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 4월입니다.
이러다 곧 연말 공연 안내가 나갈 듯한 속도감...ㅠ
10만원으로 즐기는 4월의 문화가이드(2014)
4월. 내한공연이 별들의 전쟁일세. 수잔 베가(4월2일)도 오고 제프 벡 영감님(4월27일)도 또 오시지만 다들 너무 비싸. 베가 공연은 제일 싼 표가 6만6000원, 벡 영감님은 8만8000원. 능력 있는 사람들에겐 볼만한 공연인 게 분명하지만 이 칼럼의 취지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여. 5월28일 폴 매카트니 옹의 내한공연 계획이 발표됐으니 거기에 맞춰 저금을 해야 할 사람도 있겠지?
현존하는 최강의 기교파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이 내한공연도 눈길이 가는데 레퍼토리가 너무 가곡 위주네. 물론 취향에 따라 이 쪽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전혀 불만이 없겠지만, 그래도 드세이가 공연을 한다면 오페라 아리아 위주로 리스트를 짜 주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지.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다른 공연에 우선순위를 두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
이렇게 저렇게 다 빼고 추천할 공연은 따로 있어. 4월1일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교향악 축제가 시작돼. 대한민국의 내로라 하는 교향악단들이 모두 회심의 역량을 선보이는 기회지. 예당 홈페이지에서 연주 곡목들을 살펴본 뒤 맘에 드는 곡을 고르는게 아마 제일 간편할 거야. 제일 비싼 티켓이 4만원. 이럴 때 예당 콘서트홀의 중앙 자리에 앉아 보는 거야. 물론 같은 돈으로 1만원 짜리 표를 사서 4개의 공연을 보는 것도 추천. 개인적으론 4월19일 열리는 부천 교향악단과 ‘서울대 최연소 교수’인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의 협연이 궁금하네.
국립극장은 3월부터 셰익스피어 관련 공연이 한창인데, 3월에 이미 시작해 4월13일까지 공연되는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도 좋을 것 같지만 가장 눈길이 가는 공연은 4월25일부터 27일까지 공연되는 ‘한여름밤의 꿈’이야.
공연 주체는 핸드스프링 퍼펫 컴패니라는 이름의 남아프리카 극단. 이름을 보면 눈치채겠지만 인형극단이야. 그게 뭘 어쨌느냐고 하는 사람들에겐 영국 국립극단(National Theatre)의 ‘워 호스’라는 연극을 검색해 보라고 권하고 싶어. 표정까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말 인형을 무대에 등장시켜 ‘기적’이라는 평을 받았던 팀이지.
당시 ‘워 호스’를 연출했던 톰 모리스가 연출을 맡아서 더 기대가 돼. 티켓은 4만원에서 5만원. 정교한 인형들의 움직임을 잘 보려면 과감하게 5만원을 투자하라고 권하고도 싶어.
돈을 많이 썼으니 4월의 책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Aimez-vous Brahms ’. 요즘 드라마나 영화 뿐만 아니라 현실 세상에서도 연상녀와 연하남의 사랑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게 쏟아지고 있는데, 이 소설은 1959년작이니 그야말로 그 시작을 알리는 작품인 셈이야.
당시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고, 그해 연말 한국에서도 출간됐어. 당시 한 신문에 실린 책 광고를 보면 ‘싸강양(孃) 쾌심(快心)의 일대역작(一大力作)’이라는 카피와 함께 ‘크리스마스와 새해 선물’로 추천하고 있어.
서른아홉살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폴라는 부유한 애인 로제와 연애중이지만 그의 사랑을 진지하게 믿고 있지는 않아. 아니, 그 자신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지. 그런 폴라가 스물다섯살의 순수한 견습 변호사 시몽을 만나 느끼는 새로운 감정이 이 작품의 핵심이야.
당시에서는 서구에서도 남녀간 열 네살의 차이가 대단히 크게 느껴졌던 모양이야. 요즘은 한국 드라마 ‘밀회’에서 김희애와 유아인이 극중 스무살 차이가 나는 남녀 사이의 감정을 다루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지.
사강은 1960년대와 70년대, 전 세계 젊은이들의 감정선을 지배했던 여류 작가의 대명사야. 그런데 정작 서른 아홉 독신녀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했던 사강의 당시 나이가 24세였다는 건 어쩐지 뭔가 속는 기분이 들기도 해. 아무튼 지금 그의 문체를 다시 읽어 보면 어딘가 흑백 영화를 보는 듯, 마음이 촉촉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거야. 이 소설은 1961년 할리우드에서 잉그리드 버그만과 이브 몽탕, 앤서니 퍼킨스 주연으로 영화화됐어. 지금은 구해 보기 힘든 영화가 돼 버렸지만.
봄바람이 살살 불면 주말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가. 마침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전이 열리고 있어.
이타미 준의 본명은 유동룡. 재일교포야. 유족들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고인이 유품으로 남긴 스케치, 모형, 영상, 회화 등 500여점을 기증했고, 그 덕분에 이 전시가 열리는 거지. 참고로 고인은 평생 귀화하지 않을 정도로 민족의식이 강했던 분이고, 이타미 준은 귀화명이 아니라 예명이야. 제주도를 제2의 고향으로 여겨서 방주교회, 포도호텔 등 대표작들을 제주도에 지었지. 여기서 영감을 받으면 제주도 여행을 계획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 날씨야. 다음달에 봐.
그 다음은 덧붙이는 이야기들.
톰 모리스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연극 '워호스'는 전 세계에서 벌써 240만명이 직접 봤다는군요. 영화라면 별 것 아닐 수 있겠지만 연극이라면 대단한 숫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내에서는 직접 공연이 아닌, 무대 공연을 촬영한 영상물로 볼 수 밖에 없었지만(그것도 단 3일 동안 국립극장에서 개봉), 좀 기다리면 '워 호스'에 이은 충격이라는 '한여름밤의 꿈'은 직접 공연 팀이 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워 호스의 말 인형들 - 馬形 이라고 쓰는게 맞을런지도^^ - 들이 준 충격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 정교한 제작 기법과 조종술의 조화란.)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BBC의 소개 영상을 보는 것이 이해가 빠를 듯. 톰 모리스 인터뷰와 '워 호스', 그리고 '한여름밤의 꿈'을 다룬 내용입니다. 인형극과 연극의 경계를 넘은 환상적인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영화화한 할리우드 영화 '굿바이 어게인'이 나온 1961년 기준으로 잉그리드 버그만은 46세, 앤서니 퍼킨스는 29세였습니다. 실제 나이 기준으로 하면 현재 '밀회'에 나오고 있는 김희애-유아인과 거의 비슷한 차이지만, 사실 사진상으로는 그리 큰 차이가 나 보이지 않습니다.
퍼킨스에 비하면 유아인은 심하게 동안인 셈이죠.
요즘 밀회 때문에 피아노 다시 배우러 나가는 분들이 많다는 소문도. 아무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다시 보시면서 '밀회'를 즐기시면 더 깊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P.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끝 점 세개는 사강이 꼭 그렇게 해 달라고 고집했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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