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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물가를 생각하면 당연히 싸게 먹는게 급선무일수밖에 없어서 '싸게 먹기'편을 먼저 올렸습니다. 물론 그것도 그리 싼 편은 아니라는 뒤늦게 나타난 에딘버러 주민 한 분의 말씀에 조금 마음이 상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여행을 갔으면 궁상만 떨고 있을 수는 없죠. 멋진 데 가서 기분 내는 재미도 없으면 대체 여행을 왜 간단 말입니까. 제가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런던의 레스토랑입니다.

단 가격은 좀 비싸다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라면이나 햄버거, 햇반으로 끼니를 때우던 분들도 가끔은 지갑을 풀어야 나중에 기억할 거리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비싸게 먹기 편을 먼저 보시면 눈을 버리실테니, 일단 '싸게 먹기'편을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이쪽이 '싸게 먹기' 쪽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확 느낌이 오는 분도 있을 겁니다. 제가 런던에서 가장 멋진 곳 중 하나로 추천하고 싶은 테이트 모던입니다. 런던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레인보우 브리지를 건너면 나타나는, 겉모습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미술관입니다.

본래 화력발전소였던 곳을 개축했으니 외양이 그리 빛날 리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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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영제국은 오래 전에 빛을 잃었지만, 영국인들은 창의력으로는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습니다. 영화, 뮤지컬, 대중음악, 패션 등등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영국은 여전히 최고의 선진국이죠.

그리고 그런 창의력이나 미적 감각의 근원이 이런 수준 높은 공공 미술관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무료로 이런 멋진 공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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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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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텔란의 '아베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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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의 '스타른베르크 호수'를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히 뿌듯한 일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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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의 7층에는 'one of the finest view of London'을 제공한다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이름은 그냥 테이트 모던 레스토랑. 하지막 막상 밤까지 영업하는 날은 금요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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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서 오른쪽 창 밖으로는 미국 국회의사당..이 아니라 세인트 폴 대성당의 탑이 보입니다.

당연히 창가 자리에 앉으면 테임즈 강을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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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뷰는 그냥 평범한 시내입니다.

런치 메뉴입니다. 사실 가격은 꽤나 비쌉니다.

Penne pasta with butternut squash, cavolo nero, salted ricotta and pine nuts £11.95
Deep fried Cornish haddock with chips, tartare sauce and mushy peas £12.50
Smoked haddock & cod fish pie £12.95
Fish of the day, fresh from the Newlyn day boats, Cornwall (Market price)
Roast Suffolk chicken breast with baby gem and herb rotolo £15.50
Char-grilled salt marsh leg of lamb steak with red onion, feta, mint & oregano £1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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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st Suffolk chicken breast with baby gem and herb rotolo를 골랐습니다.
(herb rotolo는 이탈리아풍의 둥근 말이 음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닭 밑에 깔린 저 걸쭉한 소스가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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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 토마토와 모짜렐라의 가벼운 요리. 카프레제는 본래 많이 먹는 음식이지만 이렇게 맛있는 조합은 처음입니다. 저 푸짐한 모짜렐라 치즈와 구운 토마토에서 나온 단맛이 정말 하늘나라의 조화를 느끼게 하더군요. 혓바닥까지 삼킬 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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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요리의 국물이 아까워서 빵을 따로 시켜서 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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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나오는 길에 테임즈강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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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경관과 음식 맛에서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게 합니다.

런던에 가시는 분들은 여유가 되시면 한번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단 두 사람의 점심으로 40파운드 정도는 각오를 하셔야 할 듯. http://www.tate.org.uk/modern/eatanddrink/restaurant.htm 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예약도 가능.


그 다음 장소는 유명한 고든 램지 선생이 경영하는 식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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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고든 램지를 모르신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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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주제로 한 서바이벌 게임인 '헬스 키친'을 진행하고 있는 유명 요리사죠.

런던 시내에만도 램지가 경영하는 식당은 대여섯곳이나 됩니다. 모두 gordonramsay.com에 올라 있죠. 폭스트로트 오스카는 그중 하나로, 빅토리아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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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본 바깥. 저녁 첫 손님이라 그런지 비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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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내기용으로 시킨 아이리쉬 사이다 Magners.

Cider는 본래 40도 정도의 스피릿이라고 들었는데 이 사이다는 4.5%더군요. 사이다가 소다수와 동의어로 쓰이는 건 우리나라뿐입니다. 주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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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과류가 많이 든 딱딱한 빵.

메인 메뉴는 대략 이렇습니다. 테이트 모던보다는 좀 싸군요.

아무튼 메뉴에 코코뱅이 있는 걸로도 알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프랑스식 요리입니다.

Confit duck leg with braised lentils £11.75
Sausages and mash with onion gravy £11.25
Lobster, salmon and crayfish pie £12.75
Casterbridge 9oz rib-eye steak with béarnaise sauce £15.75
Leek and stilton tart £10.25
Game pie £11.50
Beer battered hake with chips and pea purée £12.75
Braised pig’s cheeks £12.75
Foxtrot fishcake £11.00
Coq au vin £11.50
Whole pan-fried rainbow trout with toasted almonds £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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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가스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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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Sold) 뫼니에르. 지금 메뉴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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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고기로 만든 프리카세(fricasse). 감자, 당근 등 고기와 함께 와인 소스를 가미한 스튜.

빅토리아 역 근처가 숙소인 분들이나, '빌리 엘리어트'를 보러 가시는 분들이라면 들러 볼 만 합니다. 빅토리아 역에서 139번 버스를 타면 10분 정도 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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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 가장 부러운 건 테이트 모던의 세계적인 미술품들 앞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그림을 그리는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이 어린이들 사이에서 수천명을 먹여 살리는 세계적인 크리에이터가 나올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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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 앤 칩스로 상징되는 영국에서의 식생활. 가장 영국의 물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될 때가 바로 밥값을 낼 때입니다. 1파운드=2천원이라는 환율도 환율이지만, 워낙 물가가 비싼 나랍니다.

다른걸 다 떼 버리고 햄버거 세트가 5파운드가 넘으니 말 다 했죠. 햄버거 세트가 만원 하는 나라는 아마 이 나라밖에 없을 겁니다. 뉴욕 맨하탄 어디를 가나 2달러가 거의 공정가인 핫도그, 런던에서는 약간 더 긴 소시지를 주는 대신 2.5파운드나 받습니다. 거의 2.5배 가격입니다.

이런 영국에서 조금이라도 싸게 먹고 구경다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궁극적으로는 사먹는 끼니를 줄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숙소를 민박집으로, 가능하면 아침 저녁 밥을 주는 민박집으로 정하는 것도 좋겠죠. 또 취사 가능한 유스호스텔을 골라 해 먹으면서 버티는 방법도 좋습니다.

그럴 형편이 아닌 분들이라면 조금이라도 싼 걸 먹으면서 버티는 수밖에 없는데, 위에서 말한 햄버거 세트 이하로 내려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트에서 파는 샌드위치는 3파운드 정도 하고, 맛이나 내용물도 훌륭하긴 합니다만 저런 것만 먹고 버티면 오래 못 갑니다.



물가가 런던보다 더 비싼 에딘버러, 그것도 도심에서 열리는 페스티발 기간 중에 싸고 괜찮은 식당을 고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중에서 두 곳을 조심스럽게 추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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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딘버러 페스티발 홀 바로 옆에 있는 시티 레스토랑도 그중 한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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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보시는 메뉴. 이 식당의 breakfast입니다. "이건 아침밖에 못 먹잖아!"라고 하실 분이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단식 중단'이라는 breakfast의 어원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영국인들은 하루 중 아무 시간이나 breakfast를 먹곤 합니다. 그래서 'all day breakfast'나 'whole day breakfast'라고 써 붙여 놓은 집들이 꽤 됩니다. 이런 집들을 찾아 들어가면 하루 종일 이런 메뉴를 시킬 수 있습니다.

가격은 소형이 4.9, 보통이 5.9, 특대가 6.9파운드입니다. 위에서 보시는 접시는 보통이지만, 보통과 소형의 차이는 맨 오른쪽의 시커먼 덩어리뿐입니다. 저 덩어리, 드셔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스코틀랜드의 명물(?)인 하기스(Haggi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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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스는 돼지의 위에 각종 곡물과 자투리 고기 등을 넣고 쪄 낸 요리죠. 조리 방법이 순대와 비슷한 만큼 저 덩어리도 아바이 순대 속을 버터에 비빈 듯한 느끼한 맛이 납니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사정없이 허기지지 않다면 굳이 먹고 싶지 않은 맛입니다.

아무튼 저 하기스 빼고 같은 접시에 토스트 2쪽과 음료(주스) 한 잔을 포함해 가격이 4.9라면 영국에서는 꽤 괜찮은 식사입니다. 물론 맛이 대단히 유별난 건 아닙니다만, 누구나 무리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만 짜여져 있다는게 강점이죠.

참고로 베이컨이 베이컨이 아닙니다. 미국식의 뒤가 비칠 것 같은 베이컨을 생각하면 큰 코 다칩니다. 거의 삼겹살을 그대로 절여 놓은 듯한(짜기는 엄청 짜죠^) 두께가 제법 압박감을 줍니다. 웬만큼 양이 되는 분들도 한접시 다 먹으면 든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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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에딘버러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페스티발 시어터. 이 사진의 바로 왼쪽에 시티 레스토랑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동네에서 하기스 못잖게 유명한게 소시지라고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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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딘버러에서 꽤 유명한 베들렘 교회 근처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 길로 조금만 내려가면 MONSTER MASH라는 소시지 전문점이 있습니다.

외관 사진은 깜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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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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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에 그날의 메뉴를 주욱 써 놨습니다. 사실 왼쪽의 소시지 메뉴 맨 위에 '칠리 소시지'가 있었는데 제가 시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떨어졌다"며 지우더군요.

아무튼 꽤 여러가지 재료로 갖가지 소시지를 만드는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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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지의 길이가 12cm 이상 되는 대형입니다. 소시지 2개와 엄청난 양의 매쉬드 포테이토(머스터드가 들어 있어 그리 느끼하지 않습니다), 그레이비(양파가 많인 든 걸로 선택)가 나옵니다. 이걸로 두 사람이 먹어도 점심은 거뜬할 정도. 6파운드 정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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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서에 가게 이름과 전화번호가 써 있군요.

사탕을 주는 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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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딘버러 중심가인 로열 마일에서 베들렘 교회 쪽(에딘버러 국립 박물관 쪽 방향입니다)으로 가다 보면 이런 집이 보입니다. 사진을 키워 보시면 아래쪽에 'Birthplace of Harry Potter'라고 쓰여 있습니다. 네. 롤링 여사가 노트북을 펴놓고 '해리 포터'를 썼다는 가게죠. 비쌀 것 같아서 들어가보진 않았지만 해리 포터 팬들은 한번 가 보실만 할겁니다.

아무튼 이 정도 가격이 직접 해 먹지 않고, 샌드위치나 노점 음식(핫도그)을 먹지 않으면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최저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보다 낮은 가격으로 에딘버러에서 식사를 해결하실 분들은 재료를 가져가는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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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기간이라고 맛자랑 시장 같은 곳도 열리고 있더군요. 온갖 식재료 가운데 바닷가재와 게를 파는 곳이 있어서 큰 맘 먹고 바닷가재 한마리(15파운드-3만원 정도)를 사다가 눈 딱 감고 라면과 함께 먹었습니다. 매우 고급스러운 라면이더군요.^

저 가게 옆에 서 있으면 맛 보라고 바닷가재 살을 조금씩 떼 주는데, 그냥 서 있어도 한 10파운드 어치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정도로 인심이 좋았는데 거기 비하면 바닷가재 값은 싸지 않더라는게 좀 안타까웠습니다. 차라리 덤 주지 말고 값을 깎아 줄 것이지...

사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은 좀 멋지게 먹을 때도 있어야겠죠. 그래서 다음번엔 '비싸게 먹기'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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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랜드(HIGHLAND)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 거의 모든 사람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바로 저 모습일 겁니다. 물론 '아 그게 지명이었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하이랜드는 스코틀랜드의 고지대, 물론 고도상으로도 꽤 되겠지만 일단은 위도상으로 '높은' 지방을 말하는 거라더군요.

스코틀랜드의 풍광이 멋지다는 얘기은 진작에 들은 터라 지난번 2002년에 갔을 때도 데이 투어를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동네 여행사를 갔는데, 가장 유명하다는 하이랜드 투어는 무려 오전 8시 출발 - 오후 8시 귀환이더군요. 열 두시간.... '이거 차만 타다 마는 거 아냐?'라는 의구심이 가장 먼저 고개를 들어서 그냥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가장 풍광이 아름답다'는 로크 로몽드(Loch Lomond - 스코틀랜드의 호수는 lake가 아니라 loch)와 '스코틀랜드의 심장'이었다는 스털링 성(Stirling Castle)을 도는 코스로 떠났습니다. 날씨가 흐린게 좀 불만이었지만, 제법 내륙인 로몽드 호수 위까지 날아온 갈매기들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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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찍은 사진)


그런데 돌아오고 나니 웬걸, 모처럼 간 스코틀랜드에서 네스호를 안 보고 왔다는게 자꾸 후회가 되는 겁니다. 사실 저는 무척 낙천적이라서 "다음에 가지 뭐"라고 아주 쉽게 포기하는 편입니다. (많은 유럽 여행자들처럼 '이번에 안 가면 언제 가랴'라는 식의 무리는 잘 안 하는 편이죠) 그리고 다음 기회가 왔습니다. 역시 12시간. 출발했습니다.

에딘버러에도 여행사가 몇개 있지만 요즘은 모두 시내 한복판 웨이벌리 역 앞의 인포메이션 오피스에서 일괄 대행합니다. 물론 여행사에 전화하거나 인터넷으로 예약할 수도 있죠. 가격은 대개 30-35파운드 정도 합니다. 단, 식비나 중간의 고성 입장료 등등은 절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큰 버스와 미니버스의 두 가지가 있는데,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길이 그리 곱지 않고 장기간 승차해야 하기 때문에, 큰 버스가 일면 유리합니다. 하지만 인포메이션 오피스에 따르면 큰 버스 기사들은 설명을 자세히 하지 않고 주로 녹음된 안내를 튼다는군요. 반면 미니버스 기사들은 개그맨 수준의 입담을 과시합니다. 물론 제대로 알아듣는 건 얼마 안 되지만, 2002년의 운전기사도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망설이다가 작은 버스를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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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북쪽으로 올라간 붉은 선이 이 여행사 하이랜드 투어의 노선입니다. 에딘버러-트로잭-글렌 코-포트 윌리엄-포트 오거스투스-피트로키-에딘버러를 잇는 선이죠.)

하이랜드에 가보신 분들의 모든 여행기에 똑같이 등장하는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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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스코틀랜드 소 해미시(Hammish). 뿔 모양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에딘버러에서 나가는 길목의 휴게소가 여기 하나인 건지, 아니면 모든 휴게소마다 해미시를 풀어놓고 있는 건지, 시내를 벗어나 어느 정도 달리다 보면 꼭 해미시가 있는 곳에 풀어놓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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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인적은 뜸해지고, 대자연이 시작됩니다. 녹색의 땅과 검푸른 호수, 간간이 나타나는 으리으리한 고성들을 보고 있으면 잘 떠나왔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이것이 하이랜드'라는 듯한 특유의 지형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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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광활한 황무지. 큰 나무라곤 없는 땅입니다. 드넓은 민둥성이 땅을 히스류의 잡목들이 채우고 있죠. 당연히 색깔은 녹색과 헤더(히스 꽃입니다)의 분홍색 뿐입니다. 기이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운전기사의 설명이 충격적입니다.

"로마인들은 영국 북부-하드리안 성벽 너머-를 칼레도니아(Caledonia)라고 불렀다. 이 말은 게일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무가 많은 땅' 이라는 뜻이다. 하이랜드도 당시에는 울창한 삼림으로 덮인 땅이었다."

아니 그런데 왜?

"산업혁명과 함께 이 숲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나무들이 땔감이 됐고, 나폴레옹과 전쟁을 하면서 대영제국 함대가 됐다. 1차대전 이후 숲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이 지역, 50제곱마일의 광대한 땅은 완전히 죽음의 땅이 되어 버렸다. 나무가 없으니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큰뿔 사슴을 비롯해 동물도 사라지고, 생태계라는게 의미가 없어졌다."

물론 황무지가 된 하이랜드는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그 때문에 세상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희한한 풍광을 갖게 됐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아름다움의 대가가 이런 것이었다니.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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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고 달리다 도착한 곳이 유명한 경승지라는 글렌 코. 한국 같으면 '세바위골' 정도로 불렸을 것 같습니다. 진안 마이산과 비슷한 지형입니다. 평지 한복판에서 갑자기 해발 1000m 정도 높이의 바위산이 불쑥불쑥 솟아 있더군요.

글렌 코가 절경....이라기 보다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겐 매우 의미있는 역사의 현장이라고 합니다. 뭐 복잡한 얘기는 모르겠고, 요지는 캠벨 가문과 맥도날드 가문이 싸웠는데, 캠벨 가문의 어떤 작자가 무슨 고대 규약을 어기고 잔혹한 학살을 저질렀다는군요.

그 다음은 버스 기사의 히트작입니다.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잘 아시는 분 있으면 교정 부탁드립니다.

"...이러저러한 뒤로 글렌 코 지역 사람들은 캠벨 가문 사람들에게는 잠자리를 제공하지 않는 전통을 갖게 됐다. 캠벨 가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한때 미국 가수 글렌 캠벨이 이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모든 업소가 음식을 팔지 않는 것은 물론, '빈방이 없다'고 따돌렸다. 당황한 캠벨의 매니저에게 누군가 '이 동네에선 캠벨이라는 성을 쓰는 사람에겐 다들 차갑게 대한다'고 가르쳐 준게 그나마 친절한 행동이었다. 캠벨 측은 '나는 스코틀랜드와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라고 항변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결국 그는 그냥 다른 데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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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믿거나 말거나죠.

그냥 노래나 한곡. 'Rhinestone Cowboy'입니다. 저 얘기가 정말이라면 미국 아칸소 출신의 촌 아저씨인 캠벨 형, 정말 당황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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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북으로 북으로 달립니다. 그 사이에도 날씨는 화창했다가, 구름이 끼었다가, 비가 뿌렸다가, 다시 맑았다가를 반복합니다. 누군가 질문했습니다. "대체 하이랜드 여행에 가장 좋은 철은 언제야?" 기사의 대답. "7,8월이 좀 기온이 높긴 하지만 그때 오는 건 솔직히 반대다. 가장 멋진 철은 역시 9월과 10월. 그때 단풍 들면 정말 대단하지." 네. 대단할 것 같긴 했습니다. 하지만 7, 8월에도 낮기온이 20도를 밑도는 하이랜드에서 10월이면 충분히 얼음이 얼겠더군요.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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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에 슬슬 질려갈 무렵, 드디어 네스 호로 연결되는 호수들의 시작인 포트 윌리엄에 도착합니다. 위 사진 속의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네스 호는 포트 윌리엄에서부터 여러 개의 호수와 죽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다른 호수들과 네스 호는 물빛이 영 다릅니다.

민생고를 잠시 해결하고 도착한 곳은 네스호의 주둥이인 포트 오거스투스. 작지면 예쁘장한 도시입니다. 여기서 70분의 자유시간이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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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어져서 여기서 한번 끊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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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중에 본 공연 중 제법 비싼(?) 공연 중에 에딘버러 페스티발에 참가한 부다페스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반 피셔 가 이끄는 이 오케스트라는 지난해 서울에서 무서운 신예 김선욱과 협연해 눈에 익은 교향악단입니다. 그때의 감흥이 너무나 커서 이번에도 제일 먼제 예매한 공연. 5만원이었습니다.

대부분 100석, 200석짜리 공연장에서 공연이 이뤄지는 프린지와는 달리, 에딘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발(EIF: 이른바 공식 페스티발입니다)에 해당하는 공연들은 세계적으로 명망있는 공연단체나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서고, 공연장도 에딘버러에서 잘 나가는 5-6개 대극장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알프레드 브렌델이나 미샤 마이스키같은 노장들의 공연도 있었지만, 올해 EIF 메뉴 중에는 이 부타페스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와 앞서 얘기했던 매튜 본의 '도리언 그레이'를 선택했습니다. '도리언 그레이'는 세계 초연이라는 점이 확 끌렸고 부다페스트는 김선욱과 함께 무대에서 안 되는 한국말로 관객과 소통하려 애쓰던 피셔 선생의 모습이 너무나 정감있게 다가왔기 때문이었죠. 아, 물론 '현으로 관을 감싸는' 그의 연주도 매력적입니다.

아래의 어셔 홀이 바로 에딘버러 페스티발의 상징 같은 극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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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약간 높고 2층이 상당히 앞쪽까지 나와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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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출신답게 이날의 주제는 집시 음악.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이며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속에 들어 있는 집시 음악을 이반 피셔 본인의 해설과 집시 음악의 전문 연주자들을 통해 해설하는, 독특한 공연이었습니다. 역시 말하기 좋아하는 지휘자답게 이번 연주의 취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집시의 바이올린이란 여러분에겐 헝가리 식당에 갔을 때 주인이 연주해주는 것(객석에서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실제로 이런 영화 장면이 꽤 있었죠)을 말할 겁니다. 그래서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식당 바이올린 연주자를 모셔왔습니다."

그렇게 연주를 하다가 새로운 순서.

"자, 이 분은 정규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자신의 아들은 그렇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음악학교를 다닌 아들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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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아들 요제프 렌드바이(Josef Lendvay: 실제로는 '렌바이'라고 발음하는 것 같더군요)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요제프 렌드바이의 이름은 똑같습니다. 시니어와 주니어로 구별합니다(아버지를 초치 렌드바이라는 미들네임으로 부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두 부자의 협연은 대단히 인상적이더군요. 특히 아들 렌드바이가 독주자로 나선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은 여태까지 들어보지 못한 강렬한 느낌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렌드바이 부자의 '지고이네르 바이젠' 모습은 유튜브에서 구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아버지 렌드바이가 연주하는 파가니니의 '무궁동 Perpetuum Mobile'이 있군요. 이 집안 스타일은 화려한 테크닉을 요하는 곡들에서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누가 정규 음악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다음은 아들 렌드바이의 차례입니다.

집시 음악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몬티의 '차르다스'.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2번과 함께 헝가리 음악에 녹아 든 집시의 멜로디를 가장 잘 대표하는 곡으로 알려져 있죠.



보시다시피 아들 렌드바이는 현재 '요제프 렌드바이와 친구들'이란 팀으로 활동중입니다. 중간에 나오는 실로폰 비슷한 타악기는 침발롬(Cimbalom)이라고, 피아노나 하프시코드의 원형일 수도 있는 원시 악기라는군요. 헝가리 음악의 특징을 이루는 악기입니다. 묘한 소리를 내더군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친구들 전에 한국에도 왔었네요. 무식해서 저만 몰랐나봅니다. 뭐 아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10월 24일에 또 온다는군요.^^ 왠지 공연 홍보가 된 듯 하지만 아무튼 반가운 마음에 링크를 소개합니다.

http://theater.ticketlink.co.kr/detail/place_end01.jsp?pro_cd=B0043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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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물론 저만 그런건 아니겠지만, 요제프 렌드바이를 보고 있으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군요. 스타일 하며, 체형(현재 체형) 하며, 불꽃튀는 테크닉 하며... 누구겠습니까. 이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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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성명절기인 Icarus Dreams Op.4를 오케스트라 반주로 편곡한 버전입니다.





하나갖곤 아쉽군요. 무려 23년 전, 제게 세상이 달라 보이게 했던 노랩니다.

I'll see the light tonight. 사무실인 분들은 이어폰을 끼세요.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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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목표였던 '8일에 공연 8개 보기' 미션을 마쳤습니다. 가장 비싼 공연은 런던에서 본 '빌리 엘리어트(60파운드)'였는데 가장 싼 공연은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발에서 본 '어새신(7파운드)'이었습니다. 거의 1/10 가격이죠.

물론 공연의 수준, 공연장의 수준, 배우의 수준 등 모든 조건을 무시하고 가격 차이만 강조한다면 말이 안 됩니다. 비싼 공연은 비싼 공연대로 제 값을 하죠. 또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쉽게 접하기 힘든 작품들을 실연 무대로 볼 수 있다는 건 에딘버러 프린지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쉽게 찾아오지 않는 기회입니다.

이번 프린지에서는 '어새신'과 '리틀 샵 오브 호러' 두 편을 봤습니다. 나름대로 지명도는 꽤 있는 작품들입니다. '어새신' 은 최근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스티브 손드하임의 작품으로 미국 대통령을 암살했거나 암살을 기도했던 저격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찾아보니 '암살자들' 이란 제목으로 2005년에 국내에서도 공연된 적이 있었습니다. 오만석이 주연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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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중에서 총 맞아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긴 하지만, 이렇게 암살범이나 암살 시도범이 많은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꼽아 보면 이렇게 많더군요.

리온 촐고스(Leon Czolgosz) - 윌리엄 매킨리 암살범
존 힝클리(John Hinckley) - 로널드 레이건 암살 미수범
찰스 기토(Charles Guiteau) - 제임스 가필드 암살범
주제페 상가라(Giuseppe Zangara) - 프랭클린 루스벨트 암살 미수범
사무엘 빅(Samuel Byck) - 리처드 닉슨 암살 미수범
리넷 프롬(Lynette "Squeaky" Fromme) - 제럴드 포드 암살 미수범
사라 제인 무어(Sara Jane Moore) - 제럴드 포드 암살 미수범
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 - 에이브 링컨 암살범
리 하비 오스월드(Lee Harvey Oswald) - 존 F 케네디 암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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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암살당한 사람이 4명이나 되는군요. 물론 암살 미수범은 이 뮤지컬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많겠죠. 아무튼 막이 오르면 독점 무기상(proprietor)이 암살자들에게 총을 나눠줍니다. 모든 암살자가 소개되면서 이 뮤지컬의 테마 송이라고 할 수 있는 '누구든 권리가 있어(Everybody's got the right)'이 흘러나옵니다.

 
(동영상을 다시 보니 사무엘 빅-산타 복장-역으로 마리오 칸토니가 나오는군요. 누구냐면... 그 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게이 안소니 역으로 나오는 배우 말입니다.)


무슨 권리일까요. 당연히 '대통령을 죽일 권리'입니다. 이 뮤지컬이 블랙 코미디라는 걸 잊으시면 안됩니다. 암살자들 중 존 윌크스 부스는 '우리의 위대한 개척자'로 소개됩니다. '당신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든, 그 문제는 대통령을 총으로 쏨으로써 해결될 것'이라는 게 첫 장면의 내용입니다.

이런 식으로 뮤지컬 '어새신'은 암살자들의 사연과 말도 안되는 행태를 보여줍니다. 당연히 하이라이트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던 리 하비 오스월드에게 맞춰집니다. 사회부적응자인 오스월드에게 등장인물들은 "왜 자살따위를 해? 그러지 말고 대통령을 쏴! 어리석게 무명으로 죽지 말고 존 윌크스 부스처럼 역사에 남아!"라고 설득합니다. 결과는...

'어새신'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나 클로드 미셸 숀버그, 알란 멘켄의 뮤지컬처럼 아름다운 멜로디로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작품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 대한 촌철살인의 풍자는 다른 어떤 뮤지컬에서도 보기 힘들죠. 브로드웨이에서 장수한 작품은 아니지만 수많은 학생 극단이나 소규모 단체들이 끊임없이 이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는 이유는 충분해 보였습니다.

레이건을 저격한 뒤 "조디 포스터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랬다"고 증언한 존 힝클리와 연쇄 살인마 찰리 맨슨을 사랑하는 리넷 프롬의 듀엣곡 'Unworthy of your love'입니다.




이번에 에딘버러 프린지에서 본 '어새신'은 Rather Like a Shark/DULOG라는 단체의 무대였습니다.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만 공연하는 뮤지컬의 한계는 이미 지난 2002년 프린지에서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 공연은 그런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그냥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봐야 할 것 같더군요. 전체 출연진 중에서 프로페셔널한 가창력이나 무대 적응력을 가진 배우는 3-4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열의는 높이 평가할 만 했다'고 해야겠죠.

밤 10시 공연이라 공연장인 베들렘 극장은 깜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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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연장 주변은 와글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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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입구의 카페에서 술이며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에 한창인 관객들이 한바닥이었습니다. 축제 기간인 탓도 있었겠지만,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그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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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때의 무대. 왼쪽의 연주석이 그대로 노출돼 있습니다.





두번째 뮤지컬은 '리틀 샵 오브 호러(The little shop of horrors)' 입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국내에서도 여러번 공연된 적이 있는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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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딘버러에는 C라는 이름을 가진 공연장이 여럿 있습니다. 프린지에서는 모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소극장들인데, 이번 '리틀 샵 오브 호러'를 본 곳은 C계열인 C too(C2라는 뜻)였습니다. 에딘버러 성 바로 입구의 수백년 된 돌 저택을 지하층을 개조한 극장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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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전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안뜰도 있습니다.

'리틀 샵 오브 호러'는 로저 코먼의 1960년작 영화를 알란 멘킨이 1982년 오프 브로드웨이용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1986년에는 다시 뮤지컬로 영화화됐고(스티브 마틴이 출연합니다), 2003년에는 마침내 브로드웨이에서도 공연됩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알라딘', '포카혼타스'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신화에 한몫을 담당한 달러박스 작곡가 알란 멘킨이 최초로 만든 뮤지컬이라는 점에 주목해야겠죠.

줄거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부모도 없이 꽃집 점원으로 일하는 시무어 크렐번은 지극히 소심하고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청년입니다. 그리 약지도 못해서 꽃집 주인인 무쉬닉에게 늘 이용만 당하죠. 같은 꽃집에서 일하는 오드리를 짝사랑하지만 오드리는 애인인 치과의사 오린에게 늘 구타를 당하고 삽니다.

그런 시무어가 어느날 이상한 식물의 싹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문제는 이 식물이 말도 할 줄 알고,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는 외계에서 온 괴물이었던 거죠. 하지만 시무어는 이 식물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오드리의 이름을 붙여 '오드리 2' 라고 부르며 지극 정성으로 보살핍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왠지 엄청난 비극이 될 것 같지만 이 뮤지컬은 이런 사연을 아주 경쾌한 코미디로 풀어갑니다. 물론 블랙코미디죠.)

소극장 공연을 위해 이 뮤지컬의 장점이라면 아주 제한된 캐릭터로 공연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위 내용에 나오는 다섯명의 배우 외에 각각 쉬폰, 크리스탈, 로넷이라는 이름이 붙은 세 명의 여성 코러스만 있으면 공연이 가능합니다.

출연진이 적은 반면 음악적으로는 대단히 탄탄합니다(당연하죠. 알란 멘킨의 명성이 짤짤이에서 딴 건 아닙니다). 가장 잘 알려진 노래는 식인식물 오드리2의 곡인 'Feed Me' 입니다. 영화판에서 오드리2 역은 왕년의 R&B 그룹 포탑스의 리드 보컬 리바이 스텁스(Levi Stubbs)가 맡았습니다.



한곡 더 하자면 악당 치과의사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노래. 'Dentist Song'입니다. 스티브 마틴의 젊은 모습이 낯설지도.^^ (아래 동영상엔 없지만 영화에서 환자 역으로 빌 머레이가 나오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이 환자 역은 1960년작 영화에선 젊은 잭 니콜슨의 배역이더군요.^^)



제가 본 '리틀 샵 오브 호러'는 FirstMinute Productions in Association With Ben Monks & Will Young(http://www.dontfeedtheplants.com/home.html)이란 연기단체의 무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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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뮤지컬을 소극장에서 공연할 때 아마도 가장 돈이 드는 부분은 식인식물의 시각적인 구현일 겁니다. 뭘로 만들든 간에 상당히 돈이 드는 구석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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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이 사진 정도는 써 줘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이번 프린지 무대에서의 식인식물은 아주 단순하게 만들어졌습니다. 화분 대용의 큰 들통과 녹색 타이즈를 입은 사람만으로요. 괴물을 만드는 소도구비용은 단 한푼도 들지 않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꽤 예산 절약이 되지 않았나 싶은데, 의외로 대단히 효과적이었습니다. 아무런 추가 장비 없이 괴물이 희생자를 잡아먹는 모습까지 깔끔한 연출로 커버해버리더군요. 일단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할 만 했습니다.

게다가 주연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가 대극장에서도 충분히 통할만한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코러스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하길 바라는 건 무리였지만, 다섯 주역은 입장료가 2만원이란 게 미안할 정도의 실력을 과시했습니다. 사진 찍는데 상당히 과민한 듯 해서 무대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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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샵 오브 호러'는 대형 무대나 찬란한 효과를 쓰지 않고도 뮤지컬의 묘미를 맛볼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소품'의 대표적인 예로 불릴 수 있을 듯 합니다. 무엇보다 큰 무대를 앞두고 있는 미래의 스타들이 단련하기 위해서는 이런 작품들이 좀 더 자주 무대에 올려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지난 2002년에 본 작품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마빈 햄리쉬(뮤지컬 '코러스 라인'의 작곡자이며 영화 '스팅'과 '더 웨이 위 워'로 오스카상을 받은 인물입니다)의 소품 '그들이 우리의 노래를 하고 있어(They're playing our song)' 도 6-8명이면 충분히 공연이 가능한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작품은 작아도 음악이나 드라마가 주는 감동은 절대 작지 않았다는 점을 전제로 해야겠죠. 2만원짜리 뮤지컬의 감동이 20만원짜리보다 훨씬 더 클 수 있으니까요.

서울의 작은 극장에서도 이런 작은 뮤지컬들이 자주 올려지고, 늘 자리가 꽉 차지는 않더라도 무대와 객석에서 열의에 가득 찬 눈동자들이 서로 부딪히는 광경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뮤지컬 붐이라고는 하지만 20만원짜리 뮤지컬은 꽉꽉 차고 5만원짜리는 손해를 보는 상황, 특정 스타가 출연하는 회차만 매진되고 나머지 회차는 자리가 비는 상황은 결코 건강하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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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의 역사가 그리 오래진 않지만,  이 장르는 현대 문명 사회에서 전통적인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의 간극을 연결하는 고리 문화의 역할로 충실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긴 두 문화의 세계 사이에 끼어 있다 보니 한 쪽으로부터는 너무 가볍다는 비판을 받는 반면, 다른 쪽으로부터는 오히려 어렵고 생경하게 느껴진다는 평을 듣기도 합니다.

이번 여름 여행의 모토 중 하나는 '원없이 공연을 보자'는 거였습니다. 에딘버러와 런던에서 여덟 밤을 지새는 동안 뮤지컬 4편(에딘버러에서 '어새신'과 '리틀 샵 오브 호러', 런던에서 '빌리 엘리어트'와 '레미제라블'), 클래식 공연 2회(에딘버러에서 부다페스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와 런던에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퍼포먼스 1회('패밀리'), 무용 공연 1회('도리언 그레이')를 달렸습니다. 본래 창작 뮤지컬 한 편을 더 볼 계획이었지만 체력관리상 휴식이 필요하더군요.

그중에서도 압권이라면 아무래도 런던 퀸스 시어터의 '레미제라블'을 꼽아야 할 듯 합니다. 무려 22년째 공연되고 있는 대작 중의 대작. 이상하게도 국내에서는 별 이유 없이 저평가되고 있는 듯(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작품이 아니라서?) 합니다만 세계 최고의 뮤지컬이라는 평이 아깝지 않은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인류가 만들어 낸 단 두편의 뮤지컬을 꼽으라면 웨버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이 작품을 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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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테지만 동화(?)로 이 작품을 접하신 분들에게는 오히려 뮤지컬의 뒷부분이 대단히 낯설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이 작품의 뒷부분이 1832년, 민중왕 루이 필립 치하의 파리에서 일어나는 6월5일과 6일의 민중 항쟁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항쟁에서 마리우스는 공작가의 자손이지만 민중의 지도자 앙졸라에게 감화돼 시민군의 바리케이트에서 선봉에 섭니다. 장발장은 친딸처럼 키워 온 코제트의 연인인 마리우스가 바리케이트에서 죽지 않게 하기 위해 전장에 몸을 던지고, 마리우스를 짝사랑한 에포닌도 그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죠(뮤지컬에서의 처리는 좀 다릅니다).

본래 소설에 다 나와 있는 진행이긴 하지만, 우리가 잘 아다시피 왕년의 한국 사회는 어린이들에게 이런 민중봉기에 몸을 던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해 줄만큼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죠.^^

그래서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있어 '레미제라블', 혹은 '장발장 이야기'는 은식기를 훔친 장발장에게 "왜 촛대는 가져가지 않았나, 친구?"라고 말해 19년의 옥살이 기간 동안 사회에 대한 원한으로 가득 찼던 장발장을 선인으로 회개하게 하는 미리엘 주교의 감동 스토리만 기억되게 된 것입니다. 뒷부분의 민중 항쟁은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는 구성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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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혁명'에 초점을 맞춘 뮤지컬이기 때문에 'One Day More'나 'Do you hear the people sing'같은 불온한(?) 노래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뮤지컬이 빛나는 것은 이런 아름다운 선동의 노래들 때문만이 아니죠. 팡틴이 부르는 'I Dreamed a dream', 에포닌이 부르는 'On my own', 심지어 피도 눈물도 없는 철혈형사 자베르에게도 'Stars'와 같은 명곡을 줍니다.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에게 다양한 히트 넘버를 주는 뮤지컬로는 비교할 만한 작품이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이 아름다운 스코어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는 요령부득의 스토리 때문에 감동이 반감되는 부분이 있다면, '레미제라블'은 탄탄한 원작의 힘과 재치있는 각색 덕분에 스토리와 음악의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클로드 미셸 숀버그의 역량은 이 작품에서 최절정의 힘을 보여주죠.

아무튼 포스팅의 특성상 노래를 안 들어보면 얘기가 안 되겠죠. 자, 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를 가장 잘 정리한 화면을 고르라면 아무래도 신화적인 뮤지컬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에게 헌정된 공연 '헤이! 미스터 프로듀서' 중의 한 장면이 제일 나을 것 같습니다.

이 화면에는 코러스의 At the End of the Day, 자베르의 Stars, 에포닌의 On my own, 장발장의 Bring him home, 그리고 전원이 부르는 One Day More가 담겨 있습니다. 출연진은 전에 소개한 적 있는 레미제라블 10주년 기념 공연 때의 멤버와 거의 동일합니다.




물론 이 방대한 뮤지컬에 담긴 전곡을 수없이 많은 가수들의 노래로 다 들어 볼 수는 없고, 일단 두 곡만 추려 보렵니다.

먼저 'I Dreamed a dream'입니다. 이 곡은 코제트의 어머니 팡틴이 사생아를 몰래 키우고 있다는 이유로 공장에서 쫓겨나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하는 장면의 노래죠. 거친 운명 때문에 마음에 품을 꿈 하나 없어진 여인의 비참한 심정을 담은 노래입니다.

10주년 기념 음반에는 루디 헨셜의 노래로 실려 있습니다. 다시 한번 들어 보시죠.



다음은 웨스트엔드 초연 때의 팡틴이었던 패티 루폰의 노래입니다. 앞의 사설이 좀 깁니다.





다음은 브로드웨이 초연 때의 팡틴이었던 랜디 그라프.




90년대 브로드웨이의 에포닌이었던 레아 살롱가는 21세기 재공연 때에는 팡틴 역으로 변신했습니다. 2007년, '브로드웨이 온 브로드웨이' 행사의 일환으로 설치된 거리 무대에서 'I Dreamed a dream'을 부르는 장면을 누가 찍어 뒀군요.

이런 종류의 영상 치고는 화면과 소리가 들을 만 합니다. 그리고 이 가수가 얼마나 가공할 실력을 갖췄는지도 함께 보실 수 있죠.





다음은 'One day more'와 함께 이 뮤지컬의 주제가라고 할 수 있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입니다. '민중이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분노한 사람들의 노래 소리가/ 이것은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을/ 사람들의 음악이다'로 시작되는 가사처럼 혁명을 품은 사람들의 노래입니다.

아무래도 10주년 기념 DVD의 힘을 빌어야 되겠군요. 앙졸라 역의 마이클 매과이어가 빛나는 장면입니다.




이 노래는 온갖 합창단에 의해서도 합창으로 불려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만한 버전은 1996년 런던 웸블리 구장에서 열린 유로 96 축구대회 개막식에서 불려진 버전입니다. 웅장하기로는 압권이죠.




10주년 기념 음반의 피날레입니다. 아무래도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의 결정판이라면 이 장면을 빼놓을 수가 없겠죠. 1987년부터 96년까지 전 세계 17개국에서 장발장 역을 맡았던 배우 17명이 등장해 이 노래를 함께 부릅니다.





자, 지금부터 제가 본 공연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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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명연들을 일찌기 듣고 있었지만, 웨스트엔드 퀸스 시어터의 '레미제라블'은 여전히 훌륭한 공연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약간 할인 판매를 하고 있긴 하지만 평일인데도 저녁 공연은 여전히 만원.

22년간 조금씩 보완됐겠지만, 회전 무대를 기본으로 한 무대의 배치와 운영도 완벽합니다. 아쉬운 건 팡틴 역의 배우가 저 위의 스타들에게는 비교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는 점 정도. 장발장 역의 드루 자리치가 너무 젊다는 점도 살짝 걸렸지만, 보는 공연 마다 코엄 윌킨슨을 기대할 수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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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과 장발장을 거론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코엄 윌킨슨은 '라만차의 사나이'에서의 돈키호테로도 절창을 보여준 가수입니다. 중년의 바리톤 역으로 그를 뛰어 넘을 수 있는 뮤지컬 배우는 현재로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아, 물론 한때는 팬텀 역으로도 등장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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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본 공연의 엔딩 인사입니다. 맨 왼쪽의 여자 빼고 그 다음부터 앙졸라, 테나르디에 부인, 테나르디에, 에포닌, 장발장, 자베르, 팡틴, 마리우스, 코제트입니다.

그동안 몇 차례 기회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인연이 닿지 않았다가 이번에야 직접 보게 된 공연이라 더욱 가슴에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날 귀국을 앞두고 몸은 피곤하고 부상(?)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이 공연을 그냥 넘어갔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더군요.

마지막 화면은 지난 2006년, 바로 이 퀸스 시어터 무대에서 있었던 런던 초연 때 멤버들의 재결합 무대입니다. 윌킨슨을 비롯해 마리우스 역의 마이클 볼, 팡틴 역의 패티 루폰, 에포닌 역의 프란시스 루펠, 코제트 역의 레베카 케인 등이 무대에 서서 One More Day를 불렀습니다.





이 공연이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아마도 초연 때 가브로슈 역을 맡았던 소년이 자라 장발장 역을 맡을 때까지는 충분히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 됐기 때문이죠.

현재 이 뮤지컬을 자국 버전으로 공연한 나라는 21개국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하루 빨리 한국 배우들로 이뤄진 '레미제라블'을 볼 수 있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많은 분들이 김진태, 남경주 주연 버전을 얘기하시는군요. 그렇게 무대에 올려진 적이 있는줄 몰랐습니다. 이제 저변도 더 넓어졌으니 다시 한번 '제대로' 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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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겠지만 매년 8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열리는 에딘버러 페스티발에는 공식 행사인 인터내셔널 페스티발과, 그 주변에서 열리는 프린지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공식 페스티발은 브로드웨이, 프린지는 오프 브로드웨이 식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겠죠. 세계적인 공연단체와 아티스트들이 으리으리한 공연장에서 뽀대 있게 공연하는 공식 페스티발이 열리는 동시에 온 시내의 수백개 공연장에서 수천개의 곁다리 공연이 열립니다. 연극, 음악, 뮤지컬 등 장르에도 아무 제한이 없죠.

당연히 한국 공연도 꽤 있습니다. 올해도 10여개 단체가 공연했다더군요. 물론 올해 열린 2000여개의 전체 공연 중에선 결코 눈에 띌 정도가 아닙니다만, 꽤 늘어난 숫자입니다. 지난 2002년에 갔을 때 한국 공연을 하나도 안 보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려서(^^) 이번엔 챙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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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는 태권도 가족과 B-BOY 가족이 최고의 가족을 뽑는 콘테스트 결승에서 맞붙어 각자 기량을 뽐내 대결한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서 태권도 가족의 최고 연장자인 할머니와 B-BOY 가족의 할아버지가 눈이 맞아 므흣한 관계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당연히 태권도 패밀리는 태권도 선수 출신, B-BOY 팀은 B-BOY 출신들이 공연에 나섭니다. 전혀 연기 경력이 없는 선수들을 연습시켜서 만든 공연이더군요.

공연장 입구는 이렇습니다. 이 공연장에선 '패밀리'외에도 인도의 민속 공연이 3개, 그리고 다른 한국 공연팀의 '아리랑 파티'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헤비메탈 드러머 출신인 최소리씨의 퍼포먼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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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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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패밀리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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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석 조금 넘는 작은 공연장이었지만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이 좋아하더군요. 두 아이를 데려온 현지인 관객 맥클라런드씨에게 물어보니 "공연을 본 친구에게 추천 받아 아이들을 데려왔다. 너무 재미있었다. 나도 다른 가족에게 추천하겠다"고 하더군요.

왠지 뿌듯했습니다.




매일 하루 2회씩 공연을 한 팀이라 지칠만도 하지만, 이른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곧바로 다시 가두 홍보에 나섰습니다.

이건 몸풀기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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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에딘버러 페스티발 기간중엔 온 거리가 공연장이 되고, 가두 홍보도 허가받은 장소와 시간에만 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패밀리' 팀은 불행히도 그런 기회를 잡지 못했고, 결국 한국식의 게릴라 홍보로 승부를 걸었다는군요.

그냥 몸으로 밀어붙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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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중 B-BOY 팀의 박성배군(정말 박지성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맨유 유니폼이라도 있었다면.^^)의 묘기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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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붕붕 나는 건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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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군의 후배. 다른 단원들은 이 주변에서 열심히 목소리를 높이며 공연 전단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좀 더 집단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러면 금세 공연 단속팀이 출동해서 처벌 대상에 오른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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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여기가 로열 마일. 에딘버러 구시가의 중심입니다. 페스티발 기간중에는 인파로 넘쳐나는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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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단속을 피해(?) 두 사람 정도의 팀 퍼포먼스만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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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렵하기 이를데없습니다. 이러고 있으면 수십명이 "무슨 공연이냐? 어디서 하냐?"고 물어보고 전단을 받아 갑니다.


태권도 팀도 가만 있을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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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역의 김미란양이 품세를 시작했습니다. 구경하는 관객들이 늘기 시작합니다.

사실 무허가 홍보라 너무 관객이 몰려도 안됩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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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시범단 출신답게 동작에서 절도가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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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 발차기. 구경꾼들의 박수가 터집니다.

공연 막바지라 다들 파스로 도배가 된^^ 몸들이었지만, 에딘버러 하늘을 지르는 발차기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기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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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멋진 공연장이 어딘지 아십니까?

바로 런던 한복판에 있는 로열 알버트 홀입니다. 2008년 8월 25일, 드디어 이곳에 들어오는데 성공했습니다. 감격의 눈물이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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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로열 알버트 홀은 하이드 파크 남쪽에 붙어 있는 유서깊은 공연장입니다. 굳이 이름을 댈 필요도 없는 세계 유수의 아티스트들이 섰던 꿈의 무대죠.

20년 전, 홍안소년의 모습으로 이곳에 와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 '언젠가 이 안에서 공연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감개무량합니다. 세상 참 좋아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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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본 공연은 BBC가 주최하는 프롬(PROMS)이라는 여름 특별 공연 시즌 중의 하나였습니다. 로열 알버트 홀과 BBC가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셈 치고 저렴한 가격에 여름 내내 유수의 공연자들을 불러 모아 하루에도 3-4회씩 공연을 합니다.

저희가 본 건 그중 53번 공연, PROM 53였습니다. 다니엘 가티가 지휘하는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하는 순서였습니다. 3층의 2만원 정도 하는 티켓을 예매했습니다. (그래도 한국까지 배송을 해 줍니다. 더 싼 표를 샀다면 운송료가 더 들지도 모릅니다.^ )

28일, 이번 프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뉴욕 필하모닉 공연도 가장 비싼 2층의 박스석 표는 54파운드(약 11만원?)까지 있지만 저희가 본 3층의 서클석은 5파운드(1만원)짜리 표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자리도 충분히 공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학생증(아무 학생증이나)만 있으면 절반 가격입니다. 대개 이 정도의 충격적인 가격이죠. 안타깝게도 저희는 이 공연까지 볼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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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안에 들어와서 바라본 로열 알버트 기념탑입니다. 네. 저 위의 홀 사진에 보이는 세로 휘장 뒤에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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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내부는 명목상 4층까지가 객석입니다. 물론 4층은 좌석 없는 갤러리 입석. 3층에는 저렇게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매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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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상 매점이라고 했지만 간단한 음료수와 샌드위치를 파는 공간. 관객들이 와인이며 맥주를 마시면서 온갖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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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으로는 눈 높이로 로열 알버트 기념탑이 보입니다. 소박하고 고풍스럽지만 정감 있는 공간입니다. (사실 실제 색은 위 사진보다 좀 더 우중충합니다. 캐논 카메라의 고질적인 왜곡^^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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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돈만 많다면 이렇게 분위기 있게 식사할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바로 엘가(Elgar) 레스토랑. 영국인이 사랑하는 작곡가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안 물어봤지만 가격은 상당히 비쌀 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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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드디어 3층 입장. 빨간 재킷의 안내원이 일일히 자리를 가르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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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수용인원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큰 홀인데, 공연 시작 30분 전에 거의 차 있습니다.

1층 가운데 자리는 입석인 어레나(Arena)석. 4층의 갤러리와 함께 입석은 당일 현장에서만 팝니다. 가격은 확인해보지 못했는데 좌석 최하가 5파운드였으니 그보다는 싸야겠죠(록 공연이라면 스탠딩이 더 비싸니 혹이 이것도...?).

3층 서클석에서 바라본 공연장의 전체 모습입니다.



대단하죠?

오케스트라 자리는 아직 비어 있습니다. 조명이 근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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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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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제가 아는 사람도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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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머리 위로 보이는 자리가 바로 갤러리석입니다. 입석. 난간에 기대서 봅니다.

한번 올라가 볼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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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드디어 오케스트라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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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들려 드릴 수는 없고...

프로코피에프는 이런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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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5번은 이런 느낌.

가티의 지휘는 무척 가볍고 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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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어레나 석은 분방하기 짝이 없습니다. 배낭 베고 누워서 듣는 사람도 몇명 있을 정도.

위 사진은 중간 휴식시간이지만, 휴식이 끝나도 저 주저앉은 사람들은 그대로 있습니다. 물론 오케스트라 바로 앞 사람들은 일어서죠.

연주가 끝나고 사람들은 열광적인 커튼콜에 들어갑니다.

얼마나 열광적인지 한번 보시죠.



연출기법상의 과장(^^)이 좀 있긴 했지만 분위기가 이랬습니다. 수천명의 관객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니 공연장이 흔들흔들 하더군요. 물론 가티는 끝까지 앵콜을 아꼈습니다.

자, 이렇게 해서 공연이 모두 끝났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복도에서도 관객들은 차이코프스키 5번의 테마(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민해경의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와 매우 흡사합니다)를 흥얼거리며 계단을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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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밖의 포스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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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레녹스, 존 레전드, 브라이언 아담스, 게스트 스타 주드 로... 줄리언 로이드 웨버, 전설의 무디 블루스라니. 정말 런던에 살고 싶어졌습니다.

프롬 콘서트, 올해는 좀 늦었지만 여름 런던에 가실 분들은 꼭 한번 시도해 볼 만 할겁니다. 특히 배낭여행 간 지갑 얇은 학생들도 저 정도 가격이 비싸서 못 갈리는 없겠죠. 런던에는 60파운드짜리 뮤지컬만 있는 건 아닙니다.

p.s. 글이 잘 올라가야 할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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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올해 에딘버러 페스티발에서 지난 22일 초연된 매튜 본의 신작 '도리언 그레이'를 봤다는 얘깁니다. 아시다시피 매튜 본은 '백조의 호수'를 남자 무용수들로 채운 걸로 유명한 안무가죠.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1890년 당시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공포소설의 하나로 받아들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남자간의 금지된 사랑을 은근히 비치고 있는 줄거리(오스카 와일드는 동성애 파문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에 경악한 사람도 있었겠죠.

이 시절에 비하면 매튜 본은 대단한 표현의 자유를 타고 난 셈입니다. 네. 마돈나의 남편인 가이 리치의 친구이며 클라우디아 쉬퍼의 남편인 영화감독 매튜 본이 아니라 무용계의 스필버그 취급을 받고 있는 바로 그 매튜 본입니다. 지난 23일, 매튜 본의 신작 '도리언 그레이'를 봤습니다. 22일 밤 공연이 월드 프리미어였으니 세계에서 두번째로 무대에 올려진 공연을 본 셈이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내용을 잠깐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런던 사교계의 중심 인물인 귀족 청년 헨리 경은 친구인 화가 바질이 그리고 있는 초상화를 통해 그림의 모델인 미남 도리언 그레이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바질은 그레이에게 끌리는 자신에 대해 두려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레이를 만난 헨리는 자신의 분방한 도덕관으로 그레이를 '오염'시키죠. 헨리의 영향으로 그레이는 자신의 미모가 갖는 위력을 마음대로 휘두릅니다.

그는 잠시 여배우 시빌에게 끌리지만, 자신이 무대 밖의 그녀에게 아무련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싸늘하게 변해 버리죠. 결국 시빌은 자살하고, 그는 자신이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바질이 그린 초상이 점점 늙은 모습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영원한 젊음과 미모를 유지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야기는 18년 뒤의 시점으로 넘어갑니다. (혹시 스포일러라고 하실 분도 있을테니 이 정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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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도리언 그레이'는 이 이야기를 21세기의 패션과 광고 산업으로 끌고 옵니다. 그레이는 무명의 웨이터에서 일약 톱모델로 올라서는 꽃미남 스타로, 바질은 '당연히' 사진작가가 됩니다. 이렇게만 바뀌면 너무 평이하겠지만 여기서 헨리 경은 연예계의 권력자(에이전시 사장? 광고주? 미디어의 실력자?)인 레이디 H로, 여배우 시빌은 남성 무용수 시릴로 성별이 바뀝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초상화는 그저 사진으로 대입되는 것이 아니라, 그레이의 내면을 상징하는 분신(도플갱어)로 묘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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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리언 그레이와 레이디 H.)


스타가 된 그레이의 타락을 그려내는 소재로 마약과 술, 바이섹슈얼과 오만방자함 등의 부덕이 무대를 수놓습니다. 매튜 본의 타고난 흥행감각 덕분에 '도리언 그레이'는 훌륭한 대중용 상품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무용극이라지만 조금도 지루하거나, 전문적이라거나, 난해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기발한 회전무대는 수시로 광고 스튜디오에서 사진작가의 침실로, 화려한 파티장에서 은밀한 사랑의 공간으로, 플래시를 받는 현장에서 그레이의 방 사이를 수시로 오갈 수 있게 합니다. 이 이중 회전 무대와 도플갱어의 존재는 너무도 간단하게, '자아의 분열'이라는 주제가 오스카 와일드와 매튜 본을 관통해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죠. 아무튼 이 작품은 19세기 고전의 현대화라기보단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에 더욱 가까이 있습니다. 도리언 그레이가 광고하는 향수의 이름이 불멸(Immortal)이란데선 무릎을 탁 치게 하기도 합니다.
 
매튜 본의 작품을 처음 본 저같은 사람에게 있어 '도리언 그레이'는 매우 흥미롭고 강추하고 싶은 수작입니다만, 이미 '백조의 호수'에서 '에드워드 가위손'까지 그의 작품을 여럿 경험한 평론가들에게 있어선 그리 매력적인 작품이 아닌 듯 합니다. '가디언'과 '더 타임즈'는 모두 인상적인 혹평이더군요. '가디언'은 새로운 것이 없다는 쪽, '타임즈'는 심지어 '게이 포르노가 너무 자주 나온다'는 식입니다. 사실 중요한 러브 신이 모두 남자 무용수들 사이의 것이긴 합니다. 하긴 아주 없는 얘기는 아닙니다. 사실 어찌 보면 매튜 본의 주요 고객들인 '배운 여성 관객'들의 취향에 맞춘 고급 야오이 무용극(?)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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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리뷰 모두 그레이 역을 맡은 리처드 윈저(Richard Winsor)에겐 호감을 갖고 있더군요 윈저나 레이디 H역의 미카엘라 메짜(Michaela Meazza) 모두 본과는 '에드워드 가위손' 등에서 손발을 맞춘 사이입니다.

자, 지금부터는 염장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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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연 장소인 킹스 시어터는 에딘버러 성 남서쪽에 있습니다. 매튜 본 정도의 지명도를 가진 인물이 초연을 하기엔 좀 초라해 보일 정도로 낡은 극장이란 느낌. 1906년에 지어진 극장답게 외양은 꽤 쇠락했고(왕년의 단성사나 스카라 극장 느낌입니다), 아주 규모가 큰 홀도 아닙니다. 하긴 이런 걸 보면, 한국 공연문화는 지나치게 외양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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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는 사람도 있군요. (네. 휴가중이란 뜻입니다.)


아무튼 극장 안은 '에딘버러 페스티발의 60년 역사상 무용 작품으로는 최고 히트작'이라는 설명답게 입추의 여지가 없이 들어찼습니다. 올해 날씨와 올림픽 때문에 에딘버러 페스티발이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는 데서 더욱 이례적인 히트로 여겨지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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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갈채와 함께 공연이 끝났습니다. 무대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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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마지막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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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는 9월2일부터 런던으로 자리를 옮겨 공연된다고 합니다만, 매튜 본의 인기를 생각하면 언제든 국내 무대에도 올려지겠죠. 매튜 본 빠순이(?)를 자처하시는 분들은 곧 비행기 티켓을 사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입가심으로 두 사람의 도리언 그레이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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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 하트필드는 1945년작 영화의 타이틀 롤인 도리언 그레이입니다. 왠지 신성일씨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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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그레이는 영화 '젠틀맨 리그'의 스튜어트 타운젠드입니다. 하긴 뭐 리처드 윈저 정도라면 그레이 역으로는 손색이 없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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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번 실패하고 오기로 올리니 올라가는군요. 이놈의 유럽 인터넷. 오랜만에 훈훈한 포스팅이라고 좋아하실 분들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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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동안 찍은 사진들입니다.

망 사정이 형편없어서 계속 좌절했는데 오늘 망이 정신차린 김에 올려 봅니다.

사진에 나오는 곳은 어느 도시 주변일까요?

가장 먼저 맞추시는 분께는 돌아오는 오프라인 이벤트에 선물을 드립니다.

(그런데 직접 나와서 수령하셔야 한다는^^)

아무튼 인터넷 사정이 너무 안 좋아서 이걸로 인사를 대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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