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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삼의 '적벽대전 2: 최후의 결전'이 설 연휴를 맞아 개봉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개봉한 1편은 형주를 차지한 조조가 마침내 장강을 건너 동오까지 평정하려는 각오를 품고, 오의 손권은 유비와 제갈양의 협력을 얻어 조조와 맞서 싸우기로 하는 데에서 끝났습니다.

그리고 2편. 동시에 촬영된 영화긴 하지만 2편을 보고 나니 1편에 쏟아진 비판을 상당히 의식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일관성이 없어져 보이기도 합니다. 두 편을 합치면 5시간 가까이 되는 대작이니 그 긴 작품을 통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만약 두 편을 한번에 연결해 보시는 분이 있다면 '이거 왜 이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더군요.

1편과 2편을 모두 본 뒤의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하라면 이렇습니다. 소설 삼국지연의를 어떤 판본이든, 3번 이상 읽은 분이 만약 이 영화를 보신다면 모든 기대는 집에 두고 가시기 바랍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꽤 일치하지만, 이건 여러분이 알고 계신 삼국지와 적벽대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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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적벽대전 2'는 장강 북쪽 조조(장풍의)의 진영에 침투한 손상향(조미)의 간첩 활약상에서 시작합니다. 조조는 전염병 작전을 통해 상대 연합군의 와해를 노리고 마침내 견디다 못한 유비는 전군을 거느리고 후퇴해 동맹이 깨져 버립니다. 하지만 제갈양(금성무)은 남아 주유(양조위)를 돕기로 하죠.

제갈양과 주유는 각기 지모를 발휘해 조조의 화살 10만개를 훔쳐오고, 또 조조의 수군 도독인 채모와 장윤을 제거해 싸울 준비를 갖춥니다. 하지만 여전한 병력 열세. 중과부적을 극복하려면 화공뿐이지만 때는 겨울. 동남풍이 없어 화공이 곤란해 질 때 소교(임지령)는 조조의 공격을 막기 위해 강북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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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소설 삼국지연의를 알고 계신 분들. 이 스토리를 보고 나면 뭔가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뿜어 나오지 않습니까? 요즘 '꽃보다 남자'를 보고 발가락이 오그라든다는 분들이 꽤 있는데 오우삼이 망가뜨려 놓은 적벽대전 스토리를 보면 손발이 다 꼬이는 듯 합니다.

각색자의 권리도 다 좋습니다. 뭐 소교를 이용해 적벽대전을 트로이 전쟁처럼 만들어 버린 것도 그럴 수 있다 칩시다. 하지만 어느 정도라야죠.

1편에서 어이없이 유비와 손권이 합동사령부를 차려 놓고 조자룡과 감녕을 절친으로 만들더니 스스로 만든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갑자기 유비를 비겁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데 오우삼이 만든 스토리대로라면 유비는 갈 곳이 없습니다. 유비가 전염병이 싫어 후퇴한다면 대체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동오의 후방인 더 동쪽? 손권이 함께 싸우기 싫다는 동맹군을 자기 진영의 후방으로 가도록 허용한단 말입니까? 애당초 원작대로 유비의 위치를 조조의 측면 후방, 즉 유사시에 조조를 협공할 수 있는 지역으로 지정해 뒀다면 이런 바보같은 진행은 피할 수 있었을 겁니다.

게다가 누구나 알고 있듯 적벽대전의 시점은 한겨울입니다. 북서풍이 불고 있는 철이죠. 영화 속에서도 동지떡을 나눠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동지때는 전염병이 돌아 수만 장병이 환자가 될 수 있는 시절이 아닙니다. 게다가 등장인물의 의상은 대부분 겨울옷도 아닙니다. 그럼 대체 왜 북서풍이 불고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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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오우삼이 뭘 보여주고자 하는지는 3세 이상이면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아주 유치한 수준의 반전의식이죠. 손상향은 조조군에 침투해 있는 사이 아무 생각 없는 조조군 병사와 친구가 됩니다. 이 병사에게 전쟁과 군대란 굶주리는 고향 집에서 입을 덜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누가 이기건 지건 그건 아무 상관 없는 일이죠.

이런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서 너무나 저열하고 전형적일 뿐만 아니라, 수십만 군사의 몰살을 그려내는 오우삼의 얄팍한 자기합리화라는 것이 너무나 선명합니다. 즉 '내가 이런 대살육을 그려내면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하려고는 하지만,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 건 아니야'라는 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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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2'의 인물과 줄거리는 1편에 이어 최악입니다. 행동에 아무런 개연성을 부여받지 못한 인물들은 한 장면 한 장면에서 그저 멋지게 보여 살아남기 위해 헛웃음 나오는 오버액션으로 일관합니다. 하지만 장풍의의 카리스마로도, 양조위의 우수 어린 눈빛으로도 이런 한심한 캐릭터들을 살려내지는 못합니다.

그나마 평가할만한 부분은 전투신입니다. 물론 모든 전투신은 아닙니다. 그 중 딱 한장면, 화공이 시작되어 조조의 함대를 불사르는 장면이 유일하게 박진감을 넘치게 하지만 이 장면 역시 전체를 보여주는 부감 신이 거의 나오지 않아 좀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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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전투신들은 지금까지 본 오만 전쟁영화들의 허술한 짜깁기입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트로이'가 시시각가으로 화면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역시 원작을 보신 분들이라면 대체 왜 적벽대전에서 공성전이 펼쳐져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아무 전쟁이나 닥치는대로 갖다 붙였다는 것이 너무 선명합니다. 이 시대의 중국군이 로마 군단의 대표적인 전술인 테스튜도(Testudo)를 사용하는 걸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테스튜도는 라틴어로 거북이라는 뜻이며 로마군이 사용하던 큰 직사각형 방패를 사용해 하나의 방진을 탱크처럼 만드는 전술입니다.

바로 아래 사진 같은 모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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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 정도도 그 사이 사이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만화적인 장면들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조조의 인질극 신은 정말 목불인견입니다.

삼국지 팬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오우삼은 적벽대전에서 본격적인 화공전 못잖게 중요한 순간을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바로 동남풍이 불기 시작하는 시점이죠. 소설에서 제갈양은 조조를 물리치기 위해 도술의 힘으로 동남풍을 불게 하겠다며 멀리 강가에 제단을 쌓고 기도를 올립니다.

하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던 주유와 동오 대장들. 약속된 시간이 되어도 동남풍이 불 기색이 보이지 않자 욕설과 한탄이 나오려는 상황에서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뀝니다. 경악의 외침 속에서 주유의 마음 속에서는 한가지 결단이 내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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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에도 껄끄러운 라이벌로 여겨지던 제갈양이 이제 한 순간도 더 살려둘 수 없는 무서운 적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지는 것이죠. 원하던 바람을 얻은 이상 유비의 협조 없이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확신이 생긴데다 이제부터 제갈양이 살아 있는 한, 자신은 비와 바람까지도 지배하는 적을 상대로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빠른 판단이 결단을 촉구한 것입니다. 다들 바뀐 바람의 방향을 기뻐하는 사이 주유는 수하 정예병을 보내 제갈양의 목을 베어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오우삼은 어처구니없는 초등학생용 우정놀이 때문에 이 비장미 넘치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날려 버립니다. 아무튼 모든 걸 다 떠나서 한겨울(전염병 도는 한겨울!) 쌩쌩 불던 북서풍이 승리의 동남풍으로 바뀌는 순간, 이 영화에서는 아무런 박력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바뀐 바람의 방향'조차도 관객의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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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오우삼은 "관객은 내가 잘 안다. 내가 아는 관객의 수준이라는 것은 그따위 디테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두고 봐라. 주유 역의 양조위만 멋지게 나오면 아무 문제 없을테니까"라고 생각했던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일부 맞아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리뷰 중에는 '장대한 스케일과 배우들의 호연'을 칭찬하는 내용도 꽤 많더군요. 또 양조위 - 금성무를 '꽃보다 남자'처럼 소비하는 관객들도 '적벽대전' 1, 2편에 만족을 표하곤 합니다. 취향은 제각각인게 당연하지만, 대체 뭘 봤는지 궁금합니다.

이 영화를 보셔도 좋고, 안 보셔도 좋습니다. 미리 마음의 다짐만 하고 가신다면 의외의 재미를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기대를 확 낮추고, 감독과 제작진의 실책을 비웃는 재미가 생각보다 쏠쏠할 수도 있거든요. 제가 걱정하는 건 '삼국지의 웅장한 모습이 제대로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가 실망할 분들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원작을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별 관심 없는 분들은 보셔도 괜찮습니다.

물론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대자면, 제발 이 영화를 보고 '삼국지를 봤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초등학교 극단이 공연한 '햄릿'을 보고 "뭐야,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하더니 별 거 아니잖아"라고 말하거나, 어린이들이 리코더로 연주하는 합창교향곡을 듣고 베토벤을 폄하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p.s. 글을 쓰고 나면 내용에 동의하는 분들과 그렇지 않은 분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정말 이런건 너무 당연한 건데 꼭 써야 할까' 싶은 부분을 빼놓으면 거기에 대해 논의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더군요.

예를 들면 그렇습니다. 소설 삼국지연의는 당연히 역사 자체가 아닙니다(물론 진수의 정사 삼국지 또한 부분적으로 그렇죠). 또 원작이나 역사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 때 인물이며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은 창작자의 권리이기도 하죠. (이런게 바로 너무 당연한 얘기기 때문에 생략되는 부분입니다)

오우삼의 '적벽대전' 1,2편이 비판을 받는 것은 재구성이나 새로운 해석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재구성이나 새로운 해석이 원작에 비해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형편없음의 기준은 순전히 개인적인 것이죠. 감독이 애써 공들여 만든 영화를, 누군가는 재미있게 봤을 영화를 왜 네 맘대로 폄훼하냐는 분들, 그럼 대체 블로그라는건 뭐하러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난해 썼던 1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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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지만 홍콩 영화 감독들은 다작이 숙명입니다. 간혹 그 운명을 거부한 감독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돌아간 것은 철저한 마이너로서의 길이었죠. 오우삼은 그렇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가 만든 영화는 할리우드와 홍콩을 합해 50편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오우삼의 영화들을 되새겨 보면, 기억에 남겨 둘 만 하다고 생각했던 영화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일단 '영웅본색' 1편과 2편을 빼놓을 수 없겠고, 밉든 곱든 '첩혈쌍웅'이 있습니다. 이어 그의 홍콩시대를 마무리하는 '첩혈가두'와 '종횡사해'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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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로 넘어가선 '브로큰 애로우'와 '페이스 오프'가 화려한 액션 거장의 탄생을 알렸죠. 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미션 임파서블'이 나왔고, '페이첵'에서는 그에게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어났습니다. '적벽대전'은 이런 시점에서 등장한 영화입니다. 할리우드 영화로도 적다고는 할 수 없는 800억원의 제작비와 홍콩-중국-대만 영화계를 망라한 올스타 캐스팅. 과연 이 영화가 오우삼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영화가 될지가 궁금한 시점입니다.

거론한 영화들을 돌이켜 볼 때 오우삼은 이성보다는 감정을 통제하는 데 능력을 발휘해 왔다는 점과 그의 영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뛰어난 배우에 많은 것을 의지하는 감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그의 영화는 정교한 플롯이나 영화 전체를 쥐고 흔드는 빼어난 통찰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영상미의 완성도에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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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은 지금까지 주로 두 명의 배우들을 통해 드러났죠. 바로 주윤발존 트래볼타입니다. 주윤발과 오우삼의 관계에 대해 굳이 얘기하는 건 지면 낭비가 되겠죠. 동아시아인, 특히 수컷들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우정과 신뢰, 배신과 복수의 이야기를 주윤발은 깊은 눈빛으로 구현해냈습니다. 솔직히 그 아닌 다른 어떤 배우로도 홍콩에서의 오우삼의 성공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첩혈쌍웅' 처럼 엉망진창의 플롯을 가진 영화도 사람들의 추억 속에 남게 하는 기이한 매력을 발휘했습니다.

(물론 여자들에게는 아닙니다. '영웅본색' 조차도 여자 관객들에겐 장국영의 영화죠. 장국영이 출연하지 않았다면 '영웅본색'은 남자들만의 컬트가 되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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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오우삼이 발견한 것은 존 트래볼타입니다. 주윤발이 그의 영웅이었다면 존 트래볼타는 그가 창조해 낸 가장 완벽한 악당이었죠. '브로큰 애로우'와 '페이스 오프'에서 트래볼타는 중국 삼십육계 중의 소리장도(笑裏藏刀-웃음 뒤에 칼을 감추다)를 완벽하게 구현해냅니다. 이 두 편의 영화에서 정의의 편인 크리스찬 슬레이터나 니콜라스 케이지 보다는 트래볼타가 훨씬 빛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오우삼이 어느 쪽에 더 공을 들이고 있는지가 너무도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두 배우 없이 오우삼이 남긴 업적을 꼽기는 매우 곤란해집니다. '미션 임파서블 2'는 너무도 노골적으로 '자, 너희가 원하는 게 고작 이런 거지?'라고 말하는 영화였죠. 비평은 형편없었지만 미국 시장에서는 엄청난 수익을 거뒀고, 오우삼은 자신감을 얻어 '윈드토커'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가 2차대전을 무대로 그리려 했던 '남자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합니다. 이 영화에는 존 트래볼타도, 주윤발도 없었죠.

너무 길어졌지만, '적벽대전'은 원작을 보는 오우삼의 시각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냅니다. 소설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는 괜히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수백년 동안 수천만의 독자들에게 읽혀 왔고, 그 주인공들 사이의 관계며 대사 하나 하나가 명언록에 올랐습니다. 일단 그 소설 전편에서 '적벽대전'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한 것은 훌륭한 선택입니다. 수천페이지짜리 소설에서 가장 극적이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뽑아낸 부분이기 때문이죠. 한국에서는 그 부분만으로 판소리 한편(적벽가)을 만들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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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행히도 오우삼은 이 너무도 잘 알려진 이야기를 '재해석'하겠다는 야심을 품습니다. 대개의 경우 재해석이라는 것은 '기존의 해석'에 사람들이 질려 있을 때 하는 거죠. 불행히도 소설 삼국지의 독자들은 '기존의 해석'에 질릴 기회를 별로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책으로 읽었던 감동적인 작품의 명장면이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되는가'였는데, 오우삼은 뭔가 자신의 색깔을 입혀야 한다는 공명심이 앞섰습니다. (이건 얼마전 개봉됐던 영화 '용의 부활'과 똑같은 실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오우삼 아니라 어떤 감독이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영화를 만들 권리가 있죠.  하지만 '반지의 제왕'이 거대한 호평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원작을 '제대로' 화면에 옮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우삼의 선택도 어느 정도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삼국지'라는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거나 남자들의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는 여성 관객들에게는 상당한 호응이 나오더군요.

하지만 원작 마니아의 시각에서 볼 때 오우삼의 '적벽대전'은 남자들과 남자들의 관계를 다루는 데서도 실패했고, 원작에 나오는 대규모 전투의 시각적 변환에서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제갈양과 주유는 서로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 마음 속의 칼을 견줘 보는 일대 영웅들입니다. 거기서 풍겨나오는 긴장감이 매력적이죠. 하지만 '적벽대전'의 주유와 제갈양은 서로 전학 와서 주먹 대보기 하는 중학생들 같습니다. 은근하고 깊은 맛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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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삼이 마지막까지 이 영화에 주윤발을 출연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만, 출연했더라도 주유 역이라는 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주랑(周郞)'이라 불렸던 꽃미남 스타 주유 역에 주윤발이라는 건 납득하기 힘들죠.

전투 신에서도 대규모 기병 액션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남은 건 실망뿐입니다. 맨 땅에서 두 다리로 달리며 싸우는 보병 관우-장비란 게임 '진삼국무쌍'에나 나오는 겁니다. 적토마 갈기를 나부끼며 82근 청룡도를 휘두르는 관운장의 위용을 볼 수 없는 삼국지라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팔괘진을 응용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팔괘진으로 포위해 놓고도 적병을 어쩌지 못한다는 해괴한 진행 역시 관객을 짜증스럽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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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놈놈놈'을 보면서 몇몇 사람과 함께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니까 '적벽대전'을 김지운 감독이 만들었어야 해." '놈놈놈'의 거의 마지막 부분, 일본군을 뚫고 말을 달리며 '장총 돌려쏘기' 묘기를 과시하던 정우성의 모습이 '적벽대전'에 나오는 어느 장수보다 멋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정우성은 '적벽대전'의 조자룡 역으로 제일 먼저 물망에 오른 적이 있죠.)

아무튼 원작 팬들의 한숨은 자꾸 깊어만 갑니다. '용의 부활'과 '적벽대전'이 이렇게 흘러가 버리면, 과연 진정한 '영상으로 보는 삼국지'는 언제나 관객들 앞에 나타날까요. 사실 이대로라면 송혜교가 캐스팅된 오우삼의 차기작 '1949'도 크게 기대가 가지 않습니다. 오우삼은 과연 부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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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음에 한스 짐머의 걸작 '브로큰 애로우'를 다시 들어 봅니다.

 



아울러 늘 장국영이 부르던 주제가만 나오는데 질린 분들을 위해,





처음 썼던 '적벽대전' 리뷰입니다.




그리고 관련이 꽤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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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너무나 많아서 뭐부터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딱 한마디만 하라면,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은 대재난이란 말을 해야겠군요. 한마디 더 하라면,'삼국지-용의 부활' 제작진에게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적벽대전'을 보고 나니 그만하면 '삼국지-용의 부활'은 걸작이라고 불러도 좋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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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을 기다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고, 저도 그중 하납니다. 그래서 더 배신감이 강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불안한 전조가 비치긴 했습니다. 기사 인용입니다.

'그래서 제작진은 <적벽>이 무협판타지가 아니라 좀더 사실적인 역사극이라는 걸 누누이 강조한다. 특히 오우삼은 “<삼국지>보다는 <삼국사기>를 주로 참고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극적으로 왜곡된 캐릭터와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좀더 적확하게 고증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 굴지의 영화전문지 기사입니다. 그런데 내용이 뭔가 찜찜합니다. '삼국사기'? '후한서'도 아니고, 진수의 정사 '삼국지'도 아니고, '삼국사기'? 설마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아니겠지요? 중국 사서에 '삼국사기'라는 책이 있다는 얘기는 도무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 영화사 쇼박스가 제작에 참여하는 바람에 한국 역사책을 참고했다는 뜻일까요?

아무튼 삼국사기건 뭐건 정말 정사를 참고해 고증에 충실했다는 뜻일 것 같은데, 문제는 만들어 놓은 영화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물론 고증에 충실했느냐가 좋은 영화냐 아니냐의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일단 그 부분에선 '절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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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작. 조조(장풍의)는 헌제를 협박, 유비와 손권의 토벌을 허락받고 대군을 움직입니다. 유비는 백성들을 다 데리고 가느라 박살이 나고, 조운(호군)은 아두를 구합니다. 제갈양(금성무)은 손권(장진)을 설득해 함께 조조에 대항하려 합니다. 손권을 만난 제갈양은 그 하나만 설득해서 될 일이 아님을 깨닫고 적벽에 주둔한 주유(양조위)를 설득하러 갑니다. '당연히' 두 사람은 의기투합, 조조를 무찌르기 위해 공동 전선을 폅니다.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 (赤壁: Red Cliff, 2008)'은 소설 '삼국지연의'의 절정을 이루는 적벽대전 전후의 이야기를 다룬 오우삼 감독의 4시간 짜리 대작의 앞부분입니다. 일단 절반은 북경 올림픽 전에 개봉하고, 나머지 절반은 연말쯤 개봉할 예정입니다. 당연히 진짜 적벽대전의 화공 신은 후반부에 있고, 전반부는 대륙의 영웅들이 어떻게 결전을 준비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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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행히도, 앞부분의 '적벽대전'에서는 전혀 박진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일단 소설과 영화는 결코 작지 않은 차이를 보입니다. 오나라의 군웅들을 압박하는 제갈양의 현하 달변은 1분 정도로 압축돼 버렸습니다. 제갈양 혼자 오나라 군중에 머물지도 않고, 아예 유비와 손권, 주유가 연합 사령부를 만들고 함께 작전을 의논하고 군사훈련도 함께 합니다. 감녕과 조운이 친한 사이가 될 정도죠. 박진감 넘치는 소설 속의 사건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주유와 제갈양은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관객들을 졸음에 빠뜨립니다.

'삼국사기'(?)를 참고했기 때문일까요? 그렇다고 소설과 벗어나 정사에 충실한 것도 아닙니다. 도입부에서 조조가 유비와 손권의 정벌을 허락받는 장면부터 엇나가기 시작합니다. 조조는 당시에 유비와 손권을 정벌하러 길을 나선게 아니었죠. 유표를 정벌하러 갔다가 형주가 의외로 쉽게 떨어지자 그 길로 동오 정벌에 나선 겁니다. 게다가 조조의 군대가 80만이라는 건 소설 삼국지연의가 대표적으로 저지른 뻥의 결과죠.

정사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이 어정쩡한 대본은 오우삼 본인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라고 합니다. 특히 삼국지연의든 정사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유비-손권 연합군의 합동 군사훈련 이라니, 마치 영화 '젠틀맨 리그'를 보는 듯 합니다. 삼국지를 읽은 초등학생의 상상을 대본으로 옮겨놓은 거라고나 할까요.

사실 이 부분을 보다 보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결국은 적이 될 운명이지만 서로 끌리는 두 인물, 제갈양과 주유는 왠지 '첩혈쌍웅'의 주윤발과 이수현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조조를 응징하기 위해 서로 씩 웃으며 협력하는 영웅들은 어딘가 '영웅본색 2'의 다시 만난 삼총사를 보는 듯 합니다. 어쨌든 이런 설정은 기존의 삼국지와 썩 잘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15세 이하용 삼국지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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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이 이 수준이니 천하의 명배우가 온 들 어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주유 역의 양조위와 제갈양 역의 금성무를 비롯해 도대체 이 대본으로는 캐릭터가 그려지질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나마 사람처럼 보이는 건 조조 역의 장풍의와 손권 역의 장진, 그리고 손상향 역의 조미 정도입니다.

미스캐스팅의 냄새도 짙습니다. 아마도 감독의 의도는 진짜 주인공을 주유로 놓고 있는 것 같은데 양조위는 이 역할에서 그만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손상향 역의 조미는 '남자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상무 공주'는 커녕 천방지축 날뛰는 말괄량이 '황제의 딸' 연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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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가 손상향, 아래가 유비...)

뭐 딱이 나쁜 건 아니지만 유비와 짝을 이룰 일이 걱정스럽습니다. 유비 역에 뭔가 있어 보이는 미중년 배우가 나섰더라면(...주윤발?) 모를까, 정말 지금의 유비로는 너무 심각한 아버지와 딸 구도밖에 안 그려집니다.

그럼 액션은 어떨까요.

일단 개인전은 게임 '진 삼국무쌍'의 실사 화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관우와 장비, 조운은 '소설 원작' 대로 수백명의 적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게임 화면같은 전투를 벌입니다. 물론 말을 타지 않고 땅 위에서 말입니다. 너무 비슷한 전투가 계속 펼쳐지는 바람에 나중엔 지루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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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전도 안습 수준입니다. 동양식의 전쟁 묘사라면 지금까지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에 비길 만한 것이 없었다는게 중론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들면서 오우삼은 두 편의 할리우드 에픽에서 따 온 장면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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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되는 방패는 킹 비더 감독의 1959년작 '솔로몬과 시바'에서 나온 것이고, 팔괘진에 갇힌 조조 기병대의 모습은 세르게이 본다르추크의 1970년작 '워털루'에서 영국 보병대의 방진에 갇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폴레옹 기병대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특히 전장 전체를 조망하며 내려오는 부감 촬영은 같은 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죠.

모방은 했으되, 기본적으로 전쟁이라는 것을 연구하지 않은 태가 역력합니다. 조조군의 마지막 무기(?)인 방패작전 같은 것이 그렇죠.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만한 병력을 진영 속에 가둬 뒀으면 화살 몇 대로 끝날 일을 갖고 장난감 쇼를 합니다.

오우삼이 '란'이나 '가게무샤', 혹은 가도카와 하루키의 '하늘과 땅과' 등을 한번이라도 봤다면 이런 유치한 장난은 하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명장'의 전투 장면도 이 영화보다는 훨씬 더 리얼하게 느껴지고, 무려 19년전 영화인 정소동의 '진용'의 기마 전투 신도 이 영화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됩니다.

오우삼과 연출진이 깊이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무술감독으로 개인간의 액션에 강한 원규보다 집단 액션의 경험이 풍부한 정소동의 도움을 받았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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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이후, '평이하고 지루하다'는 평과 '만화같고 재미있다'는 평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좋다는 의견도 상당수 있더군요.

개인적으로는 너무 실망이 커서인지 연말 개봉 예정인 '적벽대전' 후편을 보게 될지가 의문입니다. 욕을 하더라도 봐야 할지, 아니면 그나마 안 보는게 오우삼에 대한 지금까지의 추억을 보존할 수 있는 일이 될지 말입니다.


p.s. 삼국지를 읽지 않은 초등학생들에게는 좋은 오락영화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기야, 미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선택일 수 있겠군요. 오우삼에게 정통 대하 사극을 기대한게 잘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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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이런 장면은 후편에 나올 모양입니다. 삼국지 팬들은 보는 즉시 어떤 장면인지 아시겠죠. 참고로 왼쪽 인물은 노숙입니다. 하지만 이 장면을 이해하시는 분들은 개봉을 앞둔 '적벽대전'을 보시면 실망을 피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p.s.3. 오우삼의 영화답게 비둘기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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