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한대로 2013년 1월 문화생활 가이드를 내놨습니다.
사실 이쪽에 조금 더 빨리 공개하는 것도 가능하겠습니다만, '매거진 M'이 나오는 것이 1월4일이다 보니 너무 여기에 빨리 옮겨놓는 것도 약간 예의가 아닌 듯 하고, 뭐 그런 아쉬움이 조금 있습니다.
그래서 기왕이면 살짝 매월 초반보다는 후반 쪽의 행사에 집중하게 될 듯도 합니다. 뭐 어차피 한정된 예산으로 모든 걸 다 즐길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럼 시작합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1월의 문화생활 가이드'입니다.
2013 1월 문화생활 가이드
아직도 새해 계획 같은 거 짜고 있나? 혹시 자기계발서와 부동산 투자 관련서 잔뜩 사서 쌓아 놓고 인생역전을 노리는 중? ‘월 문화 예산 10만원’같은 기특한 계획도 한번 생각해 봐.
사실 이번 달에 가장 추천하고 싶었던 공연은 1월18일 서울시향이 김선욱과 협연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교향곡 5번’의 ‘5+5’ 공연이었는데, 바로 매진이네.
지난 달에 이어 서울시향을 또 거론하니까 뭐 얻어먹은 거라도 있나 의심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나도 돈 내고 표 사서 공연 보는 사람이야. 김선욱의 ‘황제’와 정명훈의 ‘운명’을 현장에서 들을 수 있다면 그건 당연히 강추지. 혹시 임박해서 취소되는 표가 있을 지도 모르니까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www.sac.or.kr)를 자주 방문해 봐.
그 다음 눈길을 끄는 이벤트는 20일 서울 홍대 앞 롤링홀에서 열리는 ‘롤링홀 18주년 기념 콘서트 vol.7’ 이야. 원래 그 주간 내내 기념 콘서트가 열리는데, 이날 출연진이 유독 화려하더라고. 노브레인, 트랜스픽션, 갤럭시 익스프레스, 브로큰 발렌타인이 하루에 다 나온다는 거야. 예매가는 2만5000원. 혹시 더 싸게 구할 수 있는 표가 있는지는 각자 알아보도록.
지난달에 이어서 하는 얘기지만, 뮤지컬이나 오페라는 한번 큰 돈 내고 보러 가기 전에 그 작품을 충분히 익혀야 본전을 뽑을 수 있어. 아무래도 그중에서 오페라는 심리적으로도 진입 장벽이 높을 테니 우선 뮤지컬부터. 가장 좋은 방법은 영화를 통해 작품과 친해지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이달에 추천할 작품은 고전 중의 고전 ‘그리스’야. 개인적으로 ‘저는 뮤지컬이란 걸 보면 연기하다 노래하다 하는 게 좀 웃기고 어색해요. 뭘 보면 뮤지컬과 친해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으면(이런 사람 의외로 많아) 나는 꼭 이 영화를 추천해. 특히 영화 ‘그리스’는 올리비아 뉴튼 존과 존 트래볼타라는 황금의 캐스팅이 압권이야. 좀 과장된 듯한 출연진의 헤어스타일이며 분장이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작품의 배경이 1950년대 미국 고등학교니 그러려니 해. 그리고 다운받지 말고 DVD 사. 6600원밖에 안 해.
공연 중인 뮤지컬 중에 딱 하나 고르라면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스티븐 손드하임의 ‘어쌔신’이야. 20세기를 대표하는 뮤지컬 작곡가를 꼽을 때 앤드류 로이드 웨버, 클로드 미셸 숀버그(‘레미제라블’), 알란 멘킨(거의 모든 디즈니 뮤지컬)과 함께 반드시 거론되는 사람이 바로 손드하임이지. 하지만 ‘스위니 토드’ ‘컴패니’ 등 손드하임의 작품들은 한국 취향은 아니라는 평 때문에 자주 공연되지 않아.
만약 당신이 보려는 공연이 ‘그리스’나 ‘지킬 앤 하이드’라면 그건 언제라도 몇 달 안에 새 프로덕션으로 공연을 볼 수 있어. 하지만 ‘어쌔신’을 볼 기회는 이번 아니면 5년은 있어야 할거야. 바쁘니까 어떤 작품인지는 각자 찾아보도록. 4장을 사면 1장은 공짜(그러니까 25% 할인) 등 이벤트도 많은 것 같아. 보고 나면 후회는 없을 거야.
돈이 남았으니 이런 겨울날 읽으면 좋을 단편집 하나 추천할게. 제임스 설터의 ‘어젯밤’이야. 이 사람의 글을 읽어 보면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라는 게 어떤 건지 실감이 날 거야. 하지만 읽고 나면 미묘하고 섬세한 잔향이 며칠은 가더라고. 9500원.
마지막으로 이달의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는 ‘미국 인상주의 특별전’이야. 인상주의? 그런데 프랑스가 아니고 미국? 그게 볼만 할까?
자. 한번 생각해 봐. 서울에서 열리는 반 고흐 전이나 바티칸 박물관전에 과연 A급 작품들이 오긴 할까? 암스테르담이나 바티칸을 찾는 관람객들을 외면하고? ‘오페라의 유령’이나 ‘위키드’를 서울에서 공연할 때 브로드웨이의 현재 출연진이 오는 경우가 있을까? 하지만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은 중국의 변검 시범단이나 일본의 가부키 극단이 서울에 온다면 진짜 최강의 공연진이 오겠지.
바로 그런 이유로 이 전시를 추천하는거야. 차일드 하썸, 라일라 캐봇 페리 등 이 장르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대표작이 망라되어 있고, 작품수도 130여개나 돼. 같은 돈으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모조품을 보러 가는 것보단 훨씬 나을 거야.
이번 달은 여기까지. 그럼 2월에 만나는 걸로.
요약
1월20일, 홍대 롤링홀 개관 18주년 기념 공연 vol.7 2만5000원
뮤지컬 ‘어쌔신’ S석 4만원, R석 6만원(4인 관람시 1인당 각 3만원, 4만5000원)
영화 ‘그리스’ DVD 6600원
제임스 설터 단편집, ‘어젯밤’ 9500원
미국 인상주의 특별전 1만2000원
소계 8만3100원~11만3100원
보충 사항 1. 일단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이미 '차세대'라는 말이 무색한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협연하는 '베토벤 교향곡 5번 + 피아노 협주곡 5번' 공연은 당초 예정됐던 18일 공연이 이미 매진됐고, 이 때문에 추가로 마련된 17일 공연(같은 출연자, 같은 레퍼토리)도 매진 직전입니다. 지금이라도 서울시향이나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시면 남은 표가 몇 장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연말 서울시향의 레퀴엠 소식을 전하면서 '한국에서 클래식 공연이 매진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고 한 적이 있는데, 요즘은 매진을 기록하는 경우가 종종 보입니다. 특히 연말의 '베토벤 교향곡 9번'같은 공연이 아닌데도 매진(이틀 연속 매진)이 이뤄진다는 건 아마도 이런 문화를 즐기는 저변이 상당히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인 것 같아 왠지 뿌듯합니다. (...이봐, 그런데 당신이 왜?)
보충 사항 2. '어쌔신'에 대한 글은 예전에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참고가 되실 듯 합니다. ( http://fivecard.joins.com/131 )
보충 사항 3. 미국 인상주의 특별전을 소개하면서 잠시 들먹인 'A급 이론'은 꽤 오랜 시간을 문화적 변방에서 살아온 경험이 말해주는 교훈입니다. 세계 유명 박물관/미술관의 출장 전시회에 그 박물관이 자랑하는 A급 전시품이 오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아마도 '최고'라고 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특히 '피에타'를 비롯한 유명 작품들의 복제품(물론 복제품에도 '공인된 복제품'이라는 라벨이 붙기는 하겠습니다만)을 내놓는 전시회에서 '바티칸 박물관의 정수'를 느낀다는 건 좀 넌센스죠.
세계적인 연주 단체들의 내한 공연 때에도 늘 비슷한 이야기들이 따라다닙니다. 이들이 내한 공연을 한번 치르고 나면 '이번에 온 단원들은 2진'이네 '사실상 3진'이네 하는 말들이 돌곤 합니다. 두 사람만 가도 100만원이 넘는 엄청난 티켓 가격에 비하면 참 아쉬운 일이죠. 매번 그런 건 아니겠지만, 굳이 그렇게 비싼 공연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을 바에는 '실속있는' 공연 위주로 즐기는 것이 현명한 소비가 아닐까요.
이 칼럼은 앞으로도 '가격대 성능비 최고'의 문화 소비를 지향합니다.^^
보충 사항 4.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그리스'를 다시 봤습니다. 고등학교를 무대로 웃고 떠들고 노래하는 이야기는 언제 봐도 사람을 유쾌하게 합니다.
유명한 'Glee'에서 이런 소재를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겠죠. 아예 에피소드 하나를 할애해서 사실상의 리메이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뭐, 아무래도 저 위에 소개한 오리지널에 비하면 아쉬움이 많죠.^^
이건 좀 더 볼만 합니다. 글리 멤버들이 재현한 Greased Lightning 입니다.
물론 이쪽도 영화 원작 만은 못하다는 느낌. 혹시 궁금하실 분을 위해 영화판의 Greased Lightning도 붙여 봅니다.
그럼 1월도 즐겁게들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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