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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자격'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참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인지는 모르지만, 매회 볼 때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내의 자격' 10회는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이혼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부분은 이혼한 부부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흔히 한국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이혼한 부부의 모습은 '폭력 남편', '바람피는 남편'과 '폭력 피해자 아내' 또는 '자식새끼 내버리고 튄 화냥년'이라는 아주 전형적인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자격'은 다르더군요. 특히 자녀에게 이혼을 설명하는 부모의 모습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이혼을 맞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아내의 자격'이 다른 드라마들과 어떻게 다른가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10회에서 서래(김희애)는 초등학교 5학년생인 결이를 찾아갑니다. 과연 5학년인 아들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더구나 이렇게 '자식을 버리고 바람나서 달아나는' 경우를 아이에게 어떻게 전할까.

대부분의 경우라면 이런 부모들은 그냥 바로 숨어 버릴 겁니다. 드라마 속에서도 아예 죄책감 때문에 아이와의 관계를 끊는 것으로 그려지죠. 하지만 서래는 아이를 만나 차분하게 설명합니다.

 

왜 엄마와 살 수 없느냐는 질문에 "양육권은 경제력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고... 엄마가 잘못해서"라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아빠 말고 다른 아저씨를 좋아하게 되어서"라는 말에도 결이는 심하게 충격받지 않습니다. 그게 자기가 좋아하는 치과 의사 아저씨라는 데에서야 놀랄 뿐입니다. 이미 초등학교 5학년만 되어도 자신의 부모들이 이혼할 수 있다는 것,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결이는 엄마를 만났다는 사실을 아빠에게 이야기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나혼자 이런 저런 상상 많이 했는데 다 알게 돼서 좋았어요. 다음주에는 엄마 만나러 가고 싶어요."

그런 조숙한 아이에게 서래가 전하고 싶은 것도 "엄마는 너를 버리는게 아니야"라는 한마디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를 떠난다고 아이의 엄마가 될 자격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한국 드라마에서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가슴으로 전하는 여주인공이 지금까지 몇이나 있었을까요.

(사실 '아이에게 말하기'라는 것은 이런 경우의 부모들에겐 고문에 가까운 일일 겁니다. 그걸 잘 알기에 지선(이태란)도 태오(이성재)에게 "딸에게는 네가 저지른 짓, 직접 얘기하라"고 쏘아붙입니다.)

 

또 하나,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이혼의 이유가 불륜' 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수많은 드라마에서는 '바람 피우다 이혼하는' 수없이 많은 커플들이 등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태오-지선 부부가 갈라서게 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부부가 함께 살다가 헤어지는 이유에는 수천만가지가 있다는 것을 넌즈시 보여줍니다.

지선은 두 사람이 헤어지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문득 '강남좌파 이야기'를 꺼냅니다. 이른바 '패션좌파'라고도 불리는 강남 부유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태오가 대학생이던 시절 운동권이었다는 것은 이미 태오의 선배이자 서래 남편 상진의 친구인 진만(현재 국회의원이 되어 있는)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 태오와 캠퍼스 커플이었던 지선 역시 그 영향 속에 있었을 겁니다. 아마도 '동지적 관계'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지금 지선은 강남 한복판에서 상위 1%의 사람들이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학원 강사가 아니라 성공한 경영인으로 변신해 있고, 학원기업을 일으키자는 야망도 갖고 있습니다. 또 '내 딸 만큼은 상위 0.1%로 키워내야겠다'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합니다.

그런 지선 때문에 호의호식하는 것도, 지선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태오에겐 모두 불만입니다. 이것이 어느새 부부 사이를 냉랭하게 만든 것이죠. 그리고 태오에게만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지선도 태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늘 하고 싶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다들 강남 좌파라고 한껏 폼 내고 사는데 이 남자(태오)는 왜 그렇게 못 할까. 화염병 만들던 애들이 빈티지 와인 마시고, 가끔 소탈한 척도 해야 하니까 막걸리도 있는 종류대로 골라 마시고, 다들 그렇게 사는데 왜 이 남자는 그걸 못하나."

이런 불만이 쌓이고 쌓여 결국은 부부가 갈라서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성주 작가는 이혼 이야기의 전개에서도 새로운 장을 열어 보입니다. 지금까지 부부 사이의 위기, 혹은 '불륜'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드라마들은 대부분 '이혼을 하느냐 마느냐'를 정점으로 삼았습니다. '아내의 자격'과 간혹 비교되곤 했던 '애인'에서도 유동근과 황신혜가 연기했던 두 주인공은 결국 고뇌 끝에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막을 내렸죠.

하지만 김희애와 이성재는 16부작 드라마의 10회에서 갈라서 버립니다. 나머지 6회는? 기존의 드라마 진행속도로 본다면 이건 보너스인 셈이죠.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아내의 자격 1부'였던 셈이고, 이제 '아내의 자격 2부'가 제대로 시작할 조짐입니다.

 

물론 서래의 눈물겨운 고생담도 지금부터 시작일 듯 합니다. 태오에게는 동화책에 삽화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로 고생 없이 살고 있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생활을 위해 고기집에서 한밤중까지 불판을 닦는 고된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1회에서는 그런 현실을 태오가 알게 되는 듯 하더군요. 이래저래 차회가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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