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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양 살다가 확

지금도 기억나는 최진실과 순대국

최진실을 실물로 처음 본 것은 지난 1990년입니다. 당시 저는 MBC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제가 일하던 프로그램에 최진실이 게스트로 출연하게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가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이라, 다들 반가워했죠. 기대가 컸습니다.

녹화 준비를 모두 마치고 방청객들이 자리를 잡은 뒤, 최진실이 당시 매니저였던 고 배병수씨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출연자들에게 문제 몇 개를 읽어 주는 역할이었는데, 배씨는 연출자에게 "똑똑하게 보이게 해 달라"고 당부를 했고, 연출자는 "걱정하지 마. 너무나 지적으로 보이게 해 줄게"라고 농담으로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최진실은 낭독이 그리 좋지 못했고, 특히나 문제에는 어려운 말이 몇 개 들어 있어서 처음 읽어 보는 사람이 한번에 매끄럽게 읽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최진실은 몇번 실수를 했고, 머쓱했는지 고개를 들고 씩 웃었습니다. 그때 스튜디오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주위가 환해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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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머도, 선이 굵은 서구형 미인도 아니었지만 그 웃음이 준 파장은 만만찮았습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학생 하나도 그러더군요. "읽다가 자꾸 틀리자 '어머, 나 왜 이래' 하면서 웃으며 뒤를 살짝 돌아보는데, 갑자기 조명이 확 켜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그 시점에서도 이미 상당한 스타였지만, 그날의 그를 본 사람들은 모두 더욱 대단한 스타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됐습니다.

그 다음에는 수시로 실물을 접하게 됐지만 대화를 나눌 기회는 별로 없었습니다. 기자 초년병일 때에는 톱스타를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대개 톱스타일수록 고참 선배들이 집중 관리를 하기 때문이죠. 1996년쯤엔가 그와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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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원들 여럿과 최진실, 그리고 최진실의 측근 몇 사람이 당시 광화문에 있던 순대국집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톱스타 최진실과 순대국집, 별로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지만 최진실은 순대국집에서도 내장탕을 특히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대개 여자들은 순대국 자체를 거부하거나, 순대국집에서도 내장을 뺀 '순순대'를 더 선호하는게 보통이죠. 놀랐습니다.

최고 스타의 소박한 식성이 놀랍기도 했지만 '어려서 너무 많이 먹어 수제비는 지금도 싫어한다' '학교에서 육성회비를 걷는데 혼자만 못 냈다. 사실을 알고 선생님이 만원짜리 한 장을 주셨다. 다음날 그걸로 파마를 하고 학교에 갔다가 크게 혼났다' 는 등 데뷔 초에 익히 알려진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일화들을 생각하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아무튼 그날 당시 데스크와 선배들은 대낮부터 만취했습니다. 최진실은 주량도 주량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술을 먹이는 재주 또한 탁월하더군요. 시간은 어느새 초저녁이 됐고, '저녁먹으면서 2차로(?) 한잔 더 하자'던 최진실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들 사무실로 달아났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데 최진실이 1일 밤 가졌던 마지막 술자리도 순대국집이었다니. 참 묘한 느낌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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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최진실과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어쩌다 인터뷰를 할 기회도 있었지만 최진실쯤 되는 스타에게 있어 인터뷰는 거의 밥 먹고 차 마시는 다반사나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한 것은 지난 2005년 연말, 드라마 '장밋빛 인생'이 한창 인기를 끌 때였습니다.

사실 이 드라마는 이혼 이후 침체기를 겪고 있던 최진실을 부활시킨 드라마로 통합니다. 최수종과 공연한 '장미의 전쟁'이 그리 신통한 반응을 얻지 못해 부심하고 있던 최진실은 '장밋빛 인생'의 빅 히트로 다시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죠. 당연히 인터뷰 제의가 쏟아졌지만 공식 응답은 "너무 분주해서 도저히 인터뷰 할 시간을 낼 수가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누가 먼저 인터뷰를 하느냐'에 경쟁이 붙은 상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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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런 연줄 저런 연줄을 모두 짜내 '현장에 오면 어떻게든 시간이 나는 대로 해 보겠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현장이란 수원의 KBS 드라마 세트였고, 당장 달려갔습니다. 가 보니 정말 가관이더군요. 공간 여유가 있었던 수원 세트에서는 개개인에게 꽤 넓은 공간의 분장실을 제공했습니다. 이 분장실이 아예 생활 공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50신 중에서 45신에 최진실이 나온다"는 제작 스태프의 말처럼 거의 모든 신에 최진실이 나왔기 때문에 세트를 떠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최진실은 아예 귀가를 포기하고 분장실에 침대를 마련해 2주째 숙식을 세트에서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드라마가 인기가 있으니 고생을 잊을 수 있다며 웃더군요. 당시의 최진실은 "아무리 인기도 좋지만 빨리 촬영 끝나고 아이들과 놀고 싶다"던 보통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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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청순미의 상징이던 최진실은 이혼과 아이들을 놓고 벌인 줄다리기로 이미지에 꽤 상처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은 '다른 걸 다 떠나서 아이들을 위한 마음만큼은 옆에서 봐도 측은할 정도'라며 옹호하더군요. 결국 그런 모성애는 아이들을 자신의 성으로 바꿔 놓는데에까지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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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의 최근 여건은 결코 나쁘지 않았습니다. 정준호와 공연한 '내생애 마지막 스캔들'이 호평 속에 막을 내렸고, 그 2부가 곧 제작될 예정이었습니다. 1일에는 CF 촬영까지 했죠.

더구나 지금도 가장 믿어지지 않는 것은 그렇게 아이들을 끔찍히 아끼던 그가 바로 그 아이들을 두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하고, 갑작스럽게 떠나야 했을까요. 10여년 이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믿기 어려운 일들을 만났지만 이번만큼 충격적인 사건은 또 처음인 듯 합니다. 당분간 이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네요.

최근 너무 자주 하게 되는 말이라 더 안타깝지만, 부디 고인이 편안한 곳으로 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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