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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과 '베테랑'이 쌍끌이 천만 시대를 이어가고 있는 2015 여름, 다른 한국 영화들은 소리소문없이 꼬리를 마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지난해의 기대작이었던 '협녀'조차도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큰 호응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런데 그 틈바구니에서 그리 큰 영화로 보이지 않았던 영화 한 편이 우뚝 일어섰습니다. 바로 '뷰티 인사이드'.

 

백감독의 유려한 영상과 조성욱 감독의 음악 역시 영화를 이끄는 강력한 힘입니다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구나 한효주라는 배우의 힘에 대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앳되고 청순한 얼굴이 표상이었던 한효주는 이 작품을 통해 진정한 원톱 여배우의 위력이 어떤 것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주더군요.

 

 

 

 

 

영화에 대한 기본 정보부터 일단 정리해 봅니다.

 

 

 

 

 

 

웬만한 분들은 아실 얘기지만 이 영화는 도시바의 '뷰티 인사이드'라는 온라인 광고 시리즈에서 시작됐습니다. 총 6편, 모두 합해 약 39분 분량인 이 광고영화는 2013년 칸 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작품입니다.

 

 

 

 

 

 

이 광고 필름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의 기본 설정과 도입부는 거의 똑같습니다. 한국판에서는 뚱뚱한 남자(김대명)가 여자가 깨지 않도록 몰래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습니다. 맞지 않는 바지와 신발에 한숨을 쉬면서.

 

(아래는 한국 네티즌들이 한글 자막까지 입혀 놓은 원작 광고입니다. 영화와 비교해 보실 분들은 한번 보시는 것도. 존재 목적이 목적인 만큼 광고에서는 노트북이 큰 역할을 합니다. 영화에서 유난히 안경테가 강조되는 것과도 비교 가능.^^)

 

 

 

 

이 남자, 우진은 매일 아침 일어나면 얼굴이 바뀌어 있는 남자입니다. 물론 남자라고는 하지만 '태어날 때 원래 남자'였다는 것 뿐이지 매일 아침 일어나 보면 어떤 날은 남자, 어떤 날은 여자, 어떤 날은 노인, 어떤 날은 외국인으로 바뀌어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떤 날은 이진욱처럼 잘생긴 남자가 되고, 어떤 날은 조달환처럼 코믹한 얼굴로 깨어납니다.

 

정상적인 인간관계란 당연히 가능할 리가 없는 그. 당연히 잘 생긴 날은 밖에 나가 여자를 유혹하기도 하지만 진정한 관계란 아예 기대하지 않는 삶이 이어집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은 여자가 나타나면,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이 영화의 핵심 아이디어입니다.

 

 

모든 창작이 훌륭한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대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이야기는 훨씬 쉽게 풀립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처럼 메인 아이디어 하나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30초 짜리 이야기(대부분의 광고), 5분 짜리 이야기(인터넷 광고), 15분 짜리 이야기(웹 드라마), 20분 짜리 이야기(단편 영화), 70분 짜리 이야기(TV 단막극 드라마), 2시간 짜리 이야기(극장용 영화), 16시간짜리 이야기(TV 미니시리즈) 로 바꾸는가 하는 것은 전혀 다른, 혹은 완전히 새로운 작업이 됩니다.

 

어떤 아이디어들은 그 자체로 이야기의 규모(어느 정도의 길이에 적합한 이야기인가)를 한정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확장이 불가능할 것 같던 아이디어가 새로운 아이디어와의 결합을 통해 생명 연장(?)의 길을 걷기도 합니다.

 

 

 

 

이 영화, '뷰티 인사이드'만 해도 기존의 39분짜리 광고 필름에서 2시간 짜리 극장용 영화가 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아이디어의 확장이 이뤄졌습니다. 일단 이야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절친 상백(이동휘)이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졌습니다. 아울러 또 세상과 우진의 연결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우진의 어머니(문숙),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 이수(한효주)가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할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이수의 주변 사람들, 예를 들어 실장님(신동미) 같은 캐릭터들이 추가됐습니다.

 

 

(이분이 바로 문숙씨.)

 

한 두 장면 지나가면 될 단편과는 달리 이야기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판타지는 설정이 중요해집니다. 많은 판타지들이 여기서 무너지는 건 '어차피 판타지인데 어때'라는 생각에서 정교한 설정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의 경우라면  우진이 '자고 일어나면 바뀐다'는 것이 핵심 설정인데,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면 '그럼 대체 변하는 시점은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답이 필요해집니다. 즉 우진이 아침에 눈을 뜰 때 순간적으로 바뀌는 것인지, 잠이 가장 깊이 든 시점에 바뀌는 것인지, 자는 동안 서서히 조금씩 변해 가다가 깨면 완성되는 것인지, 밤에만 바뀌는 것인지, 낮잠 때에도 바뀌는 것인지...

 

이런 설정들이 중요한 이유는, 그 자체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시간이건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얼굴이 바뀐다는 설정 덕분에 이진욱의 등장 장면은 풍성한 재미를 이끌어 낼 수가 있습니다. 반면 하루 한번, 심야 시간에 바뀌는 것이 설정이었다면 또 거기에 맞는 장면이 등장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런 잔재미도 가능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사실 뒤로 가면서 조금 밀도가 떨어지는 느낌을 줍니다. 원작인 광고가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의 비밀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다른 얼굴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심하는데서 끝나는 반면, 극장용 영화는 그 뒤로 죽 이어져 '정말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다 보니 뭔가 불필요한 이야기가 추가된 듯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아이디어의 지속적인 확장을 위한 연구가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환하게 빛나게 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이수, 한효주의 힘입니다. 한효주가 연기하는 이수를 보고 있으면, 만약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가 매일 변하는 얼굴에 대한 비밀을 지키는 대가로 1000년을 살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10년 밖에 못 산다(뭐 이건 좀 뭔가 구미호같은 설정입니다. 물론 영화에는 이런 유치한 설정 같은 건 없습니다)고 하더라도, 이수에게 고백하는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개연성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예쁜 얼굴은 기본. 뭐든 다 이해해 주고 뭐든 다 받아들여 줄 것 같은 이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라고 표현하는게 자연스러울 듯 합니다. 

'뷰티 인사이드'는 올해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가 되기는 다소 힘에 부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 먼 훗날 2015년을 돌이켜 볼 때, '가장 아름다운 영화'였다고 기억할 것은 분명한 영화입니다. 연일 격무에 지친, 메마른 감성의 아저씨에게도 달달한 꿈을 꾸게 할 만한.

 

 

 

P.S.1.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느낌을 털어놓습니다만, 이 영화는 사실 '사랑이란 그 사람의 외면보다는 내면에 빠져 드는 것'이라는 뜻의 제목과는 달리 '뷰티 아웃사이드'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공감하듯, 스토리는 우진이 배성우 김상호 김희원 조달환일 때 진행되지 않습니다. 진짜 러브 스토리는 박서준 이진욱 유연석일 때 이뤄집니다. 그 반대편에 서 있는 한효주의 경우 역시 굳이 외모의 중요성을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죠.

 

(물론 '우진은 우월한 외모일 때 수많은 미녀들을 유혹하지만, 그 중에서 미모 뿐만 아니라 내면의 매력을 갖춘 이수를 만났을 때 진정 일생을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데에 '뷰티 인사이드'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죠.^^)

 

여기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인정할 건 인정해라'입니다. 수많은 사회심리학자들의 '사랑의 본질'에 대한 연구에서도 외모라는 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합니다. 물론 이 '외모'의 판단은 매우 주관적인 평가의 결과물이지만, 어쨌든 인간은 시각적으로 만족스러운 상대를 사랑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동물입니다. 그걸 처음부터 부정하거나 죄악시하는 건 그리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이 영화의 결론이 보여주는 건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은 외면이지만 사랑을 지속시키는 것은 내면'이라는 정도의 실용적인 태도입니다. 평생을 관통하는 사랑이란 일순간의 매혹과는 크게 다른 것이며, 외모로 그런 것을 얻을 수는 없다는 교훈인 셈이죠.

 

그리고 또 하나, 사람의 삶에는 좋은 날과 나쁜 날이 있기 마련입니다. 매일 좋은 날이 이어지는 행운의 사람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좋은 날의 기억으로 운 나쁜 날의 아픔을 이겨내고, 또 다른 좋은 날을 기대하며 삶을 이어갑니다. 좋은 하루는 끝없이 지속되고, 나쁜 하루는 조금이라도 짧게 끝났으면 하는 게 인지상정. 이 '좋은 날'과 '나쁜 날'을 사람의 외모에 대입한다면 '뷰티 인사이드'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우화로 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P.S.2.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사실 가장 반가운 배우는 박민수 군입니다. 이유는 당연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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