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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글은 변명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산'의 방송이 끝난 주, 이병훈 감독님을 금주의 인물로 소개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축하 인사도 드릴 겸,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미 '이산'팀과 함께 종영 자축 여행을 떠나신 뒤더군요. 어쩔수 없이, 새로운 장을 보지 못하고 그냥 냉장고(?)를 열어서 쓴 글입니다. 물론 박은혜씨가 약간의 도움을 줬죠(그 얘기는 맨 마지막에. 감안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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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돈·음식 등 일상사로 승부
‘이산’ 종영한 정통 사극 연출가 이병훈
송원섭 기자
| 제67호 | 20080622 입력  

최근 MBC 창사 40주년 특별기획드라마 ‘이산’의 방송을 마친 이병훈 PD의 전설 중에는 그의 놀라운 설득력과 관련된 것이 많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1990년대까지 미스코리아 대회는 반드시 MBC에서 중계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각종 여성단체로부터 왜 공영방송에서 그런 외모지상주의를 전파하는 행사를 중계하느냐는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

여성단체 대표들은 사회적 지위가 남다른 사람이 많아 MBC에서도 그런 항의를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럴 때 구사대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이병훈 당시 MBC 드라마국 PD였다는 것이다. 사장실로 호출받아 올라간 이 PD가 중재에 나서면 어느새 분위기는 봄눈 녹듯 풀어지고, 웃음이 넘치는 자리가 되면서 항의는 유야무야되곤 했다는 얘기다.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눠 본 사람이라면 이 일화가 결코 전설만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사실 그의 전설은 현재진행형이다. 44년생이니 올해 64세. 현역 드라마 PD 가운데 최고참이지만 촬영장에서도 젊은 연기자들과 수시로 대화하고, 돌아서선 휴대전화 문자를 주고받는 참신한 감각을 유지한다. ‘대장금’ 때만 해도 현장 스태프는 “산 위에서 촬영할 때도 감독님(이병훈 PD)보다 앞서 올라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며 그의 체력에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스태프·출연진과 밤새 술잔을 기울이는 호걸형 PD가 아니면서도(그는 30년째 금주 중이다), 현장을 휘어잡는 힘이 정평 나 있다.

많은 배우가 “옛 말투 대사가 어려워서 사극을 못한다”고 할 때 과감하게 현대어 대사를 도입해 사극의 새 바람을 일으켰고, 그런 가운데서도 발성이 만족스럽지 않은 배우는 주인공이라도 일대일 과외를 하는 열정을 보여 왔다. ‘이산’의 주인공 이서진도 이 ‘과외’를 피해 가지 못했다.

지금은 온 국민이 다 아는 사극의 대가지만 그라고 해서 MBC 입사 이후 사극만 연출해 온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청소년 드라마 ‘제3교실’이나 ‘수사반장’의 연출자 명단에서도 그의 이름을 볼 수 있다.82년 이정길이 어사, 임현식이 시종 갑봉이, 무술인 안호해가 호위무사로 나온 ‘암행어사’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이어 ‘조선왕조 500년’은 그에게 ‘사극의 대가’라는 칭호를 줬다. 특히 ‘임진왜란’ 편에서는 주위의 예상을 뒤엎고 당시 코믹 연기자로 인기 높던 김무생을 이순신 역에 기용해 큰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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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신수길 역에 정진이라는 새 인물이 돌풍을 일으켰던 바로 그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90년대, 그가 드라마국장일 때 MBC는 ‘드라마 왕국’이란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이 시기 MBC에서는 ‘질투’ ‘사랑을 그대 품 안에’ ‘마지막 승부’ 등 시대를 리드하는 트렌디 드라마가 쏟아져 나왔다. 97년에서야 일일연속극 ‘세 번째 남자’로 연출에 복귀한 그는 98년부터 ‘대왕의 길’ ‘허준’ ‘상도’ ‘대장금’ ‘서동요’, 그리고 ‘이산’까지 여섯 편의 대작 사극을 연출했다.

왜 사람들은 그의 사극에 열광했을까. ‘허준’을 연출하던 당시 이 PD는 왜 허준을 주인공으로 했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이 관심 있는 건 누가 왕이 됐느냐 말았느냐 하는 게 아니라 건강·돈·음식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과연 그는 의원 허준을 주인공으로 한 ‘허준’을 히트시킨 뒤 거상 임상옥을 주역으로 한 ‘상도’를, 또 수라간 음식 이야기인 ‘대장금’을 만들었다.

그리고 최인호 원작 소설 제목을 그대로 쓴 ‘상도’ 외에는 ‘허준’ 이후 네 편의 작품 제목에 모두 주인공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이건 ‘이병훈 사극’의 중심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재갑 전 MBC 드라마국장은 “영웅 아닌 인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보여 주는 데서 감히 누가 따를 수 없는 깊이가 있다”고 평했다. 그의 주인공들이 온갖 고초를 이겨내며 성공에 이르는 이야기들은 보는 이에게 롤 플레잉 게임을 연상시키는 스릴을 선사했다.

이병훈 PD는 ‘이산’의 종영과 함께 “딱 한 작품만 더 하고 이제 연출은 그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김지일 전 MBC 드라마국장은 “아마 실록을 뒤져 가며 작품을 만드는 정통 사극 연출가로는 그가 마지막 인물이 되지 않을까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특히 ‘사극 1인자’ 자리를 다퉜던 김재형 PD가 최근 SBS-TV ‘왕과 나’를 연출하다가 건강 악화로 중단한 터라 이 PD의 은퇴설이 더욱 안타깝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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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을 방송계에서는 흔히 '왕PD'라는 칭호로 부르곤 합니다. PD중의 왕이기도 하고, 수많은 사극을 통해 왕 역할의 배우들을 수도 없이 다뤘다는 얘기기도 하죠.

어린시절 이분의 사극인 '암행어사'나 '조선왕조 500년'을 보고 자란 세대에겐 이분의 명성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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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는 암행어사 이정길. 그리고 오른쪽의 '갑봉이' 임현식은 이후 이병훈 감독의 사극에 빼놓지 않고 출연하는 핵심 인물로 성장합니다. 뭐 이때부터 아무 재료 없이 몸만 있어도 시청자들을 웃음 속으로 몰아넣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죠.

하지만, 정작 어렸을 때 저를 감동시킨 것은 왼쪽에 서 있는 호위무사인 상도 안호해의 포스였습니다. 정규 연기자가 아니어서 대사는 한회에 한두마디 정도였지만, 오히려 그런 말없음이 믿음직스럽게 여겨졌죠. 특히 입을 열어 어사에게 말을 건넬 때면 '나이리(이상하게도 이 분은 '나으리'라는 말을 그렇게 발음했습니다)!'라는 남자다운 저음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이 분은 지금 뭘 하시는지 참 궁금합니다.

이 '암행어사'의 인기를 잡기 위해 KBS 2TV에서는 백일섭 주연의 '포도대장'이라는 드라마까지 만들었지만 원조 '암행어사'를 잡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 바람에 당시 사극에선 칼잡이들이 수시로 등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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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국장 역임으로 현역을 떠나 있던 이 분이 사극연출가로 다시 주목받게 된 건 아무래도 '허준'의 공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허준'에서 함께 작업을 했던 최완규 작가의 힘을 무시할 수 없죠.

두 사람의 공로는 한국 사극에 '경합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든 걸로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자, '허준', '대장금', '이산', '주몽'의 공통점은 뭘까요. 바로 '경합'입니다. 어떤 단체든 왕좌든 뭔가의 후계권을 놓고 주인공들이 대결을 펼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주변 인물들이 팀을 이뤄 격돌합니다.

게다가 이 '경합'이란 실력본위의 대결일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과 집안을 등에 진 경쟁자와 맞선 주인공이 오로지 실력 하나로 영웅이 되는 것, 시청자들에겐 이보다 재미있는게 없겠죠.

이런 일련의 정형화된 구도를 처음 설정한 것이 바로 이병훈-최완규 콤비의 '허준'입니다. '허준'이 본격적인 인기를 얻는데에도 전광렬과 김병세가 벌인 닭에다 침놓기 대결이 지대한 공로를 했죠. (아 물론 그 말고도 수많은 경쟁이 펼쳐졌죠.^^) 그 뒤로 이 두 분이 관계한 수많은 드라마들이 '경합'으로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했습니다. 사극은 아니지만 이 경합 구도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드라마 '식객'의 크레딧 자막에도 '크리에이터 최완규'라는 이름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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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병훈 감독님을 볼때마다 느끼는 건 참 젊다는 겁니다. 뭣보다 마음이 젊으시죠.우연히 이 글로 고민하고 있을 때 '이산' 출연을 마친 박은혜를 만났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물었습니다.

나: 감독님이 문자를 자주 보내신다면서요.
박: 네. 전화보다 문자를 더 자주 하세요.

나: 어떤 때 보내시던가요?
박: 야단칠 때, 칭찬할 때, 말로 할 걸 거의 문자로 하세요. 그리고 굉장히 특이해요.

나: 어떻게요?
박: 문자 자판도 그 연세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치시구요, 10대처럼 보내요.

...

나: 10대 처럼이라니?
박: 구어체 말투에 이모티콘까지 엄청나게 섞어서 보내세요. 처음 받아보는 사람은 감독님이 보낸거라고 믿지 못할 정도에요.




흐음. 상상이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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