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찬실이는 복도많지>의 강말금이 신인여우상 6관왕을 차지한 2021년 2월에야 이 영화를 보고 뒷북으로 한마디 하려니 좀 찔린다. 하지만 아직도 본 사람보다는 안 본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테니 한마디. 미리 말하면, 이 영화를 보면서 세 번 이상 크게 웃지 않는 사람과는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
2. 줄거리. 영화 프로듀서 이찬실(강말금)은 같이 일하던 감독이 급사하는 바람에(죽음의 원인이 나오는데, 미리 얘기하지만 굉장히 어이없다) 일자리를 잃고 산동네 단칸방으로 이사하게 된다. 막상 한번 꺾이고 나니 마땅히 일을 주는 사람도, 그렇다고 영화를 떠나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다. 인생 왜 이 모양인가 싶고 마침 눈이 가는 남자도 나타나는데 과연 어찌 될지.
3. 적잖은 나이. 모아둔 돈도 마땅히 장래가 보장된 일자리도 없는 찬실이 이야기인데 영화 분위기는 어둡지 않다. 영화계란 특정 직종이 문제가 아니라, 서른 넘고 마흔 넘어서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어’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영화. 영화 속에서도 찬실이의 팔자는 전혀 풀리지 않는데도, 영화가 끝날 때 쯤에는 <찬실이가 운이 좋다>는 제목이 그리 엉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4. 여자 감독들이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들은 그 감독과 주인공이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은데, 강말금이라는 배우의 발견이 어찌 보면 이 감독의 행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윤승아, 김영민 같은 배우들도 이 영화에서 유난히 생기가 넘치는 걸 보면 ‘감독의 역량이 빛난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5. 내친 김에 <산나물처녀>까지 보고 나니 때로 어이없게까지 느껴지는 감독의 유머감각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윤곽이 잡힌다(내 취향이다).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6. 우디 앨런 주연의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 Play it again, Sam>에는 험프리 보가트가 나오고, 토니 스코트의 <트루 로맨스>에 엘비스가 나온다면 이 영화에는 장국영이 나온다. 끝. (혹시 이런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가 더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 두편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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