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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인데다 온천 지대인 유후인의 2월은 꽤 따뜻했습니다만 곳곳에 눈의 흔적이 남아 있기는 했습니다. 워낙 큐슈 지역이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동네이기도 하다더군요. 심지어 후쿠오카에서 유후인으로 가는 버스 예매 안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기도 했습니다. <눈으로 인해 버스 운행이 예고 없이 중단될 수도 있음>.

 

이런 안내를 보면 한번쯤 '그럼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몇가지 이유 때문에 결국은 버스를 이용하게 됩니다.

 

우선 첫째, 버스가 훨씬 쌉니다. 둘째, 시간 면에서도 버스는 후쿠오카 공항에서 직접 유후인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반면 기차는 하카다 역(후쿠오카 시내)까지 이동한 뒤 거기서 다시 기차로 움직여야 하므로 시간과 번거로움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셋째, 뭐 인생에 한번 쯤은 '예. 접니다. 지금 유후인인데 여기가 산골이라 폭설로 길이 끊겼다네요. 죄송합니다. 기차요? 기차는 현지 승객들로 꽉 차서 입석표도 없다고... 예. 상황 정리되는대로 복귀하겠습니다' 같은 전화도 한번쯤 해 볼 수 있다면 좋겠죠.

 

하지만 20여년간 회사 생활을 해 본 경험에 따르면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0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고민 말고...

 

유후인의 눈 흔적입니다.

 

 

유후인 온천장 료칸이나 호텔들은 거의 대부분 오전 10:30~11시에 체크아웃, 오후 2:30~3시 체크인의 스케줄을 따르고 있습니다. 2박 이상 투숙한 사람에게도 점심 식사는 제공되지 않으며, 특히 약간 외진 지역에 위치한 료칸들은 주변에 점심을 해결할만한 식당이 흔치 않은 편입니다. 대신 료칸들은 대부분 체크인/아웃 시간에 맞춰 무료 송영(送迎) 서비스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동네 구경에 나섰습니다. 나선 결론은... '왜 유후인에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이 다 똑같은 지 알겠다' 였습니다.

 

 

 

민가의 정원. 지나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예쁜 장식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료칸에서 시내 어디에 내려 주면 좋겠다고 묻기에 일단 유후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긴린코(金鱗湖)를 가 보자고 했습니다.

 

 

조용하고 예쁜, 그냥 관광엽서에 흔히 등장할 것 같은,

 

 

이름 그대로 금잉어가 헤엄치는 그런 호수입니다.

 

 

 

그리고 아주 작습니다.

 

혹시 경기도 운천의 산정호수를 가 보신 분이라면, 그 1/5 정도 크기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천천히 걸어서 한바퀴 도는데 15분이면 충분한 규모.

 

 

뒤편으로는 신사와 신수가 있고, 산으로 오르는 산책로도 있습니다. 굳이 가 볼만한 풍광은 아닐 듯 해서 패스.

 

 

 

한국과 일본 관광지의 가장 큰 차이라면 역시 1) 뽕짝민요메들리 등의 기괴한 소음이 없다 2) 기념품 가게의 물건 종류와 품질이 확연히 다르다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큐슈산 다양한 식재료를 파는 가게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몇 군데를 돌아 봤는데 저 식재료의 종류가 거의 겹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어느 가게를 가 보나 똑같은 물건을 팔고 있는 한국과는 전혀 다릅니다.

 

 

 

 

긴린코 주변의 개천 운하(?)를 따라 시내 쪽으로 걸어나옵니다. 날도 따스하고, 절로 걷고 싶어지는 길입니다.

 

 

크고작은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을 계속 만나게 됩니다. 가격이 싼 편은 결코 아니고, 최대한 다른 가게들과 차별화를 생각한 물건들을 팔고 있습니다.

 

 

 

 

간판들만 봐도 매력적이죠.

 

 

 

 

예를 들면 고양이와 관련된 물건을 전문적으로 파는 이런 가게.

 

 

 

저의 상징물인 냥코센세가 가득합니다. 집안을 냥코센세로 채워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집에 냥코센세는 너 하나면 충분해!"라는 마나님의 일갈에 움찔.

 

 

 

반면 또 바로 그 앞집에는 강아지 관련 소품들을 집중적으로 파는 상점이 성업중입니다.

 

 

걷다 보면 유후인의 명소인 크라프토관 하치노스 게텐하신(クラフト館 蜂の巣 月點波心)이라는 가게를 만나게 됩니다. 크라프토(craft)라는 이름대로 목공예 중심의 공방. 비싸지만 정말 세심하게 만들어진 수많은 물건들이 여행자를 노립니다. 특히 여성 여행자를 동반한 분들이라면 매우 조심하셔야 할, 위험한 곳입니다. 눈이 뒤집어 집니다.

 

실내는 촬영 금지 지역.

 

 

걷다 보면 어느새 역전까지 와 버립니다.

 

유후인 시내 어디를 가든, 택시로 료칸까지 1000엔 이내에 도달 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한국에서 택시비 만원이면 꽤 먼 거리도 갈 수 있는 가격이지만, 유후인의 택시 기본 요금은 660엔... 1000엔이라봐야 한국 택시의 5천원 거리도 안 됩니다.

 

 

 

관광객들을 겨냥한 예쁘고 아기자기한 가게들도 좋지만 이런 오래된 간판들도 뭔가 마음을 끄는 데가 있습니다.

 

 

한 60~70년대부터 그냥 그대로 이 모습이었을 것 같은 료칸.

 

물론 구경만 하고 간식을 챙기지 않으면 곤란하죠.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하다는 미르히 Milch.

 

 

맛있지만 홋카이도에서 매일 먹던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맛에 비견될 정도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인생의 아이스크림이라고 느꼈던, 삿포로 스스키노의 제과점 센슈안(千秋庵)의 아이스크림에는 감히 미치지 못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처럼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우유맛과 얼음맛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성지 홋카이도로 직행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1921년 개점한 센슈안 본점을 꼭.

 

 

 

유후인 제일의 생크림 롤 가게라는 B-SPEAK에서는 정석대로 미리 주문한 뒤 보냉 팩으로 포장.

 

 

아, 물론 생크림 롤은 그냥 생크림 롤 맛입니다. 죽은 사람이 눈을 뜨고 절름발이가 벌떡 일어날 맛은 아닙니다.

 

원래 생크림 롤이라는게 다 맛있는거 아닌가요? (개인적으로 맛없는 생크림 롤이 없음)

 

 

 

어쨌든 아무리 좁다고 해도 마냥 걷다 보면 어딘가에서 잠시 쉬어 가고 싶어집니다.

 

눈길을 끄는 가게가 있어서 들어갔습니다. 쿠쿠치(麴智)라는 이름.

 

 

유후인 역에서 도보 10분(이 정도면 유후인에선 꽤 먼 거리입니다^^).

 

뭐 다녀와서 검색해 보니 이미 꽤 유명한 곳이더군요.

 

 

 

일단 나무를 중심으로 한 정원과 인테리어가 탁월합니다.

 

 

한국에서는 아예 자취를 감춘 듯한 석유 스토브의 정겨움까지.

 

 

 

홍차와 유자 모나카를 주문했습니다.

 

이 집에서 직접 만든 유자 모나카. 바삭한 껍질 안에 유자 향 가득한 팥 잼이 들어 있습니다. 절묘합니다.

 

 

 

바깥쪽에서 본 쿠쿠치의 정원.

 

 

 

도로 쪽에서 보면 왼쪽은 카페, 오른쪽은 제과 판매점입니다. 오른쪽 가게에선 유자 모나카를 비롯해 이 집에서 만든 다양한 과자와 수재 잼 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뭔가 성의 있는 선물을 하시고 싶은 분들에게 적절합니다. 매번 공항에서 도쿄 바나나(이름과는 달리 일본 전국 각지에서 판매중)나 공항제 도리야키만 사 가신 분들이라면 특히.

 

 

메인 관광로는 다양한 상점과 카페, 관광객들로 붐비지만(이 거리의 모국어는 아마도 한국어인 듯. 일본어보다 더 많이 들립니다) 한 꺼풀만 안으로 들어가면 이런 시골 마을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산책에 최적화.

 

 

 

귀환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들어가 본 유후인 역 대합실(버스 터미널과 도보 2분 거리인데 역 대합실이 훨씬 넓고 쾌적합니다).

 

 

동네 주민 미술 동호회(?)의 전시공간으로도 활용되는 듯. 갤러리 느낌의 높은 천장과 채광창이 예쁘고 플랫폼으로 통하는 문도 뭔가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드는, 딱 마음에 드는 공간입니다.

 

 

 

어떤 분들은 '여름 온천이 제 맛'이라고도 하시지만 그래도 온천은 한겨울. 같은 곳을 또 가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다시 찬바람이 불면, 분명 유후인 온천 료칸이 다시 생각날 듯 합니다.

 

 

 

 

수시로 뭔 짓(?)을 벌이던 이 두 녀석도.

 

 

 

 

지금까지 보신 내용은 2015년 2월 기준입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여름엔 이런 델 가야죠.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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