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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수목드라마 '아내의 자격'을 보다 보면 가슴이 서늘해지는 한마디가 툭툭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회사가 회사다 보니 주변에 널린 게 기자들입니다. 요즘은 신문과 방송이 한 건물 안에 있으니 신문기자, 방송기자가 다 있습니다. 그중 한 선배에게 요즘 '아내의 자격' 보느냐고 물었습니다. "야, 말도 마라. 요즘 집에서 마누라 그거 못 보게 하느라고 마크하는데 진땀 뺀다."

아니 회사의 간판 프로그램인데 못 보게 하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그 남편, 얼마나 찌질하게 나오냐? 거기다 기자잖아."


'아내의 자격'에서 극중 방송사 중견기자 한상진 역으로 나오는 배우는 장현성. 왕년에 '놀러와'에 출연해 "지적인 외모 때문에 한때 길에서 정치범(?)으로 오해받은 적도 있다"는 바로 그 배우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상진 캐릭터는 정말 '먹물 찌질이'의 대명사라 할만한 캐릭터입니다. 뭔가 아는 것도 많고, 방송에 나와서 하는 말은 다 그럴듯하지만 방송 밖으로 나오면 금세 본색이 드러납니다.


서래와 결혼할 때만 해도 뭔가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인 듯 보였겠지만 결국은 출세와 성공을 기준으로 인생을 평가하는 그런 남자일 뿐입니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집에서는 큰소리를 쳐야 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있어 보이는 말'로 자기를 포장하기 바쁩니다.

'이런 남자'에 대한 정성주 작가의 서릿발같은 비판은 이미 시청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바 있습니다. 바로 왕년의 히트작 '아줌마'에서 강석우가 연기했던 장진구라는 캐릭터입니다.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속물 지식인이었던 장진구는 늘 학력 컴플렉스가 있는 아내 앞에서 자신의 지식을 대단한 양 포장해 떠들지만 자신의 실체와는 영 거리가 있는 모습일 뿐입니다.


14일 방송된 '아내의 자격'에서 상진은 한술 더 뜹니다. 캠핑장 가는 길을 못 찾자 "이런데 캠핑장 만드는 것 부터가 자연 훼손"이라고 욕을 하더니 캠핑장이 마음에 들자 "역시 사람은 자연의 기를 자주 들이마셔야 한다"고 금세 팔랑거리고, 처음 만난 태오 부부에게도 바로 '학번'과 '학교'를 묻고 그 학교의 '아는 사람'을 들먹이며 선배 행세를 합니다.

15일로 넘어가면, 상진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자신과 친한 태오의 선배를 불러내 굳이 술자리를 갖고, 술에 취해 나뒹구는 추태를 보입니다. 아무튼 학벌/인맥/사회적 지위 앞에 한없이 작아져 '언론인의 기개'같은 것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한껏 보여줍니다.


사실 너무 익숙한 광경이어서 소름이 끼칠 정돕니다. 어쩌면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저런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불안감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집에서 그거 볼까봐 겁난다"는 선배 말이 가슴에 확 와 닿습니다.



아무튼 14일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불륜의 적발 장면. 늦은 밤 캠핑장에서 혼자 불 곁에 앉아 술을 마시던 태오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나온 서래와 마주칩니다. 코를 고는 남편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어 나온 것이죠. 차에 가서 자겠다는 서래를 따라 나선 태오는 서래의 차 옆자리에서 잠이 듭니다.

다음날 아침 햇살에 눈을 뜬 서래는 차창 밖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지선과 눈이 마주칩니다. 순간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서래. 모두 다 모인 자리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던 지선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 서래를 꼭 껴안고 귀에 나지막히 속삭입니다. "내가 결이 엄마 좋아하는 거 알죠?"


결국 다시 '내가 미쳤지 미쳤어'의 자세로 돌아간 서래는 지선을 찾아가 "모두 내 불찰"이라며 간곡히 사과합니다. (물론 주인공들이 이 선에서 마무리한다면 아무 일도 없는 평온한 가정이 회복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면 드라마가 안 되겠죠.ㅋ) 하지만 이미 서래의 남편 상진과 시누이 명진이 사건의 추이를 알고 있는 이상, 간단히 일이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번 주 방송에서는 두 개의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첫째는 태오에게 "이건 밥도 아니고, 공기도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서래의 대사. 뒤늦게 찾아온 감정이 소중하긴 하지만, 없어서 죽는 건 아니라는 걸 가리키는 얘기죠.

하지만 다음주 예고에서 서래는 "10년만에 내가 여자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합니다. 드라마며 소설에서 많이 나오는 말이지만 여운이 남다릅니다. 글쎄, 여자가 아닌 제가 이해하기는 참 힘든 얘깁니다만... 남자들이라고 매일 매 시간 '나는 남자다'라는 걸 스스로에게 다시 인식시키며 살지는 않죠. 그럼 남자들은 언제 '나는 아직 남자다'라는 걸 느낄까요. 그게 그렇게 소중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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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자격 - 김희애, 이성재 주연 JTBC 수목드라마]

드라마 '아내의 자격'에서 서래(김희애)의 대사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미쳤어"입니다. 입으로는 계속 '미쳤어' '미쳤어'를 되뇌면서도, 마음이 몸을 어찌 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대치동 교육 현실을 본격적으로 파고 들었던 1,2부에 이어 이번주 3,4부에서 '아내의 자격'은 서래와 대오의 격정이 명진과 은경의 감시망에 걸려드는데에까지 이어졌습니다.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남성 시청자들에게는 한가지 의문이 생긴 듯 합니다. '과연 한번 빠지면 저렇게까지 될까?' 라는 질문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3부. 서래의 집에 시댁 식구들이 다 와서 저녁을 먹고 서래 남편 상진이 진행하는 '생생경제학'이라는 뉴스 꼭지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로원에 가서 서래 엄마의 치과 치료를 하고 돌아오는 태오가 계속 문자를 보냅니다. '전해드릴 물건이 있습니다', '지금 배에서 내렸습니다', '터널 막 지났습니다'. 그 문자를 계속 확인하는 서래는 금방이라도 손에서 그릇을 놓쳐 깨뜨릴 사람처럼 보입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밝은 낮에 주세요' 이 한마디를 왜 못하나 화가 날 지경입니다. 마지막에 서래는 '경비실에 맡겨주세요' 이 한마디를 못 하죠. '경비실에 맡겨 주세요'를 문자로 다 쳐 놓은 뒤에도 서래는 끝내 보내질 못하고 달려나갑니다. 그리고는 태오의 차 옆자리에 앉아 숨을 헉헉거리며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집에 시댁 식구들 다 와 있는데 거짓말 하구 나왔어요. 결혼해서 단 한 번두 안해본 짓이예요. 엄마가 치매라는 거두 숨기구 싶었지만 그러믄 내가 더 속상할 거 같아서 다 말했어요. 애 학원에선, 애 땜에 의논 좀 하자는데 그냥 내뺐어요. 그 학원 보낼려구 온갖 짓을 다 하구,원장 말이라믄 자다가두 벌떡 일어나야 마땅한데, 도망쳤다구요.  어떻게든 김태오씨 만나구 싶어서요. 지금, 원장이 전화 하라는데두, 안하구 싶어요. 내일 하구 싶어요. 말두 안되는 일이예요. 정신이 나간 거예요."

(정성주 작가님 존경합니다. 대사의 생생함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정말 미친게 맞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지금 시댁 식구들 다 와 있어요. 다음에 주세요'라고 했겠죠. 태오야 뭐 사정을 알리 없으니 그냥 문자 계속 찍어 보내는 거고. 아무튼 얼마든지 미룰 수 있었는데 서래는 미루질 못합니다. 왜. 그냥 당장 보고 싶은거죠. 당장 그 사람 얼굴을 못 보면 안될 것 같은 거고. 애가 초등학교 5학년인 주부가 말입니다.

실제로도 그런지는 제가 알 길이 별로 없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금단의 사랑에 빠져드는 여자들은 흔히 '미친 것'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예는 많습니다. 영화 '해피엔드'에서 전도연을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너무 남자(주진모)가 만나고 싶었던 전도연은 젖병에 수면제를 타 아기를 재워 놓고 달려나갑니다. 그 결과는... 유혈극이죠.



영화 '쌍화점'에서도 왕비 송지효는 왕의 심복인 무사 조인성에 대한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사고를 치고 맙니다. 이처럼 많은 작품에서 여자들은 '한번 사랑에 눈을 뜨면 세상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격정을 가진 존재들'로 그려지곤 합니다.

사실 속설로도 이런 얘기는 자주 등장합니다. '남자는 어쩌다 바람을 피워도 금세 제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그냥 한번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가 바람이 나면, 남편이며 자식이며 다 버린다. 여자란 사랑에 눈멀면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맞는 얘기인지 알 수 없지만 참 많이 들은 얘깁니다.



제목은 저렇게 달았지만, 남자인 저로서는 참 궁금합니다. 왜 여자는 '스쳐가는 바람에 인생을 거는' 존재로 그려질까요. 왜 남자는 한번 스치고 지나가서도 흘러간 시절을 가끔씩 기억하며 잘 사는 반면, 여자는 평생을 잊지 못하고 한을 품는다고들 한 것일까요. 이런 건 정말 옛날, 여자들이 억압받고 살던 시절이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시절에나 통하던 얘기일까요?

그런데 정말 더 궁금한 건, '아내의 자격'을 보면서, 이 21세기의 다 열린 시대에도 여자들은 여전히 김희애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고들 하는 겁니다. 과연 여자는 원래 그런 존재일까요?




P.S. 사실 김희애에 가려 잘 안 보이긴 하지만 '아내의 자격'에는 또 하나의 '미친 여자'가 있습니다. 바로 서래의 앞집에 사는 은주(임성민)입니다.

은주는 서래의 시누이인 명진(최은경)과 친구 사이지만 사실은 명진의 남편 현태(박혁권)를 공유하고 있는 사이입니다. 은주가 혼자 기르는 아들 재훈이 바로 현태의 아들인 것이죠. 한 동네에서 두집살림을 하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은 치밀한 구성이 숨어 있습니다. 3부에 나온 바로 이 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은주-설마 당신 오늘 저녁 때 우리 앞집에 납실 건 아니겠지?
현태-돌았냐?!
은주-명진이가 늦더라두 오래던데?
현태-말이 그렇지!
은주-당신 명진이 말 잘 듣잖아. 좋은 남편 행세하느라 왔다가 재훈이랑 정면으루 마주치믄 참 볼 만 할거야,그치?
현태-얼른 가. 쓸데 없는 걱정 말구.  
은주-알았어...비루하지? 처남 집에두 맘놓구 못다니구.
현태-가라고!
은주-재훈이 국제중 들어갈 때까지만 참어. 나두 그 때 바라보구 참는 거야. 그리구,재훈이 아침 공부 매일 해 줘.일주일에 하루,거지한테 적선해? 나 그거 싫거든?
현태-아,아니,이거 봐,
은주-조현태씨. 재훈 아빠.나 당신 쫌 많이 알어. 나는 최후에 터질 폭탄이지만, 그러기 전에, 내 맘에 안들게 굴믄 터뜨릴 게 무수히 많다구...당신 별명이 2차 대마왕이라지?
현태-누가 그따위 소릴 해!
은주-당신 나 어디서 만났니...나 아직 그쪽 인맥 안 끊었어...왜냐,당신이 여전히 출입하구 있으니까.
현태-그,그거야 업무의 연장,
은주-뭐?
현태-아,알았어,일단 가.누가 보기 전에.

그러니까 이 대화를 통해 시청자들은 은주가 한때 룸살롱에 나갔다는 것, 현태는 여전히 룸살롱 업계의 큰 고객이라는 것, 두 사람은 호스티스와 손님 사이로 만났다는 것, 그리고 처음부터 한 동네였던 게 아니라 혼자 아들(재훈)을 키우던 은주도 바로 '교육 때문에' 현태와 명진이 사는 바로 그 동네로 왔다는 것 등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은주 또한 미쳐 있는 거죠. 분명 현태가 유부남인 것도 알고 만났겠지만, 어쨌든 자기가 온전한 가정을 갖지 못한다는 불만이 늘 가득 차 있고, 그것 때문에 현태의 목줄을 쥐고 놓지 않고 있는 겁니다.

이 정도가 되면 사랑에 미친 것인지, 아니면 사랑 때문에 미친 것인지 구별하기 힘들어지지만, 이 광기는 왜 은주가 서래와 태오의 관계를 폭로하지 못해 안달을 하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동기가 됩니다. 자기가 차지하지 못한 현태를 차지하고 있는 명진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명진이 늘 자랑하는 '완벽한 가족'을 파괴하고 싶은 것이죠. 아무튼 이런 광기 때문에 '아내의 자격'은 더욱 흥미로워집니다.

[아내의 자격 - 김희애, 이성재 주연 JTBC 수목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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