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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보일(Susan Boyle) 동영상은 다들 보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유튜브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2년 전 6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폴 포츠 열풍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절로 감동이 밀려옵니다.

솔직히 이쪽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수전 보일이건, 폴 포츠건, ITV의 '브리튼즈 갓 탤런트'가 만들어내는 이런 신데렐라 쇼를 보고 있으면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감동적인 사연과 노래 솜씨를 넘어 이런 사연과 이런 주인공들로 대중문화의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방송 제작진의 기획력에 우선 감탄하게 됩니다. 게다가 인터넷과 유튜브의 등장은 이런 스타들이 영국이라는 한 지역 안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날 수 있게 만들었죠.

그런저런 현상에 대해 생각나 쓴 글입니다.




제목: 반짝 스타

2007년 6월 9일, 영국의 신설 TV쇼 ‘브리튼즈 갓 탤런트’ 첫 방송에 폴 포츠라는 37세의 휴대전화 세일즈맨이 나왔다. 빈약한 외모와 자신감 없는 표정. 오히려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시청자들이 가슴을 조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흘러나오자 장중은 경악과 환호로 들끓었다. 여유 있는 형편이 아니면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자비로 성악 레슨을 받았다는 사연이 알려지며 그의 이름은 전 세계인에게 인간 승리의 대명사가 됐다.

‘브리튼즈 갓 탤런트’가 셋째 시즌의 첫 방송을 내보낸 지난 11일, 무대에 오른 수전 보일은 누가 봐도 폴 포츠의 재림이었다. 촌스러운 옷차림과 머리, 47세까지 남자와 키스 한번 해본 적이 없다는 이 시골 아줌마는 깜짝 놀랄 만한 미성으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아이 드림드 어 드림’을 불렀다. 관객들은 모두 그의 팬이 됐다.

이날 방송은 1000만 명 정도의 시청자가 본 것으로 추정됐지만 그 뒤 1주일 사이,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려진 보일의 모습은 전 세계에서 2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봤다. 이번 시즌 우승 여부와 관계없이 또 한 명의 스타 탄생이 예고된 셈이다.

깜짝 스타의 등장은 한국에서도 그리 드물지 않았다. 지난 1984년 강변가요제에서는 키 작은 여대생 이선희가 ‘J에게’ 단 한 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4년 뒤, 같은 무대를 통해 꺽다리 여학생 이상은이 등장했던 순간도 지금껏 인구에 회자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들은 자취를 감췄다. 일반인 참여 프로그램은 날로 늘고 있는데 왜 한국에선 더 이상 깜짝 스타가 나오지 않는 걸까. 1990년대 이후 가요계가 기획사에서 다년간 훈련된 신인들 위주로 재편됐다는 점,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등 꼽자면 수십 가지 이유가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폴 포츠의 승리는 ‘노래 한 곡을 통한 인생 역전’을 멋지게 포장해낸 방송 제작진의 쾌거라고 봐야 한다. 어떤 원석도 손대지 않은 상태에서 절로 빛을 발하지는 않는다. 경쟁력 없는 외모와 탁월한 노래 실력, 여기에 실패자로 살아온 인생까지 다 갖춘 후보들을 골라내 히트 상품으로 포장해낸 연출진의 기술은 실로 장인의 솜씨라 부를 만하다.

하나 더 보태자면, 이들에게 지갑을 열어 성원할 수 있는 대중의 저변이 없는 한 깜짝 스타의 출현은 기대하기 힘들다. 폴 포츠의 데뷔 앨범 ‘원 찬스’는 영국에서만 68만 장이 판매됐다. 한국에서라면 과연 어땠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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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보일의 깜짝 등장에 이어 영국과 미국의 각종 TV 프로그램들은 보일에 대한 기동력 있는 특집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짙은 사투리를 구사하는 보일은 영국의 벽지 스코틀랜드에서도 벽촌인 블랙번에 홀어머니와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전문적인 음악 교육은 받아 본 적이 없고, 취미는 동네 호텔에 있는 가라오케 머신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라는군요. 네. 이미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물은 좀 그렇지만 효녀 중의 효녀"라는 코멘트까지 모두 기사화됐습니다.

'브리튼즈 갓 탤런트' 팀의 내공이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이미 이들은 폴 포츠의 경험을 통해, 아무리 처음엔 외모에 대한 저항감이 심했더라도 빼어난 노래 실력은 그것을 한방에 역전시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한번 이런 호감 역전 현상이 벌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인간적인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주변 이야기거리가 다시 한번 화제를 폭발시킨다는 점 등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딱 맞는 사람을 찾아내기도 쉬워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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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첫 방송 때에는 누가 봐도 루저 형상인 폴 포츠가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2회 때에는 덩치는 크지만 노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순박한 눈매의 소년 앤드류 존스턴이 등장했죠. 존스턴의 폭발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이번에 찾아낸 것이 바로 보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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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턴에 대해서는 별도의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보일의 외양과 사연은 이미 위에서 다뤘으니 생략합니다. 포츠와 보일의 차이가 있다면 누가 봐도 넘치는 자신감. 소심하고 내성적인 포츠에 비해 보일은 "엘레인 페이지처럼 되고 싶다"며 자신감을 뽐내고 있습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단골 주인공인 페이지는 웨스트엔드의 여왕으로 군림해온 영국 최고의 뮤지컬 스타죠.

'브리튼즈...'의 연출진에게서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 것은 이렇게 준비된 스타를 무대에 내놓기 위해 포장하는 기술입니다. 제아무리 폴 포츠와 수전 보일이 천재의 노래 실력을 갖췄다 한들,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천 관중 앞에서 그렇게 노래할 수 있을 리는 없습니다. 노래방에서 혼자 부르는 실력과 관중 앞에서 부르는 실력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걸 극복하는 길은 부단한 훈련 뿐이죠. 어떤 노하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이 보여준 놀라운 라이브 실력은 누가 뭐래도 철저한 트레이닝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하나 더 보태자면, 무대에서의 코멘트 역시 상당히 연구된 흔적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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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용모와 태도가 준 임팩트를 떼놓고 생각한다면 폴 포츠의 노래 실력은 전문 성악가로는 한참 부족합니다. 음색에서 오는 표현력도 한정되어 있죠. 그걸 커버해 준 것이 노래 '공주는 잠 못 이루고'의 힘입니다. 전에도 한번 얘기한 적 있지만 이 팀의 선곡 실력 또한 감탄을 자아냅니다.

앤드류 존스턴의 '피에 예수' 역시 보이 소프라노의 매력을 최고로 뽑아낼 수 있는 곡이고, 보일이 부른 '아이 드림드 어 드림' 또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선곡이죠. '레미제라블'에서 팡틴이 미혼모가 되어 공장에서 일하며 코제트를 부양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짧았던 인생의 봄을 그리는 노래입니다. 다른 가사를 모두 접어 둔다 해도, '현실로 인해 말살당한 나의 꿈(Dream)'이라는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보일의 현재 상황과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물론 노래의 아름다움이야 이미 전 세계의 뮤지컬 팬들이 공감한 터이고.

전문 가수가 부른 노래를 한번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죠. 레아 살롱가가 부른 브로드웨이의 팡틴입니다. 도촬 동영상이지만 노래와 영상이 볼만 합니다. 지금까지 살롱가가 부른 팡틴의 정식 동영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내한공연에서 이 노래를 들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이 노래에 대한 이야기는 이쪽에 정리돼 있습니다. 레아 살롱가를 포함해 네 명의 가수들이 부른 서로 다른 I Dreamed a Dream이 있습니다.
 


보일의 노래 실력 역시 전문 가수들과 비교하자면 좀 어폐가 있습니다. 첫날 무대에서 보여준 노래도 박수에 가리긴 했지만 살짝 불안한 부분도 있었죠. 물론 아마추어로는 대단히 훌륭한 수준이고, 그 노래를 더욱 훌륭하게 보이게 뒷받침해준 전문가들의 솜씨 또한 기억할 만 합니다.

이런 식으로 가수를 포장하는 솜씨는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들' 제작진도 탁월합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서도 제니퍼 허드슨을 비롯한 스타들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1% 부족한 것은 바로 감동이죠. 루저가 위너로 바뀌는 순간의 감동, 그것까지 빠뜨리지 않은 것이 바로 '브리튼즈 갓 탤런트' 팀의 성공 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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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질문, '왜 한국에선 이런 깜짝 스타가 나오지 않을까'에 대한 답은 이미 다 한 셈입니다. 사실 한국 방송 제작진에게는 좀 억울할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매주 촬영과 편집을 진행해야 하는 한국 방송의 성격상, 1년에 3개월 정도 방송하고 빠지는 '브리튼즈 갓 탤런트' 같은 수준의 제작비와 지원, 연출력을 기대해선 안된다는 이야기가 당연히 나올 겁니다.

하지만 현재 3대 지상파의 인력구조를 감안할 때 제작비는 몰라도 사람이 부족해서 할 수 없다는 얘기는 곤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나머지는 기획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이 꽤 클 겁니다. 비단 신인 발굴 프로그램에 한정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전반적인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입니다.

물론 깜짝 스타의 등장을 마무리하는 절대적인 조건은 사회의 저변입니다. 스타 하나가 똑바로 서려면, 그 스타나 제작자를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대중의 소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국내에서 등장했던 수많은 UCC 스타들이 잠깐 주목을 끌었다 사라진 이유는 뭘까요. 한때 그들에게 열광했던 대중이 그들을 먹여살리기는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문화와 스타는 공짜가 아닙니다.


p.s. 수전 보일을 보고 감동했다는 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단지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감동도 '날 것 그대로'는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보시라는 뜻입니다.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 대해서도 칭찬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수전 보일과 같은 날 출연한 파비아 체라(Fabia Cerra)라는 출연자의 벌레스크 댄스 광경입니다. 이런 지상파 쇼 무대에서 가슴을 드러내고 춤을 추다니...

 

이런 분위기라면 체라는 화제만 뿌린 뒤 결국 보일의 들러리가 되고 말겠죠. 그렇습니다. 이런 화려한 인생 역전 쇼에도 루저는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방송에 출연도 하지 못하고 예심에서 떨어진 사람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겠죠. 쇼란 그런 것입니다.

p.s. 유튜브의 수전 보일 동영상은 벌써 퍼가기 금지 조치가 한창이더군요. 폴 포츠도 거의 블록돼 있어서 어렵게 찾았습니다.




샤힌(섀힌) 자파골리에 대해서는 들어 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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