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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노벨상을 비롯해 세계적인 위인들의 이름을 딴 상은 수없이 많습니다. 레닌상(과학, 인권), 페르마상(수학), 오일러상(수학), 퓰리처상(언론), 로버트 카파상(보도사진), 간디상(인권), 사하로프상(인권), 막사이사이상(인권), 노구치 히데요상(의학), 에드가 앨런 포 상(문학), 오 헨리 상(문학)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수많은 위인들의 이름을 딴 상 중에 다윈상 혹은 다윈 어워드(Darwin Awards)이 있습니다. 다른 상들과 차이가 있다면 전혀 명예롭지 않은 상이라는 점입니다. 1985년부터 수상자를 배출해 왔지만 수상자 가운데 저나 여러분이 이름을 알만한 사람은 전혀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그냥 장난이라면 장난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유쾌하다고만 볼 수는 없는 장난이기도 합니다.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발간 150주년이고 지난 12일은 바로 찰스 다윈의 200번째 생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생각났던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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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윈상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영화 '다윈 어워드(The Darwin Awards, 2005)'는 다윈 상 수상자와 주위 여건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기서 다윈 상이란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을 기념해 제정된 상이며, '자연선택설에 입각해 그들 자신을 제거함으로써 인류의 유전자 개선에 공헌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상이라는 설명이 등장한다.

복잡하지만 풀어 설명하면 '살아 있었다면 인류의 형질 개선에 별 도움이 안 될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려, 자신들의 어리석음이 후손들에게 유전되지 않도록 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주는 상'이라는 뜻이다.

영화 속 이야기라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실제 존재하는 이 상(http://darwinawards.com)은 1985년부터 매년 수상자를 배출해 왔고, 수상자들의 어처구니없는 사연을 담은 책들도 여러 차례 발간됐다.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콜라 캔을 공짜로 빼내려다 자동판매기에 깔려 죽은 사람, 요트의 구멍을 테이프로 막고 항해하다가 물에 빠져 죽은 사람, 아내에게 위자료로 집을 주라는 판결이 나오자 집에 불을 질렀다가 타 죽은 사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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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하긴 하지만 한국적인 기준에서 볼 때에는 어쨌든 생명을 잃은 사람들의 사연을 웃음거리로 삼는다는 게 그리 편치는 않다. 유명인들의 사망 기사에 달리는 인터넷 악플들을 연상시키는 구석도 있다. 이런 장난에 자신의 이름이 쓰인다는 데 대해 다윈은 어떻게 생각할까.

다윈의 이론이 인류의 지성 발전에 기여한 내용이야 굳이 재론할 필요도 없지만, 한편으론 그의 주장이 약자에 대한 강자의 억압을 합리화하는 데 악용되어 왔다는 비판도 항상 따라다닌다. 다윈이 없었다면 우생학이나 나치의 홀로코스트도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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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에서도 가끔은 다윈을 원망하는 일이 생긴다. 시청률에서 경쟁 방송에 뒤지는 프로그램은 당장 폐지되어야 하고, 박스 오피스를 장악하지 못하는 영화는 사라져 마땅하다는 주장 때문이다. 다행히도 가끔씩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50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적이 일어나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지난 12일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세계 각국에서 축하 행사가 열리고 있지만 인류는 그동안 그의 가르침을 빙자해 저질러온 수많은 바보짓에 대한 반성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다윈 상의 존재 의미는 어쩌면 그런 실수들을 잊지 말라는 반면교사일 수도 있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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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다윈상 수상자들에 대한 책이 번역돼 나온 적이 있더군요.

사실 찰스 다윈의 자신의 일생을 돌이켜 보더라도 실수로 인한 발전도 꽤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영국 해군 함선 비글호에 편승한 다윈은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군도에 도달할 무렵 너무 심해진 배멀미로 인해 하선 조치를 당합니다. 만약 이때 다윈이 함선 생활에 너무나 잘 적응했더라면 '종의 기원'은 나오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뭐 남들의 어리석은 실수에 대해 비웃고 손가락질하는거야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인해 죽은 사람까지 대놓고 웃음거리로 삼는 건 좀 편치 않더군요. (아무래도 지난번 포스팅에 이어 너무 영감같은 소리만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화계와 다윈의 비유는 딱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자연선택으로 인한 진화는 몇 세대에 걸쳐 일어나는 일이지만 문화계에서의 적자생존은 매 순간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윈의 어두운 쪽을 계승한(혹은 했다고 자처하는) 후계자들 은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것들만 살아남는다'는 식의 믿음에 따라 자신들이 판단하기에 '살아남을 가치가 없는 것들'을 참혹하게 억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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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에도 나오는 천지불인 天地不仁 이라는 경구는 다윈의 가르침과 부합한다고 할 수 있지만 이를 자신들의 잔혹성을 포장하는 데 사용해온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어떤 현명한 가르침이라도 비뚤어진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남을 해치는 도구로 사용될 여지가 있기 마련입니다.

다윈상 홈페이지에는 볼테르의 경구가 떡하니 쓰여 있습니다. '수학자들이 무한이라고 말하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어리석음의 총량을 생각해봐야 한다(The only way to comprehend what mathematicians mean by infinity is to contemplate the extent of human stupidity.)' 이 말은 아마 이런 상을 만든 사람들 자신도 돌이켜봐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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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영화 '마스터 앤 커맨더'에 나오는 닥터 매튜린(폴 베터니가 연기했던)은 찰스 다윈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해서 흥미롭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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