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같은 주간에 그래미상과 서울가요대상이 함께 열렸습니다.

'소 핫'과 '노바디'의 원더걸스가 대상이라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물론 두 다른 그룹의 모습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도 인지상정이죠.

이 자리에 우주의 기원을 이름으로 삼은 그룹은 등장했지만 무협지적인 이름을 가진 그룹은 왜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시상식의 여파는 과연 어떻게 미칠까요. 서울가요대상 3일 전에 쓴 얘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 한국에 그래미상이 생긴다면

국내 팝 시장의 몰락과 함께 그래미상 시상식 결과에도 별 관심이 쏠리지 않던 차에 올해는 뜻밖에도 반가운 이름의 수상 소식을 들었다.

로버트 플랜트. 전설의 록 밴드 레드 제플린의 리드 보컬인 그가 만 61세에 5개 부문을 휩쓸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동방예의지국에서라면 다른 상은 제쳐두고 레드 제플린의 결성 40주년(이들의 데뷔 앨범은 1969년에 나왔다)인 올해, 공로상부터 드려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을 지도 모른다.

문득 생각해본다. 만약 이번 그래미상이 한국에서 열린 행사였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졌을까. 그리 유쾌한 일만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미상의 최고 영예는 싱글을 대상으로 한 '올해의 레코드', 앨범을 대상으로 한 '올해의 앨범', 그리고 작곡자에게 주어지는 '올해의 노래'로 압축된다. 이 3개의 상은 모든 장르를 통틀어 주어지는 상이기 때문이다. 단 이 3개 가운데서 우열을 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적인 정서에서는 누가 1등인지 가려야 하기 때문에, '올해의 노래' 부문 수상자로 내정된 콜드플레이는 "우리의 수상 순서가 마지막이 아닐 경우 시상식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어거지를 쓴다. 어쨌든 마지막에 주는 상이 가장 중요한 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최우수 남성 R&B 보컬의 2개 부문을 수상한 니요는 대중성에서 최고인 자신이 3개의 대상 중 하나도 차지하지 못한다는 건 주최측의 농간이라고 주장하며 역시 해외 투어를 떠나 버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우수 남성 팝 보컬상을 받은 존 메이어의 광적인 여성 팬들은 메이어의 싱글 '세이'가 왜 올해의 앨범상(?)을 받지 못했느냐고 대대적인 인터넷 댓글로 그래미상 흠집내기에 나선다. 여기에 싱글과 앨범의 개념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자칭 기자들까지도 팬들의 편을 들고 나서 혼란을 가중시킨다. 최우수 헤비메탈 가창/연주상을 받은 메탈리카는 그 상은 벌써 다섯 번이나 받았다며 불참을 선언해 버린다.

말도 안 된다고?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최근 '공신력있는 한국의 빌보드 차트와 한국의 그래미상'을 신설해 음악산업 진흥에 이바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상식이 없어서 음악시장이 침체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가요계 종사자들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미 가요계는 지난 2004년 지상파 3사의 연말 가요 시상식에 불신을 표명하고, 독자적인 시상식을 만들겠다고 주장해왔다. 이 시상식은 아직 한번도 치러지지 못했다. 국내에 몇 남지 않은 다른 시상식에 대해서도 '내가 받으면 좋은 상, 못 받으면 나쁜 상'이라는 가요계의 기본적인 인식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 세상의 어떤 시상식이든, 상의 공신력은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가요계와 문광부가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누가 심사를 하든, 어느 기관이 주관을 하든 '한국판 그래미'의 앞날도 그리 평탄해 보이지 않는다. (끝)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지막 문단의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강조를 위한 표현입니다. 물론 주는 사람이 잘 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시상식이든, '주는 사람'의 몫은 30% 미만입니다. 나머지는 받는 사람들이 그 상을 어떻게 인정하고, 예우하는지에 달린 겁니다.

주는 사람이 자기 몫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상은 당연히 없어져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주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도, 받는 사람들이 외면하면 그 상은 아예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처럼 대형 기획사와 톱스타들이 모든 시상식을 "우리야, 쟤네야? 우리가 아니면 안 가"라는 식의 파워 게임의 장으로 생각하는 한, 문광부 아니라 청와대가 시상 주체로 나서도 '한국의 그래미'는 존재하기 힘듭니다. 아, 차라리 문광부 아닌 국세청이 주관 기관으로 나서서 '이유 없이 불참하는 기획사에는 당장 세무조사를 실시한다'는 엄포를 놓는다면 이런 식의 파워게임이 종식될지도 모르겠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로버트 플랜트와 앨리슨 크로스의  Please Read The Letter 입니다. 플랜트의 사자후를 기대하셨던 분이라면 무척 실망하시겠지만, 이런 창법도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합니다.



물론 모든 다른 상이 그렇겠지만, 그래미상은 특히나 '그간의 공로(60) + 이번 음반의 성과(40)'를 기준으로 수상자가 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릭 클랩튼도 그래미에서는 대부분 중년 이후에 상을 받았죠. 중년 이후의 음악이 탁월해서라기보다는 '젊어서 못 준 상'을 미뤘다 줬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날도 꿀꿀한데 Led Zeppelin의 대표작 중 하나인 Immigrant Song입니다.







+ Recent posts