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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박쥐'에 나오는 뱀파이어들은 참 특이한 존재들입니다. 뭐 문화와 배경의 차이가 있지만 흡혈귀의 대명사인 드라큘라 백작을 물리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십자가와 햇빛, 그리고 마늘이죠. 하지만 '박쥐'의 송강호는 원래 신부라서 그런지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 한국 사람이니 아예 음식을 안 먹는다 해도 사방에 널린게 마늘인데, 마늘을 겁내선 도저히 돌아다닐 수가 없겠죠.

대개 뱀파이어는 불로불사이고 초능력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지만 전설을 종합하면 이처럼 꽤 제약이 많은 존재들입니다. 그런 뱀파이어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요? 한 물리학자에 따르면, '전통적인(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뱀파이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것도 수학으로 증명이 된다는군요. 왜 그럴까요? '박쥐'를 보다가 생각난 얘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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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뱀파이어

'박쥐’의 박찬욱 감독과 주요 출연진이 13일 칸 영화제 본선 장도에 오른다. 뱀파이어 이야기를 다룬 ‘박쥐’는 개봉 일주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뱀파이어에 대한 전설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야행성이고 햇빛을 두려워하며, 피를 빨린 피해자도 뱀파이어가 된다는 점 역시 만국 공통이다. 이런 뱀파이어가 현실에서도 존재할 수 있을까. 미국 센트럴 플로리다대의 코스타스 에프티뮤 교수는 2006년 논문에서 간단한 계산만으로도 그 존재 가능성을 부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인구가 5억 명 정도이던 서기 1600년 1월, 지구상에 단 1명의 뱀파이어가 존재하고 그가 생존하기 위해 월 1명씩의 희생자를 찾아야 한다고 가정한다. 1600년 2월, 뱀파이어는 2명으로 늘어난다. 다음 달에는 4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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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출산을 감안해도 1603년이 오기 전에 지구상에는 먹이가 될 인간이 더 이상 남지 않으므로 뱀파이어 역시 전멸하게 된다. 결국 뱀파이어들이 자신들의 탐욕을 억제하지 못하면 인류의 말살은 물론 스스로의 운명에도 종지부를 찍게 되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뱀파이어 경제(vampire economy)’라는 시사용어가 떠오른다.

뱀파이어 경제란 정상적인 기업행위나 노동을 통하지 않은 채 부의 축적을 추구하는 행위, 혹은 남들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기업을 말한다. 4, 5년 전만 해도 월 스트리트는 한국 경제에 대해 구조조정이 보다 엄격했어야 했다며 “햇볕만 쬐면 사라질 부실기업들이 판치는 뱀파이어 경제”라고 비판하곤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진짜 거물 뱀파이어들의 소굴은 그쪽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전 지구를 휩쓴 경제 위기의 주범인 대형 금융사들이 그동안 서민들의 피를 빨아 부를 축적해 온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한때는 세계 경제를 리드한다며 대접받던 엘리트들이 하루아침에 전염병 보균자 취급을 받고 있다.

영화 ‘박쥐’의 결말은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들(영화 속 뱀파이어)이 타자에 대한 배려를 무시한 채 욕망의 끝까지 치닫는 경우, 누군가는 정지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우화로도 읽힐 수 있다. 물론 영화 ‘박쥐’는 이런 한마디 교훈으로 정리하기엔 훨씬 복잡한 영화다. 미묘하고 중층적인 ‘박쥐’가 칸 영화제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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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당초의 인구 5억명이 모두 뱀파이어로 바뀌는 시기는 1602년 6월 정도 됩니다. 2의 30제곱이 5억3000만 정도 될 겁니다. 중간에 아기가 무리하게 태어나고 했다고 하더라도 한두달이면  흡혈귀의 증가 속도가 출산 속도를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역설을 의식했는지, 20세기 후반의 뱀파이어들은 매우 똑똑해졌습니다. 앤 라이스의 작품에 나오는 뱀파이어들만 해도 모든 희생자를 뱀파이어로 바꿔 놓지는 않죠. 특별히 오래 오래 데리고 싶은 사람만을 뱀파이어로 바꿔 놓고, 나머지는 그냥 식용(?) 취급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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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진화한 뱀파이어들을 생각하면 에프티뮤(Efthimiou) 교수의 계산은 그리 적절치 않은 셈입니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꼭 무시할 것만은 아닙니다. 뱀파이어들이 지혜롭게 자신들의 개체수를 유지하고, 무분별한 살육으로 인간들의 씨를 말리지 않으면서 피를 빨아야 그들도 살고 인간들도 살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셈이죠. (아시다시피 신문에 쓰는 글은 지면의 한계로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을 다 붙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9일자 신문에 저 글을 써놓고 밍기적거렸더니 그새 더 자세한 글이 올라와 있군요. 재반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쪽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박쥐'의 송강호만 해도 그렇습니다. 혈액은행을 이용하고, 산 사람으로부터 그냥 주스(?)만 받아 마시고, 자살하는 사람을 식용으로 이용하죠. 하지만 김옥빈은 그런 금욕적인 삶을 비웃습니다. '여우가 닭 잡아 먹는게 죄냐'는 대사가 인상적이죠.

이런 부분에서 경제 엘리트들의 무한에 가까운 욕망이 화를 불렀다는 이번 경제 위기가 오버랩됩니다. 소위 엘리트라는 이유로 남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가 보자는 식으로 밀어붙이다가 결국 갈 데까지 가 버린 사람들이야말로 먹이가 사라진 뱀파이어의 운명이 돼 버린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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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 뱀파이어 경제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 자료를 보다 보니 이 말 처럼 참 다양하게 쓰이는 말도 드물더군요. 윗글대로 미국의 경제 엘리트들이 한국 기업들의 주가가 저평가되어 있는 이유에 대해 "햇빛만 비치면 사라져야 할 뱀파이어같은 기업들이 아직도 즐비하게 남아서 은행이며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부실 기업의 퇴출이나 구조조정이 미비하다고 비꼬곤 했던 때도 이 말이 쓰였습니다.

하지만 더 많이 쓰이는 의미는 역시 '남들의 고혈을 빨아' 먹고 사는 경제주체들을 가리킬 때였죠. 물론 위 문단의 뱀파이어같은 회사들도 이들 중 하나인 건 분명합니다. 또 어떤 때는 생산성에는 기여하지 않으면서 가난한 하청업체를 울리는 대기업의 귀족노조를 가리킬 때 쓰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부동산투기를 유발해 먹고 사는 속 시커먼 건설사들을 가리킬 때도 쓰입니다. 입장에 따라 어느 쪽으로도 휘두를 수 있는 비유의 칼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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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든, 스스로가 뱀파이어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염치가 있어야 합니다. 피를 너무 빨아서 희생자를 죽게 하거나 자기 같은 뱀파이어들을 양산하고, 심심하다고 함부로 인명을 해치는 뱀파이어는 자기 목을 조르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걸 이미 설명했습니다. 경제 시스템 안의 뱀파이어들을 완전히 쓸어 버리는 게 어디서나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쪽이 현명하게 살아남는 길입니다. (어떤 작품들에는 치안유지에 재능을 활용하는 뱀파이어들도 나오곤 합니다.^^ '블레이드'라든가...)

아무튼 '박쥐'가 칸에선 어떤 성적을 낼지도 궁금합니다. 물론 이번에도 상을 탄다면 좋겠지만, 경쟁작들이 워낙 대단해서 마음은 싹 비웠습니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버릴 수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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