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송계의 가장 큰 화제는 '출연료 삭감'입니다. 배용준 2억5000만원, 송승헌 7000만원 등의 숫자가 여기저기서 들먹여집니다. 경기 악화로 인해 방송사의 수지가 예전같지 않기 때문에, 출연료 삭감을 통한 제작비 절감이 절실해지고 있다는 얘깁니다. 사실 예전같지 않다 뿐이지, '대출이라도 받고 싶다'는 외주제작사들과 비교할 처지는 아닙니다.
방송국의 경영 상태 악화는 가장 쉽게, 광고의 개수로 알 수 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에는 시작할 때 타이틀이 나간 뒤 방송되는 전 CM과 끝나자마자 방송되는 후 CM이 있죠. 얼마전 KBS 2TV '그들이 사는 세상' 같은 드라마가 타이틀이 나간 뒤 전 CM이 단 한개도 붙지 않고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시청률이 난조라지만 현빈 송혜교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참 처절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경기 좋을 때는 시청률이 꽤 낮은 드라마도 광고가 법정 최대치까지 꽉꽉 차는 '완판(완전 판매)'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최근 몇해 사이 방송 광고량 자체가 차츰 줄어들고 있었죠. 그러다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셈입니다. 오죽하면 지상파 방송사가 앞장서서 출연료를 깎자고 나섰겠습니까.
하지만 과연, 출연료 폭등만이 이런 상황의 원인일까요. 한번 생각해볼만 합니다.
[송원섭의 두루두루] 꼭 매일 세편의 드라마가 맞붙어야 했나?
왜곡된 드라마 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지상파 3사 드라마 PD들이 뭉쳤다. 이들은 지난 24일(11월24일을 말합니다) 간담회를 갖고, '위기의 시작'을 지난 2005년으로 지목했다.
2005년 이후 드라마 제작 시장의 혼란이 가중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코스닥 시장과 우회 상장이 유행처럼 시장을 휩쓸면서 연예계로 진출한 투기성 자본들은 단기간에 큰 폭의 주가 상승을 위해 외형을 부풀리는 수법을 썼다. 주가를 올리기 위해선 '실적'이 필요했고, 이들은 드라마든 영화든 제작을 해 놓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했다. 대외적인 효과를 위해서는 톱스타 캐스팅이 중요하기도 했다.
그 결과 스타급 연기자들의 몸값은 끝간 데 없이 치솟고 외주 제작사들의 부실화가 급격히 진행됐지만, 어쨌든 드라마 공급이 확대되자 방송사는 오히려 편성을 늘렸다. 공백 지역이던 금요일 밤에도 연속극이 방송됐고, MBC와 SBS는 주말 드라마를 각각 두개씩으로 늘렸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시청률이 낮은 드라마는 광고 물량이 뚝 떨어지자 이제사 방송사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현재의 위기에 대한 인식은 드라마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해결책은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이날 PD들은 "최근 3년간 방송된 미니시리즈 84편 중 60편이 방송사에 적자 고통을 안겨줬다"며 "적자 해소를 위해 2005년 수준으로 출연료와 제 비용을 삭감하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했다.
한국 안방극장에서는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후 10시대에는 세 방송사가 동시에 드라마로 경쟁을 벌인다. 대개 승자는 하나다. 전체 드라마 중 3분의 1 가량이 시청률 경쟁의 승자라면 3분의 2는 피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즉, 적자 드라마 출현의 본질적인 원인은 매일 밤마다 세 방송사가 모두 드라마로 맞불을 지핀 데 있었던 것이다. 경제 상황만 좋았다면 세 편의 드라마를 모두 채울 수 있을 정도로 광고 물량이 충분했겠지만, 최근 경기가 악화되면서 곪고 있던 상처가 겉으로 드러난 것 뿐이다.
현재 드라마 시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상황을 만들어낸 원인을 외주 제작사의 난립이 본격화된 2005년 이후의 상황에서만 찾아서는 안된다. 가장 큰 책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주중이건 주말이건 똑같은 시간에 드라마를 편성해 맞불 작전을 펴 왔고, 이후에도 기회만 있으면 드라마를 늘려 온 방송사의 편성 정책에 있다. 비용 절감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제 지상파 방송사들도 뭔가 책임있는 모습을 보일 때다.(끝)
보완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2005년 수준으로의 복귀'를 원하고 있지만 정작 2005년에도 '스타들의 고액 출연료'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때 1000만원, 2000만원 수준의 출연료도 외주 제작사들의 취약한 경영 상태로는 감당하기 힘든 액수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지상파 방송사들이 외주 제작사에 지급하는 제작비도 계속 상승했습니다.
이로 인해 외주제작사들은 잇달아 껍데기 회사로 변해가기 시작했지만 이때까지 지상파 방송사들의 입장은 일정했습니다. '그건 그쪽에서 출연료를 너무 많이 주어서 일어난 문제이니, 그쪽에서 해결하라'는 식이었죠. 하지만 외주 제작사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상파의 드라마 라인업에 자신들이 만드는 드라마를 어떻게든 끼워 넣어야 했고, 그러려면 화려한 캐스팅이 필수였습니다. 즉 '그쪽의 문제'일 수가 없었죠.
지난 24일 기자간담회에서는 한 방송사 고위 간부로부터 이런 얘기도 나왔습니다. "무리하게 스타를 동원해 편성을 잡아 놓고, 계약서 사인을 미룬 뒤 방송 직전에 방송사를 협박하듯 해 출연료를 대폭 인상시킨 제작사도 있었다. 처음부터 문제가 있는 기획이라고 생각했지만, 만약 우리가 기획 단계에서 이 드라마를 거절했다면 다른 방송사로 넘어갈 것이고, 거기서 그 드라마가 성공을 거뒀다면 월급 받는 입장에서 심각한 문책을 받을 일이었을 것"이란 얘깁니다.
이 이야기는 최근 3년 동안의 방송 드라마 현황을 적나라하게 요약해서 보여줍니다. 외주 제작사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톱스타들을 끌어 모아 출연 승락을 받으면, 어느 방송사든 편성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기를 쓰고 스타를 모으려 합니다. 스타들도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몸값은 올라갈 수밖에 없죠.
아주 단순하게, 방송사든 외주 제작사든 충실한 대본과 연출력을 바탕으로, '싼 배우'들을 써서 내실있는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톱스타 연기자, 스타 작가, 스타 PD들이 짠 진용을 거부하고 이런 드라마를 편성하는 것은 방송사의 실무자(심지어 드라마국 간부라 해도)에겐 대단한 부담이죠. 그렇게 해서 소신있게 기획한 드라마가 성공이라도 하면 대단한 선구안의 소유자로 칭찬을 받겠지만, 드라마의 성공이라는 건 누구도 예견할 수 없는 일에 속합니다. 만에 하나 실패라도 하면, 망신은 물론이고 부정을 의심받을 수도 있습니다("왜 누가 봐도 성공할 것 같은 드라마를 거부하고 저런 '후진' 드라마를 편성했지? 혹시 커미션이라도...?").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1주일 내내 드라마들끼리 치열한 삼국지를 벌이게 되어 있는 현재의 방송 구도입니다. 월-화, 수-목은 매일 오후 10시부터 세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들이 격돌하죠. 현재의 HUT를 감안하면, 드라마 한 편이 시청률 20-25%를 기록하면 2등은 10-15%, 꼴찌는 7-12% 정도를 차지하는게 보통입니다. 한 팀은 행복하지만 다른 한 팀은 어정쩡, 그리고 나머지 한 팀은 완전히 코피가 터지는 수준입니다.
현재 주말에는 세 편의 드라마가 동시에 경쟁하는 시간대가 없습니다(재방송 제외). 드라마의 시청률도 비교적 안정적입니다. '지더라도' 주중의 세 드라마 경쟁중의 꼴찌처럼 처참하게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스타 출연료를 나무랄 처지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지난 3년간 각 방송사들은 단막극, 청소년 드라마, 학원 드라마 등을 모두 없애 버렸습니다. 이런 드라마들은 당장의 시청률은 확보하기 힘들지만, 연출자의 훈련과 연기자의 육성에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즉, 당장의 시청률 경쟁에 도움이 안 되는 장기적인 투자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방송사가 분명히 한 것입니다.
출연료 삭감을 주장하는 것과 함께, 방송사가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일단 지나치게 소모적인 주중 10시대의 세 드라마 출혈 경쟁 체제부터 바꿔 놓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되면 캐스팅이나 편성 라인업에서 한결 나은 여유를 갖게 됩니다. 드라마 편수를 줄이지 않아도, 방송시간의 앞뒤를 조정해(주말처럼) 맞물리지 않게 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또 현재 방송되는 드라마 중 일부를 위에서 말한 '육성형 드라마' 로 바꿔 놓는 방안도 있습니다. 여기에 지상파 방송 3사간 한번 합의를 하면, 서로 신뢰하고 합의를 준수할 수 있을 만한 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느냐도 관건이 될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 할 얘기는 너무나 많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생각이 다른 분들도 많을 겁니다. 다만 옆에서 지켜보기엔, 역시 현재의 상황을 만든 가장 큰 책임이 방송사에 있는 만큼, 방송사가 자신들이 할 몫을 먼저 해결하는게 우선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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