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았습니다. 새해에도 문화가이드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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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원으로 즐기는 1월의 문화가이드 (2014)
연말 술병은 다들 회복해 가나? 아직도? 세월이 하 수상해서 맨정신으로 새해를 맞을 수 없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뭐 어쩌겠어. 세상이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한편에선 좋아지는 게 있기 마련이야.
예를 들면 말러의 10번 교향곡을 국내에서 정상급 지휘자의 리드로 저렴한 가격에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아진 일 중 하나야. 1월23일, 한스 그라프가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연주야.
사실 많은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죽었기 때문에 말러는 ‘9번 교향곡’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이 10번 교향곡의 1악장만을 완성하고 죽어. 그리고 후세의 작곡가들이 나머지 초고를 완성해서 현재 연주되는 이 곡을 만들었지. 어떤 평론가는 이 10번의 정서를 ‘용서’라고 규정했던데,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못잖게 서정적인 선율이 일품이야. 1월23일. B석 2만원에 아직 쓸만한 자리를 살 수 있어.
사실 올해 1월의 음악 공연을 추천하라면 이 무지치 합주단의 사계(제일 싼 표가 5만원)나 제임스 블레이크 첫 내한 공연(균일 8만8000원)을 첫 손에 꼽아야겠지. 하지만 역시 이런 건 이 칼럼에서 추천할 공연은 아닌 것 같아. 대신 ‘오상진의 북콘서트’ 같은 공연을 눈여겨 보라고 하고 싶어. 부제가 ‘하루키의 순례를 떠난 해’ 야.
무라카미 하루키의 2013년 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 소설 속에 나오는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 같은 곡이 궁금할 거야. 대체 어떤 곡인지 찾아 들어 본 사람도 한둘이 아니겠지.
하루키는 본래 클래식과 재즈, 올드 팝에 대한 식견이 예사롭지 않은 만큼, 그의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꽤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봐. 이번엔 오상진이 책을 읽고 캐나다 교포 피아니스트 루실 정이 곡을 연주하는 진행. ‘1Q84’에 나오는 바흐의 전주곡과 푸가,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드뷔시의 ‘달빛’ 등이 연주돼. 1월19일, 예술의전당. 4만원.
만약 이런 컨셉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소설가가 사랑한 음악’이란 제목의 CD도 추천할 만 하다 싶어. ‘무라카미 하루키 30년 소설 속의 음악’이란 부제를 보면 따로 설명은 필요 없을 듯. 3CD. 1만5000원. 클래식과 재즈만이라는 게 아쉽지만 비틀즈나 롤링스톤스 등 하루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뮤지션들은 이런 컴필레이션을 좋아하지 않아.
맑은 겨울날, 이런 음악을 틀어 놓고 먼 산에 쌓인 눈을 바라보며 트루먼 커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영화로 본 분들이 꽤 많겠지만, 영화와 원작 소설은 초코파이와 자허 토르테만큼 큰 차이가 있어.
로맨틱 코미디의 대명사인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비해 소설은 근본적으로 쓴 맛을 베이스로 깔고 있어. 주인공 홀리 고라이틀리 역시 영화에선 그냥 한국 월화드라마의 귀여운 4차원 아가씨 정도지만 소설에선 미쳐도 단단히 미친 X이거든. 물론 꽤 매력있는 미친 X이긴 하지.
이 책을 읽어 보면 생각나는 작품이 둘 있어. 하나는 에밀 졸라의 ‘나나’고, 또 하나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야. 아마도 영화만 본 사람이라면 대체 왜 이런 비교가 가능한 지 상상하기 힘들거야. 그러니 이번 기회에 원작을 한번 읽어 보길 바라.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새 번역본으로 약 1만원, 나머지 두 책은 7천원 내외로 살 수 있어. 싸지? 고전이 이래서 좋은 거야.
춥다고 너무 분위기를 떨어뜨린 것 같으니 아주 발랄하고 활기넘치는 전시 하나 소개할게. 스페인의 천재 그래픽 디자이너 하비에르 마리스칼의 전시회가 예술의전당에서 3월16일까지 열려.
마리스칼의 작품들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스코트 코비를 비롯해서 동글동글한 귀여운 선이 특징이지. 동심의 세계를 늘 떠나지 않으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일으키는 마리스칼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아직도 세상에는 상상력과 낙천적인 에너지로 이룰 수 있는 것이 많이 남아있다는 걸 느끼게 될 거야. 그럼 다들 감기조심하고, 2월에 만나.
오상진의 북콘서트 1월19일 A석 4만원
말러 교향곡 10번 1월23일 B석 2만원
하비에르 마리스칼 전 1만2000원
소설가가 사랑한 음악(3CD) 1만5000원
티파니에서 아침을 약 1만원
나나 약 7천원
생의 한가운데 약 7천원
말러가 수많은 선배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작곡한 뒤 유명을 달리했다는 이유 때문에 '9번 교향곡'이라는 말을 꺼렸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러의 교향곡 번호는 9번이되 9번으로 불리지 않는 '대지의 노래'와 실제로는 10번째 교향곡이지만 9번으로 불리는 그냥 9번으로 약간 족보가 틀어집니다.
어쨌든 9번을 내놓고 10번은 완성하지 못한 채 말러도 고인이 됐으니 그렇게 두려워했던 징크스가 현실이 된 듯 합니다. 베토벤 이후 브루크너, 슈베르트, 드보르작이 모두 걸린 9번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죠. 물론 교향곡을 풀빵처럼 찍어낸 작곡가들은 이후에도 많았지만, 공식적으로 스타 작곡가 가운데선 15곡을 작곡한 쇼스타코비치가 이 징크스를 무력화시킨 공로자로 꼽힙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미완성으로 남은 10번은 데릭 쿡에 의해 5악장으로 완성된 버전으로 꽤 자주 연주됩니다. 국내에선 2010년 서울 시향이 처음 연주한 버전이죠. 안 그래도 들을 곡 천진데 굳이 다른 사람이 완성한 미완성곡까지 연주해야 할까...하는 의문도 물론 있지만, 흔히 그냥 '아다지오'라고도 불리는 1악장의 아름다움은 심하게 매혹적입니다.
특히나 이 곡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뮤즈 역할을 했던 말러의 아내 알마에 대해 말러의 '용서'를 담은 곡이라는 사연이 전해집니다. 솔직히 좀 이해하기 힘든 구석도 있는 얘기지만...^^ 곡 해설과 사연에 대해선 이쪽 참조.
http://www.pungwoldang.kr/board_music/content.aspx?b_UniqueID=107&tname=board_music
'티파티에서 아침을'의 원작 소설에 대해선 사실 그닥 관심이 없었지만, 지난해 나온 '트루먼 커포티 선집'에 끼어 있는 걸 보고 흥미가 생겼습니다. 이 독특한 작가와 누구나 다 아는 '그 영화'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싶었던 거죠.
아니나 다를까. 책에 나오는 미스 고라이틀리(Go+lightly^^)는 영화의 오드리 헵번과 너무x너무나 차이가 컸습니다. 오드리 헵번이라는 배우에 의해 '4차원적 사랑스러움'이 원작에선 너무나도 선명한 '돌아이 짓'이더군요. 원작자 커포티가 오드리 헵번의 캐스팅에 대해 "난 마릴린 먼로가 훨씬 더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라고 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원작을 보시면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와 원작은 비슷한 스토리라인을 따라가긴 합니다만, 이렇게 핵심적인 주인공의 캐릭터가 달라지고 보니 전혀 다른 작품처럼 읽힙니다. 그래서 에밀 졸라의 '나나'가 연상되는 것이고(고라이틀리는 오늘날 뉴욕에 떨어진 나나처럼 보입니다. 소설 첫 부분에 나오는 후일담도 졸라가 나나에 퍼부은 저주와 거의 유사한 수준...).
아무튼 영화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분들은 아예 다른 책이라고 생각하고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마리스칼의 코비는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별다른 설명 패스. 다시 한번 생각나는 것은 이 코비의 디자인에 영감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피카소의 '여관들'이라는 그림입니다. 벨라스케스의 유명한 그림을 자기 식으로 재해석해 그린 그림이죠. 혹시 관련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이 글 http://fivecard.joins.com/1190 참조.
2월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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