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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할수 있을까]라는 제목은 누가 들어도 너무 깁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우사수]라고 불릴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닙니다.

 

2012년 연말부터 2013년 초까지 JTBC에서는 '우리가 결혼할수 있을까' 라는 드라마가 방송됐습니다(당연히 '우결수'라는 제목으로 불렸죠). 이 드라마는 김윤철 PD와 하명희 작가가 호흡을 맞췄고, 결혼을 앞둔 두 젊은 커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결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안과 기대, 좌절과 화해를 그려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성준과 정소민이 사랑스런 젊은 커플로 등장했고, 정소민의 '세상 물정을 다 아는' 닳고 닳은 엄마로 이미숙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약 1년만에 김윤철 PD는 '우리가 사랑할수 있을까'라는 또 한편의 여자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우사수'는 MBC TV의 '기황후', KBS 2TV '총리와 나', SBS TV '따뜻한 말한마디' 와 같은 시간에 방송되는 월화드라마입니다. 묘하게도 '우사수'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우결수'를 집필했던 하명희 작가가 '따뜻한 말한마디'의 작가이기도 하다는 게 참 묘한 운명을 느끼게 합니다.^^)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응답하라 1994' 와 같은 궤도에서 출발합니다. 드라마 한 편을 구상하고 만드는 데 빨라도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니, '응답하라 1994'가 종영하고 바로 이 드라마가 시작되는 건 사실 우연입니다(제작발표회에서도 관련 질문이 나왔는데 김윤철 PD는 안타깝게도 '우사수'의 준비 때문에 '응사'를 한 회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1995년, 다같이 지긋지긋한 고3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 세 친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잠시 삽화로 보이는 2002년. 정완(유진)은 만삭의 임산부, 선미(김유미)는 능력있는 커리어 우먼, 그리고 지현(최정윤)은 원숙한 주부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20대인 세 친구는 열심히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국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현재. 서른 아홉 동갑내기엔 세 친구의 위치는 무척이나 달라져 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던 정완은 남편과 헤어져 홀어머니와 함께 아들 태극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하는 선미는 잘 나가는 골드미스. 지현은 준재벌급의 남편과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셋 모두 그늘이 있습니다. 정완은 생활고 때문에 마트에서 알바를 해야 하는 처지. 선미는 어느새 동년배 남자들에게 자신이 '늙은 여자'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지현은 결혼생활 10년이 넘었는데도 어려운 형편의 친정 때문에 여전히 시모에게 가정부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찍 낳은 딸 세라는 어느새 무서운 사춘기를 겪고 있습니다.

 

 

('빵꾸똥꾸' 진지희가 어느새 성장해 10대 역으로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사수' 1회는 1995년에서부터 이들 세 단짝 친구의 현주소를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세 여자 주변에 포진된 남자들도 슬슬 모습을 드러냅니다. 정완은 영화사 대표 도영(김성수)와 젊은 나이에 장래가 촉망되는 감독 경수(엄태웅)을 만납니다. 동시에 도영은 지현의 첫사랑이기도 하고, 선미 역시 경수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선미에겐 진심을 고백하는 한참 연하의 부하 직원 윤석(박민우)이 있지만, 선미가 보기엔 정말 철딱서니 없는 사내아이일 뿐.

 

과연 이 남자들이 서른 아홉이란 나이의 여주인공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의 도입부에서 이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입시의 중압감에서 해방된 열 아홉 나이의 세 친구가 일제히 미장원으로 달려가 한껏 헤어스타일을 고치고, 귀를 뚫습니다. 이걸 통해 '어른이 됐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죠. 성년식이라고나 할까요.

 

이렇게 나란히 귀를 뚫은 세 친구가 20년 동안 우여곡절을 - 대학 졸업반이 될 무렵 IMF를 겪고, 취업난으로 고민의 나날을 보내고,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해외 연수가 보편화되기도 하고(물론 졸업 연도를 늦추려는 시도와 함께), 대학 운동권이 총학생회에서 배제되기도 하고,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를 경험해 보기도 하고, 2002년의 대축제로 20대의 끝자락을 장식해 보기도 하고, 그리고서 이제 중년의 문턱에 와 있는 세 친구.

 

그런 그들의 시작을 '귀를 뚫는다'는 행위로 표현한 것. 매우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사실 세 배우 모두 서른 아홉이란 나이를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30대 중반으로 가고 있는 나이. 대부분의 여배우들이 실제 나이보다 위인 배역은 거의 맡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캐스팅이지만 선공개된 '우사수' 1회를 봐선 이들 중 누구도 연기의 깊이가 부족해 애를 먹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1회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건 누가 뭐래도 '여자를 가장 잘 아는 연출'로 불리는 김윤철 PD의 늘어지지 않는 속도감. 따발총같이 쏟아지는 대사가 아닌데도 지루함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빠른 전개가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합니다.

 

 

 

39라는 숫자를 들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노래는 퀸의 '39'입니다. 물론 나이로 서른 아홉이 아니라 1939년을 담고 있는 노래지만, 그래도 흘러간 좋았던 날들을 돌이켜보는 데서 이 드라마, '우사수'와도 만나는 부분이 느껴집니다.

 

'우사수'와 관련해선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가 여자의 인생에서 갖는 의미와 관련해 '39 드림 프로젝트'라는 이벤트가 진행중입니다. 이쪽도 들러 보셔도 좋습니다.

 

여자 나이 서른 아홉, 공돈 1000만원이 생기면 뭘 하지? http://fivecard.joins.com/1209

 

 

 

 

P.S. '우결수'도 '우결수'지만 '우리가 사랑할수 있을까'의 시놉시스를 보고 가장 먼저 생각났던 드라마는 2004년 방송됐던 MBC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극본 김인영 연출 권석장)'였습니다. 당시엔 명세빈 이태란 변정수가 사회생활과 연애 사이에서 고민하는 30대 초반의 세 친구로 나와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샀던 작품이었죠.

 

'우사수'는 '응답하라 1994' 세대의 현재 이야기인 동시에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10년 뒤 이야기라면 딱 맞을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져 보실만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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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입소문 최강인 영화 '건축학개론'. 명성대로 잘 만들어진 멜로드라마입니다. 이용주 감독의 '불신지옥'을 보고 '이야, 이렇게 뻔할 듯한 이야기를 갖고 이만치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내다니!' 하고 재능에 감동한 게 엊그제같은데 어느새 새로운 영화, 특히 전작과는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를 가지고 이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게 감개무량합니다.

소문대로 이 영화는 Y대 건축공학과를 나온 감독이 90년대초 Y대 건축공학과 학생을 주인공으로, Y대 건축공학과 출신인 가수 김동률의 노래 '기억의 습작'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낸 영화입니다. 시대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를 보는 사람이 30대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바보같은 스무살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촉촉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이 정도.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얼른 보세요."



현재.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승민(엄태웅)에게 어느날 갑자기 잊고 살던 15년 전의 첫사랑 서연(한가인)이 찾아옵니다. 처음에는 서현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승민. 그런 승민에게 서현은 의사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며 제주도에 지을 집을 설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15년 전(1997년?). 건축공학과 신입생 승민(이제훈)은 1학년 2학기 건축학개론 시간에 음대생 서연(배수지)을 보고 가슴이 설렙니다. 알고 보니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서연. 제훈과 서연은 갑작스레 가까워지고, 건축학개론 과제를 위해 꽤 멀리까지 함께 나다니는 사이가 됩니다.

하지만 워낙 경험이 없는 탓에 이 감정을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모르는 승민. 갓 스무살의 신입생에게 사랑이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처음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은 '크로니클'에서 갑작스런 초능력을 갖게 된 10대들이나 마찬가집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에너지로 충만해 있는 시기죠(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모두 그렇습니다). 문제는 첫사랑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이 에너지는 어느 방향으로든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하려는, 상온에서의 니트로글리세린같은 상태가 된다는 겁니다.

감정은 느끼되 그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이성과 경험이 현저하게 부족하기 때문이죠. 에리히 프롬이 젊음에 대해 '사랑은 충만해 있으되 그 사랑을 어디로 쓸 줄 모르는 상태'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사소한 오해, 별 것 아닌 힌트, 아무 일도 아닌 위기감, 그리고 질투, 선망, 동경 등등 미세한 감정의 흐름에 의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치닫곤 합니다.

'건축학개론'은 제목대로(?) 바로 이런 '첫사랑에 대한 개론'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첫사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낭만적인 병리적 증상을 남김없이, 그리고 매우 뛰어나게 보여주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첫사랑에 대한 잘 만든 영화가 어디 한두편일까마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주제의 영화가 흥행하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 - 한 영화가 우려먹고 지나가고, 그 세대가 흘러가 다음 세대가 비슷한 주제를 찾을 때까지 - 이 소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1986년의 '겨울나그네', 2000년의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제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2012년의 '건축학개론'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짓는 세대가 나타나겠죠.)



개인적으로 - 뭐 다른 많은 분들도 비슷한 분들이 많겠지만 -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뭐니뭐니해도 신입생 시절의 승민과 서연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김동률의 노래를 듣는 장면입니다. 

승민은 서연이 건네 주는 이어폰의 한쪽 끝을 귀에 꽂습니다. CD 플레이어가 작동되기까지 약 2,3초간의 정적이 흐르고(물론 이 정적이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이 순간은 서연에 대한 승민의 마음을 0의 상태, 즉 컴퓨터로 말하자면 초기화시키는 시간인 셈입니다), 김동률의 익숙한 첫 가사, '이젠/ 버틸수 없다고...'가 흘러나옵니다.

아마도 승민은 먼 훗날 누군가로부터 '언제 서연에게 처음 사랑을 느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 순간을 기억할 겁니다. 관객도 마찬가지일테죠. 이렇게 이용주 감독은 필요한 부분마다 적시타를 날려 주는 강타자의 면모를 보입니다.




표면상 주인공은 엄태웅/한가인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이 성인 부분은 그냥 간판 역할입니다. 진짜 영화의 핵심은 이제훈/배수지에게 가 있죠. 이 사실은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캐스팅은 매우 절묘했습니다.

이제훈은 갓 명문대에 입학한, 다소 어려운 집안의 젊은이로서 완벽합니다. 잘생겼으면서도 어딘가 어두운 듯한 그늘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한국사회가 본격적인 빈부 양극화로 접어들기 직전, '한국사회에서 강남이 갖는 의미와 강남 문화를 접했을 때 본능적으로 느끼는 위축감'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반면 (최고의 걸그룹 출신인) 배수지는 그런 부분에서 묘한 존재입니다. 승민이 서울 강북 지역에서 자라났고, '강남/강북'의 구도가 그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폭력적인 느낌이라면, 아예 서울 사람이 아니었던 서연에게는 그런 구도가 큰 의미가 없다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자라나 '서울 사람'으로의 편입을 꾀하는 서연에게는 '기왕이면 강남이 더 멋지지 않아?'라는 의식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승민과 서연의 첫사랑이 무참히 사라진 이유 이면에는 이처럼 '강남/강북'이라는 지리적, 문화적 구조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 차이가 큰 역할을 합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미 서울 지역에서 '강남 문화'에 대한 열등감과 적대감을 느끼고 있던(말하자면 '계급에 대한 인식'인 거죠) 승민은 그 외곽으로부터 진입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강남 문화에 대한 선망과 편입 의지를 보이는 서연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서연을 사랑할수록 그 불만은 점점 깊어갈 뿐입니다. 

아마도 승민은 서연이 자신의 처지나 시각을 '알아서' 공유해 주기를 바랐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강남/강북'에 대한 인식이 없는 서연은 이런 승민이 불안하고 어색해 보일 뿐입니다. 안경 쓴 선배는 그 '강남'을 상징하는 존재지만 '그날밤의 사건'은 사실 둘이 헤어지는 데 부수적인 이유일 뿐입니다. 애당초 이런 인식 차이가 있는 한 승민과 서연은 잘 될 수가 없는 관계였죠. 이용주 감독은 그 부분을 잘 알고 있고, 관객에게도 너무나 선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마 이해하실...)



승민의 눈에 비치는 서연은 '예측불가능한 요정'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인 것이죠. 이런 대상이 되려면 '너무 예쁘고 세련되어서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존재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서연 역을 구현하는 배수지의 스타일과 연기는 완벽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드림하이'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발전이 엿보입니다.





영화에서 표제곡으로 등장한 노래는 다 아시는 '기억의 습작'이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절로 떠오르는 노래는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입니다. 물론 영화 속에서 직접 들었다면 줄거리의 균형을 깨는 요소로 작용했겠지만. (이렇게 쓰고 보니 이 영화의 포스터 중에 이 카피가 써 있는 버전이 있군요.^^)



P.S.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말은 사실 거짓말입니다. '우리중 인기있는 누군가는 여러 사람의 첫사랑'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중 많은 '나'는 어느 누구의 첫사랑도 아니었을 겁니다. (네. 불편한 진실이죠.^^ 대중은 속고 있습니다.) 


P.S.2. 납뜩이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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