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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문화가이드] 이달부터는 가능한 한 빨리 안내를 제공합니다. 일단 책과 조율해서, 책에 이 칼럼이 매달 마지막 주, 그러니까 '5월 가이드'는 4월 마지막 주에 실리도록 조정했습니다.

 

매년 5월은 엄청난 행사의 폭풍이 밀어닥치는 때입니다. 미처 이 지면에 소개하지 못한 수많은 소/대형 공연이 쌓이는 시절이죠. 특히 올해는 지난번, 지지난번에도 소개드렸듯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이라 관련 공연/콘서트/행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단 지난 4월26일에는 서울시향이 콘체르탄테 형식(이게 뭔지는 아래 칼럼 참고)으로 베르디의 마지막 걸작으로 불리는 '오텔로'를 공연했습니다. 같은 시기, 오페라극장에서는 역시 베르디의 '돈 카를로'를 공연하고 있었죠.

 

정명훈의 '오텔로'는 유감없이 훌륭했습니다. 오텔로 역을 맡은 테너 그레고리 쿤드의 연기력은 정말 발군이더군요. 물론 오텔로가 갖고 있는 '신분의 격차를 뛰어넘은 위대한 장군'의 모습과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배신당해 비탄에 빠진 남편'이라는 두 모습 중 앞쪽의 표현에는 좀 아쉬움이 있었지만(특히 처음 등장하는 Esultate! 신에서 박력이 좀..), 후자 쪽의 연기는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공연에서 가장 빛을 발한 사람은 아무래도 이아고 역의 베이스 사무엘 윤(바로 위 사진)이었을 겁니다. 셰익스피어 원작 '오셀로'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역할인 이아고 역인 만큼 '오텔로' 역시 이아고의 연기력에 성패가 달린 작품이죠. 사무엘 윤은 그 역할을 넘치게 해 냈습니다. 왜 주변에도 있잖습니까. 머리도 좋고 능력도 있는데, 워낙 마음이 꼬여서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서 자기도 망하고, 남도 망치는 그런 사람. 캐릭터 해석이 눈부셨습니다. 탄탄한 목소리는 뭐 말할 것도 없고.

 

그레고리 쿤드, 사무엘 윤 등 26일 '오텔로'의 주요 출연진은 2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베르디의 '레퀴엠' 공연에도 그대로 다시 등장합니다. 이건 아래 칼럼에선 소개하지 않았는데 올해의 추천 공연 중 하나죠. 별도 추천이라고 생각하고 시간 되시는 분들은 구경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도 갑니다.)

 

그럼 이달의 추천, 시작합니다.

 

 

 

 

 

 

5월의 주제는 바그너. 전에도 얘기했다시피 2013년은 동갑내기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이야. 시간과 돈만 해결된다면 올 여름 바이로이트로 날아가 한국인 베이스 전승현(Attila Jun)이 하겐 역으로 등장하는 니벨룽의 반지를 보고 싶지만 그건 이 칼럼의 영역은 아니지. 일단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두 개의 공연부터 살펴보자고.

 

첫째는 5 7일 열리는 서울시향의 바그너 특집 그레이트 시리즈 I(지휘 정명훈)’, 둘째는 522일 열리는 KBS교향악단의 바그너 콘체르탄테(지휘 카이 뢰리히)’. 전자는 지난 2월 예정됐던 공연인데 지휘자 정명훈의 허리 부상으로 연기된 거지.

 

공연 제목의 콘체르탄테(concertante)오페라 콘체르탄테를 줄여 쓴 것인데,  무대나 조명은 생략하고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가수들이 나와 노래로만 공연하는 오페라를 가리키는 말이야. 특히나 바그너 오페라는 무대를 구현하는 데 워낙 큰 돈이 들기 때문에, 콘체르탄테 형식으로 공연하는 경우가 꽤 흔한 편이야. 서울시향도 지난해 역시 바그너 오페라인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콘체르탄테 형식으로 공연한 적이 있어.

 

아무튼 두 공연 모두 바그너의 대표적 기악곡으로 꼽히는 탄호이저서곡이나 신들의 황혼에 나오는 지그프리트의 죽음등을 빼놓지 않고 들을 수 있어. 그렇다면 가격을 비교해 보자고.

 

같은 공연장이니 A석끼리 비교하자면 KBS 교향악단은 5만원, 시향은 6만원. KBS 싸 보이지만 좌석배치도를 보면 또 다르지. KBS 쪽은 반드시 A석이라야 2층 사이드를 살 수 있고 B석은 모두 3층이지만 시향은 한 등급 아래인 B(3만원)을 사도 2층 사이드에 앉을 수 있어.

 

그러니까 정확한 비교는 KBS(A 5만원)와 시향(B 3만원) 사이에서 이뤄져야 할 것 같은데, 이 가격 차이가 바로 오페라 콘체르탄테의 가격이라고 해야겠지. ‘발퀴레의 줄거리를 이 짧은 지면에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날 공연되는 발퀴레1막은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통틀어 가장 로맨틱한 대목이라고 해도 좋아. 특히 지그문트의 아리아 겨울 바람은 우아한 달빛에 길을 열어 주고(Wintersturme wichen dem Wonnemond)’를 듣고 나면 바그너도 이런 서정적인 곡을 쓸 수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랄 거야. 어렵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바그너 오페라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사라질 수도 있고.

 

 

골랐으면 그 다음엔 525,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완창 판소리, 임현빈의 강도근제 수궁가를 꼭 들어 보라고 권하고 싶어. ‘아니 이제 판소리까지?’ 라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토요일 오후, 한 네 시간 만 투자해 봐. 판소리라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나 하고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거야.

 

단 공연장 앞에서 파는 가사집(2천원)은 꼭 사서 들어가라고 권하고 싶어. 아무래도 판소리 가사를 귀로만 듣고 이해하는 건 어려울 거야. 오페라 공연 처럼 무대 옆으로 자막을 넣어 주면 더 좋겠지만, 3월까지는 그런 서비스가 없었어. 그러니 가사집을 보면서 감상하는게 현명할 거라고 봐. 아무튼 재미있어. 믿어 봐.

 

 

오랜만에 전시. 리움 미술관에서 금은보화 미장센 전을 동시에 기획해 전시하고 있어. 전자는 삼한시대 이후 대한제국까지 우리 조상들이 금, 은과 옥, 수정, 호박 등 보석들을 이용해 만든 공예품의 정수를 보여줘. 글자 그대로 금은보화지. 저게 대체 시가로 따지면 얼마쯤 될까 생각하면서 보면 꽤 흥미로울 거야.

 

미장센 전은 연속적으로 이뤄지는 사건들 속에서 한 장면에 집중해 연출 기법을 가미한 미술 작품들에 대한 전시야. 말로 설명하긴 쉽지 않지만, 리움 홈페이지에서 설명을 읽으면 느낌이 올 거야. 아무튼 기획 전시 2개에다 상설 전시까지 모두 볼 수 있는 데이 패스(Day Pass) 13천원. 다 돌고 나면 퍽퍽한 다리와 함께 , 뭔가 문화적으로 충만한 하루를 보냈구나하는 포만감에 절대 본전 생각은 나지 않을 거야.

 

 

 

마지막으로 이달의 책 한 권.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박사가 쓴 심야치유식당이라는 책이 있어. 제목만 보고 이건 또 뭐야, 일본 만화 심야식당의 아류작인가?”하고 휙 던져 버릴 분도 있겠지만 한 챕터라도 읽어 보면 그런 생각은 들지 않을 거야. 이미 꽤 알려져 시리즈 2권까지 나온 책이지만, 인생이 퍽퍽하고 고달프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겐 자못 실질적인 위안을 주는 책이야.

 

전직 정신과 의사인 철주가 노 사이드라는 바를 차리고, 병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크고 작은 문제들을 갖고 있는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지. 읽다 보면 골치아픈 문제들이 서서히 씻겨 나가는 느낌이 들어. 그리고 저자인 하지현 박사가 술집을 내면 꼭 찾아가 보고 싶어져.

 

그럼 구경 잘 하고. 내달 말에 또 보자고.

 

 

서울시향, ‘그레이트 시리즈 I’(A 6만원, B 3만원)

KBS 교향악단, ‘바그너 콘체르탄테’(A 5만원)           1, 3만원~6만원

임현빈, ‘강도근제 수궁가완창                         2만원

리움 금은보화 전’ + ‘미장센 전                         13천원

하지현, ‘심야치유식당                                 13천원

 

합계                                                76천원~106천원 (끝)

 

 

이달은 참 풍성하고 가격대 성능비도 매우 높은 물건들이 많아 개인적으로 흐뭇합니다. 위에서 소개한 두 개의 바그너 공연, 그리고 5월2일의 베르디 '레퀴엠' 공연을 한데 묶어서 고려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겨울바람...'은 바그너의 가장 강력한 발라드 중 하나입니다. 혹자는 '바그너와 이런 달달한 사랑 노래는 어울리지 않아!'라고 하기도 하지만 '탄호이저'에 나오는 '저녁별의 노래'와 함께 '바그너도 발라드(?)를 작곡할 수 있다'는 증거로 보이는 곡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존 비커스 풍의 다소 명징한 목소리가 이 노래의 이상에 더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위에 소개한 요나스 카우프만의 노래도 일품이죠.

 

그리고 처음에 소개한 전승현, 사무엘 윤 같은 베이스-바리톤 가수들은 서울대 연광철 교수를 비롯해 요즘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바그너 가수들입니다. 이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겐 상식이지만, 이미 유럽에서는 "한국인 베이스가 없으면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을 치를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산 베이스의 성가가 높습니다.

 

요즘 '명 테너의 산지'는 전 세계로 흩어져 있지만 '발트해 연안 출신의 소프라노'와 '한국산 베이스'는 그야말로 믿고 쓰는 브랜드라고나 할까요.

 

연광철이 '파르지팔'의 구르네만츠 왕 역을 맡은 2012 바이로이트 실황입니다. 워낙 긴 영상인데 약 12분 쯤에 연교수님이 날개를 달고 첫 등장합니다.

 

 

 

(여담이지만 '파르지팔'의 메인 테마인 '성 금요일의 음악'은 아주 아주 오래 전 - 흑백 TV 시절 - MBC TV 뉴스 시그널로 쓰인 적이 있는데 혹시 기억하시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다음은 슈타츠호퍼의 '라인의 황금'에 거인(?) 파졸트 역으로 출연한 영상.

 

 

유명한 연교수님은 이쯤 해 두고, 베이스 전승현(Attila Jun)이 슈트트가르트에서 '발퀴레'에 출연한 영상입니다. 훈딩 역을 맡아 지글린데를 열심히 학대하고 있군요.

 

무대가 너무 미니멀해서 약간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만.^

 

 

 

이 전승현이 올해는 바이로이트에서 '신들의 황혼'의 하겐 역을 맡게 됐다고 합니다.

 

강렬한 카리스마의 하겐(어쩌면 '신들의 황혼'에서는 지그프리트보다 중요한 역으로 보이기도 하는) 역은 전 세계의 베이스 가수들에겐 꿈의 역할입니다. 물론 훌륭한 선배들이 이미 길을 닦아 놓은 역할이기도 하죠.

 

역시 한국인 베이스 강병운(Phillip Kang)이 하겐 역을 맡은 1992년 바이로이트 실황. 개인적으로 이 오페라에서 가장 좋아하는 Hoi Ho 신입니다.

 

 

 

사무엘 윤은 직접 눈으로 보시도록 하고^^.

 

좋은 공연이 넘쳐나지만 빠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 바로 완창 판소리 공연입니다.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비싸지도 않습니다. 2만원인데다 심지어 대한항공 스카이패스 회원 가입만 해도 20% 할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연의 만족도는 최강입니다.

 

2천원짜리 가사집(심청가, 춘향가, 수궁가, 흥보가 사설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만 사시면 대비는 끝. 이걸 무시하고 자신의 귀만 믿으면 그건 판소리를 절반만 즐기겠다는 뜻이 됩니다. 분명히 한국어 공연이지만, 고사성어와 약간의 고어가 수시로 등장하기 때문에 귀만으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저는 지난달에 성창순 명창과 제자들의 공연으로 '심청가'를 봤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여태 모르고 있었나 매우 아쉬웠습니다. 특히나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을 맞으신 성창순 명창의 관록과 재미는 명불허전. 이런 양반들이 나이드시는 게 진정으로 안타깝더군요.

 

마지막으로 '심야치유식당'. 어렵거나 시간 걸려 읽을 책이 아닙니다. 요즘 저자 하지현 박사는 민음사에서 나온 주력상품 '예능력' 홍보에 여념이 없지만 그래도 아직 대표작은 '심야치유식당'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특히나 정말 바쁘게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책이라는 느낌.

 

'심야치유식당'이 마음에 드시면,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 되시면 '예능력'에도 관심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5월의 추천은 여기까지. 혹시라도 이 란의 추천때문에 보시고 만족하신 공연이나 볼거리가 있으면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그런게 글 쓰는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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