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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이 마침내 막바지로 치달았습니다. 마지막회를 남겨 둔 상태에서 소설 원작 최고의 하이라이트인 김홍도와 신윤복의 화사대결, 즉 그림 대결 장면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한국 방송계에서는 '경합이나 대결이 나오지 않으면 사극이 아니다'라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대결'의 미학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습니다. 한방의학 드라마 '허준'에서는 살아있는 닭의 몸에 아홉개씩의 침을 놓는 구침지희가 나왔고, '대장금'에선 끊이지 않는 후계자 선발이 열렸죠. '주몽'에서는 태자 자리를 놓고 세 왕자가 경합을 벌였고, '이산'에서는 그리 중요하진 않았지만 송연(한지민)이 화사경합에 참가해 기량을 겨뤘습니다.

하지만 '바람의 화원'에서의 화사경합은 '이산'에서의 경합과는 중량감이 다릅니다. 참가자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인 단원과 혜원이었기 때문이죠. 사극의 거장 이병훈 PD마저도 '그림 대결에서의 박진감 묘사에는 자신이 없었다'고 털어놨던 화사경합을 '바람의 화원'은 어떻게 묘사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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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바람의 화원' 전체의 공과를 떠나 3일 방송된 화사대결은 한국 드라마에 남을 명장면 중 하나로 꼽을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물론 화사대결을 위해 지난 몇회 동안 제자리걸음을 했던 드라마의 지지부진한 진행은 비판받아도 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원작 소설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김조년은 정향과 윤복의 관계에 대한 질투로 사제간의 화사 대결을 벌이게 만듭니다. 이 부분에서 동기가 좀 납득이 안 가는 부분도 있고, 뭐하러 이런 짓을 벌이나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 덕분에 시청자들은 최고의 가상 대결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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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결에 등장하는 그림은 신윤복의 '쌍검대무(雙劍對舞)'와 김홍도의 '씨름도'. 두 사람은 김조년의 발제에 따라 '쟁투'라는 주제에 맞는 그림을 각각 그려 제출합니다...라는 것은 물론 작품의 설정입니다.

실제로 이런 대결이 있었다는 근거도, 두 그림이 같은 시기의 작품이라는 근거도 실제로는 전혀 없죠. 다만 '대결'을 소재로 한 두 작가의 작품을 갖고 이런 설정을 만들어 낸 이정명 작가의 상상력은 참 탁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쌍검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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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이 씨름도입니다. 두 그림 모두 너무나 유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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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도에서 동그라미를 친 부분이 바로 이 화사대결의 승부를 가를 수 있었던 김홍도의 '왼손 오른손 실수' 장면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왼손과 오른손이 바뀌어 있지요.

알고 보면 유명 화가들도 이런 실수를 한다고 합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도 그런 실수가 있다는군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1/12/2007111200050.html

드라마에서는 이 실수가 김홍도의 의도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살짝 풍깁니다. 또 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김홍도는 황혼을 이용하죠. 황토색과 주황색을 주로 쓴 이 씨름도가 황혼녘의 햇살을 받으면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게 보인다는 설명입니다. 물론 황토색 위주의 채색이 쓰인 것은 김홍도가 사실은 색맹이었다는 역사적으로 아무 근거 없는 설정과 맞물린 것입니다.

사실 김홍도는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또 있습니다. 바로 아래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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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동도'에서도 오른쪽 아래에 앉은 악공의 손이 거꾸로 그려져 있습니다. 저 각도로도 악기를 잡을 수는 있지만, 연주를 할 수는 없겠죠.

아무튼, 장태유 PD의 사설을 풀어가는 솜씨는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화사 대결을 묘사한 손길은 매우 뛰어났습니다. 특히 씨름 그림을 그리기 위해 김홍도가 정지 상태의 사람들 사이를 누비는 장면이나 두 기생의 실제 검무 장면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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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원작에 나와 있는 두 그림의 숫자 균형 중 '쌍검대무'쪽의 7+2+7(그림의 상단, 중단, 하단의 사람 수)만을 살리고, 씨름도의 숫자 균형을 다루지 않은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이날 방송이 55분여만에 끝난 걸 봐선 편집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인 듯 하기도 하고...

보충 설명하자면 김홍도의 '씨름도'의 사람 수 배치는 좌측 상단에 8명, 우측 상단에 5명, 중앙에 2명, 좌측 하단에 5명, 우측 하단에 2명씩입니다.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대각선을 그어 놓고 보면, 정확한 대칭이 이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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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선을 따라서 배치된 사람 수는 12명, 그리고 우측 상단에서 좌측 하단으로 대각선을 그어 봐도 12명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런 숫자의 배열을 보면 불균형 속의 균형이 보입니다. 이런 계산이 다 되고 나서 비로소 '거장 김홍도'가 그려 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대결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 주고 있을까요. 소설이든 드라마든, 두 사람의 대결은 무승부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 무승부란 신윤복의 승리라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지난번에도 한번 얘기했듯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는 대화원 김홍도에 맞서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한 화원 신윤복이 그 시대를 넘어 지금에 와서 동등하게 평가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관련글은 아래 링크 참조)



당대에는 비루하고 천한 것으로 여겨졌던 파격적인 화풍이 세월이 흐른 뒤에 제 값을 인정받은 셈이라고나 할까요. 당시의 환경에서 이런 그림을 계속 그려왔던 신윤복이란 화가의 고집을 생각하면, 이 드라마를 반체제 드라마 취급했던 지만원씨의 얘기가 말이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농담이지만 역시 무슨 얘긴가 하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 참조)



아무튼 '바람의 화원'은 두 화원의 대결을 통해 지지부진했던 중반의 기억을 씻고 깔끔한 마무리를 이룰 수 있을 듯 합니다. 비록 배우들의 이름값에 비하면 10%대 중반을 넘지 못한 시청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봐야겠지만 나름대로 명품 드라마라는 이름도 얻었고, '그림그리기'라는 행위를 본격적으로 영상으로 옮겨 놓은 최초의 드라마라는 점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기념비를 세웠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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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과는 이렇게 안녕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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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위에서 잠시 얘기한 유명 화가 실수 시리즈 중의 하납니다. 이 그림은 고흐의 '해바라기(Sunflowers)'. 수많은 해바라기 그림 중 하나로 일명 '14송이 해바라기'입니다. 고흐 자신이 '14송이를 그린 해바라기 그림'이라고 이 그림을 지칭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 그림의 해바라기는 분명히 15송이라는 겁니다. 고흐가 잘못 셌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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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이 인터넷 사이트로 열리면서 참 여러가지로 역사가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역사상의 인물들을 한번씩 검색해 보는 재미도 있고, 거기서 가끔씩 의외의 발견을 하기도 하지요.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가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사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기를 기대하기는 좀 힘든 사람들입니다. 왕조실록은 아무래도 왕과 근신들에 의한 통치행위에 대한 일기의 성격이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천한 화공들이 다뤄지기엔 좀 무리가 있죠. 하긴 연산군일기에는 '왕의 남자'의 모티브를 제공한 공길이란 광대가 나오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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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검색 결과. 우선 '신윤복'을 검색했지만 영-정조대에 신윤복이란 이름의 인물과 관련된 기사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실망.

하지만 김홍도는 달랐습니다. 일단 첫번째 기록은 정조 5년(1781 신축 / 청 건륭(乾隆) 46년) 8월 26일(병신)의 기사로 '어진 1본을 규장각에 봉안하기 위해 화사 김홍도 등에게 모사를 명하다'라는 내용입니다. 여기 보면,

...이어 화사(畵師) 한종유(韓宗裕) · 신한평(申漢枰) · 김홍도(金弘道) 에게 각기 1본씩 모사(摸寫)하라고 명하였다.

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신한평은 바로 신윤복의 아버지죠. 그럼 김홍도와 신윤복이 알고 지냈을 가능성은 대단히 풍부해집니다. 아들이었건 딸이었건(^^) 이렇게 어진을 함께 모사할 정도의 사이라면 어려서라도 보긴 봤겠죠. 이때 김홍도는 36세의 한창 나이입니다. 기록대로 신윤복이 1758년생이라면 이때 23세로군요.

김홍도에 대한 기록은 두 차례 더 나옵니다. 저 기사가 나오고 바로 다음달인 9월 3일(임인), '익선관에 곤룡포를 입고 김홍도에게 어용을 그리게 하다'라는 기록이죠. '희우정(喜雨亭) 에 나아가 승지·각신을 소견하였다.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를 갖추고 화사(畵師) 김홍도(金弘道) 에게 어용(御容)의 초본(初本)을 그리라고 명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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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우정은 창덕궁의 후원 안에 있는 아름다운 정자입니다. 마포구 합정동에도 희우정이 있다고 하는데 설마 그 희우정은 아니겠죠.

아무튼 14년 뒤인 정조 19년(1795년) 정월 연풍현감 김홍도에게 재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죄를 물으라는 공론에 관한 기사가 나옵니다. 화공으로 출세해 현감 벼슬까지 누리고 있었지만 정사에는 그리 밝지 못했던 듯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김홍도 관련 기록은 여기까지입니다.

일세를 풍미한 대 화가에 대한 기록이 이 정도라는 것은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실록에 이름이 세번이나 오르내린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신윤복은 물론이고 조선 3대 화가로 거론되는 안견 역시 단 한번 이름이 나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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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에는 지난주부터 화산관 이명기라는 당대의 유명 화가가 등장했습니다. 김홍도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 드라마에 흥미를 더 할 인물이죠. 물론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입니다.

당시 초상화의 1인자로 불리던 이명기는 생몰연대가 불분명하지만 1791년 어진화사를 맡았고 1795년 김홍도와 함께 '서직수 초상'을 합작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동시대의 인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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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서직수 초상. 오른쪽에 '얼굴은 이명기가, 몸은 김홍도가 그렸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명기가 등장하고 보면 아쉬운 사람들은 많습니다. 특히 긍재 김득신이 이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게 좀 안타깝기도 합니다. 김득신의 그림은 김홍도의 그림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위트있고 서민적인 화풍이 매우 닮아 있죠.

가장 대표적인 그림, '파적도(破寂圖)'입니다. 일명 '야묘도추(野猫盜雛: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치다)'라고도 하지요. 웃음이 절로 나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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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4년생으로 김홍도보다 9세 연하, 신윤복보다는 4세 연상인 김득신은 이처럼 김홍도의 화풍을 계승한 탁월한 화가였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자취를 볼 수가 없습니다.

또 있습니다. 1712년생인 최북입니다. 최산수, 최칠칠이라고도 불리는 최북은 상당히 광화사의 표본 같은 인물이죠. 시-서-화에 모두 능했다는 최북은 호방한 성품으로 널리 친구를 사귀고, 금강산에서는 그림을 그리다가 경관에 취해 물에 빠져 죽겠다고 시도를 했다는 일화가 전해 질 정도로 기인의 풍모가 깃든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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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회에 안경을 쓴 김홍도의 모습이 자주 등장했는데, 최북이야말로 눈을 다쳐 줄곧 안경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는군요. 1786년 술을 마시고 길에서 객사했다고 할 정도로 드라마틱한 삶을 산 인물인데, 이 드라마가 현재 조명하고 있는 시기가 정조의 즉위초인 1770년대 말에서 80년대 정도라고 할 때, 충분히 등장할 여지가 있는 인물인데 좀 아쉽습니다.

최북의 '한강조어도(寒江釣魚圖)'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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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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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올렸던 이 그림은 제목이 같은 겸재 정선의 '한강조어도'였습니다.


아무튼 '바람의 화원'으로 인해 조선 후기 회화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니 참 반가운 일입니다. 그나자나 간송 미술관은 10년 전에 가 보고 못 가봤군요. 어떻게 좀 더 넓고 시설 좋은 곳으로 옮기면 안될지 참 궁금합니다. 리움 정도의 시설이라면 더 바랄게 없을텐데 말입니다.



관련된 내용입니다. 일단 문근영.



다음은 왕년의 박신양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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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두 편을 보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에 와서 털어놓자면, 박신양이라는 배우가 왜 그렇게 인기있는지 오랜 시간 동안 이해하지 못했더랬습니다. 프로필상으로는 1993년작인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데뷔작으로 되어 있지만 존재감 없는 역할인게 확실하고, 1996년 그가 처음 대중 앞에 등장했을 때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1996년 당시 MBC TV에서는 '사과꽃 향기'라는 드라마를 내놨습니다. '사춘기'에서 정준을 하이틴 스타로 만들고, 뒷날 '왕초'나 '복수혈전'같은 히트작을 만드는 장용우 PD의 작품이었죠. 유호정 김혜수 염정아 김윤정이 네 자매로 나오고, 김승우와 윤동환이 김혜수의 두 상대역으로 등장했습니다. 박신양은 김혜수를 짝사랑하는 직장(방송국) 동료 역이었죠. 남자 3번 정도의 역할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배우여서 내력을 물으니 김혜수의 동국대 선배였고 김혜수의 추천이 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데 일조했다는 거였습니다. 러시아 유학을 다녀온 배우로 양윤호 감독(알고 보니 동국대 연영과 동기더군요. 나중에 함께 일하게 되는 IHQ의 정훈탁 대표와도 모두 동기생입니다)과 '유리'라는 영화를 찍어 놓고 아직 개봉은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아직 알려지진 않았지만 실력이 대단한 배우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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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의 초반에는 박신양의 재즈 댄스 장면이 삽입돼 있었습니다. 장PD에 따르면 "우연히 춤 실력을 보게 됐는데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드라마 내용을 수정해서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이런 설정이었죠. 김혜수의 직장 동료들이 회식 자리에서 나이트클럽에 갑니다. 다들 술을 마시고 떠드는데 워낙 내성적인 성격으로 설정되어 있던 박신양은 자연스럽게 소외되죠. 그때 말없이 앉아 있던 박신양이 스테이지로 나가 열정적인 춤을 춥니다. 물론 '나이트 댄스'와는 거리가 먼 춤이지만 대단히 역동적이었고, 극중에서 김혜수를 포함한 직장 동료들이 박신양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때 드라마가 폭발력이 있었다면 이 장면도 꽤 화제가 됐겠지만 불행히도 '사과꽃향기'는 시청률 면에서 그닥 신통한 반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박신양도 이 드라마로 주목받지는 못했죠. 뒤이어 '유리'도 개봉됐지만 난해하기로 소문난 박상륭 원작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점이 화제가 됐을 뿐, 실제로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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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신양은 이듬해인 1997년 최진실과 공연한 '편지', 98년엔 전도연과 공연한 '약속'을 히트시키면서 승승장구합니다. 특히 이 시기, 저는 참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건 박신양의 '외모'가 여성들에게 먹힌다는 거였습니다.

대다수 남자들이 보기에 박신양은 결코 미남이 아닙니다. 심지어 상당히 많은 남자들이 '그래도 외모는 내가 박신양보단 낫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여자들은 비웃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자들은 박신양에게서 '젠틀함+순정을 지키는 남자+소극적이지만 정직한 남자=믿을 수 있는 남자'의 이미지를 읽어내더군요. 이런 이미지가 집대성+극대화된 것이 바로 '파리의 연인'이겠죠. 하지만 솔직히 '파리의 연인'을 보면서도 그런 열광을 이해하는 데에는 참 곤란함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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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배우는 그 바깥에 순수 야성에 가까운 이미지를 기르고 있습니다. 이 배우가 그렇게나 범죄자 역할을 많이 한 건 우연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쪽의 가능성은 대단히 풍부하다고 생각합니다. '킬리만자로'를 비롯해 '범죄의 재구성'이나, 거슬러 올라가 '약속'의 공상두처럼 자기 생각에 외곬수로 빠져 있는 양아치 연기를 할 때 박신양의 연기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대다수 남자들은 이 쪽에 훨씬 가까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람의 화원'에서의 김홍도 연기는 이제까지 박신양의 이미지를 다져온 두 개의 선에서 어긋나 있었습니다. 물론 외곬수의 고집장이 캐릭터라고 하자면 지금까지 박신양이 지켜온 수많은 이미지의 교집합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 예술가 연기는 그중 어떤 캐릭터와도 좀 달랐습니다.

'바람의 화원'에서 박신양의 첫 등장이 어떤 장면일지가 참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첫회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의 광화사의 모습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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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는 나뭇잎을 잔뜩 꽃고 얼굴에는 흙칠을 한 김홍도의 모습. 이 인상적인 첫 장면을 통해 박신양은 '그림에 환장한 사람', 그리고 '그림을 위해서는 심지어 목숨까지 아랑곳않는, 그림에 미친 사람'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었습니다. 안경과 더부룩한 수염에서는 '빠삐용'에서의 더스틴 호프만의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무튼 강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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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초기에는 박신양의 합류 여부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예민하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박신양의 성품과 초고액 출연료가 가장 많은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고 나니 박신양의 가치가 새삼 느껴집니다. 형식과 전통에 꽉꽉 갇혀 있던 당시의 화단에 일대 충격을 줄 수 있는 강인한 소신과 타고난 재능을 갖춘 대 화가이면서, 동시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린 아이와도 소리를 지르며 싸울 수 있는 천재 화가의 이미지를 첫회 30분 정도의 분량에 쉽게 각인시킬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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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 채널에서는 또 다른 천재가 인기몰이에 한창입니다. '강마에' 김명민이죠. 이 천재는 천재이긴 하되 진짜 천재에 대한 컴플렉스를 안고 있는 가짜 천재입니다. 전형적인 살리에리 증후군 환자죠. 이런 억눌린 감정이 사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을 상대할 때에는 더욱 예술의 엄정성과 고귀함을 강조하는 권위주의로 발산되는 인물입니다.

참으로 복잡다단한 인물이지만, 김명민의 솜씨에 의해 이 인물은 너무나 편안하게 시청자들에게 소화됩니다. 인물을 분석하고 이해할 필요도 없이, 그냥 꿀꺽꿀꺽 마시면 '아, 이게 강마에구나'라는 느낌이 들게 요리되어 있기 때문이죠. 이게 대단한 배우와 보통 배우의 차이일 겁니다.

사실 김명민은 데뷔할 때 일각에서 '제2의 박신양'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외모에(글쎄 남자들에겐 이렇게 보인다니까요;;) 선이 굵은 연기를 한다는 면은 공통점으로 꼽을 만 하죠. 그런데 두 배우가 이제 맞대결을 펼치고 있으니 참 흥미로운 일이죠. 시청자들이 어느 쪽 손을 들어 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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