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날은 휴식과 쇼핑을 겸한 날이었으므로 포스팅 거리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비싼 입장료 때문에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 중에서도 하나만 골라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카사 바트요를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정도라면 카사 밀라도 뭔가 관광객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외관 사진도 잘 안 받는 카사 바트요에 비해 카사 밀라는 이렇게 사진발도 잘 받는다.
물론 입장료는 싸지 않다. 1인당 16.15유로.
가까이서 보면 질감이 꽤 거칠어서 카사 바트요에 비해 생활 건축의 느낌이 강하다.
물론 보기는 좋지만 실제로 살기에 그리 편할 것 같지는 않은 느낌.^^
본래 입구는 이랬다. 투명한 유리를 통해 로비가 보인다.
1층으로 들어가면 카사 밀라 전체를 볼 수 있는 모형이 있다. 천장에 있는 두 개의 구멍은 뭘까.
건물 안에 들어가면 이렇게 실제로 뻥 뚫린 중정(中庭)이 있다. 스페인 전통 건축의 특징을 살린 셈이다.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이런 느낌이다.
물론 카사밀라에서 가장 유명한 공간은 옥상이다. 이번엔 엘리베이터로 올라간다.
올라가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이 기괴한 모습의 두상.
이 투구 같은 머리가 바로 카사 밀라의 상징.
멀리 악바르 타워가 보이기도.
이 투구머리가 스타 워즈에 나오는 스톰 트루퍼의 얼굴을 디자인하는 데 영감을 줬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분명히 닮긴 닮았다.
정말 조지 루카스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갔을까? 물론 진실은 은하계 저 너머에...
멀리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모습도 보이고...
뭐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 기이한 녀석들은 대부분 통풍구 역할을 하고 있다.
주변 건물들과의 조화도 매우 그럴싸하다.
한국에 이런 게 있었다면 아마 주변 고층건물 사이에 폭 파묻혀 버리지 않았을까.
다양한 머리 가운데 이 머리들만 깨진 녹색병 조각을 사용한 트렌카디스 기법으로 장식되어 있다.
카사 밀라의 특징은 천장 바로 아래층에 마련된 전시 공간이다. 가우디 건축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카사 밀라의 모형.
카사 밀라의 기초.
그리고 이것이 가우디의 미완성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콜로니아 구엘 성당의 건축 때 등장했다는 철사 모형이다. 보다시피 쇠사슬에 매듭을 지어 위에서 아래로 늘어뜨린 모습이다. 의뢰인인 구엘 가문에서 새 건물의 디자인을 요구하자 가우디는 이 사슬 모양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당연히 의뢰인 측은 이해하지 못했다.
의뢰인: 대체 이게 뭔가요? 어떻게 이렇게 생긴 건물을 짓겠다는 거죠?
가우디: 누가 이대로 짓는대?
의뢰인: 그럼요?
가우디: 답답하긴, 거울 좀 갖고 와 봐.
이렇게. 이걸 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딱 쳤다고 한다. 역시 가우디!
저 모습을 구현하겠다고 한 스케치가 이렇다. 하지만 이 스케치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현재의 콜로니아 구엘 성당은 이 아랫단 부분만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다 지어졌더라면 또 하나의 명물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아무튼 이 전시공간은 가우디의 세계를 이해하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리스-로마 시대 열주형 건물의 기둥을 가우디가 어떻게 변형했는지 보여주는 모형들.
건축의 안정성을 위해, 그리고 보다 훌륭한 채광을 위해 가우디가 위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넓어지게 설계한 카사 밀라.
그리고 가우디가 자신의 건축물에 응용한 자연물들의 모습이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눈길이 가는 건 역시 옥수수.^^
그리고 한 층을 더 내려가면 카사 밀라 완공 당시의 바르셀로나 생활을 보여줄 수 있는 유적(?)이 남겨져 있다.
카사 밀라는 본래 바르셀로나의 신흥 부르주아들을 위한 아파트로 설계됐다.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해 바르셀로나에도 신흥 유산계급이 형성됐고, 이들은 중정이 있는 저택보다 가장 모던하게 설계된 주거공간을 요구했다. (물론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카사 밀라 분양계획은 철저하게 실패했다고 한다.^^)
암모나이트 문양이 새겨진 육각 타일로 마감된 바닥. 그 정성이 참 대단하게 여겨진다.
여기까지는 모형.
이렇게 보면 분양에 실패한 이유도 짐작이 간다.
천장이며 벽이 모두 곡선이다. 이런 집에선 기존의 장롱이며 의자 등을 놓고 사는게 영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20세기 초. 지금의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스를 가정용 연료로 사용하는 가스레인지가 있었고, 실내 싱크대도 있다.
꽤 스타일있어 보이는 난방/조리용을 겸한 스토브.
비데까지 있는 널찍한 욕실.
어찌 보면 '현대 생활'에서 갖춰야 할 것들은 대부분 20세기 초, 아르누보의 시대에 모두 마련된 것 같다. 모습이 조금씩 바뀌고, 소재가 좀 달라졌을 뿐 온수용 가스 보일러를 포함해 현대 가정에서 필요한 편의 도구는 이 시기의 사람들도 이미 누리고 있었다는 이야기인 듯 하다.
물론 카사 밀라 측은 '카사밀라는 가구를 사서 들어올 필요가 없는, 모든 가구와 생활용 시설이 붙박이로 부착된 신개념 주거공간'이라고 열심히 홍보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도 좀 흉물스럽고... 사람이 막상 들어가 살기엔 많이 불편할 것 같다'는 이유로 들어와 살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지금은 은행 소유가 됐다고.
지금이라면 더더욱 살고 싶지 않을. 하지만 분명 멋진.^^
이렇게 해서 사실상 바르셀로나에서의 여정은 끝났다. 이제 저녁식사와 함께 그라나다행 침대차 탑승이 기다리고 있다.
(...연내 바르셀로나 탈출이 목표였는데 아슬아슬하게 맞춰가고 있습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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