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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주룩주룩 오는 나날. 비슷한 또래의 한 믿을만한 분이 극찬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포스터 속 파란 하늘이 끌려서 <날씨의 아이>를 선택했다. 어쩌면 며칠 전 한강을 건너다 본, 침수된 한강시민공원과 텅빈 올림픽대로의 잔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을수도. 한번 보시기를 권함. 개인적으로, 보고 난 느낌은 <파이트 클럽>때와 매우 비슷하다.^^)

섬에서 무작정 도쿄로 올라온 16세 소년 호다카는 우연히 비를 그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18세(!) '날씨 소녀' 히나를 알게 되어 그 능력을 활용할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날씨 소녀에게는 능력의 댓가로 겪게 되는 어떤 운명이 있다.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감성보다는 새로운 세계관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끝없이 내리는 비는 누가 봐도 일본의 쇠퇴를 상징하는 느낌. 이미 1980년대 정점을 찍었던 일본은 아직 당시의 호황과 번영을 기억하는 어른들이 권력을 쥔 국가다. 그런 시대를 모르는 다음 세대는 그 후유증만 고스란히 떠 안았다. 심지어 그 다음, 지금의 청소년들은 그런 갈등조차도 남의 얘기다. 잃어버린 몇년 어쩌고 하지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세상이었는데 어쩌라고. 그런 세상을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니고.

결국 히나는 자신의 '소명'을 다 하는 길을 선택하지만 호다카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왜 그걸 우리가 감당해? 남들보다 뛰어나서? 할 수 있으니까? 천만에. 설령 나 하나 희생해서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해도,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그럴 이유는 없지. 왜 내가 그렇게 해야 하지? 남들이 나에게 대체 뭐길래?

이 대목에서 눈이 번쩍 뜨인다. 결국 <날씨의 아이>는 우리 세대가 교육받을때 일제때 교육받은 선생님들이 늘 염불처럼 외웠던, 그리고 아직도 태극기 할배들이 '한국이 일본 발뒷꿈치도 못 따라가는 이유'로 철석같이 믿고 있는 멸사봉공과 메이와쿠의 문화에 한마디로 빅엿을 날리는 얘기였던 거다. 



물론 에바 팬들은 이미 그런 정서의 애니메이션을 몇십년전에 봤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음습한 오다쿠 문화와는 결이 다르다. 그렇게 뒤에 숨어서 아무도 못 알아듣게 혼자 중얼중얼하는 느낌이 아니라, 어른들의 눈을 똑바로 보고 웃으며 얘기하는 느낌이랄까. <날씨의 아이>는 두 주인공의 선택에 의해 도쿄가 어떻게 변하는지까지 보여준다. 웃음이 나온다. 그래. 까짓거 그러면 어때.

<너의 이름은>이나 <초속 5cm>의 서정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실망할 작품. 결국 이 작품은 그들에겐 그들의 세상을 만들 권리가 있다, 라고 허락하듯 말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꼰대스러운 짓이라고 말해주는 영화다. 아직까지도 세상과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눈을 꼭 감은 채, 30여년 전 책에서 읽은 '도덕적 당위'가 불변인 줄 알고 있는 한국의 21세기 사대부들이 제발 봐야 할 영화일수도 있다.

다 떠나서 작화와 연출은 압도적. 음악 역시 많은 부분 <천공의 성 라퓨타>를 연상시키는데, 연주곡에 비해 보컬이 들어간 곡들은 매우 실망스럽다. ...뭐 이건 개취라 어쩔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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