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빌보드 석권] 싸이가 빌보드 차트 11위까지 오르는 초강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주 64위에 오른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는데 2주만에 11위라니, 이제는 1위에 오른다 해도 놀랍지 않을 듯 합니다. 하긴 이미 소셜 차트 1위와 아이튠스 1위를 차지했으니 빌보드 1위도 결코 꿈이 아닙니다.
'강남스타일'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고, '제2의 마카레나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글을 쓴지 한달 남짓 지났는데 이렇게 무시무시한 가속이 붙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아무튼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춤을 가르치고, 사이먼 코웰과 인증샷을 찍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클럽에서 술잔을 나눈다니, 이제 국내에서 싸이를 보기 힘들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목 설명 들어갑니다. 싸이가 만약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다면 대략 사상 7번째 기록을 세우는 셈입니다. 무슨 기록일까요? 눈치 빠른 분들은 알아채셨겠지만, 바로 '영어가 아닌 언어 가사로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 노래' 부문에서 역대 일곱번째라는 뜻입니다.
서구인들, 특히 미국인들의 자국어에 대한 집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자막으로 외국영화 보기'가 그들에겐 대부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죠. 마찬가지로 외국 언어로 된 노래를 소비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차라리 연주곡이 히트하기가 훨씬 쉽죠.)
지금까지 여섯 곡의 '비 영어 가사'로 된 노래들이 빌보드 핫100의 정상을 밟았습니다. 물론 그중 한 곡은 잘 알려진 '마카레나'입니다. 그럼 그 전의 노래들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놀랍게도 리키 마틴이나 샤키라, 셀린 디온은 아닙니다.
90년대의 슈퍼스타 리키 마틴이 부른 노래들 가운데 빌보드 핫100에서 1위를 차지한 노래는 '리빈 라 비다 로카(Livin la Vida Loca)' 단 한곡 뿐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제목만 스페인어 일 뿐(영어로는 대개 'crazy life'라고 번역됩니다), 가사는 모두 영어죠. 미국 사람들이 말하는 foreign language hit 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샤키라도 2005년의 'La Tortuna'가 차트 22위에 오른 정도가 최선입니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그 유명한 '헤이'도 미국 핫100 성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어려운 HOT100에 올라 미국 시장을 석권했던 노래들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 역사를 살펴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핫100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1958년 이후 핫100 1위를 기록한 '비 영어 가사' 히트곡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실 제가 알기론 6곡인데 좀 불안합니다.^^ 혹시 다른 사례를 알고 계신 분들의 제보 부탁드립니다. 당장 수정하겠습니다.
Volare - Domenico Modugno, 이탈리아
1958. 8월부터 5주간 1위(연속은 아님)
이탈리아 가수 도메니코 모두뇨의 '볼라레'가 현재까지는 가장 오랜 기록인 듯 합니다. 요즘도 각종 CF 등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노래죠. '볼! 라~레'라는 후렴구가 인상적입니다. 지금은 집시 킹스(Gipsy Kings)가 리메이크한 빠른 템포의 뉴 버전이 훨씬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원곡의 느낌은 이렇습니다.
Dominique - the Singing Nun (Sister Smile) 벨기에
1963. 12.7~4주 연속
'싱잉 넌'이라는 예명으로 알려진 벨기에 수녀(진짜 수녀 맞습니다) 지니 데커스(Jeannie Deckers)가 부른 노래입니다. 가사는 불어. 국내에도 오래 전부터 '도미 니크니크니크니크 즈을거워라~~~'하는 번안 가사로 잘 알려진 노래죠.
이 노래 외에도 왕년의 '비 영어 히트곡'들은 대부분 세계적인 히트곡들이기 때문에 제목은 몰라도 들어 보면 너무나 친숙한 곡들입니다.
Sukiyaki - Kyu Sakamoto 일본
1963. 6.15~29 (3주)
지금까지 '아시아권에서 미국 진출에 성공한 가수'를 꼽으라면 항상 큐 사카모토가 거론됐고, 사실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이 노래의 제목은 '우에오 무이테 아루코(上を向いて歩こう), 즉 '위로 보고 걷자'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된 영국 음반사 사장이 이 노래의 영국 발매를 결정하면서 '저 제목으론 도저히 승부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 것이죠. 그래서 일본어 단어 중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스키야키'를 제목으로 붙이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리메이크 연주곡으로 발매된 이 노래는 서정적이고 친근한 멜로디 덕분에 히트하게 됐고, 일단 곡이 히트하자 음반사에선 아예 일본어 가사가 있는 원곡을 다시 발매했습니다. 이것이 미국까지 퍼지며 불같은 인기를 누렸고, 핫100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싱글 음반이 1300만장이나 팔리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미국내 발매 음반 사상 역대 10위권의 기록입니다.
Rock Me, Amadeus - Falco 오스트리아
1986. 3.29~4.12(3주)
이제는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남 가수 팔코는 독일어 노래로 핫100을 석권했습니다. 제목과는 달리 일렉트로닉 댄스 곡이라는게 특징. 비슷한 아이디어로 가제보의 'I Like Chopin'이라는 노래도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Chopin이 '초핀'이 아니라 '쇼팽'이라는 것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팔코는 이 노래 외에도 비장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Jeannie'라는 노래(한때 나이트클럽의 '부르스 타임'에 단골로 등장했던 곡입니다)로 미국은 아니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상당한 히트를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지역에서 이 노래는 거의 금지곡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가사가 '강간 미화'라는 시비에 휘말렸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낭만적으로 보이는 뮤직비디오는 알고 보면 살인범 스토커와 그 피해자 사이를 환상적으로 묘사한 것이었죠. 후렴구 외에는 전부 독일어 가사라 아시아 지역에선 반향이 적었던 듯...^^
La Bamba - Los Lobos 멕시코
1987. 8.29~9.3 (3주)
비행기 사고로 간 비운의 초기 록 스타 리치 발렌스는 이 노래 한 곡으로 지금껏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1987년, 그를 추모하는 영화 '라 밤바'가 개봉됐죠.
영화 자체는 엄청난 히트작이 아니지만 멕시코 뮤지션 로스 로보스에 의해 리메이크된 노래 '라 밤바'는 다시 한번 전 세계적인 붐을 일으켰습니다. 리치 발렌스가 1958년에 부른 원곡은 차트 22위 정도에 그쳤지만 1987년의 '라 밤바'는 3주 연속 핫100 정상을 지켰습니다.
Macarena - Los Del Rio 스페인
1996. 8.3~11.2 (14주)
마지막은 지난번에도 소개했던 로스 델 리오의 '마카레나'입니다. 당시 자세히 소개했으므로 여기서는 재론하지 않겠습니다. 못 보신 분은 이쪽.
강남스타일, 제2의 마카레나 될 수 있을까? http://fivecard.joins.com/1030
지금까지 예로 등장한 노래들을 보면 스페인어가 2곡이고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과 일본이 하나씩입니다. 사실 미국 내 인종 비율을 생각하면 스페인어 노래는 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 빌보드 핫100 1위를 다섯번이나 기록한 엔리케 이글레시아스도 그 1위곡들은 모두 영어 노래들입니다.
현재의 기세를 볼 때 싸이는 아마도 핫100에서 정상을 밟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현재까지의 히트 사례들을 볼 때, 비록 싸이가 지금 '강남스타일'을 영어로 개사할 필요는 없겠지만, 미국에서의 그 다음 히트를 기대한다면 아무래도 영어 가사로 된 신곡을 내놓는 것이 바람직할 듯 합니다. 단독 작업이든, 저스틴 비버와 같은 히트 아이돌과의 공동 작업이든 말입니다.
(물론 이 '신곡'에는 과거의 히트곡들을 영어로 개사해 발표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쪽 시장에서는 뭐든 다 신곡일테니.)
(그리고 아래는 '강남스타일'에 심취하신 어느 백인 아저씨. ㅋ)
쇼 비즈니스만큼 예측이 어려운 세계도 드문 만큼, 싸이가 '강남스타일' 이후에 어떤 식으로 미국 커리어를 끌고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위에 있는 여섯 뮤지션 가운데 저런 불멸의 히트곡 외에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이어간 경우는 없습니다. 대부분이 '로또에 맞듯' 성공을 경험했고, 그 이후 새로운 시장에 적응할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싸이 역시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깜짝 성공이란 면에선 마찬가지지만, 현재 상황은 이들과 사뭇 다릅니다. 그 자신의 프로듀싱 능력, 작곡을 도와주는 파트너 유건형(왕년에 '언타이틀'로 유명했죠), 유창한 영어 실력과 타고난 언변, 전 세계적으로 밀리지 않을 끼, YG의 본격적인 뒷받침, 미국 내 메이저들의 지원 등 상당히 유력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근래 몇년 사이 세계 시장에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K-POP의 저변도 싸이의 지원군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더걸스도 화이팅.^^
그런 의미에서 싸이가 21세기의 '마카레나'를 넘어 21세기의 '리키 마틴'이 될지 지켜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 될 듯 합니다(뭐 외모를 얘기한 건 아닙니다^^). 너무 야무진 꿈이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싸이가 엘렌 드 제너리스 쇼나 SNL에 출연할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한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마지막 노래는 기원의 뜻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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