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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뜨거웠던 여론이 어느 정도 식은 다음이라 살짝 민망하기도 합니다만, 2주 전에 기고했던 글이 문자로 나오기 전에 블로그로 가져오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SM타운 파리 콘서트와 샤이니의 런던 공연이 화제가 되면서 유럽의 한류가 허상 아닌 실체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유럽 청소년들이 한국 연예인들을 보고 환호하고, 한글 응원보드를 흔든다는 건 정말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간밤에 방송된 SM타운 파리 콘서트 실황. 뭐 예상했던대로이긴 하지만, 유럽 관객들이 한국 가요를 따라 부르며 열광하는 모습은 참 묘한 느낌을 주더군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라 더욱 강렬한 느낌이랄까...



얼마전 주간 '무비위크'에 썼던 글입니다.

프랑스에 한류를 심는다는 뜻:

 생각해보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정훈희가 1975년 칠레 국제 가요제에서 '무인도'를 불러 3위로 입상했을 때 한동안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들은 "정훈희를 아느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나훈아와 조용필, 송창식 등 일세를 풍미한 한국 가수들은 항상 일본 시장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체감하는 인기와 한국 내에서 알고 있는 인기 사이에는 항상 온도차가 있었다. 다소간 과장된 보도들이 너무 앞서갔다는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야, 그 잘 나가는 나라들이 한국 가수(한국 영화, 한국 드라마)에 관심 가질 리가 있냐"는 냉소적인 시선도 한 몫을 했다.

2004년,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폭발적인 붐을 일으키기 시작할 무렵에도 한국인들은 대부분 '설마'라는 입장이었다. 개방만 하면 일본에 먹힌다는 생각으로 일본의 영화, 가요, 드라마를 꽁꽁 묶어 두고 있던 시대라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초기 '겨울연가' 신드롬을 보도했던 기자들은 허풍선이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80~90년대를 거치며 기무라 타쿠야가 주연한 수많은 걸작 드라마나 이와이 슈운지의 영화, 구와타 게이스케나 고무로 테츠야의 음악에 경도되어 있던 수많은 '일류' 팬들에게는 그닥 잘 만든 것 같지도 않은 한국 드라마에 일본 시청자들이 성원을 보낸다는게 참 믿기 힘든 일들이었던 것이다.

최근 파리에서 열린 SM타운 콘서트를 놓고도 많은 사람들이 인지부조화를 경험했다. 미국에도 쉽사리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는 자존심 높은 문화의 나라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평소 무시해 마지 않던 '아이돌'들에게 환호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프랑스의 문화적 자존심이란 지난 세기의 전설에 불과하다. 재미없고 수준높다는 프랑스 영화는 자국 관객들도 외면해 고사 직전이고, 뤽 베송과 그의 추종자들이 만드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액션 대작들이 극장을 지키고 있다. 프랑스 TV의 프라임 타임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르는 '하우스'나 'CSI' 같은 미국 드라마다.


기획사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파리 콘서트의 홍보 효과는 대단했지만, 까놓고 말해 '유럽 한류'는 경제적으로 득 될 바가 별로 크지 않다. 이미 한류 시장은 아시아만으로도 충분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구태여 그 먼 곳까지 간다 해서 부가가치가 더 커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SM 관계자가 "스케줄상 이런 대형 유럽 콘서트는 2년에 한번 이상 힘들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유럽 한류'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건 과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아울러 이 작은 나라에서 전 세계에 팬들이 있는 문화적 지분을 확보하게 됐다는 건 참 대견한 일이긴 하지만, 갑자기 관계 당국이 끼어들어 이걸 행여 '정책적으로 육성'하려거나 하는 시도는 없었으면 한다. 대중문화는 이윤 극대화를 향해 움직이게 되어 있다.

비틀즈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결국 큰 시장을 향한 이동이었을 뿐이다. 영국 정부가 비틀즈의 미국 진출에 무슨 정책적 뒷받침을 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아시아 시장이 포화가 될 정도로 K-POP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 본격적인 미주/유럽 시장 진출이 시작될 것이다.



한가지 더. 이번 파리 콘서트를 계기로 K-POP 팬이 더 늘어나긴 하겠지만 프랑스 청소년의 90%가 '한류 빠순이'가 된 건 결코 아니다. 당연하다. (한국과는 달리)다양성을 존중하고 수많은 취향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한류 취향'이라는 선택 항목이 하나 더 늘어난 것 뿐이다.

비교하자면 이렇다. 프랑스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는 길고도 길다. 이 리스트에 '라이스 와인' 혹은 '사케'라는 항목이 추가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처음 등장한 것 만으로, 그리고 그 항목을 주문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였다. SM의 파리 콘서트는 그 긴 메뉴에 지금 막 'K-POP'이라는 메뉴가 등장한 것에 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끝)


 



파리 SM타운 콘서트 이후에 나온 국내의 부정적인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첫째는 '뭐 그쪽의 내가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금시초문이라고 하더라. 별것 아닌 걸 가지고 침소봉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 그리고 두번째 것은 '해외에서 좀 인기가 있다고 해서, 노예계약이니 뭐니 하는 한국 아이돌의 문제가 모두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BBC나 르몽드는 그런 점을 지적하고 있지 않느냐?'하는 종류입니다.

첫째 반응은 그야말로 한국적인 반응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한국은 좀 작은 나라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성향이 '대세'로 몰리기 쉬운 경향을 갖고 있죠. 뭐가 뜬다 싶으면 전국이 열광하고, 반면 식기 시작하면 삽시간에 싸늘해지곤 합니다. '유럽에 K-POP이 진출했다'와 '일정 정도의 성원을 얻었다'가 '유럽에서 K-POP이 대세다. 에이브릴 라빈보다 소녀시대가 더 인기있다' 'K-POP 모르면 유럽에선 왕따'라는 식으로, 엉뚱하게 해석되어선 곤란합니다. 윗글에서도 강조하고 있듯, '진출해서 크건 작건 일정 지분을 얻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입니다. 싹쓸이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생각은 곤란합니다.

다음, 두번째 반응은 일면 긍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런 말은 어느 분야에서나 옳을 수밖에 없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BBC의 원문 기사 제목은 THE DARKER SIDE OF K-POP(K-POP의 어두운 이면)입니다.

(원문은 http://www.bbc.co.uk/news/world-asia-pacific-13759912 에 있습니다. 시간 절약을 위해서 번역을 해 놓으신 분들 http://tellyoumore.tistory.com/169 이 있네요. 다소 거친 번역이긴 하지만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일단 이런 식의 비판은 어느 분야에서나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한국 자동차 산업의 어두운 이면'은 없을까요? 한국산 자동차는 눈부시게 성장해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큰 힘이지만, 수시로 벌어지는 노조 파업과 가격경쟁력의 문제, 그리고 부품 납품업체에 대한 착취, 아울러 수출가격과 내수가격의 차이로 인한 국내 소비자의 박탈감 등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습니다.

이번 차이코프스키 콩쿨을 휩쓴 '한국 클래식의 이면'은 어떨까요. 젊은 연주자들이 해외 음악제에서 큰 상을 받고 주목을 받으며,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과연 돈을 내고 국내 연주자의 클래식 공연 티켓을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그 많은 음악대학 졸업생들은 음악에서의 성공이 가장 큰 목표일까요? 계속해서 적잖은 기린아들을 배출한 것만큼 국내 클래식 음악의 수준이 높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렇듯 '이면'이 없는 성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음은 비판의 내용입니다. 사실 기사를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노예계약'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설명이 있습니다. '제작사는 투자금을 회수(RECOUP)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초기에는) 아티스트들에게 돌아가는 이익 배분이 적을 수 있다'는 것이죠. 네. BBC 기자는 국내의 어설픈 아이돌 비판자들에 비해 논리적입니다.

(가수와 소속사의 수익 분배에 대한 내용은 예전에 썼던 이 내용을 한번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fivecard.joins.com/500 실제 숫자를 가지고 얘기를 해 보면 일반적인 통념과는 좀 다른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 기사에서 한국 가요 시장에 대해 깊은 이해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이를테면 한국의 음원 가격이 저가인 것은 맞지만, 그때문에 가수나 기획사들이 돈을 못 버는 건 아니죠. 음원을 팔아 얻는 수익의 대부분이 이동통신사나 그들과 관련된 음원 판매 업체로 넘어가고 정작 음원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큰 몫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되었어야 합니다. 한국 시장에서 가수나 제작자가 큰 돈을 벌지 못하는 것(물론 지금도 버는 분들은 꽤 잘 버시지만 어쨌든 외국에 비해 적은 돈)은 어처구니없는 수익 배분 구조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아울러 '노예계약'을 얘기하면서 '한국은 K-POP을 통해 일본처럼 멋진 이미지를 가진 국가로 부각되고 싶어 한다'고 말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한국에서는 동방신기가 둘로 갈라지고, 결국 탈퇴한 멤버들이 JYJ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일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SMAP라 해도 자니스를 벗어나선 존립이 불가능할 겁니다. 가수에 대한 회사의 지배력을 기준으로 노예계약을 말한다면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더 강력한 아이돌 노예계약국가죠. 다른 점을 꼽자면, 한국 아이돌은 아시아를 벗어나 이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고, 일본 아이돌은 여전히 아시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네. 일본 자체가 대단히 큰 시장이므로 그럴 필요가 없는게 맞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의 고무로 테츠야 이후 해외로 진출하려던 수많은 시도가 모두 불발로 끝난 것 역시 사실이죠) 데서 차이가 날 뿐입니다.

'우리가 거둔 작은 성취에 너무 고무되지 말고, 우리가 가진 문제점을 제대로 보자'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누구도 반대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문제점'만을 대단히 큰 것처럼 보고, '남들도 그만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건 사대주의적인 태도일 뿐입니다. 우리가 완벽하지 않은 만큼, 남들도 다소간 문제가 있습니다. 굳이 남들의 이야기까지 예로 들어 가며, 세상에서 우리가 제일 못난 것처럼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못난 짓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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