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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도시 바빌론. 계시록에 나오는 죄악의 도시.현대 문명권에서 sin city는 거의 공식적으로 라스베가스를 가리키는 이름이지만, 데미안 셔젤에게는 할리우드가 바빌론이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에게는 파리가 바빌론이었던 것처럼. 

 

영화 <바빌론>은 '그 타락이란게 대체 어떤 건지 보여주마'를 작심한 듯한 파티 신으로 시작한다. 영화가 '산업'이 되면서 콘텐트 비즈니스의 엄청난 매출 창출 능력이 현실이 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들어간 돈의 100배, 1000배의 이윤을 돌려줄 수 있는 새로운 사업. 그 파티 신 하나에 어마어마한 허영과 사치와 욕망이 녹아 흐른다. 압도적이고 효과적인 첫 장면.

타락의 끝, 바빌론 그 자체...

다들 아시다시피 이 영화가 가리키는 시점은 1920년대의 할리우드, 무성영화가 유성영화(토키)로 넘어가는 지점이다. 물론 데미안 셔젤은 토키의 충격보다는(이미 이 영화 곳곳에 인용되는 <싱잉 인 더 레인>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들이 그 '충격'을 중요한 소재로 다뤘다) 그 시절의 영화계 사람들이 느꼈을, "이렇게 돈을 쉽게 벌어도 되는 거야?"라는 충격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이 영화는 '신성한 영화의 역사에 바치는 헌사'와는 조금 다르다. <바빌론> 속 영화계는 재능은 있지만 그보다 먼저 말초적인 유혹에 미친 장인들과, 일확천금에 눈이 먼 장사꾼들의 파티장이다. 등장인물들은 아무데나 똥을 싸고, 걸핏하면 토한다. 마약이 알콜에 취한 사람들이 흔히 하듯이.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누구도 <바빌론>에 진정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취한 브래드 피트가 석양을 안고 펼치는 환상적인 촬영 장면이나, 당대 할리우드를 들었다 놨다 했던 가십 칼럼니스트(아마도 실존인물인 헤다 호퍼나 루엘라 퍼슨스를 모델로 했을)가 피트를 향해 "당신 시대가 간 건 당신 탓이 아니야. 하지만 당신이 죽고 난 뒤에 태어날 어떤 젊은이가 당신 영화를 보고 마치 친구를 만난 것처럼 느낄 때, 당신은 다시 살아나는 거야" 하고 위로하는 장면을 보면, 이런 장면에서의 셔젤은 진심으로 할리우드의 팽창기, 전설이 된 시대를 살아 보고 싶었던 영화소년의 자세 그 자체였던 것으로 보인다.

갑자기 돈벼락을 맞아 제정신을 잃고 술과 마약과 섹스와 향락과 사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정신을 잃은 할리우드를 빈정대는 듯한 셔젤, 그런데 그 정신나간 사람들이 만들어 낸 찬란한 성과와 다시 오지 않을 전설의 시대에 대해 미칠듯한 부러움을 토로하는 셔젤. 이 두개의 셔젤은 영화 내내 쌈박질을 벌인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정체성도 좀 오락가락한다. 너무 노골적으로 팬심을 드러내기 부끄러웠던 것일까. 애정표현이라면 좀 비뚤어진 표현이긴 하지만, <바빌론>의 시대에 대한 셔젤의 진심은 너무나 충분히, 넘칠 정도로 느껴진다.

 

(이런 종류의 동경은 굳이 영화 <미드나잇 앤 파리>를 들먹이지 않아도 너무나 친근하다. 만약 당신이 야구선수라면 트랙맨도, 갖가지 통계도, 에이전트도, 혹사 논란도 없던 시절로 돌아가 베이브 루스나 월터 존슨과 플레이하는 꿈을 꿀 지도 모른다. 가수라면 MP3가 없던 시절로, 글쟁이라면 인터넷이, 심지어 워드 프로세서가 없던 시절로.... 뭐 아무튼.)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 영화가 꽤나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한다는 데 있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는 충분히 알겠'으나, 내겐 너무 길었다. 코로나 이후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최소한 3시간은 되어야 티켓값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누군가 여기저기 전염시키기라도 한 것일까? 어쨌든 굳이 이렇게 지루하게 만들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이상, 아무리 아름다운 뜻을 가지고 만들었다 해도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다.

 

그래도 스스로 생각할 때 영화라는 장르에 평균 이상의 애정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한번 보고 기억해 둘만한 영화. 이 영화에는 15분짜리 유튜브 압축본을 보고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이 있다. 분명히. 그것이 욕이든, 감동이든. 이 영화의 엔딩을 보면서 '나는 저거 무슨 영환지 다 알아' 하는 유치한 자부심 같은 걸 말하는 건 물론 아니다. 

P.S.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미모에 감탄하게 되는 영화 <내가 마지막 본 파리>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다시 돌아온 바빌론>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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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걷는 날이 될 거란 확신 때문에 아침을 든든히 먹기로 했다.

 

(물론 다른 날이라고 부실하게 먹은 건 아니겠지.)

 

베를린 풀먼 호텔의 조식은 지금까지 가 본 수많은 호텔들 가운데서도 손끕을만 한 퀄리티다. 너무 맛있고 재료도 풍성하다.

 

 

 

 

 

베를린을 가로(세로?) 지르는 슈프레강 한 복판에 양말같이 생긴 약간 길쭉한 섬이 있다.

 

이 섬의 이름이 바로 박물관 섬이다. 독일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다섯개의 박물관이 이 섬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섬의 왼쪽, 그러니까 북서방향에 다섯개가 오밀조밀 몰려 있다.

 

 

 

이렇게 다섯개가 사이좋게 붙어 있다.

 

루스트가르텐 Lustgarten 이라고 불리는 정원 쪽에서부터 A. 구 박물관, B. 신 박물관, C. 구 국립 미술관, D. 페르가몬 박물관, E. 보데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사이좋게 차곡차곡 붙어 있다.

 

사실 이렇게 보면 맨 앞(?)에 나와 있는 구 박물관이 뭔가 약간 왜소해 보이는데,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다.

 

 

 

베를린 관광의 필수 노선인 시내버스 200을 타고 루스트가르텐 Lustgarten 역에 내리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물은 바로 이 어마어마하게 큰 베를린 돔이다. 이 사진은 약간 옆에서 봐서 그런데, 정면에서 보면 정말 위압감 느끼게 큰 건물이다.

 

 

 

 

그런데 시선을 약간 왼쪽으로 돌리면 다른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잔디밭이 바로 루스트가르텐이고 저 앞의 무식하게 큰 건물이 바로 구 박물관.

 

시선이 꽉 찬다. 어마어마하게 좌우로 길고 크다.

 

 

 

 

 

 

 

그리고 이 풍경이 보일 때 쯤이면 베를린 돔 앞을 지나가고 있다.

 

베를린 돔도 꽤 유명한 관광 스팟이지만 미안하다. 너한테까지 할애할 시간은 없단다. 오늘 형이 좀 바빠.

 

 

 

 

사실 저 어마어마하게 큰 구 박물관은 그냥 통과.

 

박물관 마니아로서 안타깝지만 저 구 박물관까지 돌아보다간 다리가 부러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내셔널갤러리 앞을 통과하면,

 

 

 

뭔가 공사판 한 구석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야 오늘의 첫번째 목적지 페르가몬 박물관 Pergamon Museum 을 갈 수 있다.

 

 

 

자. 복습이다. 루스트가르텐에서 A, B, C를 모두 통과해야 D, 즉 페르가몬 미술관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건물 자체가 저렇게 다른 건물들에 포위되듯 둘러싸여 있어 어떻게 해도 전경을 찍을 수가 없다.

 

페르가몬 미술관 외경에 대한 자료 사진이 없는 데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다.

 

하지만 왼지 뒷문 같은 음침한 입구를 통해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즉 0층을 통과해 1층 -한국의 2층 - 으로 올라간 순간)

 

 

 

건물 내부인데 이런 경악스러운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이슈타르의 문'이다.

 

베를린에 수없이 많은 박물관들이 있고, 거기에도 나름 가치 있는 유물들이 차고 넘치지만 솔직히 말해 런던에는 대영 박물관이 있고 파리에는 루브르가 있다. 로마? 로마는 도시 자체가 인류사에 남을 유물의 덩어리다.

 

이런 유럽의 슈퍼 박물관들에 대항할만한 베를린 박물관의 에이스가 있다면 아무래도 페르가몬이다. 이 베를린의 자존심 페르가몬을 구경하기 위해서 이 아침부터 박물관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서는 것이다.

 

(페르가몬 박물관을 가실 분이 있다면 무조건, 개장 시간에 맞춰 줄을 서라. 오후가 되면 줄은 더 길어진다. 박물관 정원제에 따라 일정 인원 이상이 입장한 상태에서는 일단 입장객들이 퇴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원전 6세기, 신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 바빌론에 있던 성문 중 하나를 통째로 옮겨 온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바빌론, 공중정원, 니네베, 뭐 이런 얘기로 넘어가면 그게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전설인지 역사인지 아물아물해진다.

 

(이게 막 지구라트와 바벨 2세가 나올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전설의 시대가 이런 새파란 벽돌의 모습을 하고 눈앞에 나타나니... 감동적이다.

 

 

 

 

파란 벽돌(타일)을 보니 은근히 사마르칸트의 기억이 떠오르는데,

 

생각해 보면 이 파란 벽돌은 사마르칸트에서 본 색보다 조금 짙고 어두운 느낌이 돈다.

 

(물론 14세기 티무르 제국 유적과 6세기 신바빌로니아 유적을 한데 묶어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다. 어쨌든 그냥 파란 벽돌을 보니 반가웠다는 정도로 정리해 두자. )

 

 

 

문을 등지고 서면 이렇게 성벽의 벽돌 모자이크 부분을 다 뜯어와서 복원해놓고 있다.

 

 

 

 

 

그러니까 외성문에서 내성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이걸 허락 안 받고 뜯어 온 거라면 정말 기가 찰 노릇인데,

 

페르가몬 박물관 측은 극구 "대영박물관의 엘긴 대리석과는 달리 합법적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뭐 그러려니 할 밖에. 모자이크라기엔 부조에 좀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이 사자들은 바로 마르두크 신의 상징이고,

 

 

 

이건 당시 바빌로니아 신화에 등장하는 용, 뮤슈수(Mushussu)라고 한다. 이 성벽의 부조에 등장하는 동물은 무슈수, 사자, 그리고 역시 신성한 동물인 황소(아우로크 Auroch 라고 한다) 뿐이다.

 

 

 

그리고 이슈타르의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놀랄 거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밀레투스의 시장 문(Market Gate of Miletus) 이다.

 

밀레투스는 소아시아 지역, 그러니까 터키 서부 해안을 따라 그리스인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 중 하나다. 이들 도시 중 가장 유명한 곳들이 트로이 전쟁으로 파괴된 트로이, 그리고 호메로스의 출생지인 스미르나(오늘날의 이즈미르) 등이다.

 

 

이 시장의 정문은 기원후 2세기, 그러니까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만들어진 것으로 10세기 경 지진으로 파괴됐다. 그걸 근세에 발굴하면서 복구했고, 그게 지금 베를린에 와 있는 것이다.

 

높이 16미터, 폭 30미터의 엄청난 사이즈인데,

 

 

 

이 모형의 왼쪽 귀퉁이에 있는 바로 저게 이 시장의 문이다.

 

그러니까 당시 밀레투스의 거대한 도시 규모에 비하면 이 웅장한 문이 별 것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리 보니 귀엽네.

 

 

 

 

아무튼 시장 문과 한 세트인 건너편 제단은 어느 신전의 한쪽 벽면이었던 것 같다.

 

 

 

 

 

물론 크게 상관 없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들도 함께 전시돼 있다. 2세기 경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의 에로스 부조,

 

 

 

그리고 이건 레바논의 바알벡(Baalbek) 유적에서 나온 빗물 배출용 사자 머리 가고일이다. 역시 AD 2세기.

 

 

아무튼 쉽게 눈길을 뗄 수 없는 시장의 정문을 뒤로 하고,

 

 

뭔가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앗시리아 유적 속으로.

 

(대체 왜 친근감을 느끼냐고 하시면 뭐라 대답할 말은 없지만서도)

 

 

 

니네베(니느웨)의 궁전 벽에서 나온 사자 사냥 부조다. BC 7세기.

 

 

 

친절한 베를린 분들은 이 돌이 어디서 나온거냐 하면... 을 이렇게 지도로 꼭 같이 표기해 준다.

 

물론 그래 봐야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겠지만.

 

 

좀 알만한 지도로 바꿔 보면 앗시리아의 대표 도시인 니네베와 님루드는 이렇게 붙어 있다.

 

 

 

이건 라마스(Lamassu), 그러니까 '날개 달린 인면 사자상'인데,

 

 

사실 대영박물관에서 그 천장에 닿을 듯 한 거대한 라마스를 본 사람에겐 약간 애교스러운 사이즈.

 

 

 

아마도 영국이 먼저 털고 간 자리에 뒤늦게 독일인들이 도착한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얘들은 다리가 다섯개다!

 

대체 왜 ;;

 

(혹시 실수로 다섯 개?)

 

 

 

 

 

이것은 국왕의 모습으로 추정되는데, 신상들 사이에 위치해 왕=신의 느낌을 주려는 배치라고.

 

 

 

이런 식으로 앗시리아 왕궁의 한 방을 그대로 뜯어와 재현했다.

 

 

 

 

온갖 유물들이 다 있고,

 

 

 

이것은 앗시리아 시대 자유도시였던 사말(Sam'al)에서 뜯어 온 대형 돌사자들.

 

사말은 또 어디야... 생전 처음 들어본다.

 

터키 남부에 있는 유적이다. BC 10세기.

 

 

 

뭔가 마법적인 보호력을 기원하고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묘하게도 민화 속 호랑이를 연상시킨다.

 

 

 

 

 

누가 봐도 그렇지?

 

 

휴. 간신히 한 층을 끝냈다.

 

페르가몬 박물관, 한 층 보기가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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