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문화가이드가 조금 늦었습니다. 물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건 아닙니다.
벌써 7개월째 소개를 하고 있는데 일정한 패턴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미리 소개 드립니다. 1년 내내 시리즈로 펼쳐지는 공연들이 있습니다. 좋은 공연이고, 추천하고 싶은데 그 공연들을 줄줄이 소개하면 매달 똑같은 추천을 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죠.
이를테면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2년에 걸쳐 총 32곡을 4곡씩 8회의 공연으로 연주)나 국립극장의 완창 판소리 시리즈(6월22일에도 공연이 있죠) 같은 공연은 할 때마다 매번 소개하는 건 지면의 낭비인 듯 합니다. 물론 그 달에 추천할만한 적당한 공연이 영 없으면 다시 등장하겠지만(^^), 가능하면 한번도 소개하지 않은 공연을 추천하는게 의무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이달도 시작합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6월의 문화가이드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5월에 비해 6월은 약간 가라앉은 분위기야. ‘호국 보훈의 달’이라는 이름에다 현충일과 6.25가 있고, 예전부터 문화 행사보다는 추모/궐기 행사가 많은 달이지.
하지만 사실 6월에 행사가 적은 진짜 이유는, 어린이날/어버이날/스승의날로 이어진 5월의 지나친 지출로 6월은 조용히 그늘에서 쉬는 달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 그래도 잘 찾아 보면, 너무 큰 지출 없이도 문화를 향유할 수 있어. 바로 이런 칼럼이 필요한 달이지.
연재 시작할 때부터 ‘왜 뮤지컬은 소개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꽤 있었어. 사실 안 한 건 아닌데, 아마도 클래식 공연에 비해 적다고들 느낀 모양이야. 사실 대부분의 뮤지컬 공연은 너무 고가라서 이 칼럼과는 인연이 없었지. 정한 예산이 10만원인데 ‘자, 20만원짜리 티켓을 사서 이 공연을 봐. 그리고 다음달은 쉬어’ 이럴 수는 없잖아.
그렇다고 단가를 맞추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창작 뮤지컬들을 소개하기도 곤란해. 국산 뮤지컬 중에도 ‘빨래’나 ‘김종욱찾기’처럼 생명력이 검증된 작품도 있지만 아직 대부분은 마니아용이야. 어지간한 라이선스 공연은 다 졸업하고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 눈을 반짝이는 관객들이 먼저 판단을 해 줘야 하는 공연들이지.
어떤 장르든 입문용 작품은 이미 추려져 있어. 오페라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 같은 걸 보여주면 한참 자다 일어나서 다음부턴 오페라란 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켜. 뮤지컬도 ‘그리스’나 ‘브로드웨이 42번가’ 같은 작품으로 시작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 초심자에게 ‘레미제라블’을 보여주면 의외로 지루하다는 반응이 많아.
그런 의미에서 서울 디큐브센터에서 6월30일까지 하는 ‘브로드웨이 42번가’ 를 추천하고 싶어. 고전 중의 고전인데다 ‘이런 게 바로 브로드웨이 쇼구나’하는 화려함에 흠뻑 빠질 수 있거든. 역시 비싸지만 6월의 수요일(5,12,19,26일) 낮 공연은 30% 할인이야. A석이면 3만5천원.
출연자 개개인보다 전체의 앙상블이 중요한 작품인 만큼 A석이라도 괜찮아. 그리고 이걸로 자신의 ‘뮤지컬 적성 테스트’를 해 보라는 거지. ‘아, 이거야말로 내 취향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면 적금을 들어. 극장에 취직하든지.
다음. 중급용으로 ‘멤피스’라는 뮤지컬이 있어. 본 조비 밴드의 키보드 연주자 데이비드 브라이언이 작곡한 작품인데, 2010년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작곡상/극본상/편곡상을 휩쓸었지. 2009~2012년 사이 브로드웨이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추천 받는 공연이었는데 아직 한국에선 공연된 적이 없어.
그런데 메가박스에서 5월부터 ‘멤피스’의 2011년 브로드웨이 공연 실황을 상영중이야. 무대와 가장 비슷한 곳에서 현장감을 느끼며 볼 수 있는 기회지. 이런 상연의 기회가 반가운 건 나중에 국내에서 라이선스로 공연이 이뤄질 때,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는 거지. 굳이 브로드웨이까지 가지 않아도 오피니언 리더가 될 수 있어. 2만원.
음악으로 넘어가 볼까? 6월에도 수많은 공연들이 있지만 가격대 성능비를 고려해 볼 때 '바흐 특집'인 디토 페스티발을 추천하고 싶어. 그 중에서도 6월15일의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전곡 연주에 눈길이 가. 요요 마나 미샤 마이스키 같은 세계적인 첼로 비르투오조들에 의해 인기 높은 곡이지. 하지만 이 곡을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로 연주하는 걸 들어 본 사람은 흔치 않을 거야.
무반주 첼로 조곡 하면 생각나는 바로 이 곡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중 1번 곡의 전주곡입니다. 그러니까 '무반주 첼로 조곡 전곡'이라고 하면 이런 곡이 6곡씩 1번부터 6번까지, 총 36곡이라는 얘기죠.
6월15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2013 디토 페스티발 에서는 ‘삼색바흐’라는 제목으로 리처드 용재 오늘(비올라), 마이클 니콜라스(첼로), 디쑨 장(더블베이스)이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을 연주해. 세 사람이 각각 두 곡씩 맡아 독주로 들려주는 거지. 그야말로 날이면 날마다 오지 않는 이색 연주야. S석(4만원) 추천..
예산이 거의 찼네. 이번엔 살짝 초과해 보자고. 올 여름의 블록버스터 기대작 중에 ‘월드워 Z’라는 작품이 있는 걸 알고 있나? 사실 장르 문학, 특히 더 좁혀서 좀비 장르의 독자들에겐 너무나 유명한 소설 ‘세계대전 Z ’가 원작이야.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영화화 판권을 놓고 경쟁을 벌인 끝에 피트가 이겼지. 물론 자기가 주인공도 맡고.
맥스 브룩스가 쓴 원작은 지금껏 나온 좀비 장르의 소설들 가운데 가장 스케일이 커. 그 전까지의 좀비 이야기들이 대부분 좀비 창궐로 인한 인류 문명의 멸망과 생존자들의 필사적인 노력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건 아예 국가 단위의 ‘대 좀비 전쟁’ 판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읽어볼만 한 책이야.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면 8천400원 선.
6월은 이렇게 보내. 7월에 보자고.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낮 공연 A석 3만5천원
뮤지컬 ‘멤피스’ 실황 상영 2만원
디토 페스티발 - 삼색 바흐(무반주 첼로협주곡) 4만원
맥스 브룩스, ‘세계대전 Z’ 8천400원
합계 10만3천400원
'세계대전 Z'는 형식면에서도 매우 독특합니다. 그냥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소설의 형식이 아니라 정교한 가짜 보고서와 가짜 인터뷰의 결합이죠. 그런데 그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작가 맥스 브룩스가 만만찮은 양의 정보를 종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한 밀리터리 매니어가 만들어 낸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인류의 상황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사회경제학적 통찰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소설 '세계대전 z'가 더욱 흥미롭기도 합니다.
사실 원작을 읽고 나면, 이 방대한 규모와 시각을 가진 작품을 그대로 영화로 옮기는 것은 재앙이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한 사람의 주인공을 뽑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죠. 게다가 소설은 '할리우드적'인 영웅담을 조소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사람들이 강조하는 인류애나 인권에 대한 생각들이 심각한 위험에 처했을 때에도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에 매우 회의적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미 만들어진 예고편만으로도 원작 마니아들은 대단히 영화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원작이 갖고 있는 정서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물론 영화 제작자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세계대전Z' 처럼 지적이고 냉소적인 작품을 그대로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었다간 투자자들로부터 테러를 당할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소수의 '독자'들에겐 통할 지 모르지만 대다수 '관객'들에겐 용납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아무도 보지는 못했지만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를 통해 원작 '세계대전Z'를 평가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보실 분이든 아니든, 원작 '세계대전 Z'는 꼭 한번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단순한 '모험소설'이나 '공포소설'은 결코 아닙니다.
클래식계 훈남들이 늘 등장하는 디토 페스티발은 올해도 바흐를 주제로 다양한 공연이 열립니다. 위에서 소개한 무반주 첼로 조곡 3인 연주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습니다. 지름은 각자 알아서 하시길.^
마지막으로 멤피스는 감명이 꽤 커서 따로 포스팅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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