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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의 역사를 가진 동춘 서커스가 해체를 선언했다는 얘기를 듣고 쓴 글인데, 어느새 '해체는 없다'는 새로운 소식이 떴습니다. 일단 수원시가 상설 공연을 할 수 있는 부지를 무상으로 대여하기로 하는 등 각지로부터의 관심이 급한 불을 끄게 했다는 얘깁니다.

지난달 말, '마지막 공연'을 전제로 진행된 공연은 동춘서커스 역사상 가장 홍보가 잘 된 공연 중 하나였을 겁니다. 동춘이 아직 존재하고 있는지조차도 까맣게 잊었을 사람들까지도 '해체' 기사를 보고 '아, 아직도 열심히들 하고 있었구나'하고 생각했을테니까요. 하지만 들리는 말로는 그 공연에도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누구나 '동춘' 얘기를 하면서 유행처럼 '태양의 서커스'를 반찬으로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냥 그런 식의 단순한 비교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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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커스

2세기 초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의 풍자시에는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포기한 다음부터, 우리는 단 두 가지에만 목을 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빵과 서커스(panem et circenses)'라는 구절이 나온다. 당장 달콤한 복리와 오락에 혹해 너무 쉽게 민주주의를 포기한 민중에 대한 비판이다. 이미 이 시기 로마에선 각종 기예나 신기한 동물 쇼, 광대놀이 등 우리에게 익숙한 요소에 전차 경주까지 합쳐진 대규모의 서커스가 성행하고 있었다.

중국에서도 기원전 108년 한 무제가 수많은 해외 사신들을 초빙한 가운데 백희(百戱)라는 이름의 대형 서커스 쇼를 펼친 기록이 있다. 2세기 초 장형(張衡)이 쓴 '이도부(二都賦)'에 동해황공(東海黃公)이나 어룡만연(魚龍蔓衍)처럼 구체적인 연희의 제목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이미 상당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거의 2000년간 인류를 즐겁게 해줬던 서커스는 20세기 중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위기에 놓였다. 산업사회의 성숙과 함께 등장한 TV와 영화, 프로 스포츠 등 다양한 볼거리와 맞서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84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동춘 서커스가 경영난 끝에 오는 11월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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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84년 창단한 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는 서커스가 결코 시대에 뒤진 오락이 아님을 입증해냈다. 이들은 기존의 볼거리에 음악과 조명, 의상과 스토리 등 현대적인 요소들을 가미해 관객의 발길을 돌려세우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창단 이후 지금까지 200개 도시를 돌며 9억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내년에도 20개의 서로 다른 공연을 온 세계에서 펼칠 예정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상하이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으로 꼽는 상하이 서커스(上海雜技)도 유서 깊은 중국 기예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기는 하나 사라져가던 이 연희가 재건된 것은 1994년, 아크로바트 쇼 '금색서남풍(金色西南風)'이 크게 성공한 뒤의 일이다.

런던 웨스트엔드의 뮤지컬 역시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가 손을 잡기 전까지는 사양 시장으로 취급됐다. 어떤 장르도 그 역사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끊임없이 시장의 변화를 주시하는 변신의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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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는 주브날(Juvenal)이라고 불릴 것 같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Decimus Iunius Iuvenalis)는 16편의 정치 풍자시(satire)를 썼습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빵과 서커스'가 나오는 10번째 작품입니다.

사실 유베날리스의 시대는 로마의 혼란기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정 초기, 5현제 시대로 이어지는 안정기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베날리스는 대중이 '빵과 서커스'에 눈이 멀어 민주주의를 포기했다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고민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권력자들이 던져주는 '양식'과 '오락'에만 취해 길들여졌다는 얘깁니다.

이 시기의 서커스는 지금의 서커스와는 좀 다릅니다. '서커스'라는 것이 거대한 공연장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고, 각종 기예나 동물 쇼, 광대 놀이처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서커스의 요소 외에 검투사의 싸움이나 전차 경주까지 포함된 초대형 버라이어티 공연이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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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동안 면면히 내려오던 서커스가 어떻게 위기를 맞았는지는 이미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몰락의 길을 걷던 서커스라는 장르에 태양의 서커스라는 새로운 조류가 등장하며 이를 모방한 수많은 '현대적 서커스' 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서커스가 그렇듯, '현대화된 서커스' 또한 모두 성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태양의 서커스'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것 역시 그냥 되는 건 아닙니다. 쉴새없이 새로운 요소와 도전이 실현되고 있고, 그 동안 쌓아올린 자본력과 노하우로 정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중의 취향이란 변덕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동춘이든 누구든, 혹시라도 정부 당국이 나서면 결과는 너무나 뻔할 겁니다. 해외 연수를 통해서든 자료 분석을 통해서든 '태양의 서커스'를 모델로 한 개혁이 이뤄지겠죠. 하지만 과연 그런 모방이 얼마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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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함께 웨스트엔드의 황금기를 연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는 "우리가 처음 무대에서 쇼를 짤 때만 해도 뮤지컬은 돈 버는 쇼가 아니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언젠가 우리 쇼로 이 공연장을 꽉 채우고 말겠다"는 열정 뿐만 아니라, 그 열정을 실현시킬 수 있는 창의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떤 장르든 공연 예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는 '우리의 애환이 담긴 장르를 살려야 한다는 동정'이나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한 공무원들의 문화 상품 기획서의 구색 맞추기 항목'이 아닙니다. 바로 이 열정과 재능이죠. 그렇지 않다면 어떤 지원도, 어떤 동정도 저절로 관객을 몰아다 주지는 않을 겁니다.

P.S. 쓰고 보니 '신문산업'에도 해당되겠군요. 갑자기 한숨이. ^



댓글
  • 프로필사진 서창석 생각해보니, 동춘 서커스를 본적이 없네요..

    어쩌면 예전에 본 서커스가 동춘 서커스였을지도..
    그게 84-5년 정도였으니..
    2009.11.17 10:24
  • 프로필사진 송원섭 그때까진 다른 서커스단이 남아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09.11.18 08:05
  • 프로필사진 백발마녀 앙금 동춘서커스라 함은, 혹시 몇 년전에 무한도전 멤버들이 같이 참여해서 불고리 넘기 등등 훈련시켜서 어린이들 앞에서 공연했던 서커스 맞나요? 무한도전에 나왔던 건 '봉춘' 서커스였던가 싶기도 하고... 가물가물 하네요. 2009.11.17 10:33
  • 프로필사진 송원섭 이미 '국내 유일의 서커스단'이 된지 10년은 넘었을겁니다. 2009.11.18 08:05
  • 프로필사진 선우재우맘 80년대 잠실 장미아파트 살떄
    지금 롯데월드 자리에 서커스 천막이 쳐있는걸 보고는
    신기해했었죠.
    겨울에는 땅을 파서 스케이트 장이 있엇구요
    지금은 티켓값 20만원인 '태양의 서커스'가 전부?
    2009.11.17 10:35
  • 프로필사진 송원섭 그래도 그건 기를 쓰고들 보러 가죠. 2009.11.18 08:06
  • 프로필사진 umakoo 예전에 "컨텐츠"의 중요성에 대해 논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J일보였을 겁니다. ^^) 영국이 상공업 쪽에서는 약간 한물 간 이미지가 있지만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등 '스토리'로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하다는 예를 들어 쓰여진 글로 기억하네요. 다른 맥락일지 모르겠으나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탈춤이나 마당놀이가 세계적으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가끔 생각해 봅니다.. 또 이번에 홍길동/전우치 영화도 잘 되었으면 좋겠구요. ㅎㅎ 2009.11.17 10:40
  • 프로필사진 송원섭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겁니다. 2009.11.18 08:06
  • 프로필사진 nohwon 로마시대까지 올라가는 거창한 소재에 주눅들어
    주제가 오히려 약하게 전달된 듯해요^^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고 이곳을 찾게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한데
    송기자님의 독서범위와 양은 실로 어느 정도일지? 그리고 글짓는 능력은 또 얼마나 대단한지.
    놀랍고 부럽고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2009.11.17 10:48
  • 프로필사진 송원섭 음; 사람 간사해지는 말씀입니다. (감사) 2009.11.18 08:07
  • 프로필사진 가을남자 중학교 다닐때 아마 1968년쯤 전라남도 보성에서 서커스를 본적이 있었읍니다. 거기에 고모집이 있어 방학때 놀러갔다가 마침 장터에서 서커스가 들어와 저녁에 가서 보았었지요. 커다란 천막 안에서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것이 천정에 매달린 철봉에서 서있는채로 한바퀴 도는것이었는데 너무 이상해서 아마 신발에 자석이 달렸나보다 하고 생각했었읍니다.
    '존 웨인'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등이 출연하는 '서커스의 세계' 라는 영화를 그 무렵 본적이 있었는데 CC(클라우디아) 가 너무 아름다웠읍니다. 그녀가 나오는 '웨스턴(once upon a time in the west)' 라는 영화도 보았었읍니다.
    2009.11.17 11:10
  • 프로필사진 송원섭 네. 저도 좋아하는 영홥니다. 2009.11.18 08:07
  • 프로필사진 후다닥 어쩐지 저희 세대에게 동춘서커스라 하면 뭔가 촌스러운것
    이란 이미지가 있습니다.(제주위만 그런건가요?)
    태양의 서커스는 저는 보질 못했는데 보고 온 사람들은
    다들 손가락을 추켜세우더군요... ^^
    세상이 자꾸 변하니 사람들의 오락거리도 변하는 거겠지요
    20년전만해도 지금 같은 온라인 게임은 상상도 못했으니
    앞으로 10년 20년후 사람들은 뭘 보고 즐길지 궁금합니다..
    맨마지막 문장에서 기자님의 고민이 물씬 풍겨납니다.. ^^
    2009.11.17 11:31
  • 프로필사진 송원섭 z 2009.11.18 08:07
  • 프로필사진 포도봉봉 아 저도 어렸을때 동네에 동춘서커스단 온다고 온 동네사람들이랑 함께 몰려가 맨바닥에 앉아 구경했던 기억이 나네요^^
    들썩들썩 정말 신났었는데 어느 순간 동춘서커스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네요.. 다행히 해체되지 않고 다시 공연한다고 하니 꼭 다시 가봐야 겠습니다.
    2009.11.17 13:55
  • 프로필사진 송원섭 꼭 그러시기 바랍니다. 2009.11.18 08:08
  • 프로필사진 아자哲民 산업뿐만 아니라 개인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죠.

    더 한숨이 ^^;;
    2009.11.17 14:58
  • 프로필사진 송원섭 zz 2009.11.18 08:08
  • 프로필사진 교포걸 저도 TV산업에 관해서 고민을 하곤 합니다. 이거 웹콘텐트나 게임으로 전업을 해야 하는거 아닌가 하고.

    안그래도 동춘서커스 문닫는다는 글을 얼마전에 읽었는데 지난주말에 노다지란 프로에서 인천에서 하는 외국 서커스 공연을 보여줘서 아니 왜 동춘서커스는 문닫게 하고 외국 서커스를 지원해 하고 엄마께 말하니 동춘서커스 다시 지원한다는 소식이 있더군요. 태양을 포함, 서커스를 아직 한번도 직접 관람을 하지 못했지만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2009.11.17 15:01
  • 프로필사진 송원섭 방송은 그래도 아직 대낮이죠.^ 2009.11.18 08:08
  • 프로필사진 사랑과평화 음...서커스 해체 --> 다시 유지로 번복되는 해프닝을 보며 여러가지를 생각케 하는 군요. 국산품 애용, 돈주고 CD사서 듣기,...그게 옳은 것이지만 옳은것만으로는 왠지 부족했던... 2009.11.17 17:26
  • 프로필사진 송원섭 정말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2009.11.18 08:09
  • 프로필사진 echo 'Ringling Bros. and Barnum & Bailey Circus'라고 코끼리도 나오는 우리가 기억하는 전통에 가까운 서커스단이 일년에 한번정도 저희 동네도 옵니다.
    아이들이 어릴땐 가끔 갔었는데,
    왠지 서커스라 하면 어른들끼리 가긴 좀 머쓱하더군요.
    http://www.ringling.com/

    라디오도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sirius 가 나오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렸죠.

    신문도 뚫으면.^
    2009.11.17 21:50
  • 프로필사진 송원섭 어떤 보도를 보니 sirius가 요즘 투자금 회수가 안되고 '10대 최악의 투자'로 꼽히기도 하던데요.^^ 2009.11.18 08:09
  • 프로필사진 echo 잘못 뚫었군요.^^ 2009.11.18 12:20
  • 프로필사진 still 러브 세리 오래전에 태양의 서커스를 배타고 섬에가서 한번 본적이 있는데 티켓 가격에 놀라고, 꽉차있는 객석에 놀라고, 은근히 쓴 가격만큼 재미있어서 놀란 기억이 납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과 더불어, 그때 그때 변하는 다른세대간의 취향엔, 그저 전통과 이름만으론 부족하다는 예 같기도 하고요.

    얼마전에 나온 COD2는 하루만에 300밀리온이나 벌었다던데, 60불에 몇주, 몇달씩 푹 빠지는 엔터테인먼트에 길들여진 현 세대들이 과연 그런 서커스를 즐기기나 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젠 경쟁력이 부족한 오래된것들, 옛것들을 지키려면 꼭 정부의 개입이 되야만 하나, 좀 씁쓸한 감도 없진 않구요.

    언제 기회가 되서, 베가스간다면 KA나 O정도는 봐줘야 겠네요.

    일간스포츠 화이팅!
    2009.11.18 02:53
  • 프로필사진 송원섭 그저 '신문'은 가도 '뉴스'는 가지 않는다, 정도..^^ 2009.11.18 08:10
  • 프로필사진 초록누리 저 어렸을때 서커스 공연이 들어오면 천막앞에서 길게 줄을 섰던 기억이 나네요....
    아는 이웃분이 퇴로에 서있는 동춘서커스에 관한 글 올려서 읽었는데 안타깝더라고요.
    2009.11.1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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