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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영화의 제목 짓는 기술이 영 신통치 않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과속스캔들'도 제목만 잘 지었다면 훨씬 더 히트했을 거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데 이어 '달콤한 거짓말'도 어쩐지 이 너무나 평범한 제목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돕니다.

이 영화에 대해 알려진 가장 핵심적인 정보는 '박진희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척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예고편은 박진희가 거짓말을 해서 여러 남자를 농락하는 여자인 양 그려져 있습니다. 상세한 줄거리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어쨌든, 제목의 '거짓말'과 상승작용을 하면서 뭔가 너무나 뻔한 영화인 듯한 느낌을 주는 게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심한 영화 취급하기엔 '달콤한 거짓말'은 기대 이상으로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특히 다른 요소를 다 떠나서, 올해 개봉된 한국 영화 중 가장 여주인공의 비중이 큰 영화의 주역을 맡은 박진희의 열연이 빛을 발하는 영화라는 점을 주목할 만 합니다. 그리고 박진희는 그럴 자격이 있는 배우라는 걸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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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버릇이 꽤 고약한데다 맡은 방송마다 조기종영하기 일쑤인 노처녀 방송작가 지호(박진희, 그래 봐야 스물아홉 서른 정도의 나이입니다)는 어릴 적부터 남자와는 낭만적인 첫 만남으로 한 눈에 사랑에 빠져야 한다고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어릴 적 고교 1년 선배인 민우(이기우)에 대한 짝사랑이 아름답고도 안타까운 추억으로 남아 있죠.

그런 그가 어느날 소매치기를 쫓아 달려가다 외제차에 부딪힙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병원. 그리고 자신을 들이받은 차의 운전자가 꿈에도 잊지 못하던 민우라는 걸 알게 됩니다. 물론 짝사랑이었으므로 민우는 지호를 절대 알아보지 못하죠. 민우와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이어 가기 위해 지호는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 '자기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기억상실증을 가장하게 됩니다.

이 방법을 통해 민우의 집에 들어앉게 된 지호는 우연히 민우의 이상형이 현모양처형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갖은 내숭으로 민우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본색을 너무나 잘 아는 고교동창 동식(조한선)의 등장으로 지호의 사기극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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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배경을 읽고 보면 그리 신기할 게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수많은 사건들이 대부분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는 듯도 하지만, 설정을 잘 살펴 보면 어떻게든 아귀를 맞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민우의 곁에 찰싹 달라붙은 지호가 우연히 동식을 만나 위기를 맞곤 하는 것도 지나친 우연처럼 보이지만, 이 세 주인공이 모두 고등학교 동창이고, 그 동네에서 계속 살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하죠.

세 주인공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지호의 비밀을 알고 있는 친구 은숙(최은주)이나 민우의 친구이자 옛날 은숙의 짝사랑 대상이었던 한상(조진웅)이 모두 고교 동문이라는 것은 이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추억의 공간이 모두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한 동네이며 함께 소풍을 가곤 했던 동물원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죠. 아울러 양자강이라는 동네 중국집도 여전히 영업중이라는 사실 역시 매우 큰 의미를 갖습니다. (보시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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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코미디 영화인 만큼 가끔씩 개연성의 벽을 슬쩍 넘으려 드는 '달콤한 거짓말'을 안정시키는 절대적인 요소는 박진희입니다. 한국 영화의 신화 중 하나인 '여고괴담' 첫편이 벌써 10년 전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시에 받았던 스포트라이트만큼 빨리 성장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이 배우는 어느 감독이라도 욕심낼 만큼 탄탄한 연기력으로 자신을 관리해왔습니다. 쉽게 빠질 수도 있었던 '글래머 여배우'의 길과는 다른 성실한 노선을 걸어 온 거죠.

최근 들어 '돌아와요 순애씨'나 '쩐의 전쟁'같은 드라마에서는 좋은 성과를 거둬 왔지만 불행히도 스크린에서는 데뷔작 '여고괴담'만큼 주목받거나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의 기대작 '궁녀'에서도 훌륭한 소재에 비해 지나치게 개연성이 떨어지는 대본이 박진희의 열연을 묻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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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달콤한 거짓말'은 그야말로 박진희의 원맨쇼입니다. 관객들은 박진희가 가는 길로만 가게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두 남자 상대역은 아직까지는 '연기 멀었음'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젊은 배우들이죠. 이기우도 조한선도 키 크고 허우대 좋지만 한 사람의 배우로 평가받기엔 갈 길이 멀어 보이는 인물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진희의 분전은 정말 눈부십니다. 몸을 날려 차를 들이받는 건 기본이고, 코미디의 기본 요소인 순간적인 표정 변화와 적절한 망가짐이 이 배우가 일정 수위 이상의 내공을 확보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줍니다. 안타까움이 있다면 익스트림 클로즈업에서 주름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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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 배우 중에는 조한선의 캐릭터가 좀 더 유리합니다. 그저 멋진 척만 하면 되는 이기우에 비해 조한선은 확실한 변신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죠. 동식이란 인물은 뜯어 놓고 보면 복잡합니다. 겉으로는 아무 말이나 찍찍 내뱉고 패션이라곤 트레이닝복이 제격인 껄렁한 '동네 형'의 분위기인데 의외로 착실한 살림꾼이고 마음 씀씀이도 깊은 데다 정도 깊습니다. 나름 상상력도 풍부합니다.

동식에게 있어 최고의 장면은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패러디 신입니다(역시 영화를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을 기준으로 조한선의 연기를 평가한다면... 한 75점 정도는 줘도 될 듯 합니다. 슬슬 이 친구에게도 배우의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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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거짓말'의 가장 큰 미덕은 코미디를 위해 배치한 사소한 요소들이 제몫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 큰 역이라고 볼 수 없는 지호 동생 역의 김동욱, PD 역의 김광규나 AD 역의 개그맨 정성호, 그리고 제법 중요한 역할인 양자강 맨 정재용은 큰 욕심 없이 자기 몫을 다 합니다. 모든 배우가 홈런을 치려고 달려들다 망하는 실패한 코미디 영화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입니다.

'달콤한 거짓말'을 전체적으로 봐도 이 영화는 '두 시간 이내에 최대한 웃긴다'는 코미디 영화의 미덕을 한껏 발휘한 작품입니다. 무슨 대단한 교훈을 주겠다는 야심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엔딩은 - 물론 무슨 반전이 있는 듯도 하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반전이죠 - 나름 따듯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부실한 제목인 '달콤한 거짓말'에 비하면 훨씬 속이 알찬 영화입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이 정도면 코미디의 수작이라는 말은 아깝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흥행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 제목이 주는 거부감을 누르고 표를 살지에 달려 있다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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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가장 박진희의 매력이 빛나는 장면은:
지호: 그럼 민우씨가 싫어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민우: 거짓말하는 사람이요.

p.s.2. 영화 도입부와 뒷부분은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완성도에서 차이가 납니다. 참 의이한 부분입니다. 만약 영화가 진행 순서대로 촬영됐다면, 정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기량이 일취월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p.s.3. 이승환의 '좋은날'이 나옵니다. 공식 주제곡은 리메이크 버전이지만 역시 원곡을 따를 수는 없을 듯 합니다. 맛뵈기로 살짝 들어 보시길.







댓글
  • 프로필사진 드라마 오늘 야심만만에 나온 박진희를 봤었는데...이번에 영화가 나왔군요?! 얼굴만 보면 별로 매력이 없는데 입을 열면 좀 달라 보이는 것 같아요. 보고 싶은 한국 영화가 너무 많네요. 조한선도 좋던데...숫기가 좀 더 있음 좋으련만.

    이승환 노래도 좋네요~ 고맙습니다!
    주말이어서 또 어떤 재방송이 나올까 했는데...^^

    p.s. 저 MN에서 드라마로 바꿨어요!
    2008.12.21 11:07
  • 프로필사진 송원섭 johnny drama? ^^ 2008.12.21 18:27
  • 프로필사진 순애씨 아 무지 궁금하게 쓰셨네요 ^^

    잘 읽고 갑니다 영화 고르는 중이었는대 보러 가야겠어요

    ^_^
    2008.12.21 11:32
  • 프로필사진 송원섭 너무 우울할때 보진 마세요. 2008.12.21 18:27
  • 프로필사진 모과 송원섭님이 추천한 영화는 꼭 보기로 했습니다.
    영화관이 멀어서 한달에 한번 갈까합니다.
    고맙습니다.^^
    2008.12.21 12:12
  • 프로필사진 송원섭 무겁습니다.; 2008.12.21 18:27
  • 프로필사진 echo While you were sleeping !? 아 그건 남자가 기억상실증이었던가요.
    비디오로 나오면.^^
    2008.12.21 13:36
  • 프로필사진 송원섭 그리고 거짓말도 아니었죠.^ '하나와 앨리스'라는 영화가 비슷하면 비슷할듯. 2008.12.21 18:28
  • 프로필사진 우유차 '그럼에도 안 끌리는 배우'라는 점이 박진희의 약점일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코미디 영화는 스탠딩 개그가 아닌데. 배우 개개인이 우스꽝스럽게 무너지면서 억지로 웃으라고 강요하는 장르가 아니라 '줄거리로 사람을 웃게 만들어야 하는' 장르였죠. 코미디 영화가 줄줄이 실패한 이유가 결국은 거기 있는 거였네요. 과속 스캔들이 재미있었던 이유도, 그리고 볼지 안 볼지는 모르겠지만 달콤한 거짓말이 호평을 받는다면 그 부분을 살렸다고 생각하렵니다. 2008.12.21 13:38
  • 프로필사진 송원섭 그렇죠. 나오는 타자마자 풀스윙을 해대는 팀이 이길 수가 없죠. 2008.12.21 18:28
  • 프로필사진 하이진 이 영화 괜찮나봐요. 칭찬하는 글을 여기저기에서 봤어요. 박진희는 예전부터 참 괜찬은 배우라고 생각했었어요. 원래 공포 영화를 절대 보지 않는지라 '궁녀'를 보진 못했지만 연기를 참 잘 했다고 하더라구요. 기분도 우울한데, 이 영화나 보러 갈까봐요. 물론 쌍화점 먼저 보구요.^^ 2008.12.21 16:38
  • 프로필사진 la boumer 저 박진희씨 쩐의 전쟁에서 처음보고 완전 반했어요
    얼굴은 모범생처럼 생겼는데
    몸매 죽이고 연기 확실하고
    특히 발성이 너무 좋아요.

    근게 스타성이 약간 떨어지는지 연기력만큼 못크네요.
    그래도 정말 정말 매력있는 배우입니다.
    얼굴로 밀고 가면서 발연기 어워드에나 어울리는 여타
    젊은 배우들중에 끼인 정말 숨은 보석이죠.

    달콤한 거짓말이 그렇게 지루한 제목인가는 잘 모르겠고 하여튼 이 영화 꼭 보고싶네여. 소개해 주셔서 땡큐.
    2008.12.21 18:33
  • 프로필사진 erin07 정말 제목은 좀,, 그러네요. 상투적이고,지루한 느낌.. 2008.12.21 22:07
  • 프로필사진 송원섭 결국 제목의 벽을 넘지 못한 듯 합니다. 2008.12.22 09:04
  • 프로필사진 후다닥 별 기대 안했는데
    기자님 글 보니 기대 됩니다..
    일단 과속스캔들 부터 보고 나서 봐야겠습니다....
    2008.12.22 00:20
  • 프로필사진 zizizi 엇, 지금 `하나와 앨리스' OST를 듣고있는데...
    박진희란 배우, 처음엔 긴가 민가 했는데
    점점 괜찮아지더군요.
    클로즈업에 주름있어도 연기 잘하는 배우가 좋아요.

    이 대목에서 왜 모 배우가 생각나는 것인지..
    혀는 짧아도 청순하긴 했는데 간만에 보니 연기도 그대로고 나이만 드신 그분..
    2008.12.22 02:44
  • 프로필사진 송원섭 혹시 '일밤 1000회' 특집은 보셨는지.^^ 2008.12.22 09:04
  • 프로필사진 궁금이.. 얼마전.. 야심만만 예능선수촌에서 게스트로 나온 박진희씨를 봤는데 여전히 이쁘더군요..ㅎㅎ 거기다 송기자님께서 추천도 하셨으니.. 꼭 봐야겠네요..^^
    블로그를 그동안 쭉 보면서 송기자님이 특히 여배우 관련 글을 너무 잘 쓰신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또한번 예전에 드라마 온에어에서 나온 대사가 생각이 나더라구요.. 대충 "여자를 잘 아는 카메라 감독이 화면을 잘 찍는다.." 머 이런 내용이었는데.. 송기자님도.. 그런 스타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머 이렇게 맛깔나게 글을 잘 쓰시는걸 보면.. "여자를 잘 아시는 기자분" 이 아닐까.. 머 이런..ㅋㅋ
    2008.12.22 05:41
  • 프로필사진 송원섭 헛헛헛;;; 2008.12.22 09:05
  • 프로필사진 ikari 박진희... 동대문 종합시장에서 가끔 만난 ^^ 2008.12.22 10:22
  • 프로필사진 우기 이승환의 좋은날.
    대학 입학해서 사발식때 부르다가 선배들한테 욕먹고
    김지애의 얄미운 사람으로 바꿔 불렀던 아픈 기억이..ㅠㅠ

    그래도 연말되니 볼만한 한국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하네요.
    DVD로 나오면 볼 영화들이 늘어서 행복하네요.
    2008.12.22 14:44
  • 프로필사진 ahaman 마지막의 이승환 '좋은날' 클립은....
    완전 낚시잖아요~ ㅎㅎ

    스핑크스님 글만 보고는, "좋은 날" 원곡 맛배기.. 리라 생각했는데,
    이건 뭐..... ^-^

    승환님 노래는, 언제 들어도 시원시원합니다. :)
    락 넘버를 들으면 귀와 가슴이 시원.
    발라드를 들어도, 가슴이 시원해 지는 애절함의 카타르 시스. ^^
    2008.12.22 16:41
  • 프로필사진 송원섭 노래가 여러 곡이라 낚시란 말씀? 2008.12.22 20:06
  • 프로필사진 ZZooN 원곡에서 손을 많이 본 콘서트용 편집 버전이란 말씀이겠죠 :) 2008.12.2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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