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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의 밤 풍경을 보기 위해 나섰다.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가 봐야 한다고 하는 곳은 마요르 광장 주변과 푸에르타 델 솔. 그래서 마드리드의 상징 중 하나인 마요르 광장 Plaza Mayor 근처로 나섰다.

 

 

 

마요르 광장 역시 스페인의 다른 광장들처럼 건물로 둘러 싸여 있다. 애당초 처음에는 광장이 있고 그 주위에 건물이 선 것이겠지만, 이제는 광장을 보기 위해선 건물들 사이로 난 터널(?)을 지나가야 한다.

 

 

이런 느낌.

 

문득 지금도 약간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청계천 구 세운상가 언저리의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쇠락한 동네가 되어 가고 있지만 아주 오래 전에는 그 구름다리같은 청계천 상가의 기둥 아래로 제과점이며 술집, 금은방 같은 점포들이 이어졌다.

 

마요르 광장 주변의 고풍스러운 기둥과 가스등 느낌의 가로등, 그 노리끼리한 불빛 아래, 마드리드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고, 와인을 마신다. 이야기가 넘쳐 난다. 구경꾼은 알 수 없는.

 

 

 

광장 안쪽. 당연히 북적이고 있다.

 

 

딱 나와 있기 좋은 날씨. 선선하고 보송보송하다.

 

 

펼쳐 보면 이런 모습.

 

 

광장을 둘러싼 건물 틈으로 나오는 문(물론 여닫는 문은 아니다) 하나 하나 마다 이렇게 이름까지 붙어 있다.

 

 

광장 서쪽으로 나오면 불이 환한 거대한 유리장 같은 것이 보인다.

 

사진을 클릭해 보면 건물 왼쪽 위로 간판이 있다. Mercado de San Miguel. 산 미구엘 시장이다.

 

 

 

이 위치. 대략 광장과 비교해 봐도 결코 만만찮은 규모다.

 

 

밤 열시 가까운 시간인데 아직도 불야성.

 

유럽 다른 지역 사람들이 스페인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거라고 한다.

 

(물론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와도 같을 거라고 생각된다.)

 

 

 

스페인에서 가는 곳마다 입이 즐거웠던 이유 중 하나는 풍성한 과일.

 

태양의 혜택을 받은 과일들이 진한 원산지의 맛으로 다가왔다.

 

 

가격도 꽤 괜찮은 편. 반건조 무화과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스페인. 딱 한국 밤 같은 생긴 밤이 있고, 그 옆에도 어디서 많이 보던 과일이 있다.

 

그렇다. 한국의 대봉시와 똑같이 생긴 감이다.

 

그런데 대봉시보다 100배쯤 맛있다. 모습은 대봉시지만 내용물은 단감인데, 딱딱한 단감이 아니고 살짝 말캉해서 망고보다 약간 더 단단한 상태의 단감(감 좋아하시는 분들은 어떤 상태인지 아실 수 있을 거다). 그 맛난 스페인 과일 가운데서도 가장 맛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막힌 맛이다.

 

잘 보면 과일의 이름은 Kaki, 즉 일본어로 감이다. 일본에서 수입된 감이 스페인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 시장이 꽤 고전적인 향취를 느끼게 한다면 산 미구엘 시장은 그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물론 시장 구석구석마다 이렇게 즉석에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게 해 놓았다는 점은 똑같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좋은 여건이다.

 

 

 

금요일 밤이다 보니 사람들이 와글와글.

 

 

그리고 문득 젓갈과 비슷한 신기한 비주얼 발견.

 

 

뭔가 지렁이 같은 비주얼이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저 Gulas라는 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별미로 장어의 새끼를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위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 저렇게 마트에서 파는 Gulas는 큰 생선(주로 대구) 살로 만든 가짜 새끼 장어라는 것.

 

즉 장어의 비주얼을 가진 '새끼장어 맛살'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게맛살을 먹듯이 이쪽에선 또 이런 걸 먹는다.

 

 

 

빠에야에 와인까지 곁들여도 5유로. 싸다.

 

 

 

 

가격표를 보기 전까지는 오향장육인 줄 알았다. 삼겹살 같이 생긴 초콜릿 과자. 얇은 막을 여러 겹 붙여 튀겨낸 듯한 맛이다. 페스추리 Pastry 의 느낌?

 

 

 

같이 어울려 당장 뭘 먹고 싶은 분위기. 아예 끼니를 여기서 때울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그 자리에서 저렇게 굴을 까서 화이트와인과. 그리고 그 곁엔 친숙한 타바스코. 침이 절로 넘어간다.

 

 

영국처럼 모든 사람이 서 있는 펍의 분위기는 아니고, 웬만큼 앉을 자리가 있으면 다들 앉아서 먹는 느낌.

 

 

 

헉. 아구 ;;

 

바로 옆이 수산물 매장으로 이어지지만 냄새 같은 것은 전혀 없다. 한국 대형마트의 수산물 코너와 비교해도 그 반의 반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쾌적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마트 수산물 매장의 위생 관리가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위 이름표에서 볼 수 있듯 아귀는 스페인어로 Rape다. (영어 아니다)

 

이 이름표를 보고 웃음이 난 이유가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해산물 스튜 사르수엘라 Zarsuela를 먹었을 때, 웨이터에게 이 스튜의 국물은 뭘로 내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Rape가 주 재료라는 거였다. 대체 그게 뭐냐.

 

그때 그 웨이터 형이 그려준 그림이 이랬다.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는 건 저 그림을 보고 아귀라고 맞췄다는 것. ^

 

 

 

 

그리고 여러분이 스페인에 가시면, 꼭 드셔봐야 할 것이 - 물론 지금까지 꼽은 것도 엄청나게 많지만 - 바로 저 물건이다. 빨간 새우. 카라비네로 Carabinero 라고 한다. 저 선명한 붉은 색을 제외하면 한국 대하와 똑같이 생겼는데, 제철에 먹는 대하나 타이거 새우보다 조금씩 더 크다. 지중해 산으로 이탈리아에서는 감베로 로쏘 Gambero Rosso 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래 조그만 숫자를 보면 1Kg에 70유로. 대략 9만5천원 정도 되니 절대 싼 식재료는 아니다. 하지만 한번 맛을 보면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살도 살이지만 대가리에서 정말 진한 국물이 나온다. 너무너무 맛있다.

 

지난번 글 http://fivecard.joins.com/1262 에서 소개한 벤타 엘 부스콘에서 먹으면 이렇게 나온다. 오른쪽 아래에 수줍게 숨어 있는 빨간 애들이 바로 쟤들이다.

 

 

 

시장을 나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여기가 바로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형태의 술집인 메손 Meson이 즐비한 산 미구엘 거리 Calle Cava San Miguel.

 

 

 

 

저 계단을 올라가면 마요르 광장으로 통한다.

 

 

그래도 한군데는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음?

 

 

물론 1년 내내 관광객이 밀어닥치는 곳이니 본래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겠지만, 그래도 뭔가 스페인의 정취가 느껴진다.

 

 

 

마드리드 특산물이라는 코시도 마드릴레뇨를 판다는 간판.

 

마드리드에 한 1주일만 있었어도 저런 집들을 찾아다니며 마드리드의 맛을 더 연구하련만.

 

이렇게 해서 마요르 광장 밤 풍경 스케치를 완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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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의 둘쨋 날. 여전히 날씨는 흐리고, 동행인은 쇼핑을 원한다. 가난한 여행자의 마음에 그늘이 진다.

 

생전 처음으로 H 브랜드의 매장을 들어가 보고, 스페인을 대표하는 엘 코르테 잉글레스 El Corte Ingles 백화점도 가 보고... 뭐 그런 오전. 국내에서 살 수 없는 청바지를 잔뜩 샀다.

 

(여담이지만 국내 의류 메이커들은 허리 사이즈 34인치가 넘는 사람은 그냥 자루만 만들어 줘도 감사하며 입으라는 태도를 언제 버릴 지 궁금하다. 뚱보들도 디자인이 들어간 옷을 입고 싶다.)

 

 

 

그리고 찾은 곳이 바로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제2의 미술관인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공식 명칭은 국립 아트센터 뮤지엄 레이나 소피아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꽤 길다. 프라도가 고전 미술 작품의 총 본산이라면 레이나 소피아는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곳이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 파리의 퐁피두 센터와 비교할 만 하다고 할까? 본래 병원이었던 건물을 1986년 개축했고, 설립자인 레이나 소피아 왕비의 이름을 땄다.

 

저 대형 엘리베이터 박스가 붙은 쪽이 정문이라는데 정문은 사실 눈길이 별로 가지 않고...

 

 

 

후문 쪽이 진짜 현대 미술관 답다.

 

 

 

아무 것도 안 써 있는데 분명히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일 것 같은 대형 조형물이 서 있다.

 

나중에 보니 제목이 '붓놀림(Brushstroke)' 이라고. 그렇게 알고 보니 붓처럼 보인다.

 

 

천장과는 또 이런 조화.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의 식당이 괜찮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제가 한번 먹어 보겠습니다.

 

 

가격이 꽤 괜찮은 편.

 

그리고 비프 스테이크가 express menu에 있다는 점도 꽤 인상적이다.^^

 

 

 

식사와 함께 미술관을. 그리고 휴식을. 아주 좋은 느낌이다.

 

 

 

 

 

많은 분들이 이 미술관을 찾는 이유를 정확하게 안다. 2층 옆에 써 있다. 게르니카 Guernica 라고.

 

 

 

엘리베이터에서 바라본 풍경.

 

 

 

이 미술관도 마찬가지. 사진을 찍지 말라는 표시는 분명히 되어 있으나, 대부분 지역에서 사진을 찍건 말건 별 관심이 없다.

 

형식적으로라도 '사진을 찍지 말라'는 역할을 해야 할 안내원(?) 들은 꽤 많이 배치되어 있다. 하는 역할에 비해 사람이 많이 고용되어 있는 것은 아무래도 사회적 배려라는 느낌이다. 만약 사설 미술관이라면 정말 남아 도는 인력이 많다.

 

아무튼 그 사람들도 딱 한 군데, 게르니카 근처에서는 사진 찍기를 매우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다.

 

 

 

그래도 게르니카가 어떤 식으로 전시되어 있다는 것은 보여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건너편 전시실에서 찍은 장면.

 

저 방 안으로 들어가면 한 벽 가득 게르니카가 펼쳐져 있다.

 

매우 크다. 방 안에서는 어차피 그림 전체를 찍을 각도가 안 나온다.

 

 

 

 

1937년 4월26일. 히틀러의 독일 공군이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 마을을 폭격한 사건이다. 165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그런데 배경을 알고 보면 더 기가 막히다. 당시 스페인과 독일은 전쟁중도 아니었다. 스페인은 내전중이었고, 뒷날 이 폭격은 프랑코가 독일 공군에 요청해 이뤄진 것임이 밝혀졌다. 바스크 인들의 민족주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한 공격이었다는 얘기다.

 

외국군을 요청해 자국 국민을 학살한 만행에 분노한 피카소는 강렬한 그림을 그려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하고 이를 규탄했다. 프랑코가 집권한 이상 이 그림은 스페인에 들어갈 수 없었다. 대신 뉴욕 현대미술관의 간판이 되었다. 프랑코 사후 그림이 돌아올 수 있게 됐을 때에도 스페인의 모든 미술관이 이 작품을 원했고, 경합 끝에 레이나 소피아가 최종 승자가 됐다.

 

 

 

피카소는 이후 이런 그림도 그렸다. '한국에서의 학살'. 6.25 전쟁 중 한국에서 양민을 학살한 사건이 어디 한두번이었을까. 이 그림은 그중에서도 황해도 신천에서 있었던 학살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고 한다.

 

 

 

전시실은 대략 이런 느낌. 프라도 보다 세련된 느낌이 든다.

 

 

네 방향을 둘러 싼 본래 병원 건물답게 중정 patio 가 있고 가운데 제법 나무가 우거졌다.

 

 

 

인상적인 그림을 발견하긴 했는데 안타깝게도 제목과 작가 이름 적은 메모를 분실.

 

 

 

어디에나 별 관심 없이 학교에서 가잔다고 온 아이들은 구석에 '짱박히기' 신공을 구사한다.

 

 

 

 

 

이번엔 메모를 같이 찍었다. 루치아노 파브로라는 이탈리아 작가.

 

무라노 글래스를 이용한 작품이 매우 인상적이다.

 

 

 

 

반면 존 케이지의 '소리 전시'는 대체 뭘 하자는 것인지.

 

현대미술도 분명 유행을 탄다. 그리고 '현대'라는 이름으로 1950년대 이후 치러진 수많은 실험들 가운데서 이제 걸러 낼 것은 냉정하게 걸러 낼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당시에는 매우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에 와서는 미술관 한 구석의 자리를 차지하고 먼지만 쌓여가는 쓰레기 대접을 받는 것이 마땅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세월을 견뎌 내지 못하는 것을 강제로 끌고 갈 수는 없는 일 아닐까.

 

 

 

레이나 소피아의 중정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이 애정행각을 펼치고

 

 

누가 봐도 칼더의 작품인 모빌 하나가 무심히 아이들을 내려다 본다.

 

 

엇 이건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인데?

 

 

알고 보니 호안 미로의 작품.

 

 

 

 

이 얼굴을 희화화 한 느낌이더라니까... 뭐 느낌이 안 오면 말고.

 

 

 

 마드리드의 하늘은 계속 부옇게 흐려 있고,

 

 

어느새 뉘엿 뉘엿 해가 넘어가는 오후. 건너편에 바로 아토차 역이 있다.

 

 

그러고 보니 레이나 소피아 바로 앞이 작은 호텔촌이네.

 

베란다에 나와 레이나 소피아를 보는 것까진 좋은데 바로 역 앞이라 꽤 시끄러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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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로 가는 길은 고속전철 AVE 을 이용하기로 했다.

 

다소 흐린 날씨. 새로 지어진 세비야 산타 후스타 역은 최첨단 시설을 자랑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의 한가로움도 좋지만, 역시 초행 여행자라면 기차를 이용하는게 좀 더 안정된 여행의 지름길인 듯.

 

 

 

AVE 내부.

 

 

 

장거리 여행자를 위한 큰 짐칸이 따로 마련돼 있다. KTX에도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중간 정차 역에선 슬쩍 불안해서 한번 가 보기도 했다.

 

 

 

 

간단한 스낵을 파는 가운데의 휴식 공간이 인상적. 본격적인 식당칸은 아예 없었다.

 

 

마드리드 아토차 Atocha 역에 도착. 2시간 30분 소요.

 

마드리드로 오는 길에는 약간의 고민이 있었다. 중간에 워낙 명망 높은 관광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코르도바에서 1박을 할 생각도 있었지만 일단은 마드리드로 직행하는 것이 여러 모로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AVE를 이용해 오전에 이동하면 오후 시간을 편안하게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기 때문.

 

 

이쯤 되면 현대 광고만 봐도 좀 반갑다.

 

 

역에 내리자 가는 빗발이 떨어진다. 순식간에 택시 잡는 줄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보도로 뛰어내려 택시를 잡는다.

 

그러고 보면 역에 내려서도 별 말 없이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밀치고 지나간다.

 

이 고향에 온 듯한 친숙함은 뭐지? ^^

 

 

 

멀지 않은 그란 비아 Gran Via 거리의 아틀란티코 마드리드 Atlantico Madrid 호텔로 이동.

 

수영장이나 헬스클럽이 있는 화려한 대형 호텔은 아니지만 유서깊은 대도시를 여행하는 데 매우 적절한 호텔이었다. 가격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교통이 편했다. 1호선의 Gran Via 역과 5호선의 Callo 역이 지척이었고, 솔 광장은 걸어서 10분 이내에 위치해 있었다. 방이 좀 좁기는 했지만 깨끗하고 쾌적. 유럽 호텔들이 다 그렇듯 방이 좀 작은 것 빼곤 흠잡을 데가 없었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당시 마드리드 지역 1위였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호텔이었다. 추천.

 

http://www.tripadvisor.co.kr/Hotel_Review-g187514-d227459-Reviews-Hotel_Atlantico-Madrid.html

 

 

 

여장을 풀고 늦은 점심을 위해 '마드리드의 국물'을 먹으러 갔다.

 

마드리드의 국물, 라 볼라의 코시도 http://fivecard.joins.com/1177   참조.

 

 

그리고 나서 한걸음에 달려간 곳은 바로 프라도 미술관.

 

3대 뭐니 4대 뭐니 하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흔히 우피치, 에르타미주, 프라도를 유럽 3대 미술관이라고 한다는데, 이 순위의 묘한 점은 파리의 미술관이 모두 빠져 있다는 점이다. 루브르나 오르세가 위의 세 미술관에 비해 모자란 점이 있단 말인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는? 뮌헨의 알타 피나코텍은?

 

아무튼 3대니 4대니 이런 숫자에는 신경쓰지 말자는 얘기다. 물론 그렇다고 프라도 미술관이 위대하지 않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거기에 규모와 컬렉션에서 딸리지 않는 미술관이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

 

 

 

 

의외로 한산한 풍경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사람이 빽빽하다. 

 

마드리드를 다녀온 사람들은 흔히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에게 비해 볼 게 없다고들 한다. 마드리드가 스페인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된 게 그리 오랜 일이 아니고, 스페인 여행을 생각할 때 사람들이 떠올리게 되는 대성당이나 찬란한 아랍 유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관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결코 그렇지 않다. 일단 톱스타 프라도가 있고, 레이나 소피아와 티에센 보르네제 미술관이 있다. 특히나 프라도는 벨라스케스, 고야, 무리요 같은 로컬 스타들과 루벤스, 엘 그레코, 보쉬 같은 용병들을 대거 끌어모은 진정한 미술관의 레알 마드리드라고 불러 손색이 없다.

 

 

2층 중앙의 긴 복도. 벽에는 주로 루벤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날 프라도 미술관에서 4시간 정도를 보냈다. 미술관이 8시 넘어 문을 닫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미술관 곳곳에는 모사를 하고 있는 캔버스가 펼쳐져 있었다.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배려인 듯...?

 

 

물론 미술관에 가기 전에 두 권의 책, 성경과 그리스 신화는 반드시 읽고 가야 한다... 고 전에도 강조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이 그림을 보고 '아, 여자 옷을 입고 있는 인물이 아킬레스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작품을 즐기기 어렵다.

 

 

 

달리 미술관에서도 언급했던 파리스와 세 여신의 대면. 날개 달린 모자와 샌들을 신은 헤르메스가 파리스 옆에 있고 세 여신은 각각의 상징을 품고 있다. 각각 투구와 방패를 밑에 둔 아테네, 에로스가 매달려 있는 아프로디테, 공작을 거느린 헤라다.

 

...뭐 이런 그림이 수백점 있다.

 

그리고 눈길을 끈 그림 한 점.

 

 

 

멜렌데스라는 화가가 그린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다. 엘 그레코의 유명한 그림 제목과 같다.

 

내용은 같다. 오르가스라는 백작이 선행을 많이 하고 신앙심이 두터웠던 덕분에 그의 매장 현장에 이미 죽은 성인들이 나타나 사람들이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엘 그레코의 그림을 봐도 그렇고, 이 사람의 그림을 봐도 그렇고... 사람들의 놀라움이 '오오, 성인이 나타나다니, 역시 백작님은 위대한 분이셨어!' 라는 식의 것이라기 보다는 '으악! 유령이 나타났다!' 인 것 같아 좀 의아하기도 하다.

 

아무튼 비슷한 그림이라 놀랐다는 이야기.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내가 무슨 미술에 조예 깨나 있는 사람이라고 우기는 것 같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는 않다.

 

 

 

그냥 호기심일 뿐.

 

이 미술관에서 보쉬의 '쾌락의 정원'과 함께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린다는 벨라스케스의 '여관들(시녀들)'. '사진 찍지 말라'를 모토로 하고 있는 미술관이지만 실제로 프라도 미술관은 굉장히 사진 찍기 좋은 미술관이기도 하다. 그닥 통제하려는 시도도 없고, 사진을 찍으려는 포즈를 취한 사람에게 그냥 씩 웃기도 한다.

 

그래도 이 '여관들'이 있는 방만큼은 꽤 사진을 찍지 말라고 통제를 하더라는. 그래서 문 밖에서 살짝 분위기 사진만 찍었다.

 

 

 

역시 벨라스케스의 '바쿠스의 승리(술꾼들)'이 있는 곳. 소심하게 멀리서...

 

직접 가까이서 그림을 보면 볼수록 벨라스케스는 천재라는 느낌이 든다.

 

어느 정도로 천재냐 하면...

 

약 400년 뒤에 태어날 미래의 사람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왼쪽은 프라도에 있는 '세바스찬 모라의 초상'이라는 난쟁이 그림. 그리고 오른쪽은... '왕좌의 게임'을 보시는 분이라면 너무도 잘 아실 배우 피터 딘클리지.

 

그림을 보고 허걱,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누가 저렇게 비교 사진까지 만들어 올려 놨다.

 

 

 

너무나도 광활하고 볼게 많은 프라도 미술관에 들어서서 일찍 지쳐 나가떨어질 수도 있는 분들을 위해 추천하자면, 이 미술관에서 뭐니 뭐니 해도 벨라스케스의 대표작들과 고야의 '블랙 페인팅' 관 만큼은 놓쳐선 안된다고 하고 싶다.

 

고야는 일찍부터 화가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다. 그가 화가로 인정받은 초기 작품들은 사실 소박하다고 할 정도로 나이브한 느낌이 강하다. 농촌 정경이며,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동네 잔치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 그가 나폴레옹 전쟁을 겪고, 인간성이 파괴되는 현장을 목격한 만년에는 그림 자체가 바뀐다. 위에 가져다 놓은 '크로노스'도 대표적인 이 시기의 작품이다.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기를 해치는 자식이 나온다는 예언을 빗나가게 하기 위해 태어나는 아이들을 모두 집어 삼켰다. 이런 어두운 심성을 표현한 시기를 고야의 '블랙 페인팅' 시대라고 말한다.

 

이 시기의 그림들을 보면 인간의 악한 내면을 들여다 보는 듯한 고야의 필치가 가슴을 뻥 뚫는 느낌을 준다. 전관, 수백점의 그림을 보더라도 고야의 블랙 페인팅 컬렉션 만큼 강렬한 느낌을 주는 곳은 또 없었다.

 

정말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팁: 프라도에서 벨라스케스 관과 고야의 블랙 페인팅 전시실만큼은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이런 한적한 공간도 있다.

 

 

미술관에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술관 카페'.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슬슬 이런 카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꽤 오후에 미술관을 찾아 폐관 시간이 되어 나왔더니 밖은 이미 깜깜해져 있었다.

 

그런데 나와 보니 거리를 메운 시위대의 행렬. 아. 여기는 아직도 여전하구나.^^

 

 

 

시위 때문에 도로 교통이 마비되어 어찌 어찌 하다가 호텔로 귀환.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은 약 1km 정도 떨어져 있다.

 

 

 

 

 

 

호텔 야경과 함께 꿈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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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 들어서던 날, 비가 오고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태양의 나라에도 가을 겨울은 있었다. 이런 날씨라면... 국물이 필요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먹었던 사르수엘라(자르주엘라) Zarzuela가 생각났다.

 

하지만 호텔 매니저는 사르수엘라를 잘 하는 집은 커녕 사르수엘라라는 음식을 아예 몰랐다. "공연을 보시고 싶은 건가요?" 하고 반문을 한다. 참고로 사르수엘라는 스페인식 오페라의 일종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포기. 그럼 카스티야 풍의 국물 음식은 뭐가 있는지 물었다. 문득 가이드북에서 본 코시도 Cocido 라는 말이 생각났다. 호텔 근처에 코시도 잘 하는 집이 있느냐고 묻자 매니저의 눈이 반짝였다. 이건 자신이 있다는 신호. '미첼린'에도 나온 집이란다. '음. 스페인식으로는 미슐랭이 미첼린이로군'.

 

그가 지도를 꺼내 표시해 준 집은 라 볼라 La Bola. 볼라 거리를 대표하는 집이라는 뜻이란다. 호텔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를 걸어가면 작은 광장이 나오고, 거기서 메르쿠레 Mercure 호텔이 보이면 왼쪽으로 꺾으란 설명. 시키는 대로 했는데 그 안에서 또 길이 두 갈래다. 이런. 일단 볼라 거리 Calle de Bola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다행히 한 아주머니가 이 방향이라고 가르쳐 준다.

 

 

 

가는 길에 한식당 마시타 Mashita 발견. 사실 여기까지 와서 한식당을 갈 이유는 없었지만 나중 호기심에 찾아 보니 트립어드바이저에서 꽤 순위가 높은 집이었다. 많은 손님들이 이 집에서 '환상적인 스시'를 먹었다고 하는데... 과연 무슨 스시를 먹은 것일지. 혹시 노리마키?

 

 

 

 

마시타에서 골목길을 죽 내려가면 오른쪽에 라 볼라가 보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후 3시에 줄을 서 있다. 대단하다.

 

 

 

 

집 대문을 장식하고 있는 미슐랭(스페인식으로 미첼린) 가이드의 위용. 그리고 더 잘 보이는 '현찰만 받아요' 간판.

정감있는 고전적인 분위기의 실내엔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첫 주문은 당연히 이 집의 성명절기인  '마드리드식 코시도 Cocido Madrileño '. 그리고 고기와 토마토 소스 스튜라는 설명이 있는 로파비에하 Ropavieja를 시켰다.

 

 

 

 

아담한 항아리에 담긴 코시도가 나왔다. 아래 보이는 올리브는 기본 제공. 이 올리브만 반찬으로 해서도 빵 한접시를 비울 수 있을 정도로 신선하고 상큼한 맛이 났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후, 항아리가 개봉됐다.

 

 

 

 

코시도를 먹는 순서 1. 우묵한 접시에 소면 같이 가느다란 파스타를 담고, 거기에 항아리에서 국물만 따라 붓는다. 진한 국물과 함께 소면을 말아 먹는 셈이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아주 인상적인 맛.

 

대부분의 국내 곰탕/설렁탕 집들은 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오만가지 비법을 다 쓴다. 마늘과 양파, 통후추는 기본이고 각종 한약재에서 커피까지 다양한 소재들이 고기를 삶을 때 비장의 재료로 사용된다. 하지만 코시도의 국물은 이보다 훨씬 정직한 '고기 국물' 맛이다. 국물의 '고기 냄새'에 예민한 사람들은 싫어할 수도 있을 듯.

 

 

 

수프와 파스타 접시를 비우면 항아리의 내용물이 나온다.

 

 

 

스페인 특유의 알 굵은 콩을 중심으로 쇠고기 한 덩어리(양지머리 같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됨), 닭 가슴살 한 덩이, 소 꼬리 한토막, 그리고 삼겹살(이라지만 사실은 거의 비계) 한 덩이가 들어 있다. 이걸 푹 곤 국물을 좀 전에 먹은 거다.

 

 

 

고깃덩이를 가져다 찢어 먹는게 코시도의 두번째 순서. 느끼한 맛을 덜기 위한 토마토 소스, 초절임 고추(전혀 맵지 않다), 날 양파가 제공된다. 고기와 삶은 콩, 토마토 소스를 마구 버무려 먹다가 심심하면 고추절임을 한입씩 깨물면 된다.

 

맛있다. 음.

 

 

 

그러는 사이 두번째 메뉴 로파비에하 Ropavieja 등장.

 

재료상으로는 코시도 마드릴레뇨와 크게 다를 게 없다. 토마토 소스를 나중에 첨가해서 먹느냐, 아니면 토마토 소스를 함께 넣고 고기를 잘게 찢어 국물이 많지 않게 자박자박하게 끓여 내느냐의 차이 정도.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는 로파비에하가 이 집의 진미를 맛보는 더 간편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코시도로 일어선 집인 만큼 처음에는 일단 코시도를 맛봐 주는게 예의가 아닐까 싶다.

 

이밖에도 메뉴상으로는 다양한 생선과 고기 요리를 취급한다. 혹시 다음에 가 볼 기회가 있다면 이 집 방식의 라따뚜이를 맛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아무튼 태양의 나라에도 쌀쌀한 날씨는 있는 법, 푸짐하게 먹고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마드리드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코시도.

 

 

 

끝으로 서비스의 질. 서빙하는 거구의 어르신도 라 볼라의 명성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주어왔을 듯 하다. 말 안 통하는 외국인 손님들을 맞아서도 여유가 넘치고, 양쪽에서 똑같은 음식을 주문했을 때 코시도 항아리를 들고 왔다갔다 하면서 '어.느.놈.을.먼.저.줄.까.요' 를 몸짓으로 구현하기도 하는 재치까지. 음식 맛 뿐만 아니라 여유있는 서비스도 인상적인 식당이었다.

 

 

 

1870년부터 성업중인 노포의 명성은 역시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닌 듯.

 

 

 

스페인 여행 첫 소식을 이걸로 전합니다. 앞으로 [여행]과 [맛집]으로 나눠 포스팅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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