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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두(조인성)는 스물 아홉살까지 자기 조직 하나 꾸리지 못하고 형님 상철(윤제문) 밑에 빌붙어 있는 중간보스입니다.  집엔 병든 어머니와 철없는 두 동생이 있고 숙소에도 심복 종수(진구)를 비롯해 여섯명의 '동생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조직에서도 2인자 자리가 위태롭고, 아직도 웃통 벗고 떼인 돈 받으러 다니는 막일까지 하면서  '이제 딴 일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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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그에게 상철의 뒤를 봐 주던 돈줄인 건설업자 황회장(천호진)의 손길이 기회처럼 다가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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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3년째 시나리오를 완성 못하고 생동감있는 얘깃거리를 찾아다니던 초등학교 동창 민호(남궁민)를 통해 어린시절부터 짝사랑해온 현주(이보영)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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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찾아다니던, 인생 역전의 기회. 지긋지긋한 궁상을 한방에 날릴 기회를 맞은 병두는 결단을 내릴 준비를 합니다. 그런 그의 귀에 의리니 도리니 하는 게 들릴 리가 없습니다. (줄거리는 이 정도로.)



<비열한 거리>를 보고 '새롭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태어나서 주윤발이 나오는 영화나 한국 영화계를 수놓은 수많은 조폭 영화를 단 한편도 보지 않은 사람일 겁니다. 해외에서 태어나 자랐거나 명절때 TV를 볼 수 없었을 정도로 바쁜 사람이었던 모양이죠.

하지만 그러면서도 <비열한 거리>는 충분히 관객이 즐길 수 있게 합니다. 글자 그대로 아드레날린이 뚝뚝 떨어지는, 너무도 선명한 장르 영화이면서도 팬들을 질리지 않게 하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몇달 전 '장르영화'를 강력하게 표방했던 <사생결단>을 향해 "이봐, 장르 영화란 바로 이런 거야"라고 강의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남성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느와르의 성패는 아주 단순한 요소 하나에 달려 있습니다. 바로 영화를 보는 남성 관객들이 주인공의 안위를 걱정하느냐 마느냐, 이 단순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예'냐 "아니오'냐 입니다.

유하 감독은 이미 전작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이 부분에 강한 면모를 보여준 바 있습니다. 어딘가 똘똘하지 못하고 모질지 못한 주인공 권상우를 통해 남성 관객들은 자신들의 '뭘 몰랐던' 학창시절을 반추해 보고 추억에 젖으면서 동시에 권상우의 복수를 자기 일처럼 주먹을 쥐고 흥분하며 바라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열한 거리>에서도 조인성이 연기하는 병두는 외칩니다. 나만큼 절박하고, 나만큼 현실적으로 성공에 굶주려 있는 사람이 또 있느냐고. 세상에 나보다 나쁜 놈이 지천인데, 내가 여기서 조금만 더 나쁜 놈이 되면 안 되느냐고. 나보다 훨씬 더 나쁜 짓으로 긁어모든 것들을 내가 좀 빼앗는다고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고 온 몸으로 부르짖는 거죠. 바로 이 부분에서 병두는 <사생결단>의 류승범이나 <야수>의 권상우보다 훨씬 설득력있게 그려집니다.

물론 느와르 영화의 특성상 병두의 앞날이 결코 밝을 수는 없다는 걸 관객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병두가 현주를 감싸 안고 떠나는 외항선 위에서 배웅나온 종수를 향해 손을 흔드는게 마지막 장면이라면 보는 관객들이 더 당황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두가 조금이라도 성공한 모습을 보일 때 관객들은 더욱 안타까워집니다. 특히 병두가 건달들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의리를 강조할 때나 심복 종수와 뜨거운 눈빛을 나눌 때, 또 현주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얻어낼 때 이런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유리병처럼 깨지기 쉬운 것인지를 잘 아는 관객들(왜냐하면 병두 자신이 이런 것들을 얻어낸 과정이 모두 남들의 행복을 깨는 것이었기 때문에)의 마음 속은 점점 우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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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믿어서는 안되는 친구의 캐릭터로 바로 자신의 직업인 영화감독을 설정했다는 것은 유하 감독의 심각한 결벽증을 상징하는 듯도 하지만, 그로 인해 등장하는 극중극과 영화 촬영 장면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무엇보다 '한방'에 목숨을 걸고 부나비처럼 달려드는 건 조폭만의 일이 아니라는, 이 영화의 주제를 매우 설득력있게 전달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젊은 배우들의 호연은 이 영화의 힘입니다. 이제껏 연기 안되는 배우로 찍혀 있던 조인성이 일생일대의 호연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진구는 이 역할을 통해 그 나이에서 흔치 않은 연기파 배우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올인>과 <달콤한 인생>을 통해 보여준 재능이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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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영화의 마무리 즈음에 나오는 황회장의 노래 'Old and Wise'는 기가 막힌 선곡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튼 한국 느와르의 역사에서 <게임의 법칙>, <친구>로 이어지는 라인을 잇는 수작이라는 평을 아끼고 싶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강추입니다.



p.s.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Old and Wise>는 386세대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명곡이지만 요즘 세대에겐 낮설기 짝이 없는 노래일 겁니다(배철수씨가 자주 틀긴 합니다만). 특히나 가사는 수없이 많은 실연의 아픔에 대한 노래들 중에도 손에 꼽힐만한 명곡이라고 부를 만 합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약간 다른 의미로 쓰이죠.

한때 터키를 여행하다가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에 걸린 석양을 바라보면서 이 노래의 첫 가사, As far as my eyes can see가 너무도 마음에 와 닿아 짜안해 진 적이 있습니다. <비열한 거리>의 예고편에 왜 이 노래가 나오나 했더니 영화에서 매우 중요하게 쓰였더군요. 이 노래의 가사를 되새겨보는 걸로 끝을 맺겠습니다.





 

Old and Wise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저 멀리서
As far as my eyes can see
내게 다가오는 그림자들이 있습니다.
There are Shadows approaching me
그리고 내 뒤에 남겨질 사람들에게
And to those I left behind
나는 알리고 싶습니다.
I wanted you to Know
당신은 항상 나의 가장 깊은 생각까지도 공유했다는 것을,
You've always shared my deepest thoughts
그리고 항상 내가 가는 곳마다 따랐다는 것을.
You follow where I go


그리고, 오, 내가 나이들어 지혜로워지면
And oh when I'm old and wise
쓴 소리들도 내겐 별 의미가 없을 겁니다.
Bitter words mean little to me
가을 바람은 나를 그냥 지나쳐버리고
Autumn Winds will blow right through me
그리고 언젠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And someday in the mist of time
그들이 내게 당신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When they asked me if I knew you
나는 웃으며 말하겠지요. 당신은 내 친구였다고.
I'd smile and say you were a friend of mine
그리고 슬픔이 내 눈가로부터 사라지겠지요.
And the sadness would be Lifted from my eyes
내가 나이들어 지혜로워지면.
Oh when I'm old and wise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저 끝에서부터
As far as my Eyes can see
그림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There are shadows surrounding me
그리고 내 뒤에 남겨질 사람들에게
And to those I leave behind
나는 알리고 싶습니다.
I want you all to know
당신은 내 가장 힘든 나날을 함께 한 사람이었고
You've always Shared my darkest hours
나는 내가 죽을 때에도 당신을 그리워 할 거라고.
I'll miss you when I go


그리고, 오, 내가 나이들어 지혜로워지면
And oh, when I'm old and wise
나를 힘들게 했던 그 말들도
Heavy words that tossed and blew me
그저 가을 바람처럼 나를 지나쳐 불어갈겁니다.
Like Autumn winds will blow right through me
그리고 언젠가, 오랜 시간 뒤에,
And someday in the mist of time
그들이 당신에게 나를 아느냐고 물으면
When they ask you if you knew me
내가 당신의 친구였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Remember that You were a frined of mine
내 눈 앞에 마지막 커튼이 내려질 때 말이죠.
As the final curtain falls before my eyes
내가 나이들이 현명해지면.
Oh when I'm Old and w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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