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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심 많고 매력적인데다 프리메라리가 바르셀로나의 열혈 팬이라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여자. 다소 소심한 회사원 덕훈(김주혁)은 자신만을 위해 창조된 것 같은 인아(손예진)에게 정신없이 빠져들지만 인아는 길들일 수 없는 여자입니다. 어떻게 한번에 한명만 사랑할 수 있느냐는 자유연애 신봉자인 인아를 결국 포기하지 못한 덕훈은 결혼으로 인아를 묶어 두려 합니다.

하지만 해피엔딩은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인아가 '남편 하나를 더 두겠다'고 나섰기 때문이죠(이건 제목에 있는 내용이니 스포일러는 아닙니다.^^). 아내를 다른 남자와 나눠 가질 위기에 놓은 덕훈. 과연 덕훈은 어떻게 이 위기에 대항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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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욱의 베스트셀러 '아내가 결혼했다'는 수많은 영화 제작자들과 드라마 제작자들이 탐냈던 작품입니다. 원작이 그냥 인기만 끈 게 아니라 상당히 논쟁을 유발할만한 흥미로운 줄거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서술형의 제목을 들은 대다수의 남자들은 이 글의 제목처럼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내가 또 결혼해? 그런데 그냥 가만히 내버려둬? 너 죽고 나 죽자고 결판을 봐야지!" 그래서 이 영화를 보던 어떤 사람은 분을 식히기 위해 극장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왔다더군요.

물론 뻔히 남편을 두고 있는 여자가 다른 남편을 갖겠다고 주장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나 원작 소설을 두고 말이 되는 걸 따지는 건 바보 짓이죠. 워낙에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걸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그 줄거리에 공연히 집착하다간 이 작품이 정작 하고자 하는 얘기를 놓쳐 버리기 십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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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남녀 관계를 연결해서 묘한 공통점을 이어가는 원작은 실상 두 가지 얘기를 독자에게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일부일처제라는 현재 문명국의 보편적인 제도가 인류의 전체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영원한 것이지도, 다른 제도에 비해 타당한 것이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전제로 한 도덕률이나 민법 조항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역시 개인의 선택에 우선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입니다. 굳이 폴리아모리(polyamory)를 옹호하는 건 아니죠.

두번째는 첫번째 주장만큼 선명하지는 않지만 남들의 가정, 특히 부부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당사자들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영어 표현에는 skeleton in the closet이라는 것이 있죠. 좋은 얼굴을 하고 사는 남편이 사실 집에서는 바람을 피우는 아내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죠. 남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만한 고민은 차라리 별 것 아닌 편이며, 정작 심각한 고민에 빠진 사람은 아예 남들에게 털어놓을 생각도 못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 영화 속의 김주혁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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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작품은 자신 이외의 사람들에 대한 어거지와 목청 높이기의 시대에 관용과 역지사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세계관 안에서 너무도 당연한 것이 상대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덕훈이 인아를 가로막지 못하는 이유는 일단 인아가 너무도 매력적이고 사랑스럽기 때문이지만, 그밖에 인아가 하는 말을 자신의 논리로 공박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서 덕훈이 폭력이나 욕설을 동원하고 커뮤니케이션을 부정한다면 그건 또 다른 영화나 소설이 되겠죠.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원작이 다져 놓은 길을 충실하게 가고 있습니다. 매우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는 좋은 이야기의 틀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화=재창조라는 생각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어설프게 손질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일단 칭찬할 만 합니다. 정윤수 감독은 비록 흥행에선 쓴맛을 봤지만 전작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에서 남녀 사이의 끈끈한 말장난에 상당한 강점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준 바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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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영화가 소설의 판박이인 것은 아닙니다. 소설에서 남편 덕훈의 상상으로 그려지던 부분이 실제로 나타나기도 하고, 소설이 열린 결말로 끝나는 데 비해 영화는 어느 정도 가시적인 결말을 그려 줍니다. 아무래도 '흐지부지'를 싫어하는 한국 관객들의 취향을 생각하면 괜찮은 선택이란 생각이 듭니다.

캐스팅은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작자는 '작품에 비해 너무 미인'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여러 인터뷰에서 "소설 쓸땐 인아가 왜 그렇게 매력적인지, 덕훈이 왜 인아를 떠나지 못하는지를 묘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 영화를 보니 손예진의 웃음 하나로 모두 설명이 되어 버리더라. 영화가 소설에 비해 유리한 부분"이라고 글자 하나 다르지 않은 소감을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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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말마따나 손예진의 매력은 이 영화에서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합니다. 상황이 말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시사회에 참가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손예진이라면 1/4이라도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손예진이 취향 밖인 분들한테야 별 수 없는 얘기겠지만 말입니다. 역시 이 배우에게는 '무방비도시'보다는 이런 모습이 더 어울립니다.

김주혁도 최고 수준의 개인기를 보유한 배우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합니다. 축구로 비교하자면, 김주혁은 순식간에 서너명을 제치고 대포알같은 캐논킥을 터뜨리는 스트라이커는 아니지만 혼전 속, 상대 수비로 둘러싸인 한정된 공간 안에서 슈팅 각도를 확보하고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골을 뽑아내는 능력을 보유한 선수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가 딱 좋아하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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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배우 외에 다른 배우에 대해서는 굳이 할 말도, 해야 할 말도 없습니다. 그만큼 두 사람에게 거의 모든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라면 내수는 물론이고 한국 영화가 만들어낸 훌륭한 수출용 상품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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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손예진의 노출에 대한 일부 기사들은 낚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노출이라고 할만한 부분은 요즘 중학생들도 코웃음을 칠 수준이고, 유일하게 '노출'이라고 부를만한 장면은 대역이라는 것이 너무 쉽게 드러납니다. 물론 그 장면을 제외하면 손예진이 직접 촬영한 건 맞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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