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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쎈여자 도봉순] 1회가 성원에 힘입어 JTBC 드라마 사상 첫회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수도권 4.04, 전국 3.8이라는 저희로서는 꿈의 숫자가 나왔습니다. 진정 작가님, 감독님, 스태프, 제작사, 그리고 모든 출연진에게 감사드립니다.

지난번 예고대로 드림 트리오의 결성 계기로 돌아갑니다. 박보영-박형식-지수를 저희는 무적 트리오라고 부릅니다. 그냥 단지 남자 둘, 여자 하나의 축이라서가 아니라, 본래 드라마의 구성이 '도봉순의 힘, 안민혁의 돈과 기발함, 인국두의 수사력과 활동력'이 삼각편대를 이뤄 악의 무리들을 물리쳐 간다는 흐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셋이 모여야 '정의의 편'이 완성되는 구조였던 것이죠.

물론 삼총사라고는 하지만 뭣보다 우선, 당연히 타이틀 롤인 도봉순 역에 누구를 기용하느냐가 최대 관건이었습니다.

일단 이 드라마의 어머니인 백미경 작가님과 처음 대본을 놓고 마주했을 때부터, '일단 육체적으로 강건해 보이는 늘씬한 건강미녀 스타일은 배제하자'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JTBC 안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외형적으로 연약해 보이고, 전혀 힘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스타일'이 필요하다는 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감했습니다. 

앞서 얘기한대로 도봉순은 단지 슈퍼히어로일 뿐만 아니라 한국 88만원 세대, 구직자 젊은이, 그 중에서도 여성 구직자를 대변하는 캐릭터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 귀여움이 필수. 당연히 체격도 크면 안 됨.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 나가다 보니 거의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상적인 도봉순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바로 박보영이었죠.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도봉순 역으로 박보영을 데려올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가 당시의 염원이었습니다. 검증된 연기력. 천부적인 귀여움. 아담한 체격.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폭넓은 인기. 어디 하나 부정적인 요소가 없었습니다. 다만 작품 보는 눈이 까다롭고, 워낙 찾는 곳이 많아 모시고 오기가 어렵다는 것 뿐.

그런데 다행히도, 이미 박보영이 이 작품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공동제작사 JS픽처스의 이경식 이사님이 일단 박보영 측과 교감이 있었고, 작품에 대한 호감도 형성시켜놓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게 곧 '최종 결심'은 아닌 상황이었죠. 아무튼 그 뒤로도 꽤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캐스팅을 하다 보면 늘 그렇지만 답답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정말 이 배우가 우리 대본을 좋아하기는 하는 걸까. 좋아한다면 대체 얼마만큼이나 좋아하는 걸까.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방법은 없을까.

그러던 어느날, 박보영과 친분이 두터운 어떤 인물과 우연히 통화를 했습니다.

그: 보영이가 요새 꽂혀 있는 대본이 있다던데요?

나: (헉) 그, 그게 뭔데요?

그: 제목은 모르겠고... 뭐 슈퍼우먼 이야기라던가? 여주인공이 힘이 엄청 세대요. 아무튼 재미있대요.

합창교향곡 4악장이 머리 속에서 울려퍼지는 느낌. 이거 되겠구나. 될 수 있겠구나.

그리고 기쁜 예감은 머잖아 현실이 되었습니다. 작가/감독님과 함께 CD만한 얼굴의 박보영을 처음 만난 날. 차오르는 환희를 느꼈습니다. 우리는 그냥 된거다. 이 다음부터 뭐가 어떻게 되든, 이 박보영/도봉순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수 있을거야. 뭐 그런 느낌이었던 것이죠. (백미경 작가님: 어쩌면 그렇게 예뻐요. 쳐다 보고만 있어도 질리질 않네.)

그날의 만남 이후에도 우리의 보영님을 노리는 수많은 마수(?)들이 뻗어왔지만(정말 알게 모르게 수많은 제의가 쏟아졌습니다. 농담 아닙니다) 당대의 의리녀 보영님은 사악한 유혹을 모두 뿌리치고 일편단심 도봉순을 기다려 주었고, 결국 우리는 박보영이 연기하는 최상의 도봉순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피데스스파티윰 김상유 대표님. 사랑합니다.)

촬영이 시작된 이후 우리의 보영님은 한번도 저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박보영이 모니터를 가득 채울 때, 이형민 감독님을 비롯해 촬영장의 모든 스태프는 추위도 잊고, 배고픔도 잊고(이건 아니고), 그저 얼굴 가득 웃음을 띄우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했거든요.

네. 글자로만 쓰여져 있던 도봉순의 이상을 200% 실사로 실현시킨 것은 바로 박보영이었습니다.

이미 드라마 본편 방송 전, '한끼줍쇼'를 통해서도 확인된 이 뽀블리의 위력.

박보영의 캐스팅 확정 이후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느낌에 헤벌레 하고 있었지만 사실 두 사람의 남자 주인공이 필요했습니다. 도봉순을 둘러 싼 두 남자, 안민혁과 인국두. 잠시 프로필을 살펴봅니다.

안민혁: 재벌가 5형제의 막내지만 부모 덕 안 보고, 게임 회사를 창업해 어린 나이에 자수성가에 성공한 능력자. 거기에 완벽한 꽃미남이지만 또 그런 만큼 오만불손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관심이 없음. 그리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괴상한 사고방식의 소유자. 대 저택 지하에 AV룸+게임룸+지하 방공호 개념의 던전을 짓고 남자의 꿈을 실현하며 살고 있다. 자신의 상식을 넘어서는 초자연적 존재 봉순에게 관심을 갖고, 그 관심은 어느새...?

인국두: 완벽한 외모와 신체조건에 경찰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능력자. 성장 과정 내내 주위의 선망을 한몸에 받았던 엘리트. 피아노도 잘 치고 각종 무술에도 능함. 하지만 정의감이 지나쳐 윗선의 지시를 무시하고 고위층을 수사하는 똘끼를 발휘하는 바람에 좌천돼 집 근처 경찰서 수사팀으로 배치. 봉순의 초중고 동창이며 오랜 시간 봉순이 꿈꿔온 이상형. 다만 여자친구가 있다고는 하지만 봉순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쌀쌀맞게 딱딱 끊는 철벽남. 알고 보면 츤데레...?

이 두 남자를 데려와야 환상의 트리오가 만들어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특히 시장엔 정말 남자 배우 기근이 심각하고... 어떤 배우들은 1,2년 전부터 스케줄이 잡혀 있고... 더구나 영화 쪽에서는 '뭉쳐야 뜬다'는 생각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웬만한 주연급 배우들이 한 영화에 3,4명씩 잡혀 있기도 하고....

(정말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특히 '신과 함께' 같은 영화는 정말 생태계 파괴의 주범입니다. 영화 한편에 이정재 하정우 차태현 주지훈 디오를 묶어놓고 있으면 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쩌란 말입니까... 근데 재미있긴 하겠다.)

아무튼 너무 길어져서 남자들 이야기는 다음편에 하겠습니다.

 

P.S. 힘쎈여자 도봉순은 아직 안 깐 패가 너무 많습니다. 일단 웃음의 핵심병기 임원희 김민교는 아직 등장도 안 했고, 동네를 공포에 몰아넣는 연쇄 납치범 이야기도 이제 시작. 아울러 민혁을 위협하는 협박범의 정체도 아직 기미도 안 보이죠. 게다가 뒤로 가면 오돌뼈라는 신비의 인물(?)도 등장합니다.

한마디로 이제 시작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P.S.2. 아울러 특별출연해주신 JTBC 1등신부감 아나운서 강지영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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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썼다가 오타가 많아 몇군데 수정했습니다. 낯이 뜨겁습니다.]

 

[힘쎈여자 도봉순]이 곧 방송됩니다. 사실 [힘쎈여자 도봉순]은 태어난지 좀 되는 아기입니다. 벌써 1년 전인 2016년 어느 봄날, '사랑하는 은동아'의 백미경 작가님이 대본을 한번 읽어 보라며 주셨습니다. 한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작가님의 2015년 작품인 '사랑하는 은동아'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일찌기 한국 드라마에 없었던 여성 슈퍼히어로 드라마가 탄생해 있었더군요.

'여성 슈퍼히어로 드라마'라고 구별해서 썼지만 사실 한국 드라마 가운데 변변한 남성 슈퍼히어로 드라마가 있었느냐 하면 뭐 그런 것도 아닙니다. 몇몇 시도가 있었지만 '이것이 한국에서 방송된 히어로 드라마다'라고 할만한 작품은 없었다고 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굳이 꼽자면 '홍길동'이나 '전우치' 같은 전통적인 영웅들의 활약을 다룬 작품 정도? '인간시장'의 주인공 장총찬을 슈퍼히어로라고 놓기는 좀 불편합니다. 영화까지 영역을 넓혀 봐도 류승범 주연의 '아라한 장풍대작전' 정도가 떠오르는 정도입니다. 강동원 주연의 '초능력자'가 있지만 주제 면에서 일반적인 히어로 무비와는 꽤 거리가 있습니다.

 

대체 왜 한국에는 그런 드라마가 없었을까...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물론 반성이 앞섰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드라마 소재란 이런 것'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것이죠. 확실히 우리 드라마의 소재는 좀 더 다양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날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시청자를 놀라게 하는 막장 드라마 계열도 새로운 시도에 인색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무슨 생각을 하다가, '형제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내용의 드라마'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전혀 예기치 못한 작품이 하나 툭 튀어나오긴 했습니다만, 생각보다 한국 드라마는 정말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힘쎈여자 도봉순' 은 심지어 한국 상황에 매우 적합한 슈퍼히어로 드라마였습니다. 일단 '힘쎈 남자'가 아니고 '힘쎈 여자'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침 이때 저는 감히 '욱씨남정기'라는 드라마의 cp를 맡고 있었는데, 이 드라마에 매료된 것도 사실 '강한 여자' 라는 테마가 지금의 한국 드라마에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 생각대로 '욱씨남정기'는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고, 에서 '욱씨'역을 맡았던 이요원도 뜨거운 찬사를 받았습니다. 강은경-주현 작가님이 숨을 불어 넣은 캐릭터가 이형민 감독님의 손끝을 거치면서 21세기 한국 여성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낸 것이죠.

무엇에 대한 공감일지는 너무도 자명했습니다. '욱씨남정기'의 승부는 '사이다'에 있었던 것이죠. 직장에서도 약자, 그러다 집에 오면 엄마이자 주부 역할까지 해야 하는 것이 여자. 상사-남편-부모, 심지어 자식까지 포함해도 누구 하나 만만한 사람이 없는 시청자들에게 이요원이 연기한 욱다정(옥다정)은 그야말로 냉장고에서 갓 꺼낸 사이다 자체였을 겁니다(네. 제가 여자가 아니라서 여기서 추정으로 바뀝니다).

'할 말 다 하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그러면서도 정의롭고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 사실 '여자가 정의롭고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이기 때문에 싸가지 없다고 욕을 먹는 현실까지 잘 반영돼 있었습니다 - 욱다정은 진정 독보적인 캐릭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운데 또 다른 흥미로운 캐릭터를 발견하게 됐으니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욱다정 이요원이나 '직장의 신'의 김혜수가 '못하는 게 없이 완벽한' 직장형 슈퍼우먼이라면 도봉순은 사실 힘이 세다는 것 외에는 전혀 슈퍼우먼스럽지 않은 캐릭터입니다.

도봉순은 단란한 가정에서 쌍둥이 남매 중 누나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집안의 기대는 서울대 의대를 간 쌍둥이 남동생에게 '너무나 당연히' 쏠렸고, 공부머리가 부족한 봉순이는 그저 그런 학력으로 그저 그렇게 사회에 나왔지만 결국은 길고 긴 구직자의 대열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봉순이가 학교에서 뭘 전공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봉순이의 꿈은 게임 제작자. 자신을 닮은 캐릭터를 활용해 대박 게임을 만들기 위해 학원도 다니고 열심히 스펙을 쌓...으려 pc방에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전문용어로 구직자. 구체적으로 말하면 백수입니다.

누가 봐도 도봉순의 가장 큰 강점은 넘치는 힘 - 달리는 버스를 세울 수 있을 정도의 힘입니다 - 입니다. 외할머니의 외할머니의 외할머니 때부터, 엄마에게서 딸에게 수백년에 걸쳐 대물림되어 온 신비로운 힘이죠. 하지만 봉순이는 이 힘을 장점으로 활용할 의지도, 환경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힘이 센게 왜 나빠?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지만, 사실 봉순이의 힘은 일종의 은유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여자가 무식하게 힘만 세서 뭐하게!'라는 봉순이 엄마의 등짝 때리기 신공도 나오고,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을 힘을 써서 괴롭히다가 천벌을 받은 조상들의 이야기도 나옵니다만 이런 건 어디까지나 드라마를 위한 장치들이죠. 이 드라마에서 진정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남자들보다 훨씬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참고 살아야 했던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봉순이의 '넘치지만 감춰져야 했던 힘'은 바로 그 '참고 살아야 했던 여자들의 능력' 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힘쎈여자 도봉순'은 원더우먼이나 엘렉트라 같은 우먼 히어로 이야기와 결별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냥 비슷한 힘쎈 여자 이야기지만, 그냥 그 힘쎈 여자가 나쁜 놈들 혼내주고 다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힘쎈여자 도봉순' 은 스물이 한참 넘도록, 넘치는 슈퍼 파워를 갖고 있었으면서도, 그 힘을 어디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늘 자신감 없이, 인생에 대한 뚜렷한 목표도 없이 살아온 봉순이가 어느날, 몇 차례의 만남과 사건들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쓰여야 할지를 깨닫는 이야기입니다. 바꿔 말하면 남들보다 빼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능력을 어떻게 써야 할 지 모르던(심지어 상당수는 자신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온) 한 젊은이가 진정한 자기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도봉순이 여자다 보니 이 '힘'은 글자 그대로 물리적인 힘으로 드라마 안에서 활용됩니다. 예를 들면 '약한 여자' 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일들이 요즘 특히 많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밤길 함부로 다니기 무섭고, 술 마시고 집에 가는 택시 혼자 타기도 무섭고(얼마전 목포에서 무서운 일이 있었죠),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 않는다고 막말하는 나이 헛먹은 할아버지들이 무섭고, 클럽에서 만난 남자가 막무가내로 팔목 잡고 집에 못 하게 할 때 무섭고, 여자 혼자 산다고 방범창 뜯고 들어오는 동네 미친놈이 무섭고... 그런 세상에서 봉순이의 힘은 시원한 대리만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요소일 겁니다. (네. 우리 드라마에서 봉순이는 이런 '놈'들을 아주 시원하게 응징해 드립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볼수록 '힘쎈여자 도봉순'은 반드시 드라마로 만들어야 할 대본이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아, 물론 이런 대의를 갖고 있는 드라마라는 점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죠. '힘쎈여자 도붕순'의 대본은 일단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봉순이를 가운데 놓고 벌이는 게임회사 사장 민혁과 엘리트 형사 국두의 일진일퇴 공방전도, 봉순이 가족들의 알콩달콩한 분위기도, 그리고 봉순이의 초반 주적(?)인 건달 백탁 일파의 황당무계한 행각도 흥미로웠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백미경 작가님은 데뷔작인 '사랑하는 은동아' 같은 심각한 멜로 드라마 때도 넘치는 유머감각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잊지 못할 코믹 명장면들을 만들어 냈던 분입니다. 그런 양반이 이번엔 맘 먹고 코믹 드라마를 쓰겠다고 내놓은 대본이니 뭐 그런 쪽으로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가 딱 맞는 표현입니다.

 

 

이 드라마를 제대로 만들어 주실 분은 누구일까....는 사실 그리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로 현재, 리얼 타임으로 '욱씨남정기'로 매주 시청자들을 포복절도하게 하던 이형민 감독님이 바로 곁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네. 왕년에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만드신 거장 맞습니다. 바로 그분이 코믹 장르에도 눈을 뜨시고 만든 작품이 바로 '욱씨남정기' 입니다. 이형민 감독님도 OK를 하시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도봉순은 누가 해야 할 것인가...인데, 이것 역시 사실 긴 고민이 필요한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그 배우를 데려올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죠.

(너무 길어져서 접습니다. '무적의 트리오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에 대한 글은 다음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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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의 이민호가 인기 상종가를 누리고 있습니다. 스타들 중에는 가끔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어느날 갑자기 딱 한 작품이나 노래 한 곡으로 곧바로 톱스타 진용에 합류하는 사람들이 있죠.

하지만 이민호는 그렇지 않습니다. 2006년 EBS 드라마 '비밀의 교정'으로 데뷔한 이래, 아슬아슬하게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그 작품은 대박이 나고, 천신만고끝에 캐스팅된 작품은 조기종영을 하거나 흥행에서 참패했기 때문입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형수술을 한 것도 아니죠. 이런 건 그냥 운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마침내 '꽃보다 남자'의 히트가 이런 설움을 모두 씻어버리는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이민호가 뜬 걸 보고 가장 아쉬워하는 건 누굴까요. 뭐니뭐니해도 영화 '울학교 이티'의 제작진입니다. 5개월 정도만 버티고 개봉을 했더라면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이민호 하나면 사실 아쉬움은 그리 심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 이 영화에는 무명의 똘망똘망한 배우들이 학생들로 줄줄이 출연하고 있었죠. 어떤 얼굴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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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학교 이티'는 강남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철밥통 생활을 즐기고 있던 천선생(김수로)이 어느날 체육시간을 줄이고 국-영-수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학교 방침에 따라 직장을 놓칠 위기에 놓이면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일이 되려다 보니 어찌어찌하다가 대학 재학 시절에 따 놓은 영어교사 자격증이 있었다는 사실이 기억납니다. 이 자격증을 발판으로 천선생은 영어 교사로 변신을 노립니다. 이것이 바로 이티(ET: English Teacher)의 정체죠.

이 영화는 시사회 직후엔 각계의 호평으로 "잘하면 300만 정도는 가능하겠다"는 기대를 자아냈지만 불행히도 스크린에 걸렸을 때에는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1주일 앞서 개봉한 '맘마미아'와 '신기전'이 의외로 흥행 돌풍을 일으켰고, 같은 9월11일 개봉한 '영화는 영화다'도 선전하는 가운데 묻혀 버린 피해자가 됐죠. 적절한 웃음과 따뜻함이 조화를 이룬 영화라는 것이 중론이었지만 일각에서는 '너무 착한 영화'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극장 관객 70만은 영화의 완성도에 비해 아쉬운 숫자인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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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영화가 지금 개봉한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나오는 겁니다. 지난해 9월11일 개봉 당시만 해도 이 영화는 김수로의 원맨 무비로 홍보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습니다. 그만치 다른 배우들의 지명도가 떨어졌기 때문이죠.

아역 출신으로 고정팬을 어느 정도 확보한 백성현이 있었지만 극중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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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겁니다. 바로 F1 이민호가 꽤 큰 비중으로 나오기 때문이죠. 이민호는 이 영화에서 부잣집 아들 출신의 반항아로 우여곡절을 거쳐 천선생을 마음으로부터 이해하게 되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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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이민호라면 극중 비중도 편집 과정에서 훨씬 더 커졌을 겁니다. 지금의 웨이브 머리 모습이 다소 느끼하다면 저 때는 보다 야성미가 강조된 모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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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영화가 개봉된지 2주 뒤,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박신양 문근영이야 당연한 얘기지만 여기서 기생 정향 역을 맡은 문채원이 각광을 받았죠. 네티즌들이 문근영과 문채원의 묘한 관계를 '닷냥커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서 문채원의 고전미 넘치는 마스크가 화제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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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채원은 영화에선 가난으로 시달리다가 원조교제에 나서는 여학생 은실 역을 맡았습니다. 물론 정의감 넘치는 이티 천선생의 도움을 받는 캐릭터죠. 그늘진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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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봉 3개월 뒤, 아무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영화 '과속스캔들'이 바람을 탔습니다. 현재 6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코미디 사상 두번째로 많은 관객('미녀는 괴로워'의 661만 바로 다음)을 기록하고 있죠.

이 영화를 통해 가장 큰 덕을 본 것은 신인 박보영이었습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던 박보영이라는 이름이 '제2의 전도연'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집중적인 조명이 쏟아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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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은 '울학교 이티'에서는 반의 모범생이자 전교 1등 송이로 출연하죠. 공부도 잘 할 뿐만 아니라 마음 속 깊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천선생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최고의 후원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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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울학교 이티'가 지난해 9월11일이 아니라 올해 1월에 개봉했다면 어땠을까요. 박보영-문채원은 몰라도 이민호의 덕은 확실히 볼 수 있었을 듯 합니다. 지난해까지는 영화를 다 찍어 놓고도 홍보비 문제로 개봉이 미뤄지는 영화들도 많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깔끔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울학교 이티'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게 아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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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 오뉴월 하루 볕이 다르다고 한장 자랄 나이의 청춘들이라 그런지 벌써 이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사뭇 달라 보이는군요.





꽃보다 남자에 대한 다른 이야기:



무명시절 이민호가 겪었던 고초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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