적인 남자의 질투 패턴에서는 꽤 벗어난 반응을 보입니다. 엄밀히 말해 질투를 느끼는 현상 자체에서는 남녀간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여자들은 질투를 표현하는 데 있어 대단히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반면, 남자들은 자신이 느낀 질투를 겉으로 드러내는 데 대단히 소극적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남자들은 질투를 표현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남자답지 못하고 쪼잔한 짓'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이 질투를 표현하는 가장 흔한 방식은 무관심의 가장입니다. 상당히 역설적이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부부나 연인이 함께 외출해 백화점에 갑니다. 서로 어느 정도 떨어져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데, 여자 쪽에서 한 남자와 친하게 아는 척을 합니다. 남자는 그 장면을 보지만, 절대 다수의 남자는 그쪽으로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절대 다수의 여자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자, 그 여자가 누군지 나한테 어디 설명해 봐'라는 듯 자기 남자 옆으로 다가가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여자와 새로 나타난 남자가 한참을 대화해도 남자는 못본 척 합니다. '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와 이야기하는 광경을 엿보는 놈' 조차도 되기 싫은 겁니다. 눈이 마주치면 가서 인사를 나눠야 할지도 모르는데, 인사를 하는 것 자체가 매우 불쾌합니다. (역시 많은 여자들이, 자기 남자와 인사를 나누는 여자가 누구인지 당장 알아내고 말겠다든가, 혹은 새로 나타난 여자 앞에서 이 남자는 내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공표하고 싶어하는 것과는 정 반대겠죠.)
여자는 외간남자와 대화를 나누다 자기 남자가 어디 있나 시선을 돌려 보지만 자기 남자는 딴데를 보고 있거나 갑자기 옷 고르는 데 열중하고 있습니다(그렇다고 절대 옷 갈아입는 방 같은 곳에 들어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외간남자는 자기 갈 길을 갑니다.
다시 둘이 된 남녀. 남자는 그놈이 뭐하는 놈인지 물어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지만 죽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반면 극도의 자제력으로 곁에 가지 않은 여자라도, 외간여자가 사라지자마자 빛의 속도로 다가와서 '누구야?'라고 물어보는게 보통이겠죠). 먼저 '아까 너랑 얘기하던 그놈 누구야?'라고 물어보는건 정말 쪼짠한, 사내도 아닌 놈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죠. 이러다 여자가 아무 언급도 않고 집에 가 버리면 남자는 정말 미치고 환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세상에 그런 얘기를 않고 집에 가는 여자는 없습니다. 뭐 정말로 몰래 바람 피는 상대를 우연히 만난 거라면 찔려서 얘기를 안 꺼낼 지도 모르지만, 세상 거의 대부분의 여자들은 이럴 때 자기 남자에게 얘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말을 꺼내죠.
여: 그 왜 아까 내가 매장에서 아는 척 한 남자 있잖아?
이럴 때 남자들의 가장 흔한 반응은 뭘까요?
1) 아, 아까 그 잘생긴 남자?
2) 아, 아까 그 다리 짧은 놈?
3) 아, 그 사람 백화점 점원 아니었어?
4) 응? 누구?
네. 아마도 4번이 가장 흔한 답일 겁니다(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리고 문제의 남자가 왠지 신경이 쓰이는 제법 그럴싸하게 생긴 사람일수록 4번을 고르는 경향이 짙을 거라는 사실도 분명합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뭐? 난 네가 누구랑 얘기를 하건 말건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사실 아까 너랑 어떤 놈이랑 친하게 대화를 나누는 걸 보긴 했지만 그런 발가락의 때 같은 놈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어. 그래서 그런 놈과 네가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조차도 나는 기억하고 있지 않아. 그런 놈 따위가 나의 주의를 끌 수는 없고, 그따위 놈과 네가 대화를 한다고 해서 나는 절대 질투 따위를 느끼지 않아'라는 의미로 4번을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네. 바로 이것이 남자의 질투 표현 방식입니다.
사실 이런 반응을 하게 남녀를 만들어 놓은 건 조물주의 장난기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사는 여자의 절대 다수는 자기 남자가 자신에 대해 은근히 질투를 내비칠 때(특히 평소에 안 그런 남자일수록)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남자의 90%는 자신의 여자가 자신에 대해 질투의 기색을 보일 때 '이 여자가 언제 의부증 환자로 변해서 나의 목을 졸라오지 않을까'하는 공포감을 느낍니다. 가장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이 서로를 실망시키게 프로그래밍됐다는 건 아무래도 그 프로그래머의 저의를 의심하게 합니다.
그러니 현명한 남자라면,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하게 흔적을 남겨서 '사실 나도 조금은 질투를 느낀다'는 것을 여자친구(혹은 아내)에게 풍겨 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주 미세한 흘림이라도 여자들은 그런 흔적을 놓치지 않고 즐거워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여자분들은 앞으로 남자들이 '응? 누구?'라고 말할 때, '아하, 이놈이 질투가 나서 죽을 것 같은데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이러는구나'라고 이해하고 그냥 흐뭇해 하시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여자들도 남자들에게 들이대듯 '누구야? 후배야? 친구야? 어떻게 알아?'하고 올가미를 펴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못한 일입니다. 그냥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내가 보고 있다'는 걸 인식시켜 주는 정도, 혹은 '그 여자 예쁘던데' 정도만 해 줘도 남자들은 '너 내가 다 보고 있어. 한눈 팔면 뼈와 살을 분리시켜 줄 줄 알아'라는 뜻으로 충분히 알아듣고 경기를 일으킵니다.
P.S. 만약에 '지붕킥'의 순재네 집안 남자들처럼 대놓고 눈에서 이글이글 불이 타오르는 남자가 있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어머, 이렇게 질투하는 걸 보니 이 남자는 정말로 날 뜨겁게 사랑하나봐. 그래. 바로 이런 남자야'라고 해석하면 큰일납니다. 그런 남자는 절대 만나면 안 됩니다. 그 정도로 감정이 통제되지 않고, 자존심에도 큰 문제가 있는 남자는 언젠가 큰 사고를 칠 거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리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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