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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 모두 모델이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합니다만(굳이 말하자면 세번째 대통령의 모델 선정은 너무 노골적입니다), 아예 생각 않는게 보기에 편합니다. 주된 평가는 잔잔하고 따뜻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인데, 정치 드라마건 로맨틱 코미디건 드라마의 강도는 매우 약합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아주 옅은 커피라서 숭늉인지 커피인지 잘 분간이 안 가는데 어쨌든 커피라니까 커피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입니다.
1. 세 대통령 모두 개인적인 고민을 갖고 있습니다. 노년의 김대통령은 이미 잘 알려진대로 244억원짜리 로또에 당첨되면서 고민이 시작됩니다. 아직 젊은 홀아비 차대통령은 연애 문제와 장기 이식 문제로 갈등에 빠집니다. 마지막으로 성공한 여성 한대통령은 자신에 비해 영 수준이 떨어지고 사고뭉치인 남편이 고민거리입니다.
2. 또 세 대통령은 동시에, 우리 사회가 봉착하고 있는 세 가지 문제 해결을 놓고 고민합니다. 김대통령은 과거사 청산과 갈등 해결, 차대통령은 대일-대북관계, 한대통령은 땅값과 부동산 투기 해결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이런 이중의 구조는 장진 감독의 작품에서 흔히 나타납니다. 1은 코미디적인 장치와 구성을 말하고, 2는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작가로서 감독의 목소리입니다. 1을 위주로 한 즐거운 코미디인가 하고 있으면 어느새 등장인물들은 2를 얘기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장진 감독은 1 만을 갖고 깜빡 넘어가게 웃기는 영화를 그리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경우든 2를 추가하는 것이 그의 취향이자 전략이죠. 이 전략엔 장점이 있습니다. 1이 다소 부실하더라도 2는 영화가 지나치게 싸구려(?)로 보이는 것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때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의 영화를 볼 때 진짜 원하는 것은 1인데도, 자신들이 이 영화를 보고 만족하는 것은 2 때문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설득하기도 합니다. 이런 관객들의 다소 이율배반적인 속내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장진 감독은 순수하게 1로만 구성된 작품을 내놓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의 영화에서 2는 1이 확 살아나는데 방해로 작용하곤 합니다. 그가 직접 감독을 맡지 않은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1과 2의 비율이 잘 어우러졌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2가 1을 짓누르고 일어서곤 합니다. 아, 물론 2가 자취를 감췄던 '아는 여자'가 호평을 받은 것도 우연은 아닙니다.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도 2는 자꾸 1을 위태롭게 합니다. 세 개의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이순재가 대통령을 연기하는 첫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이순재라는 탁월한 연기자의 능력 덕분에 2의 딱딱함이 잘 감싸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 유연한 연기자가 아닌 장동건에게 공이 넘어오면 더 이상 영화는 매끄럽게 굴러가지 못합니다. 장동건에게 맡겨진 2는 지나치게 딱딱해서, 그 속을 파내고 1을 넣을 자리를 만들기가 힘들어집니다. 그저 길을 이탈하지 않고 계속 굴러가는 게 다행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물론 장동건이 자기 하나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배우는 아닙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최악의 파트너를 만났습니다. 신은 한채영에게 눈부신 미모와 세계 굴지의 S라인을 내려줬지만 안타깝게도 연기력까지 주지는 않았죠. 긴장을 풀어 줄 둘 사이의 관계에서는 아무런 화학적 반응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흔히 어떤 연기자들을 보고 "제발 국어 책좀 그만 읽으라"고 불평을 하곤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조차도 아쉽습니다. 국어책을 또박또박 읽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마지막의 한경자 대통령은 가장 불리한 입장에 놓였습니다. 누가 봐도 2는 분명한데, 이 경우에는 1도 2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사안은 분명 코미디의 재료가 되어야 할텐데 한대통령의 경우에는 1이 되어야 할 것이 '사회 안에서 성공한 여성이 겪어야 할, 내조와 외조의 문제'라는 2가 돼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코미디는 사라지고, 세번째 에피소드에서 관객은 시계를 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 영화는 '잔잔하긴 하지만 그냥 볼만한 영화'라는 정도의 평은 얻을 만 합니다. 그런데 실제 본 사람들의 평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살짝 실망 쪽으로 기우는 건 왜일까요. 그건 이 영화를 보러 간 관객의 대략 2/3 정도는 '대통령 장동건의 가슴뛰는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즉, 홍보단계에서 이 영화는 마이클 더글러스의 '대통령의 연인'이나 '러브 액추얼리'에서 영국 총리 휴 그랜트의 구애 스토리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영화인 양 포장됐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영화에서 그런 걸 기대할 수는 없더군요.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장동건과 한채영 사이에선 사실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갑돌이와 갑순이 수준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첫번째 에피소드가 설득력이 있어도 뭔가 성공을 기대하긴 힘들어집니다. 그렇다고 영화에 뚜렷하게 나쁘게 볼만한 대목이 없기 때문에 굳이 악평을 들을 일도 없습니다. 어쨌든 '착하디 착한 영화'인 건 분명합니다.
발을 구르며 '야, 이거 정말 재미있는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에 이 영화는 살짝 부족합니다. 대다수 관객들의 평이 '너무 밋밋하지 않아?'와 '장동건 잘생겼더라' 사이에서 맴도는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장동건이 나온 '박중훈 쇼'도 재미있게 보신 분이 있었을테니 이렇게 잘라 말하는 건 좀 무리일 수도 있겠군요. 그냥 '절반은 성공'이라고 하는게 낫겠습니다.
P.S. 최근 현대가 대통령전용차를 납품하기 전까지 한국 대통령은 벤츠 방탄차를 써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BMW가 등장하더군요. 이것도 P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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