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셰린의 밴시>를 보고 충격을 받고(정말로 이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해야 '영화 좀 본 사람'이 되는 것인지), 올해 아카데미상 수상작 리스트를 보다가 대체 영화란, 극장이란 어디로 가자는 것인지, 내 일도 아닌 남의 일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카데미상이 해야 할 역할은 분명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그러다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러 갔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을 신카이 마코토의 재난 3부작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이 장면이 이 영화의 장면인지, 저 영화의 장면인지 혼동할 정도로 세 영화는 매우 닮아 있다. 글자 그대로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남녀 주인공 중 한쪽과 그 자연재해가 초자연적인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나머지 한쪽은 그 운명의 연결을 거스르려 한다는 점 등,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공통점이 한 가득이다. 물론 같은 감독이니 작화와 스타일도 당연히 같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강추. 안 보신 분들은 빨리 보러 가라. 아래 글은.... 물론 별 스포일러는 없다.
그중 최신작인 <스즈메의 문단속>. 이번엔 큐슈 남동쪽의 미야자키가 무대다. 여고생 스즈메는 폐허를 찾는 '잘생긴 남자' 소타의 뒤를 쫓다가(심지어 등교를 포기하고!) 일본 땅 깊은 아래를 흐르는 큰 힘, 지진의 원인인 거대한 미미즈의 실체를 알게 된다. 심지어 스즈메의 실수로 미미즈를 잠재우고 있던 요석이 빠져버리고, 미미즈를 관리하는 가문의 후계자인 소타는 희한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다.
그렇게 해서 미야자키-에히메-고베-도쿄-미야기까지, 일본 열도를 서남쪽에서 동북쪽으로 거의 종단하는 스즈메와 소타의 대모험이 시작된다.
비슷한 톤의 영화가 세 편째이다 보니 <스즈메의 문단속>은 전작 두 편에 비해 이야기의 양은 많고 진행은 훨씬 빨라졌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전작 두 편에서 이미 스타일을 읽었을테니 비슷한 패턴을 다시 보여줄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당연한 얘기는 얼른 건너뛰고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얘기라 반가웠다.
이런 진행 때문에 두 주인공 사이의 감정선이 너무 튄다는 지적도 있었던 것 같지만, 어느 곳 어느 시절에, 남녀간의 감정에 매뉴얼 같은 것이 있단 말인가. 개연성이 필요하다면 소타의 외모가 개연성이겠지.
세 편의 영화 중 대중성으로 따지면 단연 <너의 이름은>이 앞서고, 그 다음이 <스즈메의 문단속>, 그리고 <날씨의 아이> 순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신카이 감독의 후퇴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아쉬웠다. <날씨의 아이>가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과연 대를 위한 희생이라는 것을 본인 아닌 다른 사람이 요구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제기였다.
거의 매일 폭우가 내리는 도쿄. '날씨의 아이'가 저 세상으로 가지 않는 한 비가 계속 내려 도쿄는 물에 잠길 운명이다. 그녀 하나의 희생으로 도시 하나를 구할 수 있다 해도, 과연 그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가 자신을 희생해야 할까? 혹은 다른 누군가가 희생을 요구할 수 있을까?
유독 집단주의가 강조되는 나라로 알려진 일본에서 이런 목소리를 내는 영화가 나왔다는 것이 감동의 포인트였다. 20세기의 풍요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일본에서, '왜 당신들이 망쳐 놓은 나라를 우리가 수습해야 하느냐'는 젊은 세대의 질문을 대변한 듯한 느낌. 하지만 <너의 이름은>을 사랑했던 많은 신카이 팬들은 이런 메시지에는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스즈메의 문단속>은 전통적인 윤리관으로 돌아갔다. 주인공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누군가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이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평온한 일상이 유지될 수 있다'는, 매우 상식적인 주제를 따른다. 스즈메는 어떻게 해서든 이 '당연한 희생'에 반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나, 이번에는 그 '재난'이 모든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12년전의 대 사건이라면, '막을 수 있었어도 나를 희생해서 그걸 막지는 않겠어'라고 말할 수는 없었겠지. 그런데, 그러면 다이진은 대체 무슨 죄로 그 지루하고 어두운 일을 계속 해야 하는 것인가.
헤라클라스는 헤스페리데스의 사과를 가지러 갔을 때, 직접 가는 것보다 아틀라스를 보내라는 조언 때문에 잠시 아틀라스 대신 어깨로 하늘을 떠받치는 일을 맡는다. 그런데 사과를 가지고 돌아온 아틀라스는 '왜 내가 계속 하늘을 떠받쳐야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던진다. 거대한 아틀라스도 잠시 풀려난 뒤의 해방감을 알아버린 뒤, 다시 교대해 주고 싶지 않았던 그런 일.
'그건 원래 네가 해야 하는 일이었잖아' 라는 이유로, 다이진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결국 다시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잠시 묵념, 네네. 이게 주제가 아니라는 거 잘 압니다. 그래서 <날씨의 아이>쪽이 더 맘에 든다니까요.)
어쨌든 작화의 연출이나 영상, 음악, 거의 모든 면에서 신카이 마코토는 이 시대를 지배하는 탑 크리에이터로서 손색없는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히 한국처럼 문화적으로 근접한 나라가 아닌 글로벌 관객을 고려한 일본적 요소의 승화 부분에서도 - 물론 한국 관객들은 좀 더 이해의 폭이 크겠지만 - 특히 훌륭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미미즈(일본어로 지렁이더라)의 형태는 아니지만 지진이 잦은 나라의 특성상 지하에 뭔가 초자연적인 거대한 존재(이를테면 용, 메기, 구렁이 등등)가 진동을 일으킨다는 전설, 그리고 역시 신적인 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그 진동을 가능한 한 억제하고 있다가 무슨 변고가 생길 때마다 대재앙이 덮쳐온다는 것....
그런 자투리들을 모아서 이만한 볼거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진정 탁월하다. 심지어 따뜻하기까지.
아무튼 강추. 얼른얼른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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