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드라마가 갑자기 풍성해졌습니다. SBS TV '제중원'은 최초의 양의 병원을 그리는 사극+메디컬 드라마로, MBC TV '파스타'는 레스토랑을 무대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하나인 공효진이 주역으로 나선 코믹 터치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라, 저는 KBS 2TV '공부의 신'을 닥본사했습니다.
'공부의 신'은 잘 알려진대로 미타 노리후사의 일본 만화 '꼴찌 동경대가다'를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도 '드래곤 사쿠라'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꽤 인기를 모으기도 했죠. 이미 이 일본 드라마는 국내에서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어쨌든 일본이나 한국이나, 서울대나 동경대나 비슷한 상황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보니 상당히 정서적으로 통하는 면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아, 드라마에서는 서울대라는 이름을 피해 천하대라는 이름을 썼죠.
첫 방송이 나간 뒤로 두 군데의 시청률 조사기관에서 한쪽은 '제중원', 다른 한 쪽은 '공부의 신'을 1위에 내놓을 정도로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더군요.
이 드라마에는 수없이 많은 관전 포인트가 있겠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유승호와 이현우입니다. 물론 출연 시기가 겹치지는 않았지만 두 배우 모두 월화드라마 부동의 강자였던 '선덕여왕'이 끝나기 무섭게 '공부의 신'으로 옮겨 탔죠.
알려진대로 유승호는 춘추 역을, 이현우는 유신의 아역을 맡았습니다. 초반 시청률을 견인하는데 이현우의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큰 역할을 했다면 유승호는 춘추 역으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춘추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공부의 신'은 본래 유승호가 연기하는 백현 역에 초점이 한껏 맞춰져 있기 때문에 유승호 팬들은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유승호로서는 '선덕여왕' 때 못 다 푼 주역의 한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죠. 다만 라이벌이 있다면 같은 학생들이 아니라 스승 김수로가 될 거라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겁니다.
스토리라인을 살짝 살펴보자면 이렇습니다. 일거리 없는 3류 변호사 강석호(김수로)는 어느날 주위 주민들의 골치거리가 되어가고 있는 '똥통' 병문고교를 정리하는 일거리를 맡습니다. 하지만 사실 병문고 출신이던 강석호는 이 학교를 어떻게든 일으켜 보려는 야심을 품죠.
그래서 하루빨리 학교를 정리할 생각 뿐인 쇼핑마니아 이사장 마리(오윤아)를 꼬드겨 1년간 천하대(물론 서울대를 말합니다) 입시 특별반을 운영해 다섯명의 합격생을 내면 학교를 훨씬 좋은 조건에 다른 운영자에게 넘길 수 있다고 설득합니다. 전인교육을 주장하는 교사 수정(배두나)은 강석호에게 학교를 입시학원으로 만들 셈이냐고 반발하지만 그럼 대안이 뭐냐는 말에 머쓱해집니다.
그리고 반항아 백현(유승호), 엄마가 술집을 하는 풀잎(고아성), 백현을 서방으로 모시는 현정(티아라 지연), 대기업 임원인 아버지에게 반감을 가진 찬두(이현우), 고깃집 아들로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봉구(이찬호) 등 다섯 아이들이 천하대에 가기 위한 특수훈련에 들어갑니다.
'80일만에 서울대가기'의 열풍이 보여주듯, '공부'와 '명문대'는 한국 학생들과 학부형의 천형과 같은 존재입니다. '서울대가 밥 먹여주냐'고 애써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밥 먹여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를 나왔다'는 것이 그저 성적이 좋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서울대에 진학한다는 건 두뇌 외에도 여러가지 면을 복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일단 제도와 시스템에 순응하려는 마음가짐이 있다는 것, 또 높은 성취 동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고, 천재보다는 부지런함을 요구하는 입시 제도상 최소한 목표가 있는 상태에서 일정 기간 이상 자신을 억제할 수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기존 질서에도 동화되기 쉽고, 타인의 말을 흘려 듣지 않으며, 무엇이 중요한 부분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이밖에도 객관식 시험문제에 맞는 사고방식은 다양한 의견 가운데서도 어떤 것이 최대 다수의 의견인지를 빠르게 파악하는 데에도 적당합니다. 물론 단점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과 겹쳐집니다. (뭐 이런 얘기는 그냥 이 정도로.)
아무튼 이 드라마/만화/일본 드라마/의 1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변호사 강석호(김수로)의 일장 연설입니다. "너희같이 공부도 못하고 머리 쓰는게 귀찮은 놈들은 평생 남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살 뿐이다. 왜? 항상 제도나 조건은 똑똑한 놈들이 만들기 때문이다. 그놈들이 고깝고 이 사회에 불만이 있으면 천하대를 가라. 가서 룰을 만드는 사람이 돼라."
이 말을 듣는 사람이 10대라면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 구구절절 맞는 말입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죠. 아, 물론 현실에서는 여기에도 토가 계속 달립니다. 인성을 무시한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냐, 서울대는 아무나 가냐, 어차피 돈 많고 과외 많이 하는 강남 부유층 아이들이 서울대에도 가장 많이 가는게 정상 아니냐, 요즘은 로스쿨 때문에 돈 없으면 변호사도 못 된다... 등등.
드라마에서도 이런 반론이 등장하지만 이건 현실이 아니라 드라마이기 때문에, 초현실적인 비법이 등장합니다. 그걸 미리 말하는 건 드라마의 재미를 깎는 부분이니... 그냥 보시면 압니다. 아무튼 그리 현실적이진 않지만, 재미는 있을 겁니다.
그리고 뭐라고 부정하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생활수준의 향상을 꾀하는 데 결국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공부라는 것 역시(로또는 그리 효율적이지는 않죠^^) 맞는 말인 건 분명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공부를 하느냐겠죠.^^
첫회를 봐선 유승호의 반항아 연기는 꽤 그럴싸 합니다. 할머니와 철거될 건물에서 둘이 사는 가난한 집 학생 치고는 너무 귀태가 난다는게 문제긴 하지만...^^ 이현우는 아직 출연 분량이 적어 뭐라 말하기 힘들 상황입니다.
'괴물'의 고아성이야 이미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고, 티아라의 지연 - 한때 리틀 김태희라고 불렸죠 - 이 얼마나 연기에 적응하는지가 꽤 볼거리일 듯 합니다.
어디까지나 이 드라마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맥을 잇는 '외인구단' 형 드라마입니다. 루저들에게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길을 열어주고 현실을 돌파하게 해 준다는 내용이기 때문이죠. 자연히 그 지도자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해집니다.
아무튼 김수로의 박력은 첫회 제대로 작렬. 드라마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더군요. '울학교 E.T'에서 교사 역을 연습한 게 큰 도움이 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김수로의 카리스마에 묻히지 않으려면 유승호도 꽤 노력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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