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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 복귀 이후 심상찮은 분위기의 MBC TV '나는 가수다'가 첫번째 미션을 치렀습니다. 박정현이 1위에 올랐고 그 뒤로는 이소라-김범수-임재범-윤도현-김연우-BMK의 순으로 등수가 매겨졌습니다. 의외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차피 등수가 매주 변하는게 정상이고 보면 이변이란 말은 이제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할 듯 합니다.

그리고 이날 방송은 1등은 찾기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가 하위권으로 몰릴 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을 겁니다. 윤도현, 김연우, BMK가 하위권으로 갈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죠.

이건 이 세 사람의 노래 실력이나 당일 퍼포먼스가 나빴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힘들 듯 합니다. 그보다는, 이 세 사람을 제외한 다른 네 사람이, 보다 빠르게 이 미친(?) 경쟁의 룰에 적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바로 '대중의 허영'이라는 기준에 말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영화든 드라마든 노래든 대중문화 장르에서 한 작품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것이 대중적인 것인지, 대중적이지 않은 것인지 쉽게 알아차립니다. 예를 들어 김기덕 감독의 영화와 최동훈 감독의 영화 중 어느 것이 더 대중이 선호할만한 것인지 알아차리는 데에 어떤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가끔은 예외적인 현상이 일어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합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희생'같은 영화가 한국에서 10만명씩 관객들 동원하기도 하고(그리 많지 않은 수처럼 느껴지지만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나라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입니다^^), 비틀즈가 부른 'I'm the walrus' 같은 전위적인 노래가 히트곡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들에 대해서도 사실 간단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대중의 심리 속에 묻혀 있는 허영이라는 동기가 사회적인 분위기나 톱스타의 후광과 결합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가 가끔씩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허영은 '나는 가수다'의 8일 방송에서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사실 가수들은 매일 경쟁을 합니다. 음반이나 음원을 발표하는 것 자체가 거센 경쟁에 몸을 던지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쟁은 상당히 선명하게 결과를 맺습니다. 구매자들이 직접 자기 돈을 내고 그 결과로 순위기 매겨지기 때문입니다.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순위만 매기는 것과, 직접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순위 매김에 참여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입니다.

'나는 가수다'는 다들 아다시피 500명의 청중 투표단이 가수들의 가창을 보고 순위를 매기는 게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내가 들어서 좋은' 것에 투표할까요, 아니면 '내가 보기에 수준이 높은 것 같은' 쪽에 투표할까요. 순수하게 전자라고 보기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의 투표는 다음과 같은 상황에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끔 방송사들은 대중을 상대로 '현재 방송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설문조사로 묻곤 합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현실을 대변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늘 결과가 일정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시대건 시청자들은 그 당시의 TV가 '지나치게 오락적이고', '선정적이며' '저질에다' '억지 웃음을 자아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항상 '수준 높은 시사 보도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싶어 하고',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은 보다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방송을 하다간 방송사가 아마 곧 망하고 말 겁니다.

그리고 8일 방송된 '나는 가수다'의 청중 투표단은 바로 이런 설문조사에 임하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큰 호평을 이끌어 낸 임재범(남진의 '빈잔')과 이소라(보아의 '넘버 원')의 무대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 무대를 본 대부분의 시청자들의 첫 반응은 아마 '우와' 였을 테지만, 이 '우와'가 바로 '우와 좋다'는 아니었을 겁니다. ('저건 뭐지;;' 였을지도..^^)

아마도 이 두 가수가 '나는 가수다'라는 방송 프로그램 없이, 바로 이런 음원을 내놨다면 '좋다'는 반응을 이끌어 내거나, 음원 판매 순위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두 가수의 시도는 매우 매력적이고 신선했습니다. 아마도 평소에 음악 깨나 듣는다는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박수를 보냈을 법 합니다. 하지만 이런 노래가 발표됐을 때 대중에게 환영받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을 겁니다. 그럼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그건 바로 '허영'이라는 동기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대단히 '뭔가 있어 보이는' 편곡과 무대였기 때문입니다. 



이들 두 사람과는 조금 달랐지만 박정현과 김범수는 가장 훌륭한 무기로 이 경기의 룰에 적응했습니다. 말하자면 '평가단에게 더 노래를 잘하는 것 처럼 보이는' 방법을 몸소 실천한 것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최고의 가수들입니다. 하지만 이날 두 사람이 노래 말미에서 보여준 고음의 무력 시위같은 애들립이 과연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느냐는 질문을 던져볼 만 합니다.

고음으로 애들립 넣기, 음 길게 끌기, 일부러 디스토션을 넣기, 더 힘들게 노래하는 척 하기, 더 큰 목소리 내기 처럼 '실제로 노래를 잘 하기' 보다는 '대중을 상대로 노래를 잘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방법들은 실제로 실력이 신통찮은 사람이 써도 꽤 훌륭한 효과를 내지만 진짜 훌륭한 가수가 쓰면 정말 엄청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네. 심지어 김범수나 박정현 같은 가수들이 쓰는 건 정말 반칙이라고 할 수 있죠.^^)




이날 상위에 오른 네 가수와 하위권 세 가수의 차이는 실제 실력과 퍼포먼스의 차이보다는, 누가 더 대중의 눈을 의식한 공연을 펼쳤느냐의 차이라고 - 최소한 제 눈에는 - 보였습니다. 심지어 탈락권에 접어들어 본 적이 없는 이소라조차도 위기의식을 갖고 좀 더 강한 자극을 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김연우와 BMK는 너무 순진하고 안이했다고나 할까요. (아, 이런 룰을 잘 알고 있었는데도 하위권으로 처진 가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런 평가와 이런 무대가 당장 없어져야 할만큼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대중이 겪어보지 못한 음악적인 충격과 자극이 계속 이뤄지다 보면 한국 대중음악의 전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은(물론 아주 조금, 아주 아주 조금입니다만) 있기 때문입니다. 뭐 이런 변화가 이뤄지지 않고, 그 방송 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변화들이 그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물거품처럼 흩어져버린다 해도(사실은 이럴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무의미한 일은 아닐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면 될수록 '실제로 노래를 잘 하는 것'과 '노래를 잘 하는 것 처럼 보이는 것' 중에서 후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 대세가 될테고, 점점 더 가수들이 악에 받친 듯 소리 짜내기 경쟁에 들어간다면 그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을 듯 합니다. 하긴, 세상 밖을 쳐다보면 반드시 가수들만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어느 분야는 안 그럴까요.



P.S. 그런 면에서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박정현이 1등을 차지한 건 사뭇 위안이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P.S. 2. 노파심에서 한마디: 혹시 제목의 '허영'이라는 말이 불쾌하신 분이 있다면, 앞으로 가수들 콘서트도 좀 가시고, 음원도 돈 내고 사서 들으시면 됩니다(아, 물론 '나는 가수다'에 나오는 음원 말고 일반 음원 말입니다). 이미 그렇게 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저 위의 '허영'이란 말은 여러분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위의 '허영'이란 말은 생전 가요 듣는데 돈 한푼 쓰지 않으면서 누가 뭐라면 '돈 내고 들을 가치가 있는 노래가 없다'고 거들먹대는 분들에게 해당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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