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올해는 읽은게 없는데 10권 뽑기가 쉽지 않겠네, 하다가 막상 꼽기 시작하면 12권 정도를 꼽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올해도 골라 놓고 보니 12권인데 굳이 2권을 잘라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물론 <룩백>같은 책만 접하게 된다면야 20권도 고를 수 있겠지만, 어쨌든 먹고 살고, 녹슬지 않으려면 벽돌 책도 읽어야 하고, 어떤 책은 읽다가 던져 버리기도 해야 한다.
연간 50권 60권 80권씩 읽고 별점을 매기는 다독가들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리스트지만 그래도 아직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로 기록을 남긴다. 이 책들 덕분에 올 한해도 꽤 즐거웠고, 침대에 누운 뒤 숙면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들을 참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AI 쇼크, 다가올 미래 (모 가댓)
따로 길게 쓴 글이 있으니 그쪽을 참고하시길 권장. 어쨌든 제프리 힌튼의 경고나 모 가댓의 경고는 거의 비슷한 톤을 갖고 있지만, 가댓의 서술이 훨씬 더 구체적이다. "현재의 인류는 자신을 지적으로 훨씬 상회하는 10대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의 상황과 같다. 나중에 그 아이가 커서 그래도 나를 사랑했던 부모로 나를 기억하는 것이 좋을까, 학대하고 의심하고 이용하려고만 들었던 부모로 기억하는 것이 좋을까." AI 에 대해 자고 일어나면 쏟아지는 수많은 사설들 가운데 가장 독특하고 와 닿았던 책.
AI와 인간, 부모-자식의 관계가 될 수 있을까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넥서스 (유발 하라리)
또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쨌든 연장선상에서 볼 때' 라는 관점을 고집하는 하라리의 시선은 여전히 설득력이 넘친다. 점토판에 글자를 새겨 넣을 때의 인간은 이미 블록체인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정보의 본질은 네트워킹'이기 때문에 과도한 정보는 해가 될 수 있다는 관점, '인간'과 '이야기'의 연결과 구분에 대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우리가 맞아야 할 세계에 대해 유익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그리고 읽고 나서 잊어버린 <사피엔스>의 여러 관점들에 대한 복습의 의미로라도, 하라리는 계속 책을 써 주면 고마울 것 같다.)
불변의 법칙, 절대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23가지 이야기 (모건 하우절)
개인적인 취향을 묻는다면, '현재 변하고 있는 것'과 '그래도 변하지 않을 것' 중에서 나는 후자의 편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 물론 이 책은 '그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네가 앞으로 부자가 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매우 실용주의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는 하지만 꼭 돈벌이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미래에 어떤 리스크가 있을 것이라고 지금 예측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리스크가 아니다', '평화로운 시기야말로 불안정의 씨앗이 싹트는 시기다' 등, 예사롭지 않은 통찰이 넘친다. 감동적.
불안 세대(조나선 하이트)
왜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모바일 기기를 빼앗지 않을까. 내 생각처럼 모든 학부모들이 이 생각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청소년기에 현재 수준의 모바일 스마트 기기에 노출되는 것이 단지 '새로운 시대의 문명'이라고 이해하기에는 정신적으로 심각한 폐해를 끼치고 소위 '학업'이라고 부르는 분야에 큰 해악을 주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선명한데 말이다.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이런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조목 조목 짚어주고 있는 좋은 책. 부디 하이트의 조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길 바라며.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사 펠드먼 베릿)
오래 전부터 그런 의문을 갖고 있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감정을 갖고 있을까. 그렇든 아니든, 어떤 감정을 말로 접했을 때, 이 단어로 표현된 감정이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그 감정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사실 이건 감정이 아닌 감각에도 적용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내가 느끼는 '저리다'는 감정이 내 옆 사람이 느끼는 '저림'과 같은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그런 궁금증에 대해 꽤 정리된 답을 주는 책. 지난해의 책이었던 아닐 세스의 <내가 된다는 것>과 함께 매우 추천한다.
우리는 가상세계로 간다 (허만 나틀라)
가상세계라고 부르건, 메타버스라고 부르건, 그것은 이미 오랜 옛날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 성경이, 그리스 로마 신화가, 모든 종교의 경전과 민주주의라는 이상이 모두 메타버스의 역할을 해 왔다. 단지 기술의 발달은 그것을 조금 더 받아들이기 쉽게 하거나, 반대로 문턱을 넘기 어렵게 했을 뿐. 어쨌든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결국 그 세계와 함께 살아가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역시 다가올 세계에 대한 하나의 기준을 제시해주는 책.
히치콕 (패트릭 맥길리건)
영화라는 장르에서 최고라고 인정할만한 장인 두 사람을 꼽으라면 여전히 알프레드 히치콕과 구로사와 아키라를 꼽게 된다(누군들 아닐까 ㅎ). 맥길리건은 그 존경을 흥신소 탐정의 자세로 표현하기로 결정한 듯 하다. 그런데,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예전에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을 읽었을 때에는 크로키로 슥슥 그린 듯한 묘사에 감동했는데, 맥길리건이 그려년 히치콕에 대해서는 그 정 반대의 치열한 디테일에 감탄하게 된다. 아주 많은 부정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히치콕에 대한 애정이 식지는 않았다.
세설 (다니자키 준이치로)
20세기 일본 작가들의 단편은 면도칼 같은 재미를 준다. 한국에선 자주 언급되지 않는 일본 작가들 중에서 나카지마 아쓰시의 <산월기>,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문신>을 읽고 감탄하다가 마침내 우연히 <세설>을 접했다. 1930년대 오사카/고베 지방에서 부유한 상인 가문의 네 자매가 세상의 변화를 맞이하며 삶을 가꿔가는(이 표현을 선택하면서, 여기서 분재나 꽃꽂이를 연상하게 된다) 이야기다.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늘 멀고도 가까운 이웃나라에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함.
세설, 벚꽃이 지는 간사이의 봄날같은.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아마도 성인이 된 뒤에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꼽으라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분명 세 손가락 안에는 확실히 포함될 것이다(이 애정에 비례해서, 영화화된 작품에 대해서는 저주에 가까운 악감정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작품과 뭔가 끈을 잇고 싶었던 출판사는 거의 그 제목과 댓구를 이루는 제목을 내놨다. 물론 Sense of an Ending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옮긴 것은 탁월한 감각이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비해 Elizabeth Finch를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로 옮긴 것은 좀 지나친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어쨌거나 이 책을 읽고 나서 여전한 반스 옹의 꼬장꼬장함에 감사 기도를 드렸다. 부디 오래 오래 사시면서 또 좋은 작품을, 한번만 읽고 말 수 없는 작품을 계속 써 주시길.
룩백 (후지모토 타쓰키)
만화가를 꿈꾸는 두 소녀의 이야기. 정확하게 말하면 두 소녀가 모두 만화가를 꿈꾸지는 않았다. 한 소녀는 분명 자신의 재능을 펼칠 기회를 찾고 있었고, 다른 소녀는 자기가 좋아하는 소녀가 날개를 펴는데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꿈을 이뤘던 소녀는, 평생의 꿈을 이루는 것보다 자신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비록 너무 늦기는 했지만. (애니메이션도 그리 좋다는데, 현재의 느낌으론 이 만화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싶다.)
패배의 신호 (프랑수아즈 사강)
사강을 흔히 '통속 작가'라고 부르곤 한다. 이런 종류의 책을 근래 거의 읽지 않은 것은 이런 책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이런 종류의 서사는 읽는 것보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워낙 많이 접하고, 또 그렇게 접하는 데 익숙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10분의 독서가 10분의 시청보다 훨씬 더 함축적이고 상상을 자극한다는 걸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도 이런 문화가 오래 오래 지속되길.
패배의 신호, 서늘한 섬세함을 즐기려면.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C 클라크)
이 책 때문에 꽤 비슷한 주제인 <유년기의 끝>과 사실 별 공통점 없는 주제인 하인라인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 오지 않은 일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멈추면 안 된다는 자극과 함께,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이야기를 읽고 상상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역시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유익하다고 생각했지만 올해의 책까지는 아니었던 <더 커밍 웨이브 (무스타파 술레이만)>, 즐겁게 읽은 책으로 <사랑인줄 알았는데 부정맥(실버 센류 모음집)>, <한국 요약 금지(콜린 마샬)>, <키르케(매들린 밀러)>,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김기태)> 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채식주의자(한강)>를 다시 읽은 것도 2024년의 기억할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 전에 이 책을 접할 때의 내가 얼마나 부실한 독자였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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