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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 감독의 '굿바이 평양'을 보고 왔습니다. 양영희 감독은 재일교포. 제주도 출신(양씨라는 데서 일단 짐작 가능하죠^^)의 아버지는 조총련의 핵심 간부였고, 특히 북한 사회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인정받아 김일성과 함께 사진 촬영까지 한 인물입니다. 그런 아버지는 차별이 심한 일본에서 세 아들을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고, '자랑스러운 조국'에 10대 후반의 세 아들을 보냅니다.

막내인 양영희 감독은 세 오빠가 하루 아침에 집을 떠난 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고, 세 오빠의 이후 삶을 지켜보면서 아버지를 원망도 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영희씨는 90년대 중반부터 2004년까지 북한으로 가족을 방문하러 갈 때마다 찍었던 영상을 편집해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만들었습니다.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은 전편과 속편의 성격이라기보다는, 같은 시기와 같은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되 조금 자제한 이야기와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로 나눠집니다. '디어 평양'을 만든 죄(!)로 양 감독은 북한 입국을 금지당했고 여기에 대한 반발(?)로 '굿바이 평양'을 내놨습니다.

영화는 1995년, 다섯살 난 선화가 맛나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선화는 양 감독의 둘째 오빠가 두번째 결혼에서 낳은 딸입니다. 양 감독은 이것이 선화와의 첫 만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그 전에는 방문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됩니다. 1991년생(어쩌면 1992년생)인 선화는 1996년 엄마를 잃고, 1999년 새엄마를 맞습니다(그러니까 선화 아빠는 결혼을 세번 하신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화는 구김살없이 명랑하고 씩씩한 아가씨로 자라납니다. 영화는 곧 선화의 성장사입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던 아기는 엄마의 묘소 앞에서도 방긋 방긋 웃는 아기가 되어 있고, 어느새 학교에서 배운 시 낭송을 하는 어린이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마냥 북한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 속 북한의 모습이, 그동안 '식량난, 꽃잽이, 대량 탈출 가능성'이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만 부각될지 모르지만 영화 속에서 간간이 드러나는 북한의 실상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수돗물은 하루에 두 시간 나오고 수시로 정전이 찾아오는 평양의 아파트(생일 축하를 위해 불을 껐을 때 아버지가 "어, 정전이냐?"고 물으면 다른 가족들은 "아버지도 평양 사람 다 되셨다"며 웃습니다. "영광스런 정전입니다" 하며 까르르 웃는 선화의 대사도 나옵니다), 어머니가 3년만에 닭고기 요리를 해 준다는 조카들, 미키마우스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가는 선화에게 고모(양 감독)가 "이거 신어도 괜찮아? 하고 묻자 "다들 잘 몰라"라고 대답하는 선화, 그 선화보다 머리 하나씩은 작은 선화네 학교의 아이들(선화네 가족이 그나마 평양에서는 살림새가 괜찮은 편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은 양 감독이 들고 있는 카메라가 영 신기한 듯 그 앞을 떠나지 못합니다.



이런 물질적인 빈곤 외에도, 고모가 자꾸만 선화에게 미안해 지는 이유는 여러 군데서 드러납니다. 해외 방문객이 머무는 호텔 식당에서 "먹어 본 게 없어서 고를 수가 없다"며 한동안 메뉴판만 뒤적이던 선화는 고모가 약간 민감하다 싶은 질문을 던지자 "카메라 꺼요"라며 눈치를 살핍니다. 열세살 나이에도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말과 하면 안 될 말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양 감독이 선화에게 보여주는 애착은 오빠들 사이에서 혼자 자라나고 있는 고명딸이라는 공통점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닐 겁니다. 선화를 바라보는 양 감독의 시선에선 자신과 같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던 이 조카가 평양에서 자라야만 하는 데 대한 안쓰러움이 묻어납니다. '디어 평양'이나 '굿바이 평양' 정도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갈 수 없는 나라'가 되어 버리는 그런 나라에서 말입니다.




북한 입국을 금지당한 뒤에도 두 사람 사이에는 편지가 오가고, 선화는 어느 새 영어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고생하다 숨을 거두고, 아버지가 죽기 직전 우울증에 시달리던 큰오빠(선화의 큰아버지)도 생을 마감했습니다. 큰오빠의 아들은 북한의 음악 영재로 자란 듯 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습니다.

양 감독이 담고 싶었던 것은 세 아들의 삶이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심지어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는 데 대한 아버지의 깊은 후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특이한 가족사를 담아낸 '굿바이 평양'의 시선은 건조한 듯 하면서도 따스합니다. 북한과 재일교포, 진실보다는 신화만 요란한 두 사회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라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져야 할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P.S. 아무쪼록 '굿바이 평양'의 공개가 선화나 그 가족의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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