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슈퍼 에이트(8), 감독 J.J. 에이브럼스, 제작 스티븐 스필버그. 이건 뭐 관객들을 향해 '이래도 안 볼래?' 수준의 무력 시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요소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선수들인 만큼 영화 내용에 대한 노출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더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당대 강호 최고의 낚시왕과 전대 최강의 대마두가 한 편을 먹고 뭔가 보여주려고 한다는데, 이럴 때 정직한 관객의 태도는 '네네 알겠습니다. 봐 드리죠' 하고 고개 숙이고 매표구로 달려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리뷰를 읽어보는 시점은 영화를 보기 전이 아니라 영화를 본 다음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생각합니다. 어떤 영화를 보기 전에 다른 사람의 시각을 참고한다는 건 스스로 영화를 보는 눈을 제한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데다 제작진이 스스로 이렇게 영화에 대한 정보를 꽁꽁 싸매고 있는 경우에는 무리하게 정보를 취득하려 하지 말고 그냥 선입견 없이 보는게 최곱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주 기본적인 얘기부터 하자면, 이 영화는 대략 이런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1979년.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인구 1만2천의 소읍 릴리안. 사고로 엄마를 잃은 중학생 조(조엘 코트니)는 여름방학을 맞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 찰스의 꿈은 영화감독. 이들을 포함한 다섯 친구는 단편 영화 촬영에 열중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동급생 앨리스(엘르 패닝)를 영화에 끌어넣으면서, 이들은 평생 경험하지 못한 충격적인 사건 속으로 말려듭니다.
줄거리는 이 정도만 아셔도 충분합니다(오히려 많이 아실수록 감상에는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만 보더라도, 이런 영화야말로 아주 오래 전부터 스필버그가 전가의 보도를 휘둘러 온 장르라는 것이 쉽게 드러납니다. 그 계보는 아무래도 'E.T'에서부터 시작해야겠죠.
'E.T'에서 리처드 도너 감독의 '구니스'(직접 연출하진 않았지만 이 영화의 원안은 스필버그의 것입니다)까지, 스필버그는 어느날 갑자기 초유의 대사건에 휘말리는 일단의 어린 친구들 이야기를 다루는 데 천부적인 솜씨를 보여왔습니다. 그것은 누가 뭐래도 그가 소년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천재였기 때문이겠죠.
물론 그 '소년의 마음'이 '후크'나 'A.I' 에서처럼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뭣보다 그 '소년의 마음'이 없었다면 '태양의 제국'이나 '주라기공원' 같은 영화는 아예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지금과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됐을 겁니다.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비록 '슈퍼 8'가 J.J 에이브럼스의 주도로 만들어진 영화지만, 그 색깔은 지금까지 에이브럼스가 만들어 온 작품들에 비해 훨씬 스필버그 쪽으로 기울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목에도 있지만 이 영화는 '21세기 판 구니스+E.T' 라고 규정해도 전혀 무리가 없는 작품이죠. 어쩌면 성장기에 두 영화를 보고 자란 에이브럼스가 스필버그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해도 좋을 듯 합니다.
구니스와 E.T를 보신 분들이라면 충분히 짐작하시겠지만 영화는 두 시간 내내 관객들 들었다 놨다 하는 수작입니다. 스필버그적인 낙관이 좀 불편하신 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정도 영화라면 입장료가 절대 아깝지 않다는 쪽에 표를 던지겠습니다.
그럼 아동용 영화란 말인가..하는 생각이 드실 분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가장 크게 공감할 관객은 30,40대 남성 관객이란 생각도 듭니다. 이 사람들이 왕년의 10대 초기를 회상할 때 가장 아쉬웠을 부분을 건드려 주는 영화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뭣보다 그때 꿈꿨음직 한 꿈의 여자친구 캐릭터가 등장하죠.
어느 영화에서도 아역이 연기를 못해 망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이 영화 또한 마찬가지. 영화의 핵심은 여섯 친구들, 그 중에서도 조와 앨리스 역의 두 배우에 몰려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앨리스 역을 맡은 엘르 패닝은 다코타 패닝의 동생이란 점에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다코타가 1994년생, 엘르 패닝은 1998년생으로 네살 차이가 납니다.
외모도 외모지만 이들 자매를 보고 있으면 정말 연기는 뱃속에서부터 몸에 밴 듯 합니다. 아마도 어머니가 임신중에도 계속해서 줄담배를 핀 게 아닐까 하는(...훈제...) 생각을 하게 될 정도입니다. 다코타 패닝을 보았을 때 이렇게 외모와 재능을 타고 난 아이가 있을까 생각하신 분이라면 아마도 이번에 그 업그레이드 버전을 보시게 될 겁니다.
게다가 만 13세에 이미 신장은 1m68. 다코타 패닝의 한계로 꼽히던 신장과 '유아 몸매'도 이미 벗어나 버렸습니다. 한 5년 뒤가 기대됩니다.
(...한국의 고아라는 언제 포텐셜이 터질지.)
P.S.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목의 '슈퍼8'은 필름의 종류를 말합니다. 기존 8mm 필름에 비해 좌우 비율이 개선된 포맷을 말하죠. 가정용 비디오 카메라가 나오기 전까지 홈 무비의 대세는 8mm였습니다. 당연히 이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만드는 영화가 바로 슈퍼 8mm 영화인 것이죠.
스필버그는 1960년(14세), 이미 40분짜리 8mm 영화를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잘은 모르지만 영화 속 1979년의 에이브럼스(영화 속 주인공들과 마찬가지인 13세)도 아마 딱 저런 짓을 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P.S.2. 배경이 1979년이면 스필버그는 이미 1975년작 '조스'로 유명 감독이 되어 있던 시절인데, 영화 속에 스필버그의 개입은 보이지 않더군요(혹시 있다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좀비 영화의 대가 조지 로메로 감독의 이름은 영화 속 '로메로 화학'에 들어 있던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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