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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도 또 어딘가에서 '한국인 최초로 007 영화에 출연한 배우 릭 윤...'어쩌고 하는 얘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얘기가 안 나올때가 됐는데 싶었지만 뭐든 한번 잘못 알려지면 끝이 없더군요.얼마전 2006년 개봉된 '강적'의 리뷰를 이쪽 글로 옮겨왔는데, 거기에 연결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시작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007 영화에 출연한 사람은?


 영화 퀴즈. 한국인 중 최초로 007 영화에 출연한 배우는 누구일까?

온 세상이 월드컵 판(주=이 글이 처음 쓰여진게 2006년이라는 점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인데 무슨 뜬금없는 질문인가 하실 분도 있겠지만 잠시 머리를 써 보시기 바란다. 물론 <다이 어나더 데이>의 릭 윤이나 윌 윤 리를 꼽았다면 실격이다. 그렇게 쉬운 문제면 내지도 않았다. 만약 이 문제에 오순택이라는 답을 댔다면 당신의 잡학도도 만만치 않다.
오순택은 지난 1974년 007 시리즈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제임스 본드를 돕는 홍콩의 영국 정보요원 입 경위 역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의 본드는 로저 무어였고, 악당 역할은 전문 드라큘라 배우로 유명한(이제는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이라는 쪽이 더 알기 쉬운) 크리스토퍼 리가 맡았다.

필자는 이번 주초 영화 <강적>의 시사회에서 깜짝 놀랐다. 악의 거두인 황회장 역으로 오씨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올해 70세인 오씨는 지난 59년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도미한 뒤 100편에 달하는 할리우드 영화와 TV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한국 영화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강적> 촬영장에서도 오씨의 '정체'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조민호 감독과 박중훈 정도였던 것 같다. 조민호 감독은 "첫 작품인 <정글주스>에 출연했던 재미 배우 김만(79년작 <전우가 남긴 한마디>로 올드 팬들에겐 친숙한 이름이다)씨의 소개로 오씨에게 출연을 제의했다"고 말했다. "노역 배우 풀이 제한된 한국 영화계의 테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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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화 <뮬란>에서 아버지 목소리를 맡았던 오씨는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금세 '아아'하고 알아볼 만한 얼굴. 마이클 베이의 <진주만>에 야마모토 제독 역할로 출연한 일본계 배우 마코와 함께 할리우드에서는 대표적인 동양인 배우로 꼽힌다. TV에서도 <미녀삼총사> <에어울프> <맥가이버> 등 추억의 외화들에 골고루 등장했고, 필자에게는 지난 82년작인 TV 미니시리즈 <마르코 폴로>에서 쿠빌라이 칸에 대항하는 남송의 재상 양저 역을 맡은 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현재 서울예대 연극과 석좌교수로 재직중인 오씨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한국 영화의 제작 현장을 이해해야 할 것 같아 출연하게 됐다"며 "출연 조건이 '수업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막상 해 보니 생각같지 않더라"며 웃었다.

박중훈과 오순택, 한국이 낳은 할리우드 배우 두 명이 함께 출연하는 영화 <강적>이 22일, 월드컵 열풍과 정면으로 대결에 나서지만 이를 홍보하는 수많은 목소리 속에서도 오씨의 그림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영화계가 할리우드에서 41년간 현역 배우로 활동했던 그의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도움은 차치하고라도, 모처럼 고국 영화에 출연한 노배우에 대한 예우가 이 정도라는 것은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산 경험이야말로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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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택은 자신을 가리켜 '할리우드에 진출한 두번째 한국계 배우'라고 못박아 말합니다. 첫번째 배우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인 필립 안이라는 것이죠. 필립 안은 <킬 빌>에서 빌 역할을 맡아 요즘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데이비드 캐러딘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시리즈 <쿵후>에서 캐러딘이 연기한 케인의 사부 역을 포함해 거의 200여편의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는 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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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택의 출연작 중에는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파이널 카운트다운>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미 항공모함 니미츠호가 이상기류에 휘말려 진주만 기습 직전의 북태평양으로 시간이동을 하는 내용이었죠. 여기서 오씨는 니미츠호 함재기에 맞서다 포로가 되는 일본 제로전투기 조종사 역으로 출연합니다. 오씨는 "한국 사람 역할로는 출연할 만한 작품이 없었다. 이제 우리 나라도 잘 살게 됐으니 괜찮은 역할도 생길 텐데..."라며 허허 웃더군요.

오씨는 자신의 대표작을 <미저리>의 캐시 베이츠와 공연한 독립 영화 <Home of our own>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모든 사람들은 그의 대표작을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라고 부릅니다. 이 영화는 홍콩-태국 등 동남아를 무대로 한 영화라서 친숙한 배경이 많이 등장합니다. 특히 이 영화에 나오는 악당들의 근거지는 태국의 유명한 휴양지 푸껫의 팡아만에 있는 실제 지형으로, 지금은 '제임스 본드 섬'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경력을 가진 배우의 한국 영화 데뷔가 너무 조용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참 아쉬웠습니다.  한동안 잊혀졌던 정창화 감독에 대한 재발견도 이뤄지는 시대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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