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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빠뜨린 것 같은데...하면 역시 빠뜨린게 있습니다. 네. 12월이 1주일 지난 12월 가이드.

 

다행히 아직 유효기간이 지난 볼거리는 없네요. 잘 나가시는 분들은 송년회 날짜가 부족해 두탕씩 뛰기도 하신다던데, 이젠 그냥 마음 편히, 시간 안 되는 사람은 다음달에 본다고 생각하시고, 이런 속세의 번뇌에서 일찌감치 벗어난 분들은 좀 조용하고 따뜻한 연말 보내시면 되겠습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12월의 문화가이드 (2014)

 

12월이야. 1년이 다 갔어. 가슴이 저리지? 이렇게 또 해놓은 것도 없이 한살을 더 먹는다는게 답답하겠지? 그런데 남들도 다 그래. 그건 그냥 원래 그런 거야. 금세 새해가 오고, 또 그렇게 부대끼다가그렇게 인생이 가.

 

쓸데없는 소리가 길었는데, 12월은 온갖 공연이 넘쳐 나는 달이라 볼 거리도 많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별로 그렇지 않아. 아무래도 12월은 한해를 정리하는 고급 공연들이 많이 쏟아지기 때문에 이 칼럼에서 주로 다루는 가격대 성능비 높은 공연은 오히려 부족하기 마련이지. 혹시라도 경제적인 이유로 해외 유명 연주자들이 나오는 으리으리한 공연에 못 간다고 한탄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해. 얼마 전 한 고마운 분의 성의 덕분에 비싼 연주회를 간 적이 있는데, 다시 한번 진리를 확인했어. ‘관객의 수준은 공연장 좌석 가격과 완전히 반비례한다는 것 말이야.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바이올린 솔로의 피아니시모에 딱 맞춰 기침들을 하시는지. 반면 여기서 추천하는 공연들은 실제 공연장에 가 봐도 기분 잡칠 일이 없어. 훨씬 고품격의 만족도를 느낄 수 있다는 얘기야. 믿어도 좋아.

 

지난달에 얘기한대로 12월 들어 갑자기 합창교향곡 공연장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도 그건 이룰 수 없는 꿈이야. 올해 서울시향의 합창교향곡 공연은 2회 모두 매진이거든. 그러니 적당한 DVD를 사서 집에서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1222, 국립합창단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헨델의 메시아를 듣는 것도 괜찮은 대안이 아닐까 싶어. 베토벤 9번 교향곡은 아니지만 어쨌든 할렐루야코러스도 송년 분위기로는 나쁘지 않잖아? 게다가 S석이 3만원, A석이 2만원으로 저렴해.

 

 

 

좀 더 특이한 송년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사람에겐 1231일 밤 8시에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안숙선의 제야 판소리 강도근제 흥보가를 권하고 싶어. 현존하는 명창들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안숙선 명창의 완창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인데다, 공연이 끝나면 국립극장 앞에서 불꽃놀이도 구경할 수 있어. 전석 3만원. 같은 날 열리는 예술의전당 제야 음악회보다는 이쪽을 추천.

 

더 활기찬 연말을 누리고 싶은 사람에겐 딱 맞는 공연이 있어. 국립극장의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1210일부터 111일까지. 지난 30년간 마당놀이라는 브랜드를 유지해 온 손진책 김성녀 국수호 같은 대가들의 명성을 생각하면 믿고 볼만한 공연이지. 굳이 이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 S 4만원, A 3만원.

 

 

 

연말이라 책 읽을 시간은 별로 없을 것 같아 건너 뛸까도 했는데 그래도 올해를 마감하면서 국내 작가의 소설을 한권 정도 소개하고 싶었어. 그래서 결론은 이재찬 작가의 안젤라 신드롬이야. 시골에서 돼지를 키우며 밝게 살아가던 한 10대 소녀가 인간극장류의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일약 주목받게 되는데, 그 소녀가 어느날 갑자기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야. 언뜻 봐도 TV 단막극 류의 코믹 설정 같지만, 페이지를 조금만 넘기면 예상 밖의 큰 스케일과 탄탄한 플롯에 놀라게 돼. 이 수준이라면 한국 소설은 도대체 재미라는 걸 어디다 팔아 먹은 거냐는 욕은 먹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작가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중이야. 인터넷 가격으로 11000원 선.

 

마지막으로 12월은 방학 때문에 전통적인 전시 성수기인데, 올해는 그닥 개성있는 전시가 별로 눈에 띄질 않네. 그래서 뽑은 건 동대문 DDP에서 열리는 오드리 헵번 전시회, 뷰티 비욘드 뷰티. 불멸의 여배우이자 시대를 뛰어넘는 스타일 아이콘이기도 한 이 분의 그림자를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어. 13000.

 

전시를 보고 나면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다시 보고 싶어질텐데 이건 각자의 선택에 맡길게. 아마도 이 칼럼의 지침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은  트루먼 카포티의 원작 소설이 집에 있을 테니(2014 1월 추천) 그걸 다시 읽어 봐도 좋고, 영화를 다시 볼 사람은 인터넷 서점에서 DVD 3천원대에 구할 수 있어. 물론 IPTV를 이용해도 되겠지. 그리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푹 자면 좋은 꿈을 꿀 거야. 새해에 만나.

 

국립합창단, 헨델, ‘메시아’ 12.22    A 2만원

안숙선의 제야 판소리, ‘강도근제 흥보가 12.31  전석 3만원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12.10~1.11  A 3만원

이재찬, ‘안젤라 신드롬   11000

오드리 헵번 전시회, ‘뷰티 비욘드 뷰티 11.29~3.8  13000

합계 약 104000

 

 

'연말=합창'이라는 등식은 어느 정도 고정이 된 듯 한데 그 '합창'을 꼭 베토벤 9번 교향곡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뭐 저는 2014년과 2015년은 예매 완료...^^ 2015년도 다들 서두르셔야 할 듯). 그런 의미에서 헨델의 '메시아' 도 좋고, 아래 곡 같은 합창도 연말 공연에선 충분히 시도해 볼 만 한데 국내에서는 아직 이 곡이 그닥 자주 연주되지 않는 듯 합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곡입니다.

 

 

최상의 녹음과 연주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 곡이 갖고 있는 고양감을 제대로 표현하는 듯한 패기 넘치는 공연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혹시 이 곡 때문에 '탄호이저'를 집에서라도 감상하고 싶은 분이라면 콜린 데이비스 경의 1978년 바이로이트 실황 DVD를 권하고 싶습니다. 늘 제임스 레바인의 메트로폴리탄 판이 화질 등에선 좀 더 낫기도 하지만, 바로 저 곡, '순례자의 합창'이 매우 실망스러워서 개인적으로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 말띠 해가 가고 있죠.)

 

특히 저는 12월24일 저녁에 외출하고 뭐 이런 사람들은 정상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그런 날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혹은 친구를 만나더라도 변두리나 각자의 집/하숙집/원룸/펜션 등등을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강남역, 명동, 종로, 홍대, 연남동, 가로수길, 대학로 등등에서 방황하시는 분들은 정말 지긋지긋한 기억(추억이 아니라)을 남기게 되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반백년 가까이 살아 본 결과, 뭔가 이름 있는 날 사람 많은 데 가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동네에서 장사하시는 분들 빼고.

 

뭐 이런다고 바뀔 분들이면 애당초 그런 실수를 저지를 리 없겠지만, 아무튼 그런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건 뭔가 영상 시설이 갖춰진(뭐 대단할 필요는 없고, 요즘은 그냥 디지털 TV와 블루레이 플레이어 한대 정도만 있으면 뭐든 가능) 장소에 모여서 고전 명화를 감상하며 먹고 마시는 겁니다. 가능하면 러닝타임이 긴 것들이 좋겠죠. 대부1,2,3편을 몰아 보시는 것도 좋고,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 1,2,3편, 혹은 매트릭스 1,2,3편, 혹은 스타워즈 4,5,6편을 보셔도 괜찮습니다(취향에 따라 터미네이터 1,2,3이나 죠스 1,2,3일 수도...). 더 고전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히치콕의 이창-현기증-레베카를 몰아서 보시는 것도 좋을 듯. 간단한 먹을거리를 준비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면서 소파며 마루에 포개 앉아 술잔을 기울이면 시간 잘 갑니다.

 

좀 더 수다에 초점이 맞춰진 분들이라면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로열 알버트홀 축하 공연(절판된 모양인데 중고로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혹은 카메론 매킨토시를 그리는 헤이 미스터 프로듀서(이건 아직 만원 미만으로 살 수 있는) 같은 DVD를 BGM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이상의 영상물들은 조금만 품팔이 하시면 누구나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뭐 이건 그냥 예로 든 거고, 아무튼 명절날은 좋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TV만 같이 봐도 즐겁죠.)

 

 

술 마시다 노래가 하고 싶은 분들은 아이패드(뭐 아쉬운대로 스마트폰이라도) 하나만 있으면 노래방 앱 다운로드로 만사 해결. http://www.enuri.com/knowbox/KbCopy.jsp?kbno=322636 뭐 이건 옆집 항의받을 우려가 있으니 그냥 여기까지...

 

아무튼 이번 포스팅의 주제는 '석양'으로 정했으니 석양이 정말 잘 어울리는 음악 한 곡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추위에 과음하지 마시고 다들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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