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은 조금 늦었습니다.;
아무튼 리스트 나갑니다.
더울 때 멀리 가 봐야 스트레스만 쌓입니다. 도심에서, 조용하게.^
10만원으로 즐기는 8월의 문화가이드
아직도 7월 말~8월 초에 휴가들을 가시나? 학생들 있는 집에선 소위 ‘학원 방학’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정말 그 시간에 가는 휴가지는 지옥과 별반 다를 게 없더군. 그러니까 학부형 아닌 사람들은 웬만하면 그 기간은 피하고,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조용해진 도심에서 쉬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납량특집으로 연극 한 편. 연극 ‘우먼 인 블랙’이 서울 대학로 둥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9월까지 네번째 연장 공연중이야. ‘해리 포터’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이미지 세탁을 위해 출연한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이지. 영화와는 달리 연극은 단 두 명의 배우만 등장하는데, 두 배우가 별다른 소품도 없이 수십명의 캐릭터를 종횡무진 연기하면서 극을 끌어갈 수 있다는 게 볼거리야. ‘건축학 개론’의 ‘건축과 교수님’인 지성파 배우 김의성 주연. 3만3천원.
음악 공연 중에는 서울시향의 말러 9번(8월30일)이 눈길을 끌지만 일찌감치 매진. 추가 공연을 기다려 보고, 대신 31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셰익스피어 인 클래식 II’를 권하고 싶어. 이름 그대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세계와 맞닿아 있는 음악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야.
이렇게 강연과 음악이 버무려진 공연은 음악도 음악(테너 김재형, 피아노 윤홍천)이지만 해설자가 누구냐는 게 관건인데, 일단 ‘김문경’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면 신뢰해도 좋아. 풍부한 지식과 적절한 위트의 조합이 탁월해.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로미오의 아리아 ‘아, 태양이여 솟아라’ 등이 연주돼. 음악당이 아니고 IBK 챔버 홀이니 3만3천원짜리 뒷자리면 충분.
7월에도 전시 두가지를 소개했지만 8월이야말로 진정한 성수기. 이 대목에서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시크릿 뮤지엄’을 추천하지. 한마디로 ‘명화를 디지털 영상으로 분석해서 미술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내용이야. 루브르를 가 봤더라도 가서 ‘모나리자’와 ‘밀로의 비너스’ 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는 사람이 이 전시를 보면 ‘아, 내가 보기는 했지만 본 게 없는 거구나’하고 느낄 점이 있을 거야. 1만2천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신중-불교의 수호신들’도 추천하고 싶어. 신중(神衆)이란 부처나 보살보다 위계가 낮은 불교의 ‘신’들을 말하는 거야. 그런데 사실 껍질을 벗겨 보면 다들 힌두교의 신들이지. 이를테면 제석천은 인드라, 범천은 브라흐마, 대자재천은 시바 신이 불교로 편입된 모습이거든. 이들이 불교 미술에서 어떻게 표현됐나를 보여주는 전시인데, 힌두 신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흥미로울거야. 심지어 공짜. 당장 달려가.
일전에 제임스 설터의 ‘어젯밤’을 추천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이 좋은 반응을 얻은 덕분인지 이번엔 장편이 번역되어 나왔어. 제목은 ‘가벼운 나날(Light Years)’. 사실 이 책은 추천할까 말까 조금 망설였어.
줄거리만 보면 꽤 단순해. 꽤 성공한 건축가 비리 벌랜드와 사람을 잘 사귀는 미녀 네드라는 뉴욕 교외에 집을 짓고 두 딸과 개 한 마리를 키우는 부부야. 아름답고 통찰력있는 아내와 다소 소심하지만 착실하고 가정적인 남편, 누가 봐도 더없이 행복한 부부의 모습이지.
하지만 네드라는 애당초 결혼으로 얽맬 수 없는 여자야. 어떤 양보나 희생도 그걸 바꿔놓지는 못해. 그렇게 두 남녀가 20여년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주 담담하게 펼쳐져 있어.
분야는 다르지만 글 써서 한 20년 먹고 산 사람으로서, 설터의 문장은 찬탄의 대상 그 자체야. 어쩌면 이 대목에서 이런 생략을. 어쩌면 이 대목에서 이런 살떨리는 비유를. 한마디로 놀라움을 자아내는 문장가야.
그렇게 대단한 작품인데 왜 추천을 주저했냐고? 과연 이 소설이 인생의 모든 국면을 맞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감동을 일으킬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야. 솔직히 내가 20대 때 이 소설을 읽었더라도 설터의 가공할 위력을 느낄 수 있었을 지는 잘 모르겠어.
그러니 혹 이 책을 읽다가 ‘이게 뭐가 좋다는 거야’하는 생각이 들거든, 내 얘기를 기억하고 책장 구석에 처박아 뒀다가 한 20년 뒤에 다시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어. (그런데 이런 얘길 하고 나니 문득 오래 전에 실망해서 읽다 만 책들이 문득 궁금해지네.)
덥다고 찬 음식 너무 많이 먹지 말고, 9월에 만나. [끝]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은 잘 알려진 작품이면서도 다른 오페라들에 비해 캐스팅에 좀 민감한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최근 이 로미오/줄리엣 커플은 알라냐-게오르규 부부가 일단 나서고, 그 다음 알라냐-네트렙코(위 사진)에서 이번엔 남자가 바뀌어 비야존-네트렙코가 각광받습니다. 여기서 여자가 바뀌어 비야존-마차이제(아래 사진), 그리고 다시 한번 그리고로-마차이제가 현재 가장 각광받는 커플이 됐습니다. 한번은 남자, 한번은 여자가 바뀌는 순서가 매우 정례화되어 있는 듯.
어쨌든 유난히 출연하는 가수의 외모에 민감한 작품이다 보니 그리 많은 스타들이 이 역할을 맡지는 않고 있는 듯 합니다.
사실 위 사진에 나오는 분들이 오페라계에서는 나름 비주얼 담당으로 꼽히는 분들이지만, 그래도 절대적 기준(!)에 따라 보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느낌으론 그리 적절치 않죠.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R&J의 영상이 이런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듯 합니다.
아무튼 오페라를 소개했으니 노래 소개. 일단 줄리엣의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나는 살고 싶어요(Je veux vivre)' 입니다. 1막 캐퓰릿 가의 파티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 조수미 버전.
그 다음은 로미오의 가장 대표적인 아리아. 바로 위에 소개한 '셰익스피어 인 클래식'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입니다. 니콜라이 게다가 부르는 '아, 태양이여, 떠올라라(Ah, Leve-toi Soleil)'
사실 위에서 한참 '캐스팅에 민감한 작품'이라고 했는데 이 영상을 보시면 왜 그런지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오페라가 노래 실력 우선이라고 해도, 과연 이런 로미오를 보면서 작품에 몰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마르첼로 알바레스도 물론...^^
노래 실력이야 흠잡을 데가 없지만 이런 우렁찬 목소리가 과연 그렇게 어울리나 하는 생각이 들지요.
그래서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이 노래에 특히 어울리는 목소리.
이 오페라의 에이스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롤란도 비야존과 안나 네트렙코의 '가세요, 당신을 용서하겠어요 Va! je t'ai pardonné'
그리고 글을 맺기 전에...
'가벼운 나날'에 대한 감상은 위에서 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많은 글을 읽고 써 왔지만, 저 감상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아마도 글을 써 본 분들이라면 더욱 공감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나이 어린 분들은 이 글의 느낌을 충분히 즐기기 어려우실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추천은 하되, 혹 '이게 뭐야' 싶은 분들께는 책을 한 20년만 묵혀 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런 무책임한...;; )
그럼, 이런 글로는 9월에 뵙지요.
P.S. 위에 미처 적지 못한 볼거리로는 메가박스의 '라트라비아타' 베로나 원형경기장 공연 실황을 추천할 만 합니다. 아울러 짤스부르크 라이브도 있는데 이미 코엑스 M2관은 매진에 가까운 듯. 상영관이 여럿인데 평소 관객 수를 감안하면 아마도 동대문관이 가장 만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와 '돈 카를로'를 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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