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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이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새 코너 '나는 가수다'에 쏟아졌습니다. '대박이다' '감동이다' '이소라 노래 듣다가 눈물이 났다' '가수들이 이렇게 노래 잘 하는 지 몰랐다' 등등. 모처럼 새로운 볼거리가 나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참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시다시피 '나는 가수다'는 일곱명의 가수들이 출연해 관객 평가단 앞에서 미션을 수행하고, 그 미션에 따라 한번에 한명씩 꼴찌는 탈락하는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그 첫회에 등장한 가수들이 이소라 김범수 백지영 정엽 윤도현 박정현 김건모 등 7명이라는게 사실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런 가수들이 왜 이렇게까지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첫회에 나온 일곱 가수들은 자신의 대표곡을 하나씩 불렀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진지하게' 가수들의 노래에 집중한 시청자들은 찬탄을 아끼지 않았지만, 가수들의 얼굴에는 긴장이 역력했습니다. 그리고 방청석의 청중 평가단(몇명인지는 모르겠습니다)은 1등 박정현부터 7등 정엽까지 순서를 매겼습니다.

물론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청중들의 반응에 따라 1등부터 7등까지 순위를 매기는 것이 가혹하다? 사실 가수들은 매일, 매번 노래를 할 때마다 순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숫자로 표시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음 속으로 점수를 매깁니다. 그 순위가 음반/음원 판매량이 아닌 노래 실력으로, 그것도 현장에서 노래를 들은 사람들의 채점으로 매겨진다는 건 그리 불합리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한명씩 떨어진다? 어차피 우리나라에서 가장 노래를 잘 한다는 7명 중에서 떨어지는 것 쯤이야 별 문제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7등'이라고 생각하면 못 버틸 이유도 없죠. 더구나 자기 노래로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네. 가수들의 각자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건 아마 첫 회가 마지막일 겁니다. 다음부터는 특정 미션에 대한 수행으로 경쟁이 이뤄질 전망입니다), 슈퍼스타K 처럼 미션을 수행하는 형식으로 진행될테니 그게 반드시 '진검 승부'라고 볼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 우리도 가수들 나오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지. 그런데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만 하면 시청률이 안 나와. 어쩌겠어? 방송이란게 시청률이 나와야 먹고 사는 건데. 그러니까 이렇게 서바이벌 형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팍 끌어야 한다고. 어차피 가수라는게 매일 무대에 설 때마다 남보다 잘 하려고 경쟁하는 거 아닌가?"


아마 이런 식으로 제작진은 가수들을 섭외했고, 가수들도 이런 논리에 동의해서 출연에 임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안타깝기도 합니다.



박정현이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데뷔 14년차. 미국에서 왔다는 땅콩만한 키의 가무잡잡한 소녀 가수가 입을 열었을 때, 허공에 음표가 뿌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시 이름은 리나 박. 한국어 실력은 자신이 부르는 가사를 다 이해하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였지만 아무튼 '목소리를 가지고 노는' 그 솜씨는 실로 경이적이었습니다.

당시 소속사는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최고의 남녀 가수는 우리 회사에 있다'며 큰 자부심을 내세웠습니다. 바로 임재범과 박정현을 가리키는 말이었죠. 듀엣 '사랑보다 깊은 상처'는 이렇게 이뤄진 거였습니다.

14년 뒤. 그 박정현이 방송에서 '실력에 비해 참 안 알려진 가수'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 가요계의 현실입니다.


방송사는 '대중음악을 살려 보자'는 대의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가수들은 그 대의를 높이 사서 자신들의 체면이 깎일 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 프로그램에 동참했다고 합니다.

사실 그 대의는 좀 의심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상업방송' SBS도 유지하고 있던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이 '공영방송' MBC에는 아주 오랫동안 없었습니다. 전통을 자랑하던 '수요예술무대'는 어느새 폐지됐고, 최근에서야 자회사 케이블 TV에서 부활됐습니다.

대중음악을 살리겠다는 MBC의 그 '대의'는 케이블 TV M.NET이 총력을 기울여 '슈퍼스타K'를 만들자, 곧바로 100억원대의 제작비를 투입해 '위대한 탄생'을 만들어 물을 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위대한 탄생'은 이제 '슈퍼스타 K'를 뛰어넘는 시청률을 과시하며, 시즌 2 제작을 앞두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이 새로 기술을 개발해 시장을 개척해 놓으니 대기업이 압도적인 자본력과 유통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그 시장을 채우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과연 '대중음악계의 숨겨진 재능'을 찾는 것이 목표였을까요, '케이블 TV 따위가 감히...'가 목표였을까요.

'노래 자랑 프로그램을 케이블 TV만 하라는 법이라도 있냐. '슈퍼스타 K'도 '전국 노래자랑'과 '아메리칸 아이돌'을 보고 개량한 프로그램 아니냐'면 할 말은 없습니다. 비슷한 프로그램을 한다고 다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위대한 탄생'이 성공하고 있는 것은 '위대한 탄생' 제작진이 심혈을 기울여 재미있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위대한 탄생'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라고 한 MBC 경영진의 의사결정은 그닥 페어플레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이제 '위대한 탄생'은 이번 시즌을 마치면 바로 다음 시즌 준비로 들어갈 겁니다. 시점상 '슈퍼스타 K'의 시즌 3와 '위대한 탄생'의 시즌 2가 거의 정면으로 대결을 벌일 수도 있을 겁니다. 올 연말이면 국내 스타 서치 프로그램의 대명사는 '슈퍼스타 K'가 아니라 '위대한 탄생'이 되어 있을 지도 모릅니다.




다시 '나는 가수다'로 돌아갑니다. 가수들이 그런 불이익을 감수해 가면서 이런 프로그램에 나오게 된 건 그만치 '프라임 타임 대에 가수들이 나가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게 어디냐'는 얘기가 절실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로 한국 TV에서 '가수'들의 설 자리가 없었다는 것이죠.

(그런 '대의' 속에서도 '나는 가수다' 제작진은 계속해서 개그맨들을 투입해 '노래 듣는 분위기'를 흔들어 놓더군요. 지나치게 많은 가수들의 인터뷰 삽입, 특히 노래를 끊고 들어가는 중간 화면 등은 그렇게 '음악'을 강조한 프로그램에서까지 꼭 이렇게 해야 하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많은 음악계 인사들과 가수들은 '"그래도" 가수들이 프라임 타임에 노래를 하고, 사람들이 그 노래를 관심있게 듣게 해 준 게 어디냐'며 환영의 뜻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되고야 만 상황이 참 허탈할 뿐입니다.

앞으로 대결이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겠지만, 일곱 가수가 노래 경연을 펼친 첫회를 봐선, 내세우는 '대의'와 프로그램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과의 차이에 대한 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 합니다.



P.S. 그리고 '가수'들이 방송에서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은 방송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청중도 절반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방송에서 안 틀어 줘서, 방송에서 출연시키지 않아서 몰랐다고 변명하지 맙시다. 음반이며 음원을 사지 않고, 콘서트도 가지 않은 채, 가수들이 예능 프로그램에밖에 나오지 못하게 한 건 바로 '시청자 여러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랜만에 가수들이 열심히, 진지하게 노래하는 게 보기 좋았다'고들 합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가수들은 거의 항상 '진지하고 열심히' 노래를 불렀습니다.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최근에도 그랬습니다. 다만 아주 아주 오랜만에, 그들이 노래하는 광경을 당신이 '진지하고 열심히' 바라본 것 뿐입니다.

P.S.2. 첫 방송이 나간 뒤로 이소라와 박정현의 음원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고,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이 '진짜 노래'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네. 분명히 '나는 가수다'는 일면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절대 "'나는 가수다' 따위의 나쁜 프로그램은 당장 때려 치우라"고 외치는 글이 아닙니다. 현재의 가요계에서 그나마 이런 프로그램이 순기능을 수행한다면, 그 역할도 인정합니다. 다만 이소라나 박정현 같은 가수들이 이렇게까지 해야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다는 게 참 안타깝고, 그런 의미에서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나'라는 한탄일 뿐입니다.

대체 어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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