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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양 살다가 확

안재환, 그에 대한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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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환을 알고 지낸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처음 만난 건 그가 데뷔한지 1년 쯤 된 1997년의 어느 날이었을 겁니다.

당시 MBC의 자회사인 MBC 프로덕션에서 공채 탤런트들의 프로모션을 담당했더랬습니다. 안재환은 MBC 25기, 1996년 신인입니다. 매 기수마다 20여명의 신인이 데뷔하지만 선발될 때만 해도 이들중 가장 주목을 받은 건 1등으로 뽑힌 김세아였고, 강성연과 서유정이 가능성을 보이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톱스타가 된 건 당시 '별은 내 가슴에'에 단역으로 간신히 출연하던 김정은이었으니 사람 일은 정말 모를 일입니다.

이들 중의 하나였던 안재환은 그나마도 주목받을 거리가 없었지만 그의 프로필을 보면 '서울대 공예과 출신'이라는 표지가 달려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서울대 출신이라면 어떻게든 여론의 주목이 쏟아지게 되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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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사진이 당시의 모습에 가장 가까울 것 같습니다.)

결국은 그걸 빌미로 인터뷰를 한번 하게 됐는데 얼굴을 보는 순간,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당연히 짙은 윤곽의 미남 미녀들만 상대하다가 이렇게 선이 둥글둥글한 선한 얼굴을 보게 되자 연예인으로 대할 느낌이 잘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인적사항을 확인하니 주민등록상의 생일이 같더군요(물론 나이는 제가 한참 위입니다만). 여러 가지로 친근감을 주는 청년이었습니다.

여자 앞에 가서 말도 잘 못할 줄 알았더니 웬걸, '작업왕'이라는 겁니다. 비결을 물었더니 전공 얘기를 하더군요. 금속공예가 전공인 터라 웬만한 반지나 장신구는 모두 직접 만들 수 있답니다. 재료를 사다가 직접 만드는 거니 사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싸게 먹히겠죠. 게다가 목걸이며 반지를 주면서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자, 이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거야. 너만을 위한 거.'
 
그거 참 탐나는 비결이더군요. '그런거 하려고 차려놓은 건 아니지만 집에 공방도 하나 만들어 놨어요.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세요. 제가 만들어 드릴게요.' 말만이라도 참 고마웠습니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그는 물을 많이 마셨습니다. 알고 보니 워낙 쉽게 살이 붙는 체질이란 걸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데뷔 초부터 조절에 신경을 썼던 듯 합니다.

아무튼 둥글둥글한 안군은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둥글둥글 연예계 생활을 썩 잘 해 나갔습니다. 비록 톱스타로 군림하진 못했지만 자기 자리를 잘 잡아 갔습니다. 아무리 그냥 평범한 일반인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 안에 누구보다 유별난 끼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2005년에 드러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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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에게 CF를 선물한 엽기송 '인생의 참된 것'입니다. 지난 2005년 '브레인 서바이벌'에서 개인기로 등장한 이 노래는 그가 고등학교 때 만들었다는 노래였죠.

어떤 지역에선 노래방에도 있다고 합니다.

인생의 참된것

1.아침엔 아침밥 점심엔 점심밥 저녁엔 저녁밥 그리고 잠잔다.
  이것이 인생의 의미 인생의 참된 것 야~~이것이 인생의 의미 인생의 참된 것

2.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이 닦자 그러나 중요한 건 이빨 이빨 이빨 이빨을
   닦을 때는 하루 세번 삼분씩 이쪽 저쪽 깨끗이 이빨을 닦자
   이것이 인생의 의미 인생의 참된 것 야~이것이 인생의 의미 인생의 참된 것
3. 세탁기 돌릴때 세제는 적당히 그러나 중요한 건 양말 양말 양말
  양말을 빨 때는 섞어 빨면 안 된다 수건하고 같이 빨면 얼굴에 무좀 난다
  이것이 인생의 의미 인생의 참된 것야~~ 이것이 인생의 의미 인생의 참된 것
  미팅할 땐 무조건 있는척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엽전 엽전 엽전 열 닷냥 ~

평소 그의 모습을 봐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노래기도 하죠.^




그의 열정은 영화 제작으로 이어집니다. 일각에서는 영화 제작이 사업 자금 마련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가 아주 신인일 때부터 장래의 꿈을 '영화 감독' 혹은 '영화 제작'이라고 말해 온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말하기 힘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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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의 대표적인 재녀(才女)와 결혼해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던 안재환의 2008년이 어땠는지는 여러분이 익히 알고 계실 것으로 보입니다. 8일 하루 동안 참 많은 게 밝혀졌습니다. 일단 목돈이 되고 나면 아무리 갚으려 해도 결국 이자에 맞아 죽고 만다는 사채. 안재환을 잘 안다는 지인은 그의 채무 총액에 대해 "아마 20억원 쯤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선희의 측근은 40억원이라고 주장하더군요. 어느 쪽이 정확한 액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사채가 대부분이었다면 어느 쪽이든 그 돈이 두 배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게 사채에 대해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주장입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목소리를 들은게 벌써 5개월 전이군요. 우연히 자신의 스타일리스트가 저와 통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저도 그 스타일리스트가 그의 일을 보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얼른 전화기를 빼앗아 들고 "형, 이게 얼마만이야, 반가워요. 우리 빨리 만나서 밥 먹어요" 하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합니다. 8일, '안재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는 제보를 받고 즉시 그의 번호를 눌러 봤지만, 전화기는 꺼져 있었습니다. 그 불안한 침묵이 사실로 나타나는 데에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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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안재환은 투명인간이 되어 버리기로 결심했고, 그 결말은 이렇게 났습니다. 무엇이 그렇게도 야심만만하고 여유있던 36세 청년의 꿈을 이렇게 꺾어 놨는지는 더 천천히 밝혀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냥 고인의 명복을 빌 때겠죠.


p.s. 가능한 한 그의 밝았던 모습을 모아 봤습니다. 결코 고인을 가볍게 보이고자 하는 의도는 아닙니다. 고인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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