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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추노'가 드디어 끝을 맺었습니다. 중간 중간 너무 눈에 띄는 낚시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하는 드라마는 오랜만인 듯 합니다.

'추노'의 가장 큰 힘은 남자들의 아드레날린을 들끓게하는 짤막짝막한 대사 사이 사이에 적절한 유머로 긴장감을 풀어 주던 천성일 작가에게서 나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치러진 백상예술대상에서도 '추노'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각본상을 따낸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일 겁니다.

물론 '추노'의 설정에도 살짝 억지는 있습니다. 일단 배경을 인조 때로 잡아 소현세자와 원손 석견 이야기를 주요 테마로 잡고 여기에 주인들을 죽이러 다니는 노비 패거리 이야기를 덧붙인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 않았나 합니다. 물론 그때라고 그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단언하긴 힘들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회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분명 실제 역사의 진행과는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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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에서 가장 큰 역설은 대길의 묘 위로 흐르는 송태하의 후일담 나레이션입니다. 여기서 송태하는 인조의 죽음과 효종의 즉위, 그리고 석견의 복권을 얘기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실제 역사와는 정 반대로 얘기한 부분이 있습니다.

"...인조가 승하하고 세자 봉림대군이 즉위하니 이가 바로 효종이다. 효종 6년인 1655년을 끝으로 도망노비를 쫓는 노비추쇄는 중지되었다. 다음해, 석견은 귀양에서 풀려난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석견이 효종에 의해 귀양에서 풀려나고 왕족의 지위를 회복한다는 내용은 이미 지난번 포스팅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1655년에 노비 추쇄가 끝난다는 주장은 현실과는 정 반대입니다. 실제 역사에서 1655년은 노비 추쇄가 끝나는 해가 아니라, 효종이 노비 추쇄에 본격적으로 나선 해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그 이듬해에 석견이 귀양에서 풀려난 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그건 4년 뒤인 1639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1655년, 효종과 신하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보시겠습니다.


효종 14권, 6년(1655 을미 / 청 순치(順治) 12년) 1월 27일(임자) 1번째기사

(전략)상이 이르기를,
“어제 장례원(掌隷院)이 경기의 노비를 살펴 아뢴 것을 보니, 어린 것까지 모두 3백 구(口)뿐이었다. 시노비(寺奴婢)는 어찌 낳은 것이 없는가?”
하고, 또 하교하기를,
“경기 화량(花梁)을 옮겨 들여보내어 한 진을 만들고, 또 해서의 변보(邊堡)를 옮겨서 한 진을 만들고, 본부의 속오(束伍)로 한 진을 만들고, 시노(寺奴)로 한 진을 만들어, 모두 네 진을 만든다. 들어가기를 바라는 자는 들여보내고 바라지 않는 자는 베를 거두어서 모집하여 들여보내는 군졸에게 주면, 폐단이 없이 일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호조 판서 이시방이 아뢰기를,
“각사노비안(各司奴婢案)에 등록된 자는 19만인데 신공(身貢)을 거두는 수는 2만 7천뿐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접때 영돈녕 김육(金堉)이 한가히 노는 사람들에게서 베를 거두려 하였다. 이 일은 참으로 어려운데도 또한 하려 하였다. 19만의 노비에게서는 어찌 그 신공을 죄다 거두어 군수(軍需)를 보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정이 으레 행해야 할 일을 행하지 못하여 나라의 형세가 날로 줄어드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는가. 따로 도감(都監)을 세워서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원두표가 아뢰기를,
“추쇄관(推刷官)을 정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추쇄관을 차정(差定)한 뒤에 꼴찌에 해당한 자는 사율(死律)로 논하라. 명나라 태조(太祖)는 뭇 신하 중에서 죄를 범한 자는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다. 국가가 어찌 한낱 추쇄관을 죽이지 못하겠는가.”
하고, 또 이르기를,
“이제 어느 관원으로 추쇄를 맡게 할 것인가?”
하였다. 원두표가 아뢰기를,
“음관(蔭官) 또는 문관(文官)으로 하되 삼조(三曹)의 낭관(郞官)인 자로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고, 심지원이 아뢰기를,
“장례원·형조가 맡되 이조를 시켜 극진히 가리게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고, 대사헌 김익희(金益熙)가 아뢰기를,
“신의 생각으로는 형조·장례원은 맡을 수 없겠습니다. 따로 도감을 설치하고 어사(御史)를 보내야 하겠습니다. 빨리 결단해야 하고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람들이 경의 이 말을 비웃고 욕하겠으나, 이제 경의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후련하다. 추쇄는 모두 대사헌의 말대로 시행하되 대신 한 사람이 통괄하여 살피는 것이 옳겠으니, 우상이 맡게 하고 어사는 명관(名官)을 차출하여 보내라. 국가에 이익이 있다면 내가 모발이나 피부같은 것을 아끼지 않겠다. 분의(分義)가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대사헌의 말은 자기를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명예를 바라는 것도 아니며 국가를 위한 것이다.”
하고, 이어서 이조 참판 홍명하(洪命夏)에게 이르기를,
“추쇄관은 명관을 차출하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조가 중벌을 받을 것이다. 사노비는 달아났거나 죽었거나 잡탈이거나를 막론하고 해원(該院)을 시켜 사실대로 초록(抄錄)하여 들이도록 하라. 또, 연미(燕尾)와 갑곶에는 첨사(僉使)를 두고 그 나머지 두 곳에는 만호(萬戶)를 두도록 하라.” (후략)


길고 복잡하다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655년은 북벌 사업에 매진했던 효종이 국가 재정과 노동력의 확보를 위해 문서상 기록된 19만의 공노비 가운데 사라진 자들을 찾아 오게 한 해인 것입니다. 또 이 일은 중요한 일이므로 기존 관서에서 다루기보다는 특별 기관을 설치하고, 중앙 관료를 뽑아 추쇄관으로 임명해 그 일을 독려하게 하고, 그중에 추노 실적이 가장 뒤지는 자는 사형으로 다스린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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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견을 살려낸 효종을 성군으로 묘사하려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노비 추쇄에 대한 한 효종은 결코 우호적이거나 진보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효종 이후의 왕들은 혹독한 노비 추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숙종은 추노 과정에서 노비를 함부로 죽인 관료를 엄벌했고, 영조 때에는 추쇄관의 폐해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았고, 정조는 마침내 추쇄관을 혁파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추쇄관이 없어졌다고 해서 추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정조가 남긴 기록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근대적인 평등관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썼던 글입니다.

제목: 추노

1684년 12월 13일의 조선왕조실록은 숙종의 진노를 전한다. 지평(持平)을 지낸 정제선(鄭濟先)이 살인죄로 사형 위기에 놓이자 신하들이 일제히 선처를 요구한 데 대한 분노였다. 사헌부의 정5품 벼슬인 지평은 품계는 그리 높지 않지만 정승도 탄핵할 수 있는 요직이었고, 정제선은 급제 3년 만에 이 자리에 오른 30대의 유망한 관료였다.

그런 정제선이 살인범으로 몰린 것은 도망친 노비를 잡아 주인에게 돌려주는 추노(推奴) 때문이었다. 정제선은 연행 사신단의 일원이던 1683년, 달아난 노비(叛奴) 2명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다른 노비 2명과 양민 1명까지 잡아들였고 술에 취해 이들을 무리하게 곤장으로 다스리다 죽음에 이르게 했다. 공권력 남용에 대한 논란이 벌어진 끝에 정제선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유배됐다.

하지만 숙종은 이때 정제선을 사형시키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24년 뒤인 1708년에도 숙종은 “정제선 뒤로도 양반 사대부 가운데 살인죄로 사형당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이는 사대부가 법을 두려워하여 죄를 짓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처벌하는 자들이 꺼렸기 때문인가?”라며 법 적용이 공평하지 않음을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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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TV 인기 드라마 '추노'가 25일 마지막 회를 맞았다. 드라마의 배경은 16세기 인조 때지만 실제 추노의 기록은 조선 500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도망친 노비의 체포와 환원이 당시 신분질서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왜란과 호란을 잇따라 겪으며 신분제도에 혼란이 오자 효종 때에는 아예 추노를 전문적으로 행하는 추쇄관이 등장한다.

그러나 추쇄관의 폐해가 심해지자 정조는 이를 혁파하고 노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식구와 나이를 헤아려서 사고파니 짐승이나 다를 바 없고, 아들 손자가 이리저리 갈라지니 토지나 매한가지다. 양반과는 혼인도 할 수가 없고 사람 축에 끼지 못하니 하늘과 땅 사이에 갈 곳이 없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 그렇게 만들 이치가 있을 것인가(天之生人, 豈亶使然哉). 가련한 마음은 한이 없다.”(홍재전서)

추노와 관련된 기록을 살필수록 신분의 격차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에도 인권과 법 적용의 형평성을 고민하던 깨인 통치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18세기 조선이 문물의 중흥기를 맞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끝)


마지막 부분 정조의 말은 홍재전서 12권에 나오는 '노비인(奴婢引)'이라는 글에서 따 온 것입니다. 조금 더 길게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존재가 노비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기자의 팔조지교는 그것이 악을 징계하자는 일시적 조처에 불과했던 것인데, 역대로 그것을 변혁하지 않고 그대로 인습해 왔기 때문에 대를 물려 가면서 남의 천대와 멸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식구와 나이를 헤아려서 사고팔고 하니 짐승이나 다를 바 없고, 아들 손자로 전해 가면서 이리 갈라지고 저리 갈라지니 토지나 매한가지며, 오랑캐 비슷하게 반드시 어미를 우선하고, 아비 성을 따르지 않고 종[奴]으로 성(姓)을 삼는다. 양반과는 혼인도 할 수가 없고 이웃에서도 사람 축에 끼워 주지 않으니, 높고 두꺼운 하늘과 땅 사이에 갈 곳 없는 자와 같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 그렇게 만들 이치가 있을 것인가. 약간의 인정을 베푼 열성조의 사랑으로 인해 비록 몸은 보존하고 살 곳 정해 살고는 있지만 그들에 대한 불쌍한 마음은 한이 없다.
내가 국정에 바쁜 여가를 이용하여 두 쪽 다 똑같이 편리한 방법이 없을까를 고심하다가, 우선 노비 규정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대신 고용(雇傭)의 법을 만들어서 대물림은 하지 않고 자신에게만 한하도록 조처를 취하고, 그에 관한 방략(方略)을 먼저 정하여 대금을 주고 드나들게 하는 데도 다 일정한 수를 제한하도록 하는 것으로 뜻을 같이한 한두 신하들과 함께 그 영(令)을 발표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오로지 명분만을 숭상하는 편인데, 만약 양민과 천민을 한데 섞어서 반벌(班閥)이 분명하지 못할 경우 상대를 무시하고 덤빌 자가 틀림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어미는 남의 부림을 받는데 자식은 도리어 주인에게 항거한다거나, 작은 역(驛)과 보(堡)에 부릴 하인이 없다거나, 궁한 선비 집에 땔감을 마련할 길이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 가지 폐단은 없어지지만 한 가지 폐단이 다시 생길 염려가 있으므로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구제하지 않을 것인가. 추쇄관(推刷官)을 혁파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늘의 명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단지 작은 절목 내의 일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이 평민과 섞여 사는 것과 본분을 지키는 일이 어그러지지 않고 병행될 수만 있다면 단연코 결행할 것이다. 지금 공의 주고를 인하여 이와 같이 내 뜻을 약간 밝힌다.

생각할수록 정조는 참 대단한 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점들을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추노'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좀 의문입니다. 아울러, 최고 권력자의 지성이 그 시대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숙-경-영 시대를 거치며 조선 후기의 문화가 꽃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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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허공의 활로 하늘의 해를 쏘는 대길의 엔딩은 참 멋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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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세미놀즈 엔딩은 카우보이비밥의 마지막과 비슷한 느낌인듯하네요
    저만 그런가요?

    추노...이제 못봐서 어쩌나요...
    2010.03.27 10:01
  • 프로필사진 tianjin77 많은 분들이 그렇게 보시더군요. 대길 스파이크라고 불리기도...ㅎㅎ 2010.03.27 11:12
  • 프로필사진 송원섭 ..그렇군요! 2010.03.2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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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3.30 04:27
  • 프로필사진 ▶◀skywalker 123!

    도망가면 대길이한테 잡힐것이야!
    2010.03.30 12:47
  • 프로필사진 tianjin77 마지막 나레이션은 황철웅이 한것같은데요^^ 2010.03.27 11:16
  • 프로필사진 송원섭 두 배우가 목소리가 비슷해서 그런가.. 잘 모르겠네요. ;; 2010.03.29 10:40
  • 프로필사진 언년이 황철웅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황철웅이었다고 확신합니다 2010.03.29 14:34
  • 프로필사진 ▶◀skywalker 500원 투자했습니다. 황철웅 같네요. ^^ 2010.03.30 17:17
  • 프로필사진 이지연 추노의 작가는 각본상을 받을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매회 훌륭한 액션과 함께, 뭔가모를 가슴저린 연민, 거기다 해학까지, 인간의 희노애락이 다 표현되어 있는 멋진 종합선물세트였지요.
    특히나 양반들이 문자속을 자랑하며 읊어댈 때 거기 곁들어진 자막은 어찌나 재미나던지...ㅋㅋㅋ
    엔딩으로 가는 중간엔 역시나 비장함을 강조하기 위해 약간 늘어진듯한 부분들도 있었지만 마지막에 대길이가 허공을 향해 활쏘는 장면은 이제까지 드라마가 뭘 표현하고자 했는지를 다 드러내 주는 멋진 앤딩이었던것 같습니다.
    2010.03.27 18:07
  • 프로필사진 송원섭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라는 80년대 영화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2010.03.29 10:40
  • 프로필사진 뭉크 기생 둘에 관한 얘깃거리가 좀 더 있을줄 알았는데 끝내 뭐 없더군요. '그분'으로 나왔던 인물에도 (어차피 실패겠지만) 큰 뭔가가 한번은 있을줄 예상했었는데 좌의정따까리였다니..;; 여러 출연진의 호연과 임펙트있는 음악에 고맙게 시청 잘했습니다. 2010.03.27 21:45
  • 프로필사진 송원섭 저도 기생 부분은 아쉽더군요. 2010.03.29 10:41
  • 프로필사진 리얼리스트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추노의 리뷰가 드디어 나왔군요.. 그리 오래 기다린 만큼 증말 멋들어지게 잘 나왔네요^^

    정조대왕에 대한 부분이 참 놀랍습니다. 저는 사실 정조가 굉장히 과대평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산'류의 철저하지 못한 고증의 정조 미화가 꽤 불쾌하기도 하구요. 이유인 즉슨...

    (1) 정조가 위대한 개혁군주였으나 급사하면서 꿈을 못 피웠다고 하는데, 조선왕조 역사상 정조만큼 오래 집권한 왕도 드물다. (집권기간 20 여년).. 이 오랜 집권기간 동안 조선의 '통치제도'가 경제인프라 국방인프라가 획기적으로 개혁된 것도 없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그 오랜 집권기간 동안 뭘 한 것인가???
    (참고로 수원성 건축은 정말 뻘짓이다. 가장 중요한 국경 군사시설, 신무기 개발은 방치되 있었다)

    (2) 정조실록을 보면, 그는 집권 초반기 권력이 셀때 적극적인 보복에 나섰다. 실지로 껄끄러운 서인 세력이 많이 짤렸고, 남인들이 대거 등장.. 근데 이 보복이 사대부 계층에 엄청난 불신감을 일으켰고, 집권 중후반기는 이를 수습하는데 엄청난 에너지를 썼다. 자신의 보복조치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도 입증하지 못하자, 친위세력인 남인들도 같이 자르면서 수습에 나섰다. 물론 이 과정은 너무나 길고, 지루한 탁상공론의 소모적인 정치싸움이었다.
    (정조실록에 통치제도 개혁에 대한 논쟁은 생각보다 매우 적다. 결국 아버지의 비명횡사에서 시작된 트라우마를 끝까지 극복하지 못했다.)

    (3) 정조는 지독하게도 골수 성리학 주자학자였다. 그는 중세 주자학의 고정관념에 매우 충실한 군주였다. 실학이나 북학파 같은 혁신사상에 대한 관심은 매우 적었고, 죽는 순간까지 유교경전의 재해석에 집착했다. 정약용 같은 사람들을 중용했으나, 그들의 실학적 관점은 관심이 없고, 사서삼경 경전정리에만 힘쓰게 했다.
    (문체반정은 대표적인 퇴행적 증세다. 심지어 조선문명 최고의 꽃인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심한 탄압을 받았다.)

    (4) 무엇보다 정조의 최악의 업적은, 그가 조선을 몰락으로 이끈 '세도정치'를 사실상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는 세자의 장인인 안동김씨 김조순에게 죽기전 상당한 권력을 넘겼고, 집권기간 내내 그를 괴롭혔던 사대부 보다, 안동김씨가 대거 집권하도록 막후조종을 한후 죽었다. 정조가 아니었다면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시작될수가 없었다. 조정의 외척에 대한 견제시스템을 정조가 무력화 시킨후 죽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순조, 헌종, 철종에 이르는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로 조선은 멸망의 길에 오른다.)


    ㅎㅎ 뭐 정조대왕에 대한 지나친 과대평가는 재고되어야 된다고 보지만, 주인장님의 홍재전서 인용은 신선한 관점을 줬습니다... 땡스^^
    2010.03.28 05:40
  • 프로필사진 송원섭 그 20여년이 원대한 미래 계획을 위한 투자였다고 생각하면 긴 재위기간에 비해 한게 없다고 말하기는 좀 부당하지 않을까요? ^ 그리고 (4)를 보장한 사람은 아무래도 정조보다는 영조였다는 생각이.. 2010.03.29 10:44
  • 프로필사진 드라마니아 님의 조선후기 역사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조선 후기 영.정조의 업적이란 것도 님이 말씀하신대로
    성리학적 사고의 틀내에서의 조그만 업적인거죠.
    제대로된 개혁을 이루었거나 개혁의 기초라도 닦았다면
    일제에게 그렇게 허망하게 당하진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2010.04.02 13:42
  • 프로필사진 리얼리스트 내 그렇슴다..
    특히 세종대왕과 정조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는데요.

    세종대왕은 학문 중에서도 "경서(사서삼경" 보다는 "사서(역사서)" 에 몰입한 왕이었죠. 세종은 특히 각종 역사서에 나오는 제도나 정책에 대한 사례들을 조선의 현상황에 적용하는데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경연등의 학술모임에도 '자치통감'같은 역사서를 강독하자고 사대부들에게 권유하곤 했죠. 당시 사대부들은 사서는 경서보다 수준이 낮으니 사서육경에 집중하자는 얘기들이나 하구요.. 쩝..하여간 골통들~~

    정조는 반대입니다. 그는 형이상학적, 사변적인 사서육경에 깊이~~깊이~~ 빠지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었고... 사서육경 해석능력에서 큰 자부심이 있었고, 자신이 사대부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는것을 즐겼습니다.

    조선왕조의 모든 실록들 중에서 정조실록이 가장 지루하고, 길고, 모호하고, 공리공론 중심인 것이 그 결과입니다. 사대부들과 정책 얘기를 토론하다가,,, "답답한 경들은 시경을 읽었는가? 시경 몇장의 무슨 구절에 대한 주자의 해석은 어쩌구 ~~ 저쩌구~~" 이렇게 시작하면 사대부들하고 토론하다 날 샙니다...ㅋㅋ

    영정조 시기가 "문예부흥"인것만은 사실이죠.. 그치만 "성리대전의 문예부흥"일 뿐이고, 통치시스템은 개차반으로 방치되 있었슴다. 정조의 아들인 순조떄부터 조선이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세종대왕이 이룩한 "조세, 국방, 농업정책"으로 조선이 200년동안 번성한 것과는 큰 대비가 되죠..
    2010.04.06 07:18
  • 프로필사진 -_- 엔딩이 참 멋지긴 한데 정확히 뭘 뜻하는지 잘 모르겠던데요

    대길의 저 장면보다 초복이와 은실이의 대사가 더 인상깊었음
    2010.03.28 16:32
  • 프로필사진 송원섭 인간이 태양을 소유하는 일은 앞으로도 없겠죠.^^ 2010.03.29 10:45
  • 프로필사진 노숙자 작가는 노비 추쇄가 가장 심했던 효종의 역사를 바꿔 버림으로서 그 시대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려는 의도가 있었던게 아닐까요. 아님말구. 2010.03.28 16:39
  • 프로필사진 송원섭 시청자들이 사실을 반대로 안다고 해서 지적이 될까 싶습니다만. 2010.03.29 10:45
  • 프로필사진 노숙자 송기자님처럼 역사를 잘 알고, 의문을 갖게되는 사람들에겐 다시금 그 시대를 더듬어 보는 기회가 되지요. 그리고 OST에 바꿔라는 곡이 있는데 모든걸 다 바꾸고 싶어하는 작가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지요. 제 생각이 맞다면 대단한 작품성입니다. 천성일작가에게 한번 질문 부탁 드려요. 2010.03.30 09:27
  • 프로필사진 nohwon 역시 정조 임금님은 '대왕'이시군요.
    왕가에서 낳고 자라신 분이 민초들의 팍팍한 삶을 그토록 깊이 헤아리신 것을 보면요.


    P.S 백상예술상 시상식에서 심사위원 소개할 때 송기자님 봤습니다 ㅎㅎ
    오 심사위원님!^^
    2010.03.28 18:01
  • 프로필사진 송원섭 ^(*&)(*)(**_ 2010.03.29 10:45
  • 프로필사진 언년이 그렇군요~ 쫓고 꽃기는 등장인물들의 매회 긴박한 상황과
    노비들의 반란, 가슴 저린 사랑등...정말 오랜만에 보는 너무나 멋진 드라마는 천성일 작가의 멋진 대본과 뛰어난 연출, 음악, 카메라, 연기까지...모두 맞아 떨어진 덕분이라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이런 오류가 생겼네요...이 드라마를 보고나니 정조의 고뇌가 뼈아프게 느껴지고, 정조대왕의 유전자를 다시 복제할 수수만 있다면 이 시대에 멋진 군주로 다시 모시고 싶습니다..추천을 안 할 수 없는 글이라 추천하고 갑니다
    2010.03.29 00:13
  • 프로필사진 송원섭 감사합니다. 2010.03.29 10:46
  • 프로필사진 BRix 기본적으로는 송태하가 항상 쫓기는 입장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송태하가 도망에 성공하게 되면, 황철웅을 비롯한 좌의정의 세력들이 어려움에 빠지는 형국이니, 심정적으로는 쫓기는 입장입니다. 그 때문에 황철웅은 송태하를 쫓는게 아니라 쫓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상황은 대체 누가 쫓아가는 것이고, 누가 쫓기는 것인가?"

    각각의 인물들은 쫓고 쫓기면서 선과 악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이 비극의 원흉은 누구 한사람이 아닌 "거지같은 세상" 입니다. 아무래도 이 사건의 결말을 위해선 "거지같은 세상은 바뀌었다." 라고 하는 것이 가장 깔끔하지 않았을까요?
    2010.03.29 07:23
  • 프로필사진 송원섭 물론 그렇습니다. 그래도 '노비 추쇄가 사라지기까지는 아직 100년이 더 걸려야 했다'고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2010.03.29 10:46
  • 프로필사진 무명씨 철지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적 해석이지만, 노예/봉건적 예속관계에서 자본주의적 계약에 기초한 임금노동으로의 전환을 생각했다는게 조선시대 임금으로써는 정말 진보적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2010.03.29 09:46
  • 프로필사진 송원섭 Z 2010.03.29 10:46
  • 프로필사진 운치 서양의 노예들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면서
    정작 우리네 노비들에 대해선 아무 생각없이 살아온 제자신을
    반성하게 한 드라마였어요.
    개, 돼지도 아닌 사람을 어떻게 사고 팔고 하냐고,
    내 부모가, 내 자식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언젠가는 코믹하게 한마디 해주겠거니 기대했는데
    끝까지 진지모드 공형진씨,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신 것 같던데요.
    지붕킥 이후 그나마 간간이 본방사수 프로그램이였는데
    이젠 진짜 뭐 보고 살지?
    2010.03.29 10:21
  • 프로필사진 송원섭 '개인의 취향'과 '신데렐라 언니'의 각축전과 '동이'가 궁금합니다. 2010.03.29 10:47
  • 프로필사진 J 스타일 재밌게 본방사수한 드라마인데 기자님께서 포스팅을 안해주셔서 기다렸었는데 끝날무렵부터 올려주신글들 잘 읽고 추천 꾹 하고 갑니다.

    정조가 남긴 글을 읽자니..한 시대를 이끌어간 군주치고도 참 훌륭한 임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네 역사에 그런 혜안을 가진 지도자들만 있었다면 오늘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전 마지막회에선 업복이가 궁궐쳐들어가는 씬 이후론 별로 재밌지는 않던데요.. 솔직이 기생들이랑 중국사신이 한 건 해줄 줄 알았는데.. 좀 실망스럽더이다. 초복이랑 아이의 씬 보면서는 바람과함께 사라지다 마지막 장면 비슷한 느낌도 들면서 좀 뜬금없다는 생각도 들구요..

    하지만 암튼 "전반적으로다" 재밌게 본 드라마고, 대길, 업복, 방화백 등(선호도 순) 열심히 노력한 연기자들에게 박수를 전합니다!!!
    2010.03.29 10:53
  • 프로필사진 ecotar 대길은 왼손 오른손으로 모두 활을 쏠 수 있는 스위치 슈터...? 2010.03.29 11:08
  • 프로필사진 송원섭 언제 오른손으로 쏘는 장면이라도 나왔나? 2010.03.30 10:14
  • 프로필사진 후다닥 추노 본방사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재방송은 꼭 챙겨 보는 편이었는데
    마지막회가 꽤 재미있었습니다..
    마지막회 보면서 대길의 캐릭터가 베가본드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010.03.29 13:37
  • 프로필사진 ▶◀skywalker 아니 그럼 처음부터 보셨다는 말씀? 2010.03.30 12:46
  • 프로필사진 박태은 저기요 여기 글쓴이요 본인도 오류가 많군요 16세기가 아니고 17세기입니다 그리고 1655년의 4년뒤면 1639년 이아니라 1659년이겠죠 2021.02.12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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