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에서는 두 끼(첫날 점심과 저녁)를 밖에서 먹고 한 끼(이튿날 아침)를 민박집에서 해결했다. 민박집 식사는 총각 혼자 운영하시는 민박집 사정을 생각하면 딱히 뭐라 따질 수준은 아니었으나, 아무튼 광고대로의 '푸짐하고 영양가 넘치는 식단'은 결코 아니었다. 뭐 한끼 정도야 그러려니 하는 거다.
첫날의 두 끼는 모두 타파스로 해결했다. 일단 점심. 세비야에 도착하자 마자 짐을 두고 나가는 길에 식사를 해결했다. 민박집-카테드랄은 도보 5~10분 정도. 그 중간의 골목길에 Pimenton 이 있다.
주소는 Calle Garcia de Vinuesa 29, 41004 Seville, Spain. 트립어드바이저에 El Pimenton 이라는 이름으로 리뷰가 올라와 있다.
위 주소로 구글 검색을 해 보면
주위를 둘러볼 때 분명 같은 곳인데 다른 가게가 나온다. 생긴지 얼마 안 되는 가게인 모양이다. 민박집에서는 '새로 생긴 집인데 잘 한다고 소문이 났다'고 추천했다. 가게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차가운 타파스와 뜨거운 타파스 메뉴가 있고, 여기서 1인당 3가지를 고르면 음료와 빵, 커피를 포함해 8.95 유로에 준다는 착한 가게다. 당연히 두 사람이므로 차가운 접시 3개와 뜨거운 접시 3개를 시켰다.
실내. 그냥 깔끔하다. 으리으리하지 않고 실속을 차렸다는 느낌.
현지인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들어와 마냥 깔깔거리고 떠드는 품이 나쁘지 않다.
뭐, 현지인이 아니고 세비야에 오래 눌러 앉은 장기 여행자들일 수도.
가지 튀김과 크렌베리 소스
야채 튀김. 한국식 야채 튀김과 매우 흡사한데 씹히는 맛이 좋다.
새우가 들어간 감자 샐러드. 왠지 '안전한 맛'을 위해서 시켰는데 다른 메뉴들도 전혀 입에 맞지 않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았다.
이 집의 대표 메뉴라고 해도 좋았을 듯한 라따뚜이. 정작 메뉴에는 스페인어로는 Pisto Al la Italiana (이탈리아식 잡동사니 요리), 영어로는 Ratatouille 라고 써 있다. 아무튼 맛이 좋았다.
이게 아마... 버섯 크림으로 덮은 쇠고기 요리였던 듯. 아무튼 맛있었음.
Questo fritto con arandanos. 치즈 튀김과 크렌베리 소스.
흡족한 점심식사였다. 가격대 성능비로 보나, 냉정한 맛 평가로 보나 맛집으로 추천하기에 부족함이 없음.
저녁은 조금 더 넉넉하게 먹기로 했다.
그래서 간 곳이 대성당의 뒤편이 있는 이 집.
아무리 봐도 이름이 딱 써 있지 않다.
Bar La Catedral. 주소는 Calle Mateos Gago 5.
사실 처음부터 이 집으로 들어간 건 아니고, 맨 처음엔 카테드랄이 보이는 광장 한 구석의 꽤 운치있는 카페의 야외석에 자리를 잡으려 했다. 해가 막 기우는 시간.
그래서 이렇게 앉아서 관광객용 사진도 찍고 하면서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말이지.
하지만 일단 웨이터의 자세부터 '그 테이블이랑 의자랑 니들이 쉬라고 내놓은 거 아니다. 거기 앉으면 식사를 해야 한다' '우리는 코스만 취급한다. 단품은 안 판다' '와인 시켜라. 와인 좋은 거 있다. 와인을 안 마셔? 왜?' 뭐 이런 식이다.
게다가 살펴본 메뉴도 이건 '특제 슾' '세비야 식 스테이크' '새우를 곁들인 샐러드' 등 그냥 세계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기본 양식 정찬이다. 이런 걸 먹으려면 대체 왜 여기까지 왔겠나. 물론 가격이나 싸면 모르겠는데 1인당 30유로.
야. 야. 사진 다 찍었으니 됐다. 니네 집에서 밥 안 먹을란다, 하고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하고 가다 보니 눈에 띄는 웨이터 형. 실물은 이것보다 잘 생겼다.
옆에 보이는 메뉴처럼 줄줄이 이런 타파스가 한 접시에 3유로에서 12유로까지 다양하다. 이런 데를 가고 싶었다.
영어 메뉴와 스페인어 메뉴. 이제 여행 일주일에 접어드니 영어 메뉴만 보는 게 더 헷갈린다. 스페인어 메뉴와 영어 메뉴를 같이 보는게 훨씬 주문하는 데 편리하다.
그리고 바쁜 웨이터 불러다가 이것 저것 물어보면서 주문하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물론 바쁘니까 짜증을 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관광선진국 웨이터는 그러지 않더라는 거지. 게다가 이것 저것 물어봐서 시키려고 노력하는게 가상한지 추천도 막 해 주고, 재료를 집어다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게 여행의 재미라고 생각.
뭐 길가 바로 옆 테이블이라 그렇게 우아하지는 않다. 인도에 나와 있는 테이블이기 때문에 행인들이 옆으로 지나다니기도 하고.
그래도 저 골목 안의 가로수가 모두 라임이다. 뭐 그렇게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서인지 떠다니는 공기결에 라임 냄새가 묻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라임들은 다 익어 땅에 떨어져 밟혀도 구린내가 나진 않겠지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봤다.
상그리아도 당연히 한잔.
치즈와 토마토가 들어간 신선한 샐러드 한판. 뭐 이건 괜히 시켰다 싶기도 했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음식을 너무 많이 시킨 것 같아서.^^
또 음식마다 야채가 조금씩 딸려 나오기도 했기 때문에.
아무튼 첫 접시는 Chocos fritos con ali-oli. '마늘 소스 오징어 튀김'이다. 스페인에선 초코 Choco 즉 그냥 오징어와 세피아 Sepia, 뼈오징어가 매우 흔히 식재료로 쓰인다. 스페인 사람들은 세피아를 흔하게 먹어서 이번 여행 내내 세피아는 두세번 먹은 듯 하다.
이 오징어는 얼마나 큰 놈인지 모르겠으나 세피아에 비해 식감이 쫄깃했다. 오른쪽에 있는 마늘이 들어간 드레싱에 찍어 먹으면 맛이 아주 그만이다.
Langostinos Salsa tartara gratinados 큰 새우 타르타르 소스 볶음.
흔히 새우는 그냥 Gamba, 랍스터가 Langosta 라고 하는데 Langostino는 중간 정도 되는 큰 새우를 말한다고.
뭐 대하 수준으로 큰 새우는 아니고 아무튼, 저런 애가 몇마리 들어 있다.
이건 뭐 이름이 엄청나게 길었는데 요약하면 '메추리알을 곁들인 하몽 토스트' 정도 되겠다.
그래도 하몽은 하나 시켜야 스페인 관광객 아니겠어?
Solomillo Catedral (Salsa Sevillana Antigua) - 전통 소스로 조리한 카테드랄식 소 등심
여기서의 카테드랄은 이 식당의 이름을 말한다. 보기에 좀 저래서 그렇지 육질이며 육즙이며 흠잡을 데가 없는 맛이다. 스페인 쇠고기의 질에 대해서는 거듭 감탄하게 된다. 맛있다. Solomillo는 영어의 Sirloin에 해당하는 듯.
Turbante de Pimiento con Carne Picada y Salsa de Piquillo
터번 피망 간 고기 매콤한 소스
이 집의 대표 메뉴라고 불러도 좋을 음식. 피망의 속을 간 고기로 채우고 그 상태에서 구워 매콤한 소스를 뿌린 음식이다.
아마도 완성된 형태의 모양 때문에 투르반테(터번)이라고 불리는 모양이다.
Champinones Plancha. 버섯 구이. 집어 먹다 찍어서 좀 갯수가 적어 보이는데 원래 그렇게 많이 나오진 않았다.
먹다가 찍어서 좀 지저분하긴 한데, 이렇게 테이블 가득 시켜 놓고 아구 아구 먹어댔다.
그렇게 해서 가격이 세금 포함해 34.1 유로. 전망좋은 광장 카페에서 먹었더라면 절대 느낄 수 없었던 포만감과 정신적인 만족감을 포함해서, 그 광장 카페 정식 가격의 딱 절반이다. 웨이터들이 번갈아 나와서 눈이 마주치면 '맛있어? 맛있지?' 라고 눈빛으로 물어본다. 좋다.
어느새 해가 져 깜깜해지고,
가게 안에는 불이 들어온다.
가게 안 곳곳에 소 머리가 장식돼 있다.
아마도 왕년에 투우에 나갔던 소들이겠지, 하고 생각해 본다.
가게 바로 앞에서 찍은 각도. 히랄다 탑과 대성당의 동쪽 면이 바로 보인다.
구글맵에서 본 이 식당의 위치.
지도에서 보면 이렇다.
밤에 보면 더 훌륭한 카테드랄. 금박을 씌운 듯한 조명도 훌륭하다.
카테드랄 앞의 번화가에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 부른 배를 안고 플라멩코를 보러 간다.
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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